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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양대장간 양양시장에 자리한 양양대장간의 김석수 대장장이가 대장간을 찾은 손님이 주문한 농기구를 다시 한 번 손을 보고 있다. 양양대장간에서는 손님이 즉석에서 고른 낫이나 괭이 등 다양한 농기구에 즉석에서 자루를 박는 등 사용하기 편한 농기구를 만들어 준다. 부엌은 물론이고 시장에서 사용하는 다양한 종류의 칼도 이곳에선 주문 제작한다.
▲ 양양대장간 양양시장에 자리한 양양대장간의 김석수 대장장이가 대장간을 찾은 손님이 주문한 농기구를 다시 한 번 손을 보고 있다. 양양대장간에서는 손님이 즉석에서 고른 낫이나 괭이 등 다양한 농기구에 즉석에서 자루를 박는 등 사용하기 편한 농기구를 만들어 준다. 부엌은 물론이고 시장에서 사용하는 다양한 종류의 칼도 이곳에선 주문 제작한다.
ⓒ 정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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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적, 같은 강원도 양양군 서면에 속하지만 100리가 넘게 떨어진 갈천 증골(鄭谷) 큰집에서 한동안 더부살이를 했다. 증골은 정(鄭)씨가 사는 골짜기란 의미다. 증골로 할아버지께서 거처를 옮기시기 전에 사셨던 곳은 증골에서 고개를 하나 넘어 산비탈 오솔길을 따라 한참을 걸어가야 하는 곳이다.

집에서 건너다보이는 구룡령에 햇살이 제법 오래 비쳐들기 시작하는 정월 대보름이면 큰아버지는 겨우내 눈에 젖어 허물어지는 디딜방아 앞 봇도랑 가까운 화덕부터 손질하셨다. 진흙을 지게소쿠리에 한 짐 져다 물로 반죽해 수리하셨다. 풍구로 바람을 집어넣는 구멍도 손보고, 빨갛게 숯불을 피워올릴 화구도 말끔하게 손을 보셨다.

양양대장간 화덕 양양시장에 자리한 양양대장간의 화덕은 예전 모습을 온전히 재현했다고는 할 수 없지만 전형적인 대장간의 화덕 모습은 맞다. 산돌을 주어다 진흙과 함께 만든 화덕이었으면 더 좋았겠지만 현대 사회에서 그런 것까지 바라기는 무리일 수 있다. 벽돌을 진흙과 함께 쌓아 화덕을 만들었으나 불이 피어오르는 화구는 오래전 추억으로 간직한 화덕과 같다.
▲ 양양대장간 화덕 양양시장에 자리한 양양대장간의 화덕은 예전 모습을 온전히 재현했다고는 할 수 없지만 전형적인 대장간의 화덕 모습은 맞다. 산돌을 주어다 진흙과 함께 만든 화덕이었으면 더 좋았겠지만 현대 사회에서 그런 것까지 바라기는 무리일 수 있다. 벽돌을 진흙과 함께 쌓아 화덕을 만들었으나 불이 피어오르는 화구는 오래전 추억으로 간직한 화덕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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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손 본 화덕에 본격적으로 불을 피우고 농기구를 새로 만들거나 수리할 때면 까만 고무줄을 연결한 풍구를 돌리는 일은 내 몫이다. 납작하게 자른 나무토막을 엎어놓고 거기 앉아 풍구를 돌려야 했다. 참숯에 빨갛게 불이 이글거리며 붙고 파란 불꽃이 올라오도록 속도를 유지하며 몇 시간이고 풍구를 돌렸다.

호미며 괭이, 낫, 쇠스랑 등 1년 농사를 짓는데 필요한 농기구들은 이 작업으로 새것처럼 벼려졌다. 겨우내 장작을 마련하며 사용한 무디어진 도끼도 이때 온전한 모습으로 바뀐다. 농사일을 하시는 큰아버지는 갈천마을에서도 알아주는 대장장이기도 하셨다. 필요에 의해서 자연스럽게 몸에 익힌 솜씨였지만 작업에 필요한 집게부터 망치 등 모두 손수 만들어 사용할 정도로 솜씨가 좋으셨다.

