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지난달 30일 <그날, 바다>를 봤다. 함께 간 동네 이웃과 혼자 온 여자분, 이렇게 셋이서 봤는데, 사회 전체적으로 이 영화는 그야말로 흥행몰이 중이다. 4월 12일 개봉된 후 3일 만에 정치시사 다큐멘터리 역대 최단 기간 10만 명 관객을 돌파했고, 5월 2일 개봉 21일 만에 50만을 넘어섰다. 역대 한국 다큐멘터리 영화 4위, 정치시사 다큐멘터리 1위라고 한다.

은폐되고 조작되어 너덜거리는 세월호 참사의 진실을 천일이 넘게 지켜보아야 했던 우리는 많이도 갈급했었나보다. 그날 바다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묻기를 포기하지 않은 제작팀, 제발 진실이 밝혀지기를 바라며 제작비 9억원을 모아낸 무수한 시민들, 노개런티로 나레이션을 맡은 정우성, 그리고 극장을 찾고 있는 많은 사람들... 이들의 끈질긴 공모로 그날, 바다의 진실에 한 걸음 다가서게 되었다.

이 영화는 내게 세월호의 침몰 원인이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새삼 일깨워주었다. 너무 긴 기간 동안, 어떤 식으로든 세월호 참사를 접해오다보니 진실이 밝혀지지 않았다는 사실이 흐릿해질 때도 있었다. 그리고, 너무 어려운 일일 것만 같아 모른 채 하고 싶기도 했던 것 같다.

그랬다. 이제 지겨우니 그만 좀 하라는 발작에 가까운 혐오 발언들 속에서 진실은 아직도 우리 앞에 드러나지 않았다. 2015년 대법원 재판에서도 재판부는 정부가 발표한 무리한 증축, 과적, 조타 미숙이 침몰의 직접적 원인인지 불명확하다는 판결을 내렸다. 그 때 이후 그렇다면 원인은 무엇인지에 대해 명확히 밝혀진 것은 없다. 이런 상황에서 이 영화는 정부가 증거라며 제시한 것들이 거짓이라는 과학적 증거들을 내놓고 있다. 이제 영화가 거짓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들을 증거라고 내놨던 자들이 자신들의 이야기를 할 차례이다.

상식이다. 사고든 사건이든 어떤 재난이 발생했을 때 국가는 현장에 출동하여 재난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긴급 구조 활동을 하고, 사고의 원인을 밝히고, 책임자가 그에 맞는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은. 박근혜는 마지못해 그런 발언들을 하긴 하였으나, 최고 책임자였던 대통령 자신의 행적에 대해서도 입을 다물고 있다.

영화를 보고나서 그날의 그 시간이 다시 떠올랐다. 보도를 접한 나는 그다지 마음이 분주해지지가 않았다.

'망망대해도 아니고 육지에서 바라다 보이는 바로 코앞인데, 작은 배가 갑자기 바람에 휩쓸려버린 것도 아니고 거대 여객선이 기울어 가는데, 국가가 이걸 보고만 있겠어? 당연히 구조하겠지.' 전원 구조 속보가 떴다. '그럼 그렇지.'

이 사회를, 국가를 그다지 좋아하지도 믿지도 않는다고 생각했던 내가 긴 시간 동안 느꼈던 감정은 '배신'이었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나는 우리 사회를 많이 믿고 있었음을 나중에서야 알아차렸다. 그런데, 몇백 명이 갇혀 있는 배가 가라앉는 것을 손놓고 바라만 보았던 국가의 살인 현장을 봐버린 것이다. '이 정도였던 거야?' 그리고, 3년 가까이 의문은 풀리지 않은 채 계속되었다. '대체 무엇을 숨기고 있는 것일까?' 점점 더 커지는 의문을 안은 채 내린 결론은 국가가 국민을 배신했다기보다는 권력에 취해 괴물이 되어버린 국가의 실체를 내가 잘 몰랐다는 것이었다.

3년 가까이 이 거대한 괴물은 꿈쩍하지 않을 것만 같았다. 마을 사람들과 함께 릴레이 단식을 하고, 추모모임을 하고, 영상을 보면서 잊지 않겠다 다짐했지만, 마음은 무거웠다. 길게 보면, 잊지 않으려는 많은 이들의 마음이 모여 진실을 밝히는 빛이 되어줄 것이라 새겨보지만, 완고한 현실의 힘에 나는 압도당하고 있었다.

그러나 촛불은 바람에 꺼지리라던 그 누구의 예언과 달리 촛불은 바람에 들불 되어 타올랐다. 그리고, 이어지는 탄핵, 새로운 정부, 남북 분위기의 반전 등 또 다른 의미에서 현실같지 않은 현실을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다. 길지 않은 시간 동안 너무나 많은 것이 바뀌었고, 바뀌고 있다. 무엇보다 바뀐 것은 아무것도 변할 수 없을 것이라는 내 마음 깊은 곳 절망감이 기대감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머리 끝부터 발끝까지 바꾸겠다며 머리를 조아린 덕분인지 맹독성의 말로 유가족을 조롱하고 저주하던 주인공들 대부분이 아직도 여전히 국민의 대표라며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게 현실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진실의 인양이 세월호의 인양 이상으로 힘든 일일 수 있겠으나, 우리 사회가 절망에서 희망으로 그 흐름이 바뀌고 있다는 것은 거스를 수 없는 하나의 물결인 것 같다.

탄핵 정국 속에서 만들어져 세월호를 조사하고 있는 선체조사위는 앞으로 8월이 되면, 종합 보고서를 발간할 것이다. 이 보고서는 그동안 있어왔던 많은 논쟁에 대해 어느 정도 믿을 만한 증거들을 제시해줄 것이라 기대한다.

또한, 가습기 살균제 사건과 세월호 참사를 조사하기 위한 2기 특조위도 활동을 시작하였다. 활동 종료 시한인 2년 안에 침몰과 구조의 진상, 책임을 져야 할 이들에 대한 기본적인 조사가 이루어질 것이다. 그리고, 우리 사회가 이 참사를 어떻게 기억하고 피해자들의 치유를 어떻게 도울 것인지에 대한 큰 그림을 내올 것이다.

이 영화는 이러한 앞으로의 종합적인 조사에 중요한 단서를 제공하는 자료로서의 의미가 크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의 싸움은 사실을 덮으려는 자들과 퍼즐 한 조각이라도 찾으려고 애쓰는 자들 간의 싸움이었다면, 이제 진실이 도대체 무엇인지에 대해 치밀하고 집요하게 파고드는 자들 간의 싸움이 중심을 이루게 되었다. 이 싸움의 목적은 상호 논쟁과 협력을 통해 진실의 퍼즐을 맞추어나가는 것이 될 것이다. 

미치지 않았으면 불가능했을 일을 해낸 제작팀에게 온 마음으로 박수를 보내는 것, 그것이 내가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가장 큰 실천이라 생각한다.


태그:#세월호, #그날 바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푸르른 겨울밭, 붉은 동백의 아우성, 눈쌓인 백록담, 바위에 부서지는 파도소리와 포말을 경이롭게 바라보며 제주의 겨울을 살고있다. 그리고 조금씩 사랑이 깊어지고 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