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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th 이재민 작품전 : 불편한 공존>이 서울시 마포구 서교동 무국적 아트 스페이스에서 오는 17일까지 열린다.

현재 미술교사이기도 한 이재민 작가는, 우리가 불편한 사회구조와 생태 환경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으로부터 출발해 촛불을 들었던 광화문의 기억과 생태 환경의 문제, 독도 문제, 미투 등을 주제로 초현실적인 기법을 이용한 작품들을 선보인다.

 <좌>"12th 이재민 작품전 : 불편한 공존" 포스터.  / <우> 자신이 작품 앞에서 포즈를 취한 이재민 작가.
 <좌>"12th 이재민 작품전 : 불편한 공존" 포스터. / <우> 자신이 작품 앞에서 포즈를 취한 이재민 작가.
ⓒ 김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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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문제에 꾸준히 관심을 갖고 전시하고 있는 무국적 아트 스페이스에서 이재민 작가를 만나보았다.

- 이재민 작가님, 열두 번째 전시회 축하드립니다. 그동안 꾸준히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갖고 작품 활동을 하셨는데 학교 교사로서 활동하기 어렵지 않으셨어요?
"쉽지는 않았죠. 더군다나 우리 학교에 전교조는 나 하나 뿐이라 그렇게 살아왔어요, 전사처럼. 그림을 그리는 친구들이 민족미술인협회(아래 민미협) 회원이고, 전교조이니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어 자연스럽게 민미협 회원이 되었어요. 또 직업이 미술 교사이니 아이들의 미래를 생각해야 하잖아요. 그러니 더욱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겠죠? 뭐 특별히 센 그림을 그리거나 하는 것이 아니라 직업을 가지고 있으면서 붓을 놓지 않고, 바른 생각을 견지하면서 꾸준히 활동해 왔다는 게 스스로 대견스러워요."

 <좌> 전일빌딩의 연상.  이재민.  40x30  /  <우>  강정해변. 이재민.   90x60
 <좌> 전일빌딩의 연상. 이재민. 40x30 / <우> 강정해변. 이재민. 90x60
ⓒ 김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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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민 작가님, 이번 작품들에는 주로 돌을 이용한 작품들이 많더라구요. 어떻게 돌과 인연을 맺어 작품 활동을 하시게 되셨어요?
"대학 다닐 때부터 취미로 수석을 모으기 시작했어요. 수석계에서는 제가 좀 유명해요. 집에서 수석들을 정리하다보니 아, 이거 그림에 이용하면 되겠네 싶어서 시작했죠. 돌이라는게 수 만 년에 걸쳐서 완성된 거잖아요. 깎이고, 깨지고, 굴러다니다가 이런 모양들이 나왔는데, 이건 그냥 돌이 아니라 수만년의 세월이 묻어 있는 거죠. 인류의 역사보다도 더 오래 된 거고, 공룡 시대부터 존재했던 것들이죠. 아무리 작은 돌이라도 볼 때마다 돌이 주는 묵직함, 장구한 세월, 변함없는 모습, 내면으로 단단해지는 이런 것들에 많은 매력을 느껴요. 흔하지만 흔하지 않은 것들이기도 하고요."

작품 속 돌들을 보고 있노라니 꽃이 피는 듯 지고, 풀은 푸르른 듯 누렇게 되는데 변치 않는 바위를 칭송했던 윤선도의 오우가가 문득 생각난다. 또 "독재타도"를 외치며 날라다니던 짱돌들도 생각이 난다. 변하지 않는 속성으로 변화를 외치던 돌들. 어쩌면 그가 작품 속 돌맹이들 하나하나에 의미를 부여할 때, 그 역시 변하지 않는 우직함으로 우리 사회의 변화를 바랐을 듯싶다.

 <좌> 미투.  이재민.  81.5x122.  <우>그 날!  이재민.  81.5x122
 <좌> 미투. 이재민. 81.5x122. <우>그 날! 이재민. 81.5x122
ⓒ 김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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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쪽에 걸린 그림에는 사과가 있고, 또 등을 돌린 여자의 벗은 모습이 그려져 있는데 어떤 의미일까요?
"좀 야해보이지는 않나요? 어떤 분들은 좀 야하다고 하는데 뭐 보시는 분들의 자유이기는 하죠. 사실 사과는 금단의 열매를 뜻해요. 저 금단의 열매를 먹고 아담과 이브가 인간이 되었어요. 인간이 조직을 만들어 살다 보니까 권력이라는 게 생기고, 권력에 상처 받는 피지배자들이 생겨나게 된 거죠. 저 그림에서는 여성의 뒷모습으로 형상화 시켰지만 권력이나 힘 앞에서 힘이 없는 존재를 의미하는 거예요. 특히 여성은 어느 시대에나 대부분 약자의 자리에 있었죠. 요즘 일어나고 있는 미투 운동의 주역들이 대부분이 여성분들이잖아요. 앞으로 우리에게 다가 올 시간들 속에서는 여자라고, 약자라고해서 무시당하거나 불편함을 겪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어요. 그게 사회의 성숙한 정도의 척도이기도 하고요."

