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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지난 26일 <조선일보>를 통해 발표된 이인호 서울대 명예교수의 '文대통령에게 보내는 공개 서한'을 읽고 작성된 반박글입니다. - 기자말

남북한 정상 회담이 성사됐음에도 여전히 한쪽에서는 매카시즘의 눈빛으로 의심을 일삼는다. 일부 자칭 보수매체들은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이 쇼인양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거기에 북한의 수령 김정은이 우리 군을 사열한다니 마치 적화통일이 이뤄질 것처럼 호들갑을 떨고 있다. 반면 다른 한편에서는 드디어 민족분단의 사슬을 끊어 내고 평화 통일의 시기가 다가온다는 희망의 미소가 번져 나온다.

일제에 의해 강제로 빼앗긴 조국의 백성들이었지만, 해방은 그 자체만으로도 큰 기쁨이었다. 비록 두 강대국 미국과 소련에 의해 분할 점령이라는 세계사적 흐름에 휘말릴 수 밖에 없었지만, 그 혹독한 시기에도 통일을 위한 몸부림은 계속되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제국주의의 야욕앞에 남과 북은 허리가 잘리고 각각의 체제 속으로 함몰될 수밖에 없었다.

6.25... 한국전쟁은 한 민족이 서로에게 총부리를 드리 밀며 또 다른 분열과 갈등의 씨앗을 만들었다. 그렇게 남과 북이 적으로 거듭났다.

일제에 주구가 돼 한 민족을 더 가혹하게 탄압했던 친일파들은 역설적으도 해방이 된 후에도 여전히 권력의 상층부를 차지했다. 오로지 '국가안정'과 '경제발전'이라는 미명하에 군홧발 통치가 자행됐을 때에도 친일파들은 여전히 득세했다. 이번에는 반공파로 혹은 보수파로 이름을 바꿔 권력을 유지했다.

해방 이후 '민주화'나 '인권' 등이 가장 중요한 민족의 미래를 설계하는 화두임에도 어느새 '경제개발' '사회안정'의 뒷전으로 밀려나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노동자들의 피땀으로 경제가 성장했지만, 그 성과물은 오롯이 재벌독점과 친일파에서 보수파로 가면을 바꿔 쓴 그들이 모조리 독차지했다. 소위 요즘 '88만 원 세대'는 어디서부터 출발했고, 누구에 의해 그렇게 됐는지 다시금 생각해보라.

남한은 급격한 경제성장을 통해 발전을 이뤄냈지만, 북한은 체제 고립이라는 한계 속에서 더디고 더딘 고난의 행군을 해야 했다. 다행히 '햇볕정책'을 통해 고집불통의 북한 지도자들에게 작게나마 통일의 열망을 함께 안겨 줄 수 있었지만, 미국을 비롯한 신자유주의 체제를 울부짖던 그들 때문에 북한은 핵무장이라는 무서운 카드를 내밀었다.

부패한 대한민국의 권력을 몰아내기 위해 엄동설한에도 촛불을 함께 들어 그들의 실체를 세상에 폭로시키며 '촛불 혁명'을 이뤄냈다. 그러나 여전히 '친일'의 가면에서 '반공'의 가면의 넘어 '보수'의 탈을 쓴 그들은 오로지 자신들의 재산과 권력을 지키기 위하여 악다구니를 쓰고 있는 상태다. 그들의 머리 속에는 아직도 '빨갱이'이나 '종북'이라는 단어가 '평화'나 '인권'보다 더 고귀한 가치로 이해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무슨 대가를 치르더라도 평화는 반드시 지킬 것"이라는 약속을 온 국민 아니 전 세계에 전달하며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이 성사된 것이다. 그러나 소위 보수세력이라 자청하는 그들은 그동안 권력의 단맛에 취해 부패 속에서도 지켜낸 자신만의 권력과 재물을 위해 끊임없이 사회혼란을 부추기고 있다.

