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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가 재임 시절에 해 놓은 치적은 산림녹화가 유일하다고 했던가. 이제는 어디를 둘러보아도 우거진 숲을 보기 어렵지 않다. 도시에도 곳곳에 공원이 있고 가로수도 제법 굵어졌다. 굳이 이 나라를 떠나지 않아도 눈을 식힐 만한 풍경은 도처에 있다. 마음이 울적하거나 종잡을 수 없이 헛헛할 때 나는 교원대학교 잣나무 숲으로 들어간다. 붉은 벽돌로 지어올린 음악대학 건물 뒤편으로 가면 야트막한 언덕이 있다. 그곳이다.

교원대 잣나무숲길
 교원대 잣나무숲길
ⓒ 이태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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잣나무는 소나무과에 속한다. 그래서 그 둘을 구분하기는 쉽지 않다. 소나무 이파리가 두세 개 뭉쳐 있다면, 잣나무는 다섯 개 뭉쳐 있어서 오엽송이라고 한다니 자세히 살펴보면 알아차릴 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 고유의 나무라서 영어로도 'korea pine'이라고 한다.

소나무와 잣나무는 이처럼 비슷하기 때문에 가까운 벗을 이를 때 쓰기도 한다. 소나무가 무성하게 자라는 것을 보고 잣나무가 기뻐한다는 송무백열(松茂栢悅)이라는 말은 듣기만 해도 흐뭇하다. 교원대학교에 참으로 어울리는 숲이 아닐 수 없다.

신발을 벗고
 신발을 벗고
ⓒ 이태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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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숲길에 들어서기 전에 나는 스타킹을 벗고 신발을 벗는다. 흙은 부드럽고 막 자란 풀들은 호사스런 기분이 들 만큼 푹신하다. 오후에 이 길을 들어서면 하루 종일 수고한 햇볕이 허공에서 땅까지 솜처럼 쌓여서 발바닥을 따뜻하게 어루만져준다. 첫 발을 내딛는 순간 대자연의 위로를 온몸으로 받게 되는 것이다. 

천천히 걷는다, 아무 말 없이. 나도 모르게 심호흡을 하게 된다, 자연스럽게. 천문학자가 아니더라도 밤하늘 아래서 별을 보면 겸손해지듯이 이 숲에 들어서면 대지의 작은 아이가 된 듯 여려진다. 그리고 마음속 깊은 곳에서 따뜻함이 차온다.

꽃마리
 꽃마리
ⓒ 이태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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탱자나무꽃
 탱자나무꽃
ⓒ 이태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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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야 보인다. 들길에 흔히 펴 있던 꽃마리. 꽃가게에서 치장한 어떤 꽃보다도 화사하고 풍만하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어김없이 피고 지고했을 이 기특한 꽃을 보며 감사하게 된다.

걷다보면 길가에 가시를 씩씩하게 돋우고 있는 나무가 보인다. 이 시절에 이 나무는 눈처럼 하얀 꽃을 피우고 있다. 꽃 진 자리에 머지않아 탱자가 맺힐까?

이렇게 말없이 걷다보면 잣나무 그루터기가 눈에 들어온다. 햇빛 부스러기가 앉은 오래된 나무의 밑둥치에는 지난해에 떨어져 시든 잣나무 이파리와 마른 잣송이들이 쌓여 있다. 분명 아낌없이 주는 나무였을 것이다.

잣나무 그루터기
 잣나무 그루터기
ⓒ 이태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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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에는 아직 온기가 남아 있고 헛헛하던 마음은 어느새 청정한 기운이 차올라 찰랑거린다. 다시 하이힐을 신고 도시로 걸어 들어가는 발걸음이 이 숲처럼 씩씩해진다. 벌써 여름이다.


태그:#여행, #잣나무 , #교원대, #힐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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