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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미숙의 이야기는 재미있다. 그리고 나의 호흡에도 썩 잘 맞는다. 마치 나의 나이를 헤아리는 듯 어루만지는 따뜻함이 있다. 그래서 글을 읽으면 인문학의 깊이에 대한 탐구보다, 지식의 발견보다 먼저 위로를 받는다. 나조차도 인식하지 못하던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는다. 더불어 자기 배려가 가능하게 만들어 준다.

6개월 전부터 읽고 쓰는 작업을 하고 있다. 그 전엔 읽기만 했다. 저자는 읽기만 하는 것은 자신을 구경꾼으로 삼는 것이라고 말한다. 저자의 말대로 그동안은 내 인생의 구경꾼이었다. 더는 구경꾼으로 인생을 끝낼 수는 없다. 그래서 쓰기 시작한 스스로가 대견하다. 날마다 살아있음을 느낀다.
 
인생이란 무엇인가? 아주 간단하다. 읽기요 쓰기다!(정화스님) 생명은 쉼 없이 읽는다. 우주와 자연, 세상이라는 텍스트를 읽었으면 써야 한다. 사유와 행동과 언어 등등, 삶의 모든 과정이 쓰기에 해당한다. 읽고 쓰고, 또 쓰고 읽고... 이것이 생명활동의 기본이다.

인생도 사계가 있고 하루의 사계도 있다
 
 '고전과 인생 그리고 봄여름가을겨울' - 고전평론가 고미숙의 읽고 쓰고 배우는 법
 "고전과 인생 그리고 봄여름가을겨울" - 고전평론가 고미숙의 읽고 쓰고 배우는 법
ⓒ 작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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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1년을 사계절로 이야기한다. 책에서는 인생을 사계로, 다시 하루를 사계로 이야기한다. 우리는 매일 사계를 산다. 고전의 사계도 소개한다. 고전과 사계절의 환상적인 만남이 이루어진다. 지금의 나는 이성적으로는 가을이지만 감정적으로는 봄이다. 나의 이성과 감정이 고전과는 어디에서 접점을 찾게 될까. 설렘이 있다. 마음을 누르고 저자의 호흡을 따라간다.
 
생명은 즐거움의 상태만 지속되기를 원하지 않는다. 칠정을 다 누리고 싶어 한다. 오장육부에는 감정이 배속되어 있다. 간/담엔 분노, 심/소장엔 기쁨, 비/위엔 생각, 폐/대장엔 슬픔, 신/방광엔 두려움 등.... 건강이란 몸 전체의 균형이라고 할 때 칠정의 균형 또한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아니, 생리와 심리는 결코 분리될 수 없다. 하지만 자본은 오직 소유와 증식만을 갈구하기 때문에 감정 또한 한없이 끌어올리려고만 든다. 그러다 보니 행복은 즐거움으로, 즐거움은 쾌락으로, 쾌락은 중독으로 치닫게 되는 것이다.... 결국 핵심은 희로애락을 매끄럽게 통과하는 일이다.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하여 고전이 필요한 것이다. 

머릿속에 생각만 그득할 때가 많다. 슬픔이나 기쁨, 두려움이나 분노라는 감정에 대해 들여다보는 것보다 생각에 생각을 더하고 답이 없는 그 굴속에서 나오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때문에 감정을 적절히 드러내는 것이 대인관계에서 늘 숙제였던 것 같다.

건강한 상태의 오장육부에 감정이 그렇게 복잡하게 얽혀있다면, 나의 상태는 어떻게 진단해야 할까 잠시 고민이 된다. 그렇지만 칠정을 이렇게 풀이하는 것은 매력적이고 신선하다. 저자의 글쓰기의 힘을 느낀다. 

"나는 '다른' 아이가 아니다!"

모두가 갈망하는 행복이란 결국 순간의 마주침들이다. 하루에 수도 없이 겪는 감정의 동요에 대해 그룹 클론은 한때 이렇게 노래했다.

