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경북 경산 남산면의 청년 28명이 일제에 저항하여 대왕산 정상에 올라 돌성을 구축하고 죽창과 돌을 들고 맞서 싸웠다. 대왕산 항일 죽창 의거에 참여했던 지사들 중 세 분의 묘소가 신암선열공원에 있다. 신암선열공원에 참배를 왔다가 대왕산 산정에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는 사실을 알고 시간을 내어 산 정상에 올랐다. 평지 도로변에서 대왕산 정상까지 오르는 데에는 대략 1시간 정도 소요된다. 그러나 악산이고 가파르기 때문에 쉽게 오를 수 있는 길은 아니다. 올라보면, 남산면 청년들이 어째서 이곳 대왕산 정상을 항일 투쟁의 현장으로 삼았는지 이해랄 수 있다.
 경북 경산 남산면의 청년 28명이 일제에 저항하여 대왕산 정상에 올라 돌성을 구축하고 죽창과 돌을 들고 맞서 싸웠다. 대왕산 항일 죽창 의거에 참여했던 지사들 중 세 분의 묘소가 신암선열공원에 있다. 신암선열공원에 참배를 왔다가 대왕산 산정에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는 사실을 알고 시간을 내어 산 정상에 올랐다. 평지 도로변에서 대왕산 정상까지 오르는 데에는 대략 1시간 정도 소요된다. 그러나 악산이고 가파르기 때문에 쉽게 오를 수 있는 길은 아니다. 올라보면, 남산면 청년들이 어째서 이곳 대왕산 정상을 항일 투쟁의 현장으로 삼았는지 이해랄 수 있다.
ⓒ 정만진

관련사진보기


신암선열공원의 묘소들 중 가장 높은 지점에 위치하고 있는 최동식 지사의 묘소 옆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본다. 동쪽으로는 금호강이 절벽 밑을 흐르고, 앞으로는 아양교 일대와 주택의 지붕들이 햇살을 받아 반짝인다. 이곳이 국립묘지 자리로 썩 잘 어울리는 좋은 장소라는 생각이 저절로 일어난다. 여기서 길을 따라 한 걸음 내려서면 김세용(金世用) 지사의 묘소이다.  

묘소 앞 표지석의 핵심 내용은 '광복군 제2지대 요원으로 항일 독립전쟁에 투신하여 국내 진공(進攻, 진격하여 공격)을 위한 정진 훈련에 참가했다.'와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 추서'이다.

표지석의 내용은 국가보훈처 공훈록의 '생몰년도 : 1907.9.12.~1966.7.12. / 출신지 : 평북 용천 / 운동 계열 : 광복군 / 훈격(연도) : 애국장(1990) / 공적 내용 : 광복군 제2지대에 입대하여 국내 정진 훈련 중 광복을 맞이했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건국 포장)을 추서하였다.'라는 기록과 거의 같다.

비석의 글을 옮겨서 소개하는 어려움

김세용 지사 묘소 앞 표지석
 김세용 지사 묘소 앞 표지석
ⓒ 정만진

관련사진보기

공훈록의 내용이 너무 간략하므로 묘소 앞 비석에 새겨져 있는 비문도 읽어본다. 글로 나타내면 이렇게 한 줄이지만 사실은 묘비 4면을 사진으로 찍은 다음, 그것을 컴퓨터 화면에 띄워 하나하나 다시 판독한 뒤 한글로 입력해야 한다. 생소한 한자어를 쉽게 풀이하여 덧붙이는 일도 해야 한다. 이 번거로운 일을 필자가 애써 하는 것은 독자들에게 비문의 내용을 알림으로써 독립운동정신을 고취하려는 뜻 때문이다.

"애국지사 김세용 옹은 이국만리에서 일본군과 맞서 싸운 광복군 출신이다. 1907년 9월 12일생으로 공주 김씨이며, (중략) 평안북도 용천의 용암에서 태어났다. 1935년 봄 큰 뜻을 품고 압록강을 건넌 것이 항일 투쟁의 출발이었다.

그로부터 10여 성상(星霜, 년) 대포 연기 속을 누비며 풍찬노숙(風餐露宿, 바람 맞으며 밥을 먹고 이슬 맞으며 잠을 잠)하던 지사의 가슴에는 오직 구국 항쟁 일념뿐이었다. 1940년 초에는 임시정부의 지령을 받고 중국 협서성 서안으로 가서 '한국 청년 전지(戰地, 전쟁 장소) 공작대'에 입대했다가 그 해 9월에는 광복군으로 돌아왔다.

이듬해 (중략) 10월에는 중화민국 육군 군관학교 제 4회 특과총대 학원대 한청반을 수료한 뒤 원대로 돌아왔다가 다시 한미군사합작 OSS특수훈련반을 마치고 국내 정진(挺進, 앞서서 나아감)을 대기 중에 고대하던 광복을 맞아 1946년 6월 그리던 조국의 품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뜻밖에도 조국은 양단(兩斷, 둘로 나뉨)되어 동족상잔(同族相殘, 같은 민족끼리 서로 죽임)의 상흔을 안고 멀리 북녘 하늘을 바라보며 고향으로 돌아갈 날을 기다리다가 1966년 7월 12일 59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배우자는 탐진 최씨로 복련(福連)이니 공에게는 아내요 동지였으며 아들에는 상남(相南)이 있고, 손자에는 민석(玟奭)이 있다."
       

