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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공간을 마련하고, 그곳에서 소박하게나마 하고 싶은 일을 꾸려가며 사는 것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80년이 넘은 한옥과의 첫만남부터 고치고, 수선하는 과정을 담아갈 이 연재는 앞으로 공간의 완성, 그 이후 공간에서 만들어갈 일들을 담아낼 예정입니다. - 기자말

많은 이가 꿈꾸듯 나 역시 아파트를 떠나 단독주택에서 살고 싶었다. 서울 곳곳, 지역 곳곳을 둘러봤지만 대개의 집들은 내게 크거나 비싸거나 멀었다. 2017년 6월, 두서없이 집을 찾던 나와 작은 집 한 채가 연이 닿았다. 

새롭게 어떤 일을 시작할 때,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최대치가 100이라면, 나는 늘 70~80정도만 써도 되는 안전치 안에서 결정해 왔다. 어떤 일이든 마음의 평화를 해치면서까지 진행하고 싶지 않았다. 

나와 첫 만남을 가진 작은 집 한 채는, 여러모로 행운이라고밖에 할 수 없는 조건이었지만, 가진 게 많지 않은 내게는 무척 버거운 상대였다. 이런 집을 같은 조건으로 만날 수 없다는 것이 분명했다. 아주 오래 되고, 아주 낡은 이 집은 최대치인 100을 넘어 120, 130을 감당해야만 내 것이 될 수 있다는 사실도 분명했다.

모든 결정은 늘 합리적이지 않다

마당에 드는 햇살이 시간에 따라 점점 흘러간다.
 마당에 드는 햇살이 시간에 따라 점점 흘러간다.
ⓒ wooseop hw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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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집을 손에 쥐겠노라고 선택한 순간부터 은행과 국가의 부동산 정책과 건축법과 낯선 세계의 이해불가한 용어가 내 앞에서 춤을 추었다. 그것은 대부분 내가 결정하고 풀어야 할 고난이도의 방정식으로 등장할 것이었다.

나는 그것을 알았지만 망설이지 않았다. 맑은 정신으로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고, 그로부터 얼마 뒤 1936년 6월부터 종로구 혜화동 지금 그 자리에서 한 일가의 생로병사를 지켜보던 집 한 채의 대문 열쇠를 받아들었다.

열쇠를 받아들고 며칠 뒤. 살던 분들이 이사를 가시고 집은 이제 비어 있었다. 받아든 열쇠로, 내 손으로 문을 열고 들어가는 건 처음이었다. 처음 이 집을 보러 왔을 때 부동산에서 '부동산종합정보'를 출력해줬다. 그 문서에 의하면 이 집의 시간은 1936년 6월 2일부터다.

내게 열쇠를 건넨 어르신은 이 집에서 태어나 자라, 결혼하고, 자녀를 낳고, 키우셨다고 한다. 세월이 흐르면서 자녀들은 장성하여 분가 독립하고, 2016년 겨울, 100세를 훌쩍 넘기신, 역시 이 집에서 젊은 시절 어르신을 낳고 키우신 부친의 마지막을 지켜보셨다.

아내분은 오래전 먼저 떠나셨고, 오래된 집에서 혼자 사는 것이 고단하다는 것이 집을 내놓으신 이유셨다. 그러면서 한편으로 자녀들 중 누구 하나라도 이 집을 고쳐 살았으면 하시는 듯도 했다. 다들 고개를 가로젓는다며 씁쓸하게 웃으셨다. 어르신은 이 댁에서 잘 살아오셨노라고, 이사 온 뒤 잘 살기 바란다는 덕담도 잊지 않으셨다. 

쪽마루에 가만히 앉아 빈 마당과 작은 집 구석구석을 바라보았다. 이 집은 곧 1936년 지어진 이래 가장 큰 변화를 경험할 것이다. 그 변화의 주체이자 결정권을 가진 나는 이 집에 쌓인 시간을 존중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개인 블로그에 올린 글입니다.(https://blog.naver.com/hyehwa11-17)



태그:#한옥, #오래된 한옥 고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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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만드는 일을 오래 했다. 지금은 혜화동 인근 낡고 오래된 한옥을 새로운 공간으로 만들어 그곳에서 책을 만들며 살고 있다.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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