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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탓을 하기엔 이른 것도 같지만, 노화를 부정할 순 없나 보다. 이곳저곳 아픈데도 생기고 체력도 예전 같지 않다. 과음 한 번 하면 해장을 일주일씩 해야 할 판국이니 이거 원. 가뜩이나 나이 드는 것도 서러운데, 세상 돌아가는 것에 아무런 좋은 기여도 하지 못하고 넋 놓고 있다는 생각까지 드는 날엔 낯이 다 뜨거워진다.

세상을 바꾸기 위해 누군가는 투사가 되어 맞서 싸우고, 누군가는 뜨거운 글을 써내려감으로써 기여하는데,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쓰레기만 만들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 이런 생각까지 들고 보면, 태극기 든 어르신의 열정 앞에서도 할 말을 잃을 지경이다. 너는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하는 부끄러움이랄까.

이럴 땐 세상을 먼저 살아온 어르신의 말씀을 들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일 테다. 배울 점은 배우고, 경계할 것은 경계하면 그만이다. 더구나 언제나 발랄한 사노 요코 할머니의 글이라면, 다른 건 몰라도 소소한 웃음을 건질 것만은 확실하다. 그녀가 쓰고, 기타무라 유카가 그린 그림 에세이집 <요코씨의 "말">을 펼쳤다.

 <요코씨의 "말"> 책표지
 <요코씨의 "말"> 책표지
ⓒ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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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젊은 시절 요란한 옷차림을 하고 다닌 적이 있단다. 숙모께 핀잔을 들을 때면 아무렇지도 않게, "하하하, 내 마음이지"라고 말할 수 있었는데, 학부모 집단으로부터 같은 소리를 들었을 때는 그럴 수 없었다고 한다. 생뚱맞게도 나는, 대중의 힘을 생각했다.

"너무 무서웠어요. 아마도 개인적인 선이 아니라 여럿이어서 무서웠나 봐요." (p53)


뉴스를 틀면, 다양한 것들을 주제로 한 이런저런 여론 조사 결과를 쉽게 접할 수 있다. 모든 사안을 투표로 결정할 것도 아닌데 여론이 대체 뭐가 중요한가 싶을 때도 있지만, 아니다. 어쩌면 여론을 제대로 파악하는 것이 지도자의 제일 중요한 덕목인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나는, 올바른 대중이 되기 위해 공부하고 노력하는 것만으로도 최악은 아닌 것이라고, 얼렁뚱땅 위로를 찾아낸다.

"저는 일반 대중입니다. 저는 일반 대중이 가장 무서운 존재라고 생각해요." (p61)


저자는 좌든, 우든, 정의가 뭔지 모르겠다고, 그런 말만 들으면 질색이라고 하지만, 정확히 말한다.
"어떤 일이 있어도 전쟁에서 젊은 청년들을 죽여서는 안 된다고, 또 그들이 죽임을 당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p56)


그녀다운 말이 바로 이어지니, 웃지 않을 수가 없다.

"하지만 그것을 위해 무엇을 하고 있느냐고 묻는다면 딱히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아요." (p57)


그러나 결코,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이 아니다. 이런 글을 쓴 것도, 덧붙이자면 읽는 것도, 바른 생각을 갖기 위해 노력하는 것도. 이 노력만으로도, 우리는 무언가를 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그녀는 기분 전환 같은 건 일부러 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런 게 필요하지 않을 정도로 밝고 행복해서가 아니라, 대부분 항상 우울하다고 하면서도 말이다. 우울하면 벌렁 드러누워 걱정만 하느라, 몸은 편하지만 마음은 늘 불편하단다. 그러면서도 덧붙인다.

"그렇게 살아서 뭐가 즐거우냐 싶겠지만 그게 즐거워서 그만두지 못 할 정도. 이러고 천년만년 살고 싶다." (p125)


기분 전환은 일부러 애쓰지 않아도 우연히 하게 된다는 것이다. 한때 그녀는 예쁜 기념우표를 사서 침 발라 붙여가며 쓰는 것에 맛을 들여서, 순전히 그 맛에 자기 자신에게까지 편지를 썼다고 한다. 요즘 말로 하면 '소확행(작지만 확실한 행복)'이랄까. 그녀는 실컷 하다 그것에 질려도 상관없다고 한다. 그녀의 여유를 닮고 싶어진다.

"또 다른 하찮은 뭔가가 알아서 찾아와 줄 테니 사이좋게 그 손을 잡고 꿋꿋하게 살아가야지." (p137)


그녀 나이 열아홉 땐, 서른을 넘긴 사람은 대체 무슨 재미로 살까 생각했다고 한다. 정작 그녀 자신도 젊음을 만끽하지 못한 채 고독했으면서도 말이다. 그녀는 말한다. 아무리 투철해지려고 해도, 고독은 고독이었다고. 그러니 핏줄의 굴레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 때로 화나고 지치는 일이지만, 그것이 필요할지도 모른다고.

"이판사판이다, 인간관계 복잡하니 매듭이 어디 지어진지도 모르게 다 뒤엉킨 채로 무덤 속까지 함께 들어가고 싶다고 생각한다." (p155)


나로선 고독의 해결책이 오직 핏줄이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다만, 아무리 잘나든 못나든 우리가 완전히 홀로 있을 수는 없음을, 우리에겐 분명 사람의 온기가 필요함을 시시각각 깨닫게 된다. 오직 나만이 아닌 '우리', 공동체를 생각하는 삶이란 가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해 본다.

줄어가는 체력은 조금 아쉽지만, 사실 나는 늘어가는 내 나이를 좋아한다. 여전히 부족해 매일매일 반성할 것 투성이지만, 그래도 이전보다 한결 나은 마음의 여유를 가졌으니, 이건 시간이 준 선물일 테다. 누군가 질풍노도의 시기로 돌아갈 기회를 준대도, 나는 설레설레 고개를 젓고 말 테다.

다만, 나는 조금 더 당당한 어른이 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지구에 폐만 끼치고 떠난다고 생각하면 너무 서글프니까. 그러나 거창한 일은 찾지 않기로 한다. 나는 오늘도 올바른 가치관을 갖기 위해 노력하고, 내 일을 최선을 다해 하고 있으며, 세상 돌아가는 뉴스에 관심을 놓지 않으니까. 이만 하면 잘 하고 있다고, 비하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 본다. 

실은, 저자의 다른 에세이집에서, "모든 인간이 다 평등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라는 구절을 보고, 나는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고 생각하는 터라 한동안 사노 요코라는 작가에게 토라져 있었다.

다시 다른 책으로 그녀에게 또 서운함을 느낄 지도 모르지만, 오늘만큼은 그녀 덕분에 위안을 받았음이 분명하니, 참 고마운 일이다. 참 충성심이라곤 없는 변덕스러운 독자가 아닐 수 없다. 뭐 어쩌겠나, 이렇게 말할 수밖에. "하하하, 내 마음이지(부제)".


요코 씨의 말 1 - 하하하, 내 마음이지

사노 요코 지음, 기타무라 유카 그림, 김수현 옮김, 민음사(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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