의성 독립만세운동의 주역 박낙현 지사

박낙현 지사 묘소 앞 표지석
 박낙현 지사 묘소 앞 표지석
ⓒ 정만진

관련사진보기

김세용 지사 묘소의 서쪽에 박낙현(朴洛鉉) 지사의 묘소가 있다. 1887년 8월 27일 경북 의성에서 출생했고, 1957년 4월 6일 세상을 떠났다. 3‧1운동 때의 활약으로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았다.

박낙현 지사는 1919년 3월 18일의 의성읍 장날을 이용하여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했다. 당시 소문면 대리동 교회의 목사였던 그는 전국적으로 독립운동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3월 8일 대구에서 열린 행사에 출석했다가 독립만세운동을 목격하고 귀향한 바 있었다.

그는 의성에서도 독립만세운동을 일으키기로 결심했다. 3월 12일 교회 집사 윤용구·교인 오상룡과 함께 논의한 끝에 3월 18일의 의성읍 장날을 거사일로 정했다. 이튿날부터 의성공립보통학교 학생과 각지의 동지를 규합하는 한편, 자신의 집에서 태극기와 독립기를 제작하는 등 사전준비를 진행하였다.

사람이 많이 모이는 의성읍 장날을 거사일로 잡아

하지만 계획이 사전에 누설되는 바람에 일제는 3월 18일 아침부터 의성읍 요소에 경찰을 배치하여 삼엄한 경계를 펼쳤다. 이날 오후 2시경, 의성공립보통학교 학생들이 학교를 뛰쳐나와 도동동에 있는 공자 사당 뒷산에 모였다. 다른 때에 견줘 장꾼이 유난히 많은 것을 본 일본 경찰은 시장을 폐쇄하는 한편 학생들을 해산시키려고 공자묘 뒷산으로 달려갔다.

그는 사람이 가장 많이 모인 쌀 시장에서 윤용구·오상룡·윤영주 등과 함께 장꾼들에게 태극기를 나누어 주면서 "독립만세!"를 선창하였다. 이에 수 천 군중이 호응하여 독립만세를 외쳤다. 그는 이들의 선두에 서서 큰 도로를 따라 시위 행진하는 등 독립만세 시위를 전개하다가 체포되었다. 그는 이해 4월 5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1년 6월형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82년 대통령 표창)을 추서하였다.

경북 의성군 의성읍의 독립운동 기념탑
 경북 의성군 의성읍의 독립운동 기념탑
ⓒ 정만진

관련사진보기


박낙현 지사의 묘소 서쪽은 김홍준(金洪俊) 지사의 묘소이다. 김홍준 지사는 1922년 경산에서 태어나 1993년 별세했다. 그는 1944년 7월 15일 안창률 외 28명의 동지들과 함께 그는 일제의 징용·징병 제도를 결사 반대하기로 결의하고 대왕산에 입산·결집하여 죽창과 투석전으로 일경에게 항거하다가 동년 8월 10일경 식량 조달차 하산했다가 일경에게 피체되었다. 그리하여 10월 4일 소위 보안법 및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대구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다가 1945년 6월 23일 병보석으로 출소하였다. 정부는 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86년 대통령 표창)을 수여하였다.

김홍준 지사와 박태만 지사는 대왕산 투쟁의 동지

김홍준 지사 묘소 서쪽에 나란히 안장되어 있는 최태만 지사는 1918년 5월 10일 경산에서 출생하여 1993년 타계했다. 최태만 지사도 대왕산 죽창 항일 의거 참전 독립투사이다. 따라서 국가보훈처 공훈록에 기록되어 있는 최태만 지사의 공적 내용은 김홍준 지사의 그것과 대동소이하다.

"1944년 7월 15일 최순한 외 28명의 동지들과 함께 일제의 징용·징병제도를 결사 반대하기로 결의하고 경산군 대왕산에 입산·집결하여 죽창과 투석전으로 일경에게 항거하였다. 동년 8월 10일경 식량조달차 하산하였다가 일경에게 피체되었다. 동년 10월 4일 소위 보안법 및 폭력행위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대구형무소에 수감되어 있다가 광복으로 출소하였다. 정부는 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86년 대통령 표창)을 수여하였다."

최태만 지사와 김홍준 지사의 묘소가 좌우로 나란히 조성되어 있다.
 최태만 지사와 김홍준 지사의 묘소가 좌우로 나란히 조성되어 있다.
ⓒ 정만진

관련사진보기


대왕산 죽창 항일 의거 유적으로는 경산시 남산면 사월리 15-1(하남로 275)의 도로 건너편에 있는 '항일 대왕산 죽창 의거 공적비'와 대왕산 정상의 '항일 대왕산 죽창 의거 전적지' 비석이 있다. 사월리 공적비에는 '대왕산 죽창 의거 항일 운동'이라는 제목이 붙어 있다. 이 안내문 역시 필자는 사진을 찍고, 컴퓨터에 올려 다시 한글로 기록하여 독자들에게 널리 알린다.

