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얼마전 군입대한 첫째 아이가 사촌 누나를 만나고 와서 이름 이야기를 꺼낸다.

"엄마, 생각해 보니까 부모 성 같이 쓰는 내가 딸이 아니고 아들이라 다행인 거 같아. 만약 사촌 누나가 나 같은 이름을 가졌으면 엄청 부담스러웠을 것 같아."

남과 좀 다른 이름을 가진 첫째가 자란 뒤 뭐라고 할까 내심 걱정했는데. 첫째는 딸이 아니라 다행이란 말을 한다.

'이름을 뭐로 지을까?' 20년 전, 첫째를 낳고 우리 부부는 한 달 내내 고민했다. 그땐 한글 이름이 유행이라 한글 이름 서너 개를 놓고 뭐가 좋을지 재고 있었다.

그런데 어머님에게 전화가 왔다. 며칠 전 아버님이 우리 아이 이름을 고민해 두 가지를 정해 알려 주셨는데 우리 부부가 직접 작명하겠다며 거절한 일이 있었다. 그 일로 아버님 상심이 크셨다는 말씀이었다. 옆에서 지켜보는 어머님의 마음 역시 안 좋다는 말도 함께 전하셨다.

남편은 '우리가 아이 이름을 꼭 지어야 하냐'고 나에게 물었다. 공동의 목표를 이뤄야 할 아군을 잃은 것 같았다. 남편은 '어머님도 저리 말씀하시고 아버님도 고생하셨다고 하니 이번만은 어른들의 뜻을 따르자'고 했다.

임신과 출산 육아로 이어진 일련의 과정이 머릿속에 스쳐 지나갔다. 유도분만 하러 오전에 병원에 입원했다가 다음 날 오후 4시에 아기를 낳았다. 출산하면서 피를 많이 흘려 애를 낳고 기절했다. 수혈을 받고서 정신을 차렸지만, 병실에 올라가지도 못하고 하룻밤을 분만대기실에서 위기 상황에 대비했다. 의사는 일 년에 한두 번 나오는 난산이라고 말했다.

아이를 낳느라 고생한 사람, 젖을 먹이느라 고군분투해야 하는 사람, 아기 이름을 제일 많이 불러 줄 사람은 나인데 아기 이름은 아버님의 뜻대로 결정해야 한다는 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게다가 아이 성은 이미 아버님의 성을 따르지 않는가?

 2일 오후 본회의에서 호주제 폐지안이 통과된뒤 여성단체관계자들이 국회 기자실에서 호주제폐지축하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여성단체 관계자들이 `평등가족만세`를 부르고 있다.
 2005년 3월 2일 오후 본회의에서 호주제 폐지안이 통과된 이후 부모성 같이 쓰기 운동이 이어졌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관련사진보기


속이 상한 나는 남편에게 새로운 제안을 했다. 그 해 마침 유행이 일던 '부모성 같이 쓰기'를 하자고.

이름이 네 글자니까 페미니스트?

내 성인 '강'을 아버님이 지어준 이름 홍길동(가명) 사이에 넣어서 '홍강길동'으로 짓는 것이다. 남편도 좋다며 동의를 해주었다. 그래서 우리 아이 이름을 홍강길동으로 정했다. 호적에 올릴 때는 성은 '홍' 이름이 '강길동'이다. 집에서는 '길동'으로 불렀다.

아이가 자라면서 문제가 생겼다. 사람들이 아이 이름을 잘 못 알아듣는 것이었다. 네 자를 또박또박 말해 줘도 사람들은 이름을 세 글자로 알아들었다. 자꾸 그런 일이 반복돼서 새로운 방안을 만들었다.

"이름이 네 자예요. 홍. 강. 길. 동."

그러면 사람들이 '아~'하며 쉽게 알아들었다.

아이가 좀 더 자라면서 가끔 이런 사람을 만나기도 했다.

"그럼 나중에 자식이 아이를 낳으면 손주의 이름이 너무 길어지는 거 아니에요? 예를 들면 홍강김박정민. 뭐 이런 식으로. 그다음엔 여덟 자 성이 되고. 그럼 성이 너무 긴 거 아닌가?"

우리 동네의 치과 선생님이 바로 이런 케이스다. 이름에 부모 성을 같이 썼다 알려주니 이런 반응을 보였다.

"꼭 그럴 필요는 없어요. 자기 성이나 이름에서 한 자를 따서 자식 이름을 지어도 되고. 그건 그때 자기들이 정할 일이죠."

이 같은 질문을 하는 분들은 사실 '부모성 같이 쓰기 운동'이 있다는 것 정도는 좀 아는 사람들이다. 이런 운동이 있었는지도 모르는 사람은 질문 자체를 하지 않는다.

그리고 또 다른 반응은 아이가 중학교에 들어갔을 때 나타났다. 특히 선생님들이 이런 반응을 자주 보이셨다.

"엄마, 선생님이 엄마 뭐 하시는 분이냐고 물어. 무슨 여성 단체에서 일하시냐는데?"

"그래서 뭐라고 했어?"

"안 한다 했지. 그리고 또 뭐라더라 페, 페... 뭐라고 물었는데."

"페미니스트냐고?"

