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새로운 공간을 마련하고, 그곳에서 소박하게나마 하고 싶은 일을 꾸려가며 사는 것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80년이 넘은 한옥과의 첫만남부터 고치고, 수선하는 과정을 담아갈 이 연재는 앞으로 공간의 완성, 그 이후 공간에서 만들어갈 일들을 담아낼 예정입니다. - 기자말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하시는 데 일주일도 안 걸리셨다. 지금 살고 있는 신도시 아파트 단지 인근에 대단위로 조성하는 쇼핑몰은 분양 공고가 난 지 얼마 되지 않아 공사를 시작하더니 6개월 남짓 지나 거의 다 지어올렸다. 그런데 대지 면적 스물다섯 평 내외, 건물면적 열다섯 평 내외의 한옥은 매매 계약서 도장을 찍은 뒤로 약 6개월여 동안 삽도 못 떴다. 그동안 뭐하느라 그랬느냐. 오로지 그림만 그렸다.

집 한 채를 짓기 위해 건축주는 건축가를 몇 번이나 만날까. 사람마다 경우마다 다르다. 집을 짓는다는 것이 대부분의 건축주에게는 일생일대의 빅프로젝트겠지만, 대부분의 건축가에게는 처리해야 할 업무 리스트 중 하나, 계약서에 의해 움직이는 대상일 수 있다. 이 간격의 차가 클수록 만남의 수와 성격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첫 만남에서 취향의 동일함을 느낌적 느낌으로 눈치챈 뒤(무슨 말인지 모르시는 분들은 이전 연재인 <작은 한옥 수선기 7>을 참고하시길) 도장을 찍은 나의 건축가는 언젠가부터 '나의 집을 지어주는 그'가 아니었다. '우리집을 함께 짓는 동지적 관점의 그'였다.

[작은 한옥 수선기 ⑦] 한옥 새로 짓기, 돈만 있으면 되는 줄 알았더니

도면 한 장을 그리기 위해 우리는 몇 시간을 커피와 주전부리를 옆에 끼고 온갖 이야기를 나눈다. 집을 짓기 위해 필요한 도면은 한 장이 아니다. 그러자니 우리 사이에 대화의 물결이 마치 장강처럼 흐르고 있다.
 도면 한 장을 그리기 위해 우리는 몇 시간을 커피와 주전부리를 옆에 끼고 온갖 이야기를 나눈다. 집을 짓기 위해 필요한 도면은 한 장이 아니다. 그러자니 우리 사이에 대화의 물결이 마치 장강처럼 흐르고 있다.
ⓒ 이현화

관련사진보기


집을 짓는다는 건 오로지 취향에서 시작해서 취향으로 끝나는 게 아닐까 싶다. 그런데 이 취향이라는 게 일목요연하게, 보고서 정리하듯 제출해서 공유될 것이 아니었다. 내 입장에서는 '제가 짓고 싶은 집은...'이라고 메일로 주고 받는 걸로는 될 일이 아니었다.

약 8개월여에 걸쳐 우리는 때로는 2~3주에 한 번, 또 때로는 1주일에 한 번, 또 때로는 1주일에 한두 번을 지속적으로 만났다. 처음 몇 번은 온통 수다에서 시작해 수다로 끝났다. 강물처럼 흐르는 수다의 물결 아래 집을 지으려는 내가 뭘 좋아하는지, 집을 지어줄 그가 어떤 집을 어떻게 지어왔는지에 관한 탐색이 이어졌다.

나의 집의 설계를 맡아준 그는 내가 손을 잡을 때까지만 해도 이름만 대면 알 사람은 다 아는 큰 설계회사 소속이었다. 일본의 대학에서 건축을 공부한 뒤 회색빛 '노출 콘크리트' 사용의 대표주자로 여겨지는 일본 건축가 00 000(노출콘크리트라는 단어에서 얼핏 떠오르는 이름이 있다면, 그 사람이 맞을 것이다)의 한국 파트너 역할을 맡게 되면서 그 회사에서 일하게 되었다.

그런 그가 어쩌다 한옥과 작은집의 매력에 빠졌고, 실제로 서촌 한옥에서 살면서 서촌의 이웃들과 어울리기 시작하더니, 서촌에서 지어지는 몇 채의 한옥에 직간접적으로 개입하기 시작하기에 이르렀고, 좋은 바람인지 몹쓸 바람인지는 모르지만, 10년 정도 다니던 큰 회사를 박차고 나와 자력갱생의 삶을 도모하고 있었다.

나를 만난 때는 퇴사를 한두 달여 앞두고 있을 무렵이었고, 말하자면 나의 한옥은 독립 후 본격적으로 돌입한 그의 첫 작업인 셈이었다. 건축가들은 보통 자신들이 설계한 건물들을 전문 사진작가를 통해 촬영하고, 그것을 포트폴리오로 활용한다. 백문이 불여일견이기 때문이다. 독립을 이제 막 준비하고 있는 그에게 그런 게 있을 리 없었다.