"일제가 우리 고유 문화와 정신을 말살하고 최후의 발악적인 식민지 정책을 자행하던 1944년 6월 (남산면 청년들은) 민족 차별과 일제 압정을 성토하고 징병‧징용을 거부하며 조국 독립을 위해 일제에 항거하기로 결의했다.

경산시 남산면 사월리 15-1(하남로 275)의 도로 건너편에 있는 '항일 대왕산 죽창 의거 공적비'
 경산시 남산면 사월리 15-1(하남로 275)의 도로 건너편에 있는 '항일 대왕산 죽창 의거 공적비'
ⓒ 정만진

관련사진보기

본 항일 운동은 남산면 거주 안창률 등 29명의 청년들이 대왕산에서 1944년 7월 25일부터 8월 13일까지 20여 일 이상 죽창으로 일제의 총칼 및 비행기에 대항하면서 대왕산 산정에 돌로 성을 쌓고 막사를 지어 진지를 구축하고 3개 소대와 특공대, 정보연락대 등 결심대(決心隊)를 편성하여 세 차례에 걸친 격전을 치르던 중 식량 조달차 하산하였다가 전원이 체포되어 경산경찰서에서 50여 일의 고문과 회유에도 굴하지 않았으며, 대구형무소로 수감되어 보안법, 육해공 형법, 폭력행위법, 치안유지법 등의 위반 죄명으로 옥고를 치르다가 8‧15광복으로 자유의 몸이 되었으나 안창률, 김경화 지사는 애석하게 옥사했다.


지사들의 높은 기개와 숭고한 애국정신을 높이 찬양하며 후대에 길이 전하고자 경산시와 대구지방보훈청, 광복회 대구경북지부, 대구문화방송 등과 남산면민의 정성을 모아 1995년 5월 31일 제막식을 가졌다."

안내문 아래에는 대왕산에 올라 일제에 저항했던 '대장 안창률, 부대장 김명돌, 1소대장 성상룡, 2소대장 송수답, 3소대장 김위도, 특공대장 최기정, 정보 김인봉, 정보연락 박재천, 박재달, 대원 최만갑, 채찬원, 김경화, 김임방, 최동식, 최태만, 김홍준, 최순한, 배상연, 박혜광, 박영식, 김경룡, 안십팔, 이일수, 조태식, 최외문, 이종태, 채원준, 최덕조, 김특술' 청년 지사들의 명단이 적혀 있다.

험준한 대왕산 정상에 굳이 오르는 까닭

이제 대왕산 정상에 올라 '항일 대왕산 죽창 의거 전적지' 비석을 보아야 한다. 산꼭대기에 세워진 보기 드문 독립운동 기념 빗돌이다. 대왕산은 평지 도로에서 한 시간 정도 오르면 정상에 닿는다.

오르막이 가파르고, 진달래가 만발하는 악산이기 때문에 암석이 많고 거친 길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올라야 한다. 28인의 청년들이 목숨을 걸고 투쟁했던 독립운동의 현장인데 약간 힘이 든다고 포기할 일은 아니다. 단순히 건강이나 취미를 위해서도 산에 오르는데 대왕산이면 더욱 오를 만한 곳 아닌가.

모든 산은 정상에 오르면 바람이 시원하다. 대왕산 정상은 더욱 그럴 것이다. 아마 마음까지도 시원해지리라. 독립운동 성지에 왔다는 뜨거운 만족감도 창공 높이 솟구칠 터이다. 신발끈을 조여매고 출발한다. (계속)

대왕산 정상은 뾰족하지 않고 평평하다. 현장에 당도해서 보면 경산 남산면 청년들이 이곳을 항일 투쟁의 본부로 삼을 만했다는 판단이 든다. 험악한 악산이라 왜적들이 쉽게 올라올 수 없고, 아군은 평지에서 머물 수 있으니 진지로서는 입지 조건이 훌륭하다.
 대왕산 정상은 뾰족하지 않고 평평하다. 현장에 당도해서 보면 경산 남산면 청년들이 이곳을 항일 투쟁의 본부로 삼을 만했다는 판단이 든다. 험악한 악산이라 왜적들이 쉽게 올라올 수 없고, 아군은 평지에서 머물 수 있으니 진지로서는 입지 조건이 훌륭하다.
ⓒ 정만진

관련사진보기




태그:#신암선열공원, #대왕산, #최태만, #김홍준, #박낙현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장편소설 <한인애국단><의열단><대한광복회><딸아, 울지 마라><백령도> 등과 역사기행서 <전국 임진왜란 유적 답사여행 총서(전 10권)>, <대구 독립운동유적 100곳 답사여행(2019 대구시 선정 '올해의 책')>, <삼국사기로 떠나는 경주여행>,<김유신과 떠나는 삼국여행> 등을 저술했고, 대구시 교육위원, 중고교 교사와 대학강사로 일했습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