"응. 페미니스트가 뭐야? 왜 사람들이 엄마 그거냐고 물어?"

"페미니스트는 이 세상이 여성을 차별한다고 느끼고 그런 세상을 고쳐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야. 엄마가 네 이름에 엄마 성을 넣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아마 엄마가 페미니스트일 거로 생각하는 거 같아."

아이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이름에 엄마 성을 넣는 아주 단순한 일을 사람들이 그렇게 큰 사회적 의미로 받아들이는 걸 의아해하는 것 같았다. 엄마와 자신을 이어주는 또 하나의 끈 중 하나일 뿐인데 뭐가 그렇게 이상하다고 사람들은 비슷한 질문을 하나, 뭐 그런 표정이었다.

"이름 바꿔도 돼" 아이의 대답은...

 호주제 폐지는 사회 전반의 성차별 문화에 많은 변화를 몰고 올 것으로 예상된다. 그림은 한국여성단체연합의 '평등가족 캠페인'.
 당시 호주제 폐지는 사회 전반의 성차별 문화에 많은 변화를 몰고 올 것으로 예상됐다. 그림은 한국여성단체연합의 '평등가족 캠페인'.
ⓒ 한국여성단체연합

관련사진보기


사실 아이가 성인이 되기 전에는 아이 이름에 부모 성을 넣어 네 자로 지은 것에 대해 후회를 한 적은 없다. 그땐 부모성 같이 쓰기 운동이 막 시작된 해라서 해가 지날수록 부모 성을 같이 쓴 이름이 널리 퍼질 것이라 예상을 했다. 그런데 내 예상은 빗나가 버렸다.

아이가 성인이 되니 내 생각도 좀 달라진다. 아이가 사촌 누나를 만나고 와서 꺼낸 이야기를 듣고 자신의 이름에 대해 깊은 고민을 했다는 걸 알게 됐기 때문이다.

"내가 여자로 태어났는데 이름에 부모 성 같이 들어있으면 좀 힘들었을 거 같아. 여자들더러 '메갈'이니 페미니스트니 그러잖아. 지금은 내가 남자라 되레 좋게 보는 사람도 있는데."

나는 아이가 한 말이 무슨 의미인지 이해가 되었다. 페미니즘을 지향하는 남자는 매너 좋고 생각이 깨인 사람으로 평가받는데 페미니즘을 이야기하는 여자의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걸 아이는 어느새 알고 있다.

사실 20년 전 나와 남편이 치렀던 결혼식 덕분에 남편은 주변에서 칭찬을 많이 들었다. 우리는 결혼식에 여성 주례를 세웠고, 신랑·신부 동시에 입장했고, 결혼식장에서 발표된 25가지 결혼생활 원칙 역시 성평등을 반영한 내용이 많았다.

그에 반해 내 주변의 반응은 아주 친한 친구를 빼고는 썰렁 그 자체였다. 남편을 보는 주변 사람들의 눈은 확 달라졌다고 해야 할 정도라 나로선 황당했었다. 내가 하자고 해서 남편은 겨우 끌려오다시피 내 뜻을 들어 주었는데 칭찬은 다 남편이 듣고 있으니...

사촌 누나를 만나고 온 아이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사람들과 다른 이름을 가진 아이를 생각했다. 그리고 이름만으로도 이미 페미니스트의 자식임이 입증된다는 게 한 사람에게 어떤 의미일지 상상했다. 페미니즘이 옳다, 그르다는 문제가 아니다. 그게 뭔지도 모르는데 사람들이 이미 '페미니스트'로 확신하고 있다는 게 한 사람의 삶에선 부담스러운 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는 네가 원한다면 이름을 바꾸는 것도 좋다고 생각해. 자식의 삶이 부모의 결정으로 좌지우지되어선 안 된다고 엄마는 생각하거든. 너는 그냥 너야. 엄마나 아빠가 물려준 유산이 아무리 훌륭하다 하더라도 그걸 네가 선택한 것이 아닌 한 아무 의미가 없다고 엄마는 생각해."

"엄마, 난 세상에 하나뿐인 내 이름이 좋아. 그리고 아직 이름을 바꾸고 싶은 생각은 없어."

'부담스러운' 이름을 지어준 지난날을 이제 와 생각하니 괜히 미안해진다. 아이가 성인이 되었을 땐 세상이 변해서 부모 성을 둘 다 붙인 이름이 평범해질 거라고 기대했는데...

 갓을 쓴 유림 관계자가 호주제 폐지를 반대하는 피켓을 들고 있다.
 호주제 폐지가 전국적 이슈가 됐을 당시의 모습. 그때에 비하면 부계 중심의 성 체계에서 조금씩이나마 벗어나고 있는 것 같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관련사진보기


지금 우린 얼마나 와 있는 것일까? 돌이켜 보니 기대엔 못 미치지만 예전보다는 부계 중심의 성 체계에서 조금씩이나마 벗어나고 있는 것 같다. 자신의 이름에 애정을 가진 첫째가 고맙다.

덧붙이는 글 | '이름 때문에 생긴 일' 공모 기사입니다.



댓글8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주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

라이프+ 여행·문화 담당 기자.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기 위해선 이야기의 힘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