"기쁨과 슬픔이 엇갈리고 좌절과 용기가 교차되고  만남과 이별을 나누면서 그렇게 우리는 살아가고. 뜻대로 되지 않을 때도 있고 마음먹은 대로 될 때도 있어. 다 그런 거야, 누구나 세상은 그렇게 돌아가니까." - 쿵따리샤바라

취업을 위해 몇 년씩 고시원에 둥지를 틀거나 책상을 앞에 두고 씨름하는 지금의 젊은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그들 하나하나를 '나'로 보아주고 존중해 주는 것이다. 어린 허클베리 핀은 '나'를 증명하기 위해 '폭력'과 '과보호'의 두 사슬로부터 도주하여 자신의 삶을 완성하고 스스로 우뚝 서고자 한다. 스스로 기획하는 역동하는 삶의 모습을 보여준다. 바로 봄의 모습이다. 

사랑하는 젊은이도 있다. 나를 채우고자 하는 것이 아닌 "상대의 삶을 완성시켜주는" 사랑, 서로의 개성과 미덕을 존중하는 사랑, 바로 가보옥(홍루몽)의 삶의 지향이다. 십 대 초반의 심청은 신의를 지키며 죽음을 회피하지 않고, 춘향은 자신의 사랑의 고결함을 변학도 앞에서 죽음을 요구하며 서늘하게 외친다. 모두 역동적인 봄의 기운을 품고 있다.

나이는 어리지만 희로애락의 진수를 통과하고 있고, 당당하게 선언한다. 자신의 목소리를 달변으로 완성해 내고 상대를 움츠리게 만든다. 그들의 생각은 말이 되고, "말은 밥이자 무기이며 삶의 비전임을 실감하"게 만든다. 이들의 봄이 부럽다. 나도 '나'를 증명하기 위해 좌충우돌하는 부끄러움을 그만 내려놓을까 한다.
 
오! 이 당당한 소녀를 보라! 낭이로 치자면 헉 핀과 거의 같은 십 대 초반이다. 그런데도 사람살이의 이치를 완전히 꿰고 있다. 심청이도 당연히 죽음이 두렵다. 바다에 뛰어들기 전 뱃전에서 벌벌 떨고 비탄에 몸부림치기도 한다. 두렵지 않아서 그 길을 가는 것이 아니라,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그 길을 가는 것이다. 헉 핀이 지독한 번민 끝에 지옥에 가겠다고 결심한 것처럼! 청소년 특유의 배짱과 뚝심이 있었기에 이런 식의 정면승부가 가능한 법이다.

'마이너-리그'의 겁 없던 시절

인문학의 산실인 지금 대학에는 "존재와 세계에 대한 탐구로서의 인문학"이 없다고 저자는 말한다. 탐구의 주역이어야 하는 그들은 인문학 특강을 통해서 인문학을 만난다. 대학은 "생로병사의 파노라마"를 깊게 얘기하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 미래와 희망을 가르친다. 그들은 허공만 휘젓다가 피로감을 느끼고 상실감에 목말라한다.

졸업 후에도 책상에서 오아시스를 찾고, 아침에 출근하고 저녁에 퇴근하는 삶을 꿈꾼다. 차라리 이전 세대의 빈곤이 삶을 훨씬 살찌웠던 것 같다. 궁핍을 몸으로 체험하면서도 혁명을 외쳤고, 공장에 가기를 주저하지 않았고 감옥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타인을 위해 나를 희생했던 삶, 거대담론을 온몸에 짊어지고 주릴지언정 타협하지는 않았던 시대가 있었다. 나는 그 시대의 산 증인이다. 그리고 마이너-리그를 겁내지 않았다.

임꺽정과 그의 친구들도 그렇다. 마이너들이 만드는 욕심 없는 세상의 구현이다. "난세를 주름잡은 임꺽정과 그의 친구들, 칠두령의 이야기", 배우면서 놀고 놀면서 배우는 '언터쳐블(불가촉민)'의 세상, 마이너들의 리그, 그들의 멋짐이 폭발한다. '인싸'와 '주류'가 아니면 위축되는 게 지금의 현실이고 최고의 학벌에 '사'자로 끝나거나 일류 기업에 다니는 명함 정도는 내세워야 사람대접을 받는다고 느끼는 세상에서는 이해 못할 일이다.

