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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성북구 성북동 골목 안에 자리잡은 한옥 한 채. 다세대주택에 둘러싸인 한옥은 목가적인 풍치를 자아내며 한눈에 시선을 사로잡는다.

서울 성북구 성북동 골목길 한 켠에 숨어 있는 최순우 옛집. 원래 한옥으로 빼곡한 곳이었으나 2000년 이후 이 집을 빼고 모두 다세대 주택으로 변했다.
 서울 성북구 성북동 골목길 한 켠에 숨어 있는 최순우 옛집. 원래 한옥으로 빼곡한 곳이었으나 2000년 이후 이 집을 빼고 모두 다세대 주택으로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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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를 사랑하고 알리는데 앞장섰던 미술사학자 혜곡 최순우(1916~1984) 선생이 1976년부터 1984년 작고할 때까지 살던 집이다. 최순우 선생은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나는 내 것이 아름답다>의 저자로 더 잘 알려져 있다. 빼어난 눈썰미로 우리 문화 유산에 담긴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기록하는 데 평생을 바친 인물이다. 제4대 국립중앙박물관장을 역임하면서 박물관 발전에도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최순우옛집에 전시된 사진 자료와 안내 책자
 최순우옛집에 전시된 사진 자료와 안내 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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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우 선생의 소박한 멋과 혜학이 스며있는 이 집은 한때 사라질 뻔 했다. 2000년대 초반 성북동 일대에 다세대 주택 건립 바람이 불면서 개발을 피해가기 어려웠던 것.

이 같은 소식을 들은 자연, 문화유산 보존단체 한국내셔널트러스트는 시민과 기업을 대상으로 모금 운동을 벌여 2002년 12월 이 집을 매입했다. 당시 모인 돈은 8억 여 원으로 옛집 입구에는 기부자들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

허물어질 뻔 했던 최순우 옛집은 이렇게 '시민문화유산 1호'로 다시 태어났다. 최순우 옛집보존은 지자체로 하여금 근대 건축의 가치를 알리는 데 마중물 역할을 했다. 많은 지자체들이 근대 문화 유산에 대한 관심을 갖고 보존 사업에 앞장서기 시작했다고 하니 단결된 시민의 힘은 참 대단하다 싶다.

입구에 들어서면 향나무와 소나무가 있는 정원이 나온다. 100년이 훌쩍 넘은 나무라고 하니 이 집의 역사를 우두커니 지켜보고 있었으리라. 옆으로는 네모난 형태의 우물과 돌로 만든 작은 절구가 놓여 있다.

최순우 옛집 앞마당. 100년이 넘은 향나무와 소나무가 방문객을 맞는다.
 최순우 옛집 앞마당. 100년이 넘은 향나무와 소나무가 방문객을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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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채는 전시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는데, 안으로 들어가서 최순우 선생이 쓴 책들을 읽어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이미 읽었던 책이지만 저자의 공간에서 읽어보니 문장 하나하나가 새롭게 와닿는다.

부엌으로 쓰던 공간에는 안경, 라디오, 사진기, 육필 원고가 전시되어 있다. 선생의 단촐한 삶이 느껴진다.

사랑방 입구에 걸린 현판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두문즉시심산(杜門卽是深山)'. '문을 닫으면 곧 깊은 산속'이라는 뜻으로 최순우 선생이 직접 쓴 것이라 한다. 자연의 아름다움을 강조했던 그의 지론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최순우 선생이 직접 쓴 현판. 두문즉시심산(杜門卽是深山)은 '문을 닫으면 곧 깊은 산속'이라는 뜻이다.
 최순우 선생이 직접 쓴 현판. 두문즉시심산(杜門卽是深山)은 '문을 닫으면 곧 깊은 산속'이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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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우 선생의 사랑방으로 들어가니 창문을 통해 보이는 뒷마당 풍경이 한 폭의 그림처럼 펼쳐진다. 단풍나무, 대나무, 석물이 조화를 이뤄 마치 동양화를 보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뒷마당으로 나가 한참을 서 있으니 마치 산 속에 있는 느낌이 들었다. '두문즉시심산(杜門卽是深山)'은 이 감흥을 표현한 것이 아닌가 싶다.

최순우옛집 사랑방에서 보이는 뒷마당. 창문을 통해 보이는 뒷마당 풍경은 한 폭의 그림 같다.
 최순우옛집 사랑방에서 보이는 뒷마당. 창문을 통해 보이는 뒷마당 풍경은 한 폭의 그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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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마당 한 켠에 있는 돌의자에 앉아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를 다시 꺼내들었다. 때마침 이런 구절이 눈에 들어왔다.

'한국의 주택은 조촐하고 의젓하며 한국의 자연풍광과 그 크기가 알맞다. 하늘을 향해 두 처마끝을 사뿐히 들었지만 날아갈 듯한 경쾌도 아니요 조잡한 듯 하면서도 온아한 미덕과 질소(質素)한 기능과 구조가 이 지붕 밑에 한국 사람들의 담담한 마음씨를 담기에 참으로 격이 맞다.'

최순우 선생이 주로 집필을 했던 공간인 사랑방. 단촐한 삶을 엿볼 수 있다.
 최순우 선생이 주로 집필을 했던 공간인 사랑방. 단촐한 삶을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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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와 석물이 조화를 이룬 최순우옛집의 뒷마당. 한 켠에 마련된 의자에 앉아 선생의 책을 읽어볼 수 있다.
 나무와 석물이 조화를 이룬 최순우옛집의 뒷마당. 한 켠에 마련된 의자에 앉아 선생의 책을 읽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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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우 선생이 말한 소박한 아름다움이 이 옛집 곳곳에 스며 있다. 선생의 책을 더 온전하게 이해하고 싶다면 꼭 둘러봐야 할 곳이다. 매주 월요일은 휴관이고 오전 10시~오후 4시까지 문을 연다. 관람료는 없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내 손안에 서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최순우옛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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