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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태 저 <화양연화의 길> 표지
 김상태 저 <화양연화의 길> 표지
ⓒ 김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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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왕가위 감독이 연출하고 양조위와 장만옥이 주연한 한 편의 영화가 2000년 칸 국제영화제에서 남우 주연상과 기술대상을 수상했다. 이 영화의 촬영감독은 오랜 세월 왕가위 감독의 파트너로 활동해온 크리스토퍼 도일이 맡았다.

영화를 즐겨보는 분들은 왕가위 감독의 이 작품 제목이 <화양연화>라는 사실을 대뜸 떠올릴 것이다. 화양연화(花樣年華)는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 말일까? 인생의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시절, 그 시절이 바로 화양연화이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어떤 극중 인물도 배경도 담지 않는다. 관객은 검은 화면에 박힌 하얀 글자들만 볼 수 있을 뿐이다. 감독은 관객들에게 '그는 지나간 날들을 기억한다. 먼지 낀 창틀을 통해서 과거를 기억할 수는 있겠지만 모든 것이 희미하게만 보였다'라고 말한다.

영화는 이룰 수 없는 사랑의 애틋함을 관객들에게 애잔하게 전달한다. 영화속 주인공들도 이룰 수 없는 사랑에 매달렸던 그 시절이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했던 시절이라고 회상한다. 어쩌면 영화를 본 관객들도 자신의 지나간 사랑을 떠올리면서 주인공들과 동병상련의 느낌을 주고받았을지도 모른다.

지나간 사랑의 시절이 가장 아름다웠다고?

그러나 최근 <화양연화의 길>이라는 제목의 저서를 발간한 김상태 전 영남일보 사장은 이루지 못한 지난 날 사랑의 한때가 '화양연화'가 아니라고 말한다. 저자는 '젊음이 좋은 것만은 아니듯, 늙음도 꼭이 나쁜 것은 아니다. 나이와 늙음의 함수관계는 사람마다 다르다. 길을 잃은 젊은이보다 한창나이를 넘긴 노인에게서 훨씬 더 나은 삶의 기백을 발견할 수도 있다'면서 '노년의 지혜로운 삶을 스스로 깨닫고 개척해 나가자'고 제안한다.

결론부터 말하면 <화양연화의 길>은 어떻게 하면 노년기를 생애 전체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시절로 만들 수 있는가에 대한 사려깊은 천착의 결과물이다. 2017년 8월말을 기준으로 우리나라 전체 인구의 14%에 해당되는 720만 명이 65세 이상 노인들이다. 이들이 젊은 세대로부터 '무시당하는 수준을 넘어 적대시당하는' 신세로 내몰리지 않고 함께 어우러져 행복하게 살아가려면 어떻게 말하고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에 관한 자상한 안내서이다.

저자는 '젊은이들을 탓하기 전에 늙은이들이 먼저 발 벗고 나서야 한다'고 강조한다. '변하는 세상을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눈과 귀가 제대로 작동을 하지 않으면 정보가 부족해지고, 세상 돌아가는 추세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해 옛날 사고에 갇힌다. 대화는 끊기고 세대 간 단절의 골이 깊어진다.

거대한 노인 집단이 이처럼 세상의 변화를 외면하면 결국 우리 사회 전체의 발전이 그만큼 더뎌진다. 저자는 '인생의 겨울인 노년을 더 유익하고 재미있게 보내려면 세상과 보조를 맞춰나가는 것이 옳다'면서 '세상의 변화에 호기심을 잃지 말아야 한다'고 조언한다.

'구노인'이 되지 말고 '신노인'이 되자

저자는 그렇게 할 줄 알고, 그럴 마음을 가진 노인은 '신(新)노인', 그러지 못하거나 거부하는 노인은 '구(舊)노인'으로 분류한다. 저자는 신노인을 상징할 수 있는 신조어를 하나 만들었다. 신노인은 곧 Senident이다. Senior와 Student의 합성어인 Senident는 '늙어서도 배울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큰 축복인가!' 하고 스스로 생각할 줄 아는 신노인을 지칭한다.

신노인은 첫째, '변하는 세상 공부하기'에 바쁘다. 신노인은 쥐에게서 더듬이 기능을 하는 수염을 잘라버리면 뇌의 발달이 멈춰버린다는 사실을 안다. 늙어서 계속하는 공부는 육체적 운동을 열심히 하는 것 못지않게 질병 예방에 도움을 준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따라서 신노인은 '즐거운 삶에 빠지기 위해 배우는 재미에 빠진다'.

신노인은 둘째, '음미하는 삶 살기'에 바쁘다. 신노인은 하루하루가 계획되고 반추되는 삶을 영위한다. 내일 할 일을 오늘 밤에 미리 계획하고 하루가 끝났을 때는 일기를 쓴다. 존재의 주체인 나 자신이 아무런 생각도 없이 살고 있으면 무심히 흐르는 세월에 아무 의의가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신노인은 셋째, '쓸모 있는 사람 되기'에 바쁘다. 100세 시대에 스스로 늙었다고 판단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쓸모있는 노인이 되겠다는 마음가짐이 중요하다. 일을 하거나, 자원봉사를 하거나, 집안일을 도우면서 내가 살아 있음으로 하여 다른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삶을 지향해야 한다. 그것은 건강에도 도움이 된다.

노인이 변해야 나라가 산다

책은 1부와 2부로 크게 대별되어 있다. 1부는 고령자들이 왜 신노인이 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저자의 주장을 담은 부분이다. '노년, 또 다른 좋은 삶', '노인도 변해야 나라가 산다', '고액 연금이 함정일 수 있다', '내 삶의 열쇠들', '당신의 몸값은?', '요즘 뭘 배우시는지요?', '윗사람이 먼저 인사하자', '자고나면 바뀌는 세상', '젊음과 맞바꾸지 않을 늙음' 등의 소제목들은 1부의 글들이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 충분히 예고해준다.

2부는 노년 생활의 마음가짐에 도움이 될 만한 책이나 영화를 보고 쓴 감상문 성격의 글들이다. 특징은 1부와 2부의 글들 모두를 저자가 70세 넘어서 썼다는 사실이다. 즉 <화양연화의 길>은 저자가 추론하거나 상상력을 발휘해서 쓴 글모음이 아니라 노년의 당대를 살아가는 원로가 자신의 이야기를 말하고 있는 살아 움직이는 현재적 논저이다.

저자는 "고령자들은 세상에 아무 쓸모없는 노년을 그냥 즐기려는 태도를 버려야 한다. 쓸모있는 사람은 못 되더라도 글로벌 경쟁 시대에 역동적으로 살아가야 할 우리 사회의 발목을 잡는 존재가 되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구노인에 머물지 않는, 신노인의 길"이라고 힘주어 말한다. 저자의 명함에는 전화번호 숫자 외에 글자는 '신노인운동 김상태' 여덟 자만 새겨져 있다.

덧붙이는 글 | 김상태 저 <화양연화의 길>(지혜나무, 2018년 6월 15일), 신국판 214쪽, 1만4천 원.



화양연화의 길

김상태 지음, 지혜나무(2018)


태그:#김상태, #화양연화, #화양연화의 길, #신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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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한인애국단><의열단><대한광복회><딸아, 울지 마라><백령도> 등과 역사기행서 <전국 임진왜란 유적 답사여행 총서(전 10권)>, <대구 독립운동유적 100곳 답사여행(2019 대구시 선정 '올해의 책')>, <삼국사기로 떠나는 경주여행>,<김유신과 떠나는 삼국여행> 등을 저술했고, 대구시 교육위원, 중고교 교사와 대학강사로 일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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