 <좌> 나의 6월.  81.5x122.  <우> 작은 갑각류들이 만든 집.  122x83.
 <좌> 나의 6월. 81.5x122. <우> 작은 갑각류들이 만든 집. 122x83.
ⓒ 김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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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 그림은 고 이한열군의 모습이네요. 곧 6월도 다가오는데 선생님에게 6월은 어떤 의미가 있는지 질문하고 싶네요.
"1987년 6월은 제가 잊을 수 없죠. 아마 죽을 때까지 잊을 수 없을 거예요. 그때 저는 대학교를 졸업하고 특공연대라는 곳에서 병장으로 군 복무를 하고 있었는데 군부대 뒷산에서 대기하고 있었어요. 시위 가담자 모두 때려 죽이라는 군의 명령을 받구요. 군부대 뒷산에서 잘라 온 1m정도 되는 참나무로 만든 진압봉, 투명 방패, 전투 헬멧과 K1소총을 착용하고, 실탄도 싣고 갈 준비가 된 상태로 투입을 기다리고 있었어요. 어땠을 거 같아요? 87년 6월 항쟁의 현장에 까딱하면 진압군으로, 역사에 기록 될 만행의 산 주인공이 될 뻔한 그때 심정이 기자님은 상상이 되세요? 다행히 계엄령이 선포되지 않고 국민이 승리한 최초의 항쟁으로 기록되었죠. 제2의 광주가 일어날 뻔한 아찔한 순간이었어요. 한 번도 가슴 아픈 일인데, 두 번이 일어난다면, 그건 안 될 말이죠."

아찔하다. 어쩌면 일어날 뻔 했던 제2의 광주. 피해자와 가해자. 가해자 역시 피해자가 될 수밖에 없었던 80년 5월의 광주를 생각하면 아직도 가슴 한 켠이 날카로운 종잇날에 손을 베이는 느낌이다.

아무리 피해 보상을 하고, 진실이 규명 된다고 해도 책임자 처벌이 명확하게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아직 바로 잡아진 게 아니다. 다시 5월 18일이 다가오고 있고, 곧 6월 10일이 올 것이다. 역사는 기록에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일어나지 말아야 할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만들어 가는 데에 있다는 생각이 든다.

- 이재민 작가님, 그동안 꾸준히 미술 교사로서 교육현장에 계셨는데 미술 교육이 나아갈 바에 대해 한 마디 부탁드릴게요.
"아이들에게 미술 시간은 즐거워야 하고, 놀이로써 친근감 있게 접근해야 해요. 창의성을 바탕으로 하되, 개별활동도 중요하지만 모둠 활동도 중요해요. 함께 나누고, 참여하고, 토론하고, 협의해서 하나의 결과물을 도출하는, 함께하는 과정이 중시 되어야 하죠. 기자님은 학교 다닐 때 미술 시간이 어떠셨어요?"

아, 학교 다닐 때의 미술 시간. 초등학교 때는 크레파스 색깔이 많을수록 최고였고, 중학교 미술 시간은 미술 과외를 받아서 그림을 잘 그리는 친구가 부러웠고, 고등학교 미술 시간은 딴 과목 문제지 꺼내어 공부한 기억들이 불현듯 떠오른다.

 통일.  이재민.  180x61
 통일. 이재민. 180x61
ⓒ 김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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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민 작가가 주는 커피를 한 잔 마시면서 '쎈' 그림에 대해 생각해 본다. 촛불항쟁을 통해 우리 사회가 분명히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은 자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의 곳곳은 아직 이전에 해왔던 그대로의 관성에 젖어 있는 부분들도 많다.

어쩌면 '쎈' 그림들은 우리 사회가 합의를 본 하나의 결과물을 도출하는, 함께하는 과정이라는 생각이 든다.  커피를 다 마시고 나면 질문 대신 찬찬히 작품을 한 번 더 둘러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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