그런데, 나는 실상 그런 게 별 필요가 없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쪽의 사람이었다. 겉으로 멋지게 보이는 건, 누구나 제대로 할 수 없는 일이긴 하지만 한편으로 또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일이었다. 나는 그런 화려찬란한 포트폴리오를 가지고 있는 분들의 여러 개 프로젝트 중에 하나, 작업 목록 중 하나로 내 집을 멋지게 짓기보다, 오히려 '처음'이라는 그 타이밍에 더 마음이 끌렸다.

세상의 모든 처음은 서툴 수는 있으나, 그 안에는 익숙함이 주지 못하는 성의와 정성이 배어들게 마련이다. 대규모 단지를 건설하는 것도 아니고, 기껏해야 대지 26평짜리 작은 집에, 사기를 치겠다는 마음이 아니라면야, 서툴러서 망칠 가능성이 얼마나 되겠는가. 그래서 돌이킬 수 없는 실패의 범위가 커봐야 얼마나 크겠는가. 문제가 생기면 함께 해결해나가면 된다.

어쩌면 거기에는 내 상황으로 인한 공감과 감정이 이입된 것일 수도 있다. 나 역시도 그 무렵 회사를 그만두고, 자력갱생의 삶을 준비하고 있었다. 직장인으로 오래 살다가 조직을 떠나 세상 밖으로 걸어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았던 때였다. 내가 이제 갓 독립을 했다고 해서, 독립 이후 내 이름으로 내놓을 성과가 없다고 해서, 지금까지 꾸준히 해온 나의 업력이 백지가 되는 것은 아니다.

모든 독립에는 용기가 필요하며, 그 용기는 자신에 대한 믿음이 전제되어야 한다. 나는 나를 믿고 싶었고, 그는 아마 그를 믿었을 것이다. 나는 그의 믿음과 용기를 믿고 가기로 했다. 그와 내가 삶의 새로운 분기점에서 만나 서로의 처음을 공유하며, 함께 성의와 정성을 다해 지어가는 과정을 나누고 싶었다. 

이런 과도한 의미부여와는 별개로 사실 우리는 '반백수'나 다름 없었다. 뭔가 할 일은 무척 많지만, 직장인처럼 사무실에 의무적으로 앉아 있지는 않아도 되었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온전히 우리의 것이었다. 서로의 유사한 사회적 위치를 공유하며, 퇴근 후거나 주말에만 만나야 하는 한계를 벗어나 평일 훤한 대낮에 만나 우리를 둘러싼 한낮의 햇빛과 대기를 맘껏 누리며 우리가 함께 지을 집에 관해 마음껏 상상의 나래를 펴나갔다.

사진 중앙의 네모난 집이 우리의 주인공이다. 낡고 허물어져가는 집이지만 이 집을 산 나도, 이 집을 새롭게 설계해주는 건축가도 이 집을 보고 예쁘다고 말했다. 우리 눈에 예쁘면 그걸로 된 것이다.
 사진 중앙의 네모난 집이 우리의 주인공이다. 낡고 허물어져가는 집이지만 이 집을 산 나도, 이 집을 새롭게 설계해주는 건축가도 이 집을 보고 예쁘다고 말했다. 우리 눈에 예쁘면 그걸로 된 것이다.
ⓒ 이현화

관련사진보기


만남은 얼굴을 맞대고만 이루어지지 않았다. 수시로 나는 잡지에서, 인터넷 사이트에서,  SNS에서, 여행지에서 발견한 멋진 공간과 장소들의 이미지를 아무런 맥락도 없이 그에게 마구 투척했다. 시도 때도 없는 나의 투척에 그가 늘 반응한 것은 아니었다. '오, 이거 멋진데요?'라는 회신이 올 때면 '오! 통하였구나!' 하는 마음에 안심이 되었다. 그가 나에게 엄선해 보내는 이미지가 내 맘에 쏙 들어올 때는 '와우!' 하며 느낌표 백 개를 남발하기도 했다.

새로 마련한 공간에서 나는 뭘 하고 싶은지, 아파트에서는 왜 떠나고 싶어하는 건지, 편리하고 무난한 것과 멋지고 독특한 것 중 고르라면 어떤 걸 더 선호하는지, 집에 들여놓을 살림살이는 어떤 것이 있는지, 그런 이야기를 새삼스레 꺼낼 것도 없었다. 이미 수없이 나눈 수다인지 회의인지 모를 시간을 통해 그는 나의 꿈과 계획, 나의 앞뒤 안 맞는 공간 구성의 허점까지 다 파악하고 있었다.