이런 중요한 '남북정상회담'이 드디어 성사되기에 이르는 데에는 이런 역사적 배경이 깔려 있기에 단 한번도 '노동자' 혹은 '민중'의 삶을 체험해 보지 못한 이인호 명예교수에게 묻지 않을 수 없다. "남북분단의 슬픔을 걷어내고 이제는 평화의 시기를 도래한 이 상황에 그동안 친일파의 권력을 이어 받은 보수세력이 내 놓을 수 있는 카드는 무엇입니까?"라고....

이인호 서울대 명예교수의 정치적 수완의 특징을 들자면, '네이버 지식in'에 굳이 묻지 않아도 모두가 잘 안다. 그 시기 그 대학, 그리고 미국 유학 그리도 또 외교관... 늘 '** 최초'라는 수식어를 달고 다니며 소위 사회 지도층이라 불렸던 그의 삶, 참으로 선망 그 자체의 기름지고도 또 윤택한 삶이 아니었던가.

평화는 단순히 입으로만 외친다고 저절로 오는 것이 아니다. 전쟁의 흉폭함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고민해보지 않는 자는 그저 입만 살아 있는 괴물들이다. 군부독재시절 "민주 아니면 죽음을 달라"고 목이 터져라 외치고, 감옥에서 모진 고문에 속에 죽어간 선열들의 모습을 상기해 보라. 전태일 열사, 이한열 열사, 박종철 열사 ... 그리고 지금도 자행되는 재벌의 노조탄압 속에서도 진정한 '민주'를 위해 오늘도 싸우고 있는 그들을 기억하라.

아직도 도도한 평화의 물결을 억지 반공의 논리와 케케묵은 보수의 논리로 거부하려는 그에게 묻지 않을 수 없다. "정녕 당신이 지키고 싶은 것은 무엇입니까? 이 땅의 평화입니까? 아니면 보수 기득권의 영원한 권력욕입니까?"

이제는 온 국민이 하나된 마음으로 통일의 마음을 키워나가 진정으로 휴전선을 날려 버리고, 새로운 통일조국의 미래를 함께 고민해 나가야 하는 시기가 아닌가. 당신이 역사학을 공부했다는 학자라면 아직도 케케묵은 보수의 낡은 틀 속에서 권력층의 이익만을 위해 색안경을 끼고 '종북'을 울부짖는 보수세력에게 평화의 시기가 왔다는 것을 머리 속에 각인시켜야 하지 않는가?

지금까지 남북관계는 정말 위기일발의 순간이 계속 될 만큼 어려웠지만, 오늘 '남북정상회담'은 새로운 출발은 선언하는 것이다. '늑대가 나타났다'고 외치는 양치기 소년의 일화처럼, 언제까지 '빨갱이'와 '종북'을 끊임없이 들먹이며 '보수팔이로' 세상을 혼란에 빠뜨려 하는가. 자꾸 그러면 정작 중요한 순간에는 아무것도 못하고 당할 수 도 있다.

이 작고 좁은 땅덩어리에 50만 명이 넘는 우리 젊은 청춘들이 매일 군복을 입고 일촉즉발의 위기를 언제까지 견디고 또 견뎌야 하는가. 그리고 이산가족의 슬픔은 도대체 언제까지 기다려야만 하는가.

설사 남북 간에 평화협정이 문제가 되어 성사되지 못하거나 파기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그때 또 다른 해결방안으로 풀어가면 된다. 지금은 온 세계가 주목하는 평화의 흐름을 조용히 지켜봐야 할 때다. 지금 이 순간, 바로 결정적인 이 순간, 다된 밥에 재 뿌리는 듯한 글을 보니 몹시도 불편하고 또 불쾌하다.

시간이 흘러가면 머리카락은 자연스럽게 자란다. 그러면 미장원이나 이발소를 가서 몇 만원에서 몇 십만원을 주고 머리카락 손질을 한다. 만약 그 돈이 없다면 집에서 빗질이라도 한다. 그냥 놔두면 산발이 되어 '더럽다'라는 소리밖에 듣지 못한다.

