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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들은 행복을 위해 전력투구한다. 유발 하라리가 <호모 데우스>에서 지적하듯, 전쟁과 질병과 기아에서 벗어난 현대 인류는 이제 자기 자신의 감정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경지에 이르렀다. 그러니 행복 추구는 이제 인간으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행동준칙이 되어 버린 것 같다.

그런데 우리들은 행복한가? 아무 근거 없이 옛날이 좋았다고 추억하는 것은 기억의 편향이다. 하지만 소크라테스 시대의 아테네 자유인들이나, 전 세계를 탐구의 대상으로 삼는 여유를 즐기던 빅토리아 시대 영국인들과 비교해도 우리가 과연 더 행복한지 의문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고전과 인생 그리고 봄여름가을겨울> 표지
 <고전과 인생 그리고 봄여름가을겨울> 표지
ⓒ 작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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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평론가 고미숙은 <고전과 인생 그리고 봄여름가을겨울>에서 이렇게 말한다. 행복을 끝없이 뒤쫓음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불행하고 피곤한 이유는, 행복을 잘못 정의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현대인들은 행복을 '즐거움의 연속'으로 착각하고 있는 건 아닐까. 그래서 조금이라도 즐겁지 않은 상태가 오면 곧바로 우울해지고 얼른 거기에서 빠져나오려고 몸부림치는 게 아닐까. 그렇다 보니 쾌락적 자극에 쉽게 노출되고, 그렇게 우울함과 쾌락을 바쁘게 오가다 보면 어느덧 중독이라는 덫에 걸려드는 게 아닐까, 하고. (35쪽)

<서유기>를 말하면서 저자는 삼장법사를 노리고 덤벼드는 요괴들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삼장법사를 잡아먹고 불로장생하겠다는 요괴들이다. 불로장생 뒤에는 또 무엇을 목표로 하는가? 그렇다. 부귀영화다.

그럴싸해 보이지만 그 내용을 따져 보면, '식욕과 성욕을 만끽하면서 약자들 위에 군림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 '허접한' 코스를 열나게 뛰다 보면 다들 요괴가 된다. (132-133쪽)

끝없는 쾌락을 행복과 동일시하고 이룰 수 없는 그 목표를 향해 오늘도 '열나게' 달리는 현대인들의 모습이 오버랩된다고 생각하는 내가 지나친 건가?

저자가 지적하듯, 그런 식의 행복은 원천적으로 가능하지 않다. 저자는 오행을 언급하면서 인간은 다양한 감정, 즉 칠정 사이에서 균형을 지켜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러면서 칠정이 잘 드러난 고전의 진수로 '판소리계 소설'을 추천한다.

영화 <도리화가>에서는 류승룡이 신재효로 분한다. 그는 수제자와 함께 대원군 앞에서 자신과 제자의 목숨을 건 판소리 공연을 하게 되는데, 이때 그들이 정한 작품이 <춘향가>다. 춘향과 몽룡이 사랑을 노래하는 장면으로 시작하는데, 고미숙의 책에도 이 장면이 소개된다.

여봐라 춘향아 저리 가거라. 가는 태도를 보자. 이만큼 오너라. 오는 태도를 보자. 방긋 웃어라. 아장아장 걸어라. 걷는 태도를 보자. 너와 내가 만난 사랑 연분을 팔자 한들 팔 곳이 어디 있나. 생전 사랑 이러하니 어찌 죽은 후에 기약이 없을쏘냐. (중략) 아들 자 자 몸이 되어 계집 녀 변에다 딱 붙여 좋을 호 자로 만나 보자. 사랑 사랑 내 사랑. (길진숙, 이기원 풀어읽음, <낭송 춘향전>, 77쪽, 고미숙 38쪽에서 재인용)

우리 고전이 표현하는 사랑이 이다지 다채롭다니. 이어지는 박타령 이야기도 흥미롭다. 언젠가부터 흥부는 게으름, 놀부는 부지런함의 대명사가 된 것이 자본주의 한국의 현실이다. 그런데 고미숙은 흥부의 공감 능력을 조명한다. 놀부 집에서 쫓겨나 하루하루 먹고 살기도 힘든 처지에 다리 부러진 제비의 고통에 공감한다는 것이다. 그런 흥부라 그런지 박에서 돈이 쏟아져 나오자 하는 말도 남다르다.