때로 나는 초조해지기도 했다. 우리가 만난 지 벌써 몇 달인데, 왜 아직도 아무것도 안 보여주는가. 내가 그렇게 취향의 공유에 정신이 팔려 있는 동안 알고 보니 그는 홀로 묵묵히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구획을 나누고, 공간에 기능을 부여하며, 그곳에서 살아갈 나의 일상을 아침부터 밤까지 꼼꼼하게 체크하며 그리고 또 그리고 있었다. 그리고 드디어 도면이라는 것을 보여주던 날. 나는 '반찬과 도장의 취향'만 믿고 계약서에 도장을 찍은 나의 선택이 얼마나 훌륭한 것이었는지 깨달았다(무슨 말인지 모르시는 분들은 역시 이전 연재인 <작은 한옥 수선기 7>을 참고하시길).

도면이 나왔다고 해서 끝은 아니었다. 본격적인 게임은 그때로부터 시작되었다. 집은 몇 번이나 뒤집어지고 엎어졌다. 만날 때와 헤어질 때의 집의 구성이 완전히 달라지기도 했다. 남향의 가장 볕 좋은 방이 침실이었다가, 제일 작은 문간방이 침실이 되기도 했고, 대청을 중심으로 오른쪽에 자리하던 부엌은 왼쪽 끝으로 밀려나기도 했다. 천장 서까래를 노출하느냐 마느냐, 대청 안쪽 창문의 높이를 어떻게 정하느냐, 화장실은 건식이냐 습식이냐, 샤워실과 화장실을 분리하느냐 마느냐, 다락을 두느냐 마느냐, 다락으로 올라가는 방법을 사다리로 할 것이냐, 계단으로 할 것이냐 등등 이루 다 말할 수 없는 온갖 이야기들이 회의 테이블에 오르거나 사라졌다. 물론 나는 다 말로만 끝냈다. 이 쪽 방의 다락을 이쪽으로 옮기면 어떨까요, 라는 나의 말 한마디는 그의 철야와 야근을 불러오는 몹쓸 제안이었을 것이다.

다음 번 미팅에서 그는 우리의 회의 내용에 매우 충실한, 그리고 거기에 매우 아름다운 디테일을 추가한, 새로운 도면을 그려 내 앞에 펼쳐 보였다.

우리의 고민은 여러 가지였다. 하지만 결국 하나의 문제로 수렴되었다. 나는 한옥이라는 외피 안에 아파트의 공간을 우겨넣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궁이에 불을 지피고 살 수는 없으니, 한옥이라는 공간의 특성을 최대한 살리면서도 현대인의 일상적 편리함을 어떻게든 구현하고 싶었다. 한옥의 멋을 살리고 싶지만 춥고 불편하게 살고 싶지는 않았다. 두 가지의 바람은 경우에 따라 양립하기가 매우 어려웠다. 결국은 선택과 타협과 포기와 이해가 전제되어야 했다.

이 집의 민낯이다. 사선으로 채워진 부분은 불법증축이 된 부분이라 건물 면적에 포함할 수 없다. 이 도면을 펼쳐들고 우리의 엄짱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건축주는 입으로 말하고, 건축가는 도면으로 말한다.
 이 집의 민낯이다. 사선으로 채워진 부분은 불법증축이 된 부분이라 건물 면적에 포함할 수 없다. 이 도면을 펼쳐들고 우리의 엄짱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건축주는 입으로 말하고, 건축가는 도면으로 말한다.
ⓒ 이현화

관련사진보기


첫 도면이 나온 지 8개월여. 이제 우리의 그림은 거의 마무리가 되어가고 있다. 그러나 아직 종착지에 당도하지는 않았다. 큰 그림을 겨우 끝낸 우리는 이제 각 공간 안의 세부를 그려나가고 있다. 마루는 무엇으로 깔 것인가? 벽은 어떻게? 창호의 사이즈는? 문의 방향은 미닫이로, 여닫이로? 그래도 우리는 전진하고 있고, 집은 서서히 실체를 드러내고 있다. 물론 아직 그림 속에서만. 그와 만난 지도 8개월여. 나의 파트너, 그의 이름은 엄현정 소장이다. 그를 처음 만난 이래 그를 부르는 나의 호칭은 동일하다.

'엄소장님.'

하지만 내 휴대전화기 속 그의 이름은 벌써 몇 번째 바뀌고 있다. 가장 최근 버전은 '엄짱'이다. 나의 한옥을 위해 정성과 성의를 다해 수백 수천 개의 선을 그리고 있는, 엄현정 소장, 그는 나의 파트너, 나의 엄짱이다. 나의 처음이 그와 함께여서, 그의 처음이 나의 집이어서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개인 블로그에도 게재되었다.(https://blog.naver.com/hyehwa11-17)



태그:#작은한옥수선기, #선한공간연구소, #엄현정소장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책 만드는 일을 오래 했다. 지금은 혜화동 인근 낡고 오래된 한옥을 새로운 공간으로 만들어 그곳에서 책을 만들며 살고 있다.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