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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숙소 경계근무 서는 구르카 용병 북미정상회담을 이틀 앞둔 10일 오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숙소인 세인트레지스 호텔 앞에서 네팔 구르카족 용병 무장 경찰이 경계경비를 서고 있다.
▲ 김정은 숙소 경계근무 서는 구르카 용병 북미정상회담을 이틀 앞둔 10일 오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숙소인 세인트레지스 호텔 앞에서 네팔 구르카족 용병 무장 경찰이 경계경비를 서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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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무기가 최강인가는 상대적 문제다. 핵무기도 필요 없을 때가 있다. 상황에 따라서는 재래식 무기가 최강이 될 수도 있고, 최루탄이 최강이 될 수도 있고, 주먹이 최강이 될 수도 있다. 건달들의 난투극 현장에서는 미국 대통령의 핵무기 가방도 아무런 소용이 없다.

이 같은 무기의 상대성을 보여주는 장면이 싱가포르에서 펼쳐진다.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회담은 인류 최강의 무기인 핵무기와 관련된 만남이다. 그런데 이 회담의 경호를 맡은 부대는 또 다른 의미에서 '인류 최강급 무기'의 보유자들이다.

히말라야 고산지대에서 체력과 끈기를 단련시킨 이들은 맨몸으로 하는 전투에서만큼은 가히 세계 최정상급이다. 싱가포르 경찰부대에 고용된 네팔 구르카족(고르카족) 용병들이 바로 그들이다. 인류가 보유할 수 있는 최강의 핵무기를 다루는 정상들의 회담에, 인류가 갖출 수 있는 최상의 신체 조건을 갖춘 용병들의 경호가 이번 북미정상회담에서 어우러진다. 

몽골계 인종인 고르카족 용병이 세계적 주목을 받은 계기는 1814년 구르카 전쟁(네팔-영국 전쟁)이다. 아시아 침략 당시 영국은 오스만투르크(터키)나 청나라보다는 상대적으로 약한 무굴제국(인도)을 먼저 공략했다. 1630년부터 인도 해안에 거점을 확보한 뒤 프랑스와 경쟁해 나가던 영국은, 1757년 플라시 전투에서 프랑스를 꺾고 인도에 대한 독점적 지위를 확보했다.

'세계 최강'이라 불리는 사람들

 구르카 전쟁 당시의 구르카 병사들.
 구르카 전쟁 당시의 구르카 병사들.
ⓒ 퍼블릭 도메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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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은 1773년부터는 무굴제국에 총독을 파견했다. 그렇게 인도에 대한 지배권을 굳히면서 착수한 작업이 인도 주변 지역에 대한 침략이었다. 구르카 전쟁은 그래서 발발했다. 당시 네팔을 지배한 나라가 구르카 왕국이라서 구르카 전쟁으로 불린다. 

"영국은 인도 주변의 국가와도 전쟁을 벌여 연거푸 승리를 거두었다. 당시 아삼 지방을 정복하고 동방으로의 진출을 꾀하던 버마(미얀마)와 1824~1826년과 1852~1853년 두 차례에 걸쳐 전쟁을 벌여 승리를 거두었고, 1814~1816년에는 구르카 전쟁을 통하여 네팔을 물리쳤다." - 인도철학 박사 김형준의 <이야기 인도사> 중에서.

영국은 구르카 전쟁에서 전승뿐 아니라 또 다른 것도 챙겼다. 바로, 용맹한 구르카 전사들이다. 이 전사들은 비록 전쟁에는 패했지만, 쿠크리라는 단검 하나만으로 영국군의 간담을 서늘케 했다. 이를 계기로 영국은 그들을 용병으로 채용했고, 이로써 그들은 영국의 인도 지배에 동원됐다. 인도 주둔 영국군에 편입돼 영국의 식민 지배를 돕는 역할을 수행했다.

1856년, 영국의 인도 지배가 중대한 도전에 직면했다. 1919년 3·1운동으로 일본제국주의가 받은 타격보다 훨씬 더한 타격이었다. 바로, 세포이 항쟁이다. 세포이는 영국이 만든 기업형 침략기관인 동인도회사의 인도인 용병들이다. 이들은 식민지배에 맞서 일어선 것이다. 이들의 무장투쟁에 농민과 시민들이 가담하면서 영국의 식민지배는 위험에 빠졌다.

이 상황에서 영국군을 도와 진압작전에 기여한 게 바로 구르카 용병들이다. 네팔인 용병이 인도인 용병의 반란을 제압하는 데 기여했던 것. 세포이 항쟁의 실패와 함께 무굴제국은 멸망했고, 이로써 인도에 대한 영국의 직접 지배가 실현됐다. 구르카족이 거기에 한몫을 한 것이다.