둘째 놈아 말 듣거라. 건넛마을 건너가서 너의 백부님을 오시래라. 경사를 보아도 형제 볼란다. 불쌍하고 가련한 사람들, 박흥부를 찾아오소. 나도 내일부터 기민(饑民)을 줄란다. 얼씨구나 좋을씨고. (박봉술 창본, <박타령>, 고미숙 43쪽에서 재인용)

돈이 쏟아지는 것을 보고 흥부에게 든 생각은, 형과 나누겠다는 생각과, 불쌍한 사람들을 돕겠다는 생각이다. 흥부에게 형제애와 인류애는 자연스러운 감정이다. 이것이 저자가 말하는 '칠정의 균형' 아닐까.

저자는 베이징에 있는 루쉰박물관에 갈 때마다 그의 임종 하루 전 사진을 본다고 한다. 언제 갈지 모르는 나날 속에서 그는 하루를 내어 청년들과 한담을 즐긴다.

루쉰의 창백한 얼굴을 바라보며 한 청년이 환하게 웃고 있다. 루쉰박물관에 갈 때마다 난 이 사진 앞에서 오랫동안 멈춰 서곤 한다. 이 청년의 미소가 루쉰의 삶과 작품을 말해 주는 것처럼 보여서다. 죽음을 앞에 두고도 누군가에게 이런 웃음을 야기할 수 있다면 그는 충분히 가벼웠을 것이다. 또 자유로웠을 것이다. (153쪽)

에필로그에서 저자는 20년 동안 감옥에서 살던 무기수, 신영복 선생을 인용한다. 감옥에 갇힌 죄수들은 종종 자살을 하는데, 신영복 선생은 무기수로 살면서도 죽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왜 자살을 하지 않았을까. 신영복 선생은 스스로 묻는다. 햇빛 때문이었다.

"그때 있었던 방이 북서향인데, 2시간쯤 햇빛이 들어와요. 가장 햇빛이 클 때가 신문지 펼쳤을 때 정도구요. 햇빛을 무릎에 올려놓고 앉아 있을 때 정말 행복했어요. 내일 햇빛을 기다리고 싶어 안 죽었어요." (216쪽)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하는 책이지만, 고미숙의 이 책에서 나는 행복에 관한 꾸준한 생각을 본다. 칠정의 균형에서 행복을 찾을 수 있다고 말하다가, 장자와 조르바의 자유를 부러워하고, 루쉰의 가벼움과 자유가 한 청년의 얼굴에 불어 넣은 환한 웃음에 대해 이야기한다.

창을 통해 들어오는 한 조각 햇볕
 창을 통해 들어오는 한 조각 햇볕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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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창을 통해 들어오는 신문지 크기의 햇볕. 그걸 무릎에 올려놓고 행복감을 느끼는 한 무기수의 감정이 왜 이렇게 생생하게 내 마음속에 그려질까. <마지막 강의>의 랜디 포시가 석양을 향해 자동차를 달리면서 느끼던 바람 역시 누구와도 바꿀 수 없는 행복의 한 조각이었으리라.

충분히 가르칠 입장에 있지만, 가르치려 하지 않는다. 책을 읽고 느낀 점을 나누려는 선한 마음이 보인다. 장자와 조르바에게서 자유를 배운다. 왕양명에게서는 도그마가 되지 않으면서도 사람들을 일깨우는 가르침을 본다. 침대 맡에 두고, 자기 전에 한 편씩 읽어도 좋을, 정말 좋은 책을 비 오는 봄날에 만났다.


고전과 인생 그리고 봄여름가을겨울 - 고전평론가 고미숙의 읽고 쓰고 배우는 법

고미숙 지음, 작은길(2017)


태그:#고미숙, #<고전과 인생 그리고 봄여름가을겨울>, #행복, #신영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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