역시 세월이 흘러가면 나이는 자연스럽게 먹는다. 그러나 마치 나이가 먹은 그 자체를 권력인양 설쳐대는 못된 부류도 많다. 미장원에서 머리카락 손질을 하듯, 아니 그냥 빗질을 하듯 나이가 먹으면 자신의 인격과 품격에 스스로 재투자해야 한다.

그냥 놔두면 '더럽다' '꼰대다'라는 소리밖에 듣지 못한다. 정녕 당신이 자신의 인격 함양을 위해 무엇을 재투자했는지 조심스레 반문해 보시라. 그것이 학자된 자의 기본 자세다.

공부를 많이 하면 지성인라 평한다. 그러나 그 '지성'이 세월과 함께 '지혜'로 발전하지 못하면 그냥 속절없는 '입 놀림'에 그치지 않는다. 그리고 그 '입 놀림'이 글로 기록되어 대중매체에 실리면 '망언'으로도 불려질 수도 있다. 문자가 사라지지 않는 한 영원히 기록은 유지된다. 그리고 후학들은 그것을 보고 또 다시 평가할 것이다.

북한의 핵 폐기가 확실치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역사는 올곧은 마음이 강할수록 바르게 간다. 설사 휘어지고 느릴지라도 '평화의 마음'은 우리 민족이 풀어가야 할 숙제이고, 전 인류가 영원히 함께 고민해야 할 최대의 테제다. 그 앞에서 함부로 '정치적 자살 운운'하거나 '역사적 쇼'라는 입 가벼운 소리 함부로 하지말라!

당신은 일전에 어느 인터뷰에서 "역사는 연표를 외우는 게 아닙니다. 역사란 결국 사람 되는 걸 배우는 겁니다."라고 말했다. 역사란 결국 사람되는 것을 배우는 것이라 했는데, 지금 보니 당신의 공부가 의심스럽다.

사람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진정한 사람됨이 무엇인지도 모르는데 어찌 무엇을 배웠단 말이냐. 그리고 어찌 그런 역사관으로 제자들을 가르쳤는가. 역사적인 남북 정상회담이 성사된 오늘 당신을 통해 '측은지심(惻隱之心)'을 배운다.

2018년 4월 27일 남북정상회담이 열리던 날, 수원 화성에서...

덧붙이는 글 | 칼을 잡고 수련한지 20여년이 조금 넘은 검객(劍客)이며 인문학자다. 중앙대학교 대학원 역사학과에서 한국사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경기대학교에서 Post-doc 연구원을 거쳐 문화사·전쟁사·무예사를 연구해 왔다.
『친절한 조선사』(2007), 『조선무사』(2009),『조선후기 기병전술과 마상무예』(2013),『조선군 기병전술 변화와 동아시아』(2015),『정조의 무예사상과 장용영』(2015),『조선 무인은 어떻게 싸웠을까』(2016), 『무예인문학』(2017) , 『병서, 조선을 말하다』(2018) 등의 저서와 「협도의 탄생」(2017),「조선후기 권법의 군사무예 정착에 대한 문화사적 고찰」(2016),「18세기 활쏘기(國弓) 수련방식과 그 실제」 (2015)「조선초기 군사 전술체계와 제주 전투마」(2014) 외 다수의 무예사와 관련한 논문을 발표하였다.
오직 마음속에 '무인(武人)'이라는 두 글자를 짙게 써내려가며, 한 손에는 칼 그리고 나머지 한 손에는 펜을 들고 살아가는 이 시대의 젊은 실학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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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예의 역사와 몸철학을 연구하는 초보 인문학자입니다. 중앙대에서 역사학 전공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경기대 역사학과에서 Post-doctor 연구원 생활을 했습니다. 현재는 한국전통무예연구소(http://muye24ki.com)라는 작은 연구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