인식과 지평의 너머

인간이 낯설고 이질적인 장소를 찾아 헤매는 이유를 '타자'가 되기 위해서, 다른 존재로 거듭나기 위해서라고 저자는 말한다. 나이듦은 변화다. 나이듦의 변화를 더 이상 '시듦'이나 '침체'의 범주에서 머물게 하면 안 되는 것이다. 이제는 낯선 '나'의 수용에서 더 나아가 낯선 '나'로 매일 탈바꿈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살아가야 하는 미래고 이 미래는 묘하게 고전과 닮아 있다.  <산해경>이나 <걸리버 여행기>의 세계와 일치한다. 고전에서 배우는 미래다. 

전에 저자의 다른 책 <나이듦 수업>을 읽은 적이 있다. '꼭 곱게 늙어야 할까'를 읽으며 크게 공감했다. 곱지 않으면 어떤가. 이상한 모습이 새로움이 되는 세상을 우리는 살아가고 있고, 앞으로의 세대는 그 이상의 것을 수용할 준비가 되어 있다. 영화 <인터스텔라>에서 보듯 다른 차원의 내가 나에게로 메시지를 보내고, 우리는 그 장면을 해석하고 이해하고 있지 않은가. 촌스럽게 당황하지 말고 나이듦에 당당해질 필요가 있다. 그리고 무엇이든 꿈꿀 수 있다. 울퉁불퉁한 대로, 뾰족뾰족한 대로.
 
수없는 변화들이 원래 하나라는 것에 통달하면 마음의 기쁨을 잃어버리지 않습니다. 시시각각의 변화에 완벽히 응하게 되면 만물과 함께 늘 새로 탄생합니다. 이렇게 되면 만물을 만나는 모든 순간이 매번 꽃피는 순간입니다.(<세상에서 가장 매력적인 남자, 꼽추 애태타>)

심즉리(心卽理), 치양지(致良知)

저자는 고전문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책에서는 고전의 전문가답게 많은 고전 작품을 계절별로 소개한다. 고전을 통해 읽고 쓰고 배우는 법을 능숙하게 엮어 낸다. 읽기와 쓰기의 동시성을 경험하고 배움에 도전하기를, 자기만의 봄여름가을겨울을 창조하기를 권한다. 

저자의 글을 따라가다 보면 어려운 철학도 쉽게 만난다. 삶이 철학이 되고 마음이 이치가 되는 것을 깨닫게 된다. 하루하루 살아가는 삶이 우주의 섭리가 되는 기이한 경험을 마주한다. 소개하는 고전은 모두 매력적이다. 읽은 것은 읽은 대로 새로운 깨달음을 얻고 읽지 않은 것은 다음 읽기 목록으로 올려 놓는다.
 
"무엇이든 자네 자신이 직접 대결하고 자네 자신이 몸소 생각하며 자네 자신이 수양하지 않으면 안 된다. 책도 자네 스스로 읽고 도리도 자네 자신이 궁구하지 않으면 안 된다. 나는 다만 길을 안내하는 안내자이며 입회인에 불과하다. 의문점이 있으면 함께 생각해볼 따름이다."(주자)

목차를 따라 읽다 보면 어느새 읽고 쓰고 배우는 법을 자연스럽게 터득할 것 같다. 매일을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삶의 비전일 수 없다. 생각의 자립, 머리를 늘 말랑말랑하게 하고 새로운 생각이 솟구치게 하는 것, 그 비밀의 통로를 책을 통해 발견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고전과 인생 그리고 봄여름가을겨울 - 고전평론가 고미숙의 읽고 쓰고 배우는 법

고미숙 지음, 작은길(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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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현장을 떠나니 다양한 삶의 모습이 보입니다. 순간을 포착하고 싶고, 책과 영화, 우리 사회의 이야기를 글로 전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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