영국 입장에서는, 가급적 용병을 쓰는 게 자국의 제국주의 침략에 대한 국제적 반감을 줄이는 방편이 될 수 있었다. 식민지를 넓히려면 영국 군인만으로는 부족했기 때문인 측면도 있지만, 자국에 대한 부정적 시선을 줄이려는 의도도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영국이 구르카족 용병한테 호감을 표시한 데는 용맹성 외에 이런 요인도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영국과 구르카족의 인연

 영국 웨스터민스터시에 있는 구르카족 군인상.
 영국 웨스터민스터시에 있는 구르카족 군인상.
ⓒ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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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주가 종업원을 대외적으로 과도하게 칭찬할 때는 뭔가 이유가 있기 마련이다. 일을 잘해서 그럴 수도 있지만, 다른 이유가 있을 수도 있다. 구르카족 용병이 2018년 북미정상회담에 기용될 수 있었던 것은, 19세기부터 영국이 구르카족 용병의 신화를 퍼트렸기 때문이다.

영국이 그렇게 한 것은 구르카족이 전투를 잘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들 덕분에 영국의 이미지를 어느 정도 보호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고도 볼 수 있다. 영국의 전쟁이 구르카족의 전쟁처럼 비치도록 하는 전략이 깔려 있었다고도 볼 수 있다. 

그 후로도 구르카족 용병들은 영국군에 큰 도움이 됐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는 일본군과의 전투에서도 공을 세웠다. 단검 하나만 들고 일본군 참호에 뛰어들어 24명을 죽인 구르카 용병의 이야기는 유명하다.

한국전쟁 때 중공군이 최초로 패배한 전투가 1951년 2월 경기도 양평군 지평리 전투다. 이 전투에서는 영국군에 속한 구르카 용병 1개 대대가 중공군 1개 사단을 격파하는 데 가담했다. 이런 사례를 계속 열거하자면 한도 끝도 없다. 

구르카족 용병들과 영국의 인연은 질겼다. 1947년 8월 15일 인도가 독립했다. 이를 계기로 인도 주둔 영국군에 속해 있던 구르카 용병의 일부는 싱가포르로 근무지를 바꿨다. 당시 싱가포르는 영국 식민지였다. 영국 식민지배의 도우미라는 구르카 용병들의 역할은 그렇게 계속됐다.

그런데 싱가포르가 완전 독립을 성취한 1965년 8월 이후에도 구르카 용병들은 계속 남았다. 독립된 싱가포르가 그들을 필요로 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그들이 용맹해서만은 아니었다. 또 다른 이유가 있다. 1965년 당시의 싱가포르는 이랬다.

"싱가포르에는 중국인들만 있는 게 아니었다. 말레이인, 인도인 그리고 유라시아의 혼혈인도 적지 않았다. (중략) 국민국가를 만들어낼 수 있는 뿌리도, 또 그 정체성도 없었을 뿐 아니라 민족적 배경, 이데올로기적 성향에 따라 이리 갈라지고 저리 갈라진 나라가 바로 싱가포르였다." - 동덕여대 교수 김성진의 <리콴유-작지만 강한 싱가포르 건설을 위해> 중에서.

싱가포르에게도 필요했던 그들

 구르카족의 도검인 쿠크리.
 구르카족의 도검인 쿠크리.
ⓒ 퍼블릭 도메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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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싱가포르 식민지배를 보조했던 용병들이 쫓겨나지 않고 계속 남을 수 있었던 또 다른 요인은 독립된 싱가포르의 민족 문제에 있었다. 이 나라는 '이리 갈라지고 저리 갈라진' 다민족 국가였다. 이런 나라를 경찰력으로 통제하는 데 구르카족의 국적이 중요한 기능을 했다.

1950년 말레이계 이슬람교도들과 네덜란드계 가톨릭교도들이 충돌해 18명이 사망하고 173명이 부상하는 사태가 발생했을 때, 또 1964년 말레이계와 중국계가 2개월간이나 충돌했을 때, 구르카족 용병 경찰들의 존재가 빛을 발했다.

만약 1950년 사건 때 이슬람 출신 경찰이나 가톨릭 출신 경찰들을 동원해 사태를 진압했다면, 정부의 공권력 행사가 공정성을 인정받기 힘들었을 수도 있다. 제3자인 구르카족 용병들을 동원한 덕분에 공정성 시비가 생기지 않았던 것이다. 영국 정부가 그랬던 것처럼, 싱가포르 정부도 곤란한 일에는 구르카족을 내세워 자신들의 이미지를 보호해 왔던 것이다.

구르카족 용병들의 그 같은 '쓰임새'를 고려할 때, 싱가포르 정부가 북미정상회담 경호를 그들에게 맡긴 것은 용맹성 때문만은 아닐 수도 있다. 위험하고 골치 아픈 사안을 구르카족 용병들에게 맡기는 것은, 이들의 최초 고용주인 영국 정부도 많이 했던 일이다. 구르카족이 김정은과 트럼프를 잘 경호해주리라는 확신과 더불어, 구르카족을 내세워야 싱가포르 정부의 부담을 덜 수 있다는 판단도 동시에 작용했을 수 있다.

트럼프 숙소 경계근무 준비하는 구르카 용병 북미정상회담을 이틀 앞둔 10일 오후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숙소인 샹그릴라 호텔 앞에서 네팔 구르카족 용병 무장 경찰이 경계경비를 준비하며 이동하고 있다.
▲ 트럼프 숙소 경계근무 준비하는 구르카 용병 북미정상회담을 이틀 앞둔 10일 오후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숙소인 샹그릴라 호텔 앞에서 네팔 구르카족 용병 무장 경찰이 경계경비를 준비하며 이동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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