양양대장간 대장간은 화덕에 불이 피워지면서부터 작업이 시작된다. 예전처럼 참나무숯이 아닌 갈탄(褐炭)을 주로 사용한다. 갈탄은 무연탄의 한 종류지만 품질이 많이 떨어진다. 그러나 기계로 공기를 불어넣어 불을 올리는 대장간에서는 값싼 갈탄이 자연연소를 시켜 난방용으로 이용하는 무연탄 보다 널리 이용된다.
▲ 양양대장간 대장간은 화덕에 불이 피워지면서부터 작업이 시작된다. 예전처럼 참나무숯이 아닌 갈탄(褐炭)을 주로 사용한다. 갈탄은 무연탄의 한 종류지만 품질이 많이 떨어진다. 그러나 기계로 공기를 불어넣어 불을 올리는 대장간에서는 값싼 갈탄이 자연연소를 시켜 난방용으로 이용하는 무연탄 보다 널리 이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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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겋게 달구어진 호미나 낫을 왼손에 든 집게로 잡고 모루 위에서 오른손에 든 망치로 두들긴다. 그렇게 닳고 무뎌진 농기구가 새것으로 바뀌는 과정은 신기에 가까웠다. 포탄껍질이나 잘라진 철로가 필요한 크기로 다시 나뉘고 잘려진 뒤 다양한 농기구로 만들어지는 모습은 차라리 경이로웠다.

이와 비슷한 풍경을 양양시장에서 만날 수 있다. 양양시장 한쪽엔 대장간이 있어서다. 농번기엔 주중에도 문을 열지만 한겨울에도 장날만큼은 반드시 문을 여는 대장간이다. 양양시장에 있어서가 아니라 오래전부터 대장간은 '양양대장간'이란 간판을 달고 있었다.

봄을 양양군에서 가장 빨리 느낄 수 있는 곳도 양양대장간에서다. 설 무렵부터 양양대장간에서는 다양한 농사용 낫이며 괭이, 쇠스랑, 거린대, 호미 등을 만든다. 철물점에서 1,500원~ 2,000원이면 중국산 호미를 살 수 있지만 이걸 써 본 농부는 굳이 대장간을 찾아 호미를 구입한다. 가격을 맞추려 지나치게 얇게 만든 중국산 호미는 주먹보다 조금 더 큰 돌 하나 빼지 못할 정도로 약한 탓이다.

양양대장간의 주인 김석수 대장장이는 명함에 'Yangyang Smithy'란 영문 표기가 있다. 그런데 그 흔한 대표나 사장이 아니라 직함은 대장장이다. 아, 이 명함에서 특별한 부분은 양양대장간 상호가 인쇄된 옆에 당당하게 '본점'이란 표기다. 지점이나 분점이 아니라 이곳이 양양대장간 본점이란 이야기고 이 본점의 대장장이니 부연설명 필요 없는 주인이란 이야기다.

대장장이 대장간에선 요즘은 사람의 손으로 두들기는 망치소리는 줄었다. 더구나 쇠를 자르거나 하는 등의 작업에 3~5kg에 이르는 해머를 이용하는 모습도 보기 어렵다. 이런 작업엔 절단기를 이용하거나 기계를 이용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해머를 대신하는 기계 또한 대장장이의 숙련도가 필요하다.
▲ 대장장이 대장간에선 요즘은 사람의 손으로 두들기는 망치소리는 줄었다. 더구나 쇠를 자르거나 하는 등의 작업에 3~5kg에 이르는 해머를 이용하는 모습도 보기 어렵다. 이런 작업엔 절단기를 이용하거나 기계를 이용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해머를 대신하는 기계 또한 대장장이의 숙련도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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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간은 쇠를 불에 달구어 온갖 연장을 만드는 곳이다. 대장장이는 바로 이런 일을 업으로 하는 사람을 가리킨다. 요즘에야 산소용접기를 이용해 필요한 크기로 쇠를 일정하게 잘라 원하는 형태로 가공을 용이하게 한다. 하지만 예전엔 포탄의 껍데기나 철로 등을 먼저 불에 달궈 작은 도끼와 비슷한 망치를 대고 이걸 커다란 망치로 내리쳐 끊는 작업부터 시작했다.

1970년 그때 큰아버지께서는 "요즘에야 이런 고철이라도 구할 수 있으니 얼마나 좋아. 철광석을 주어다 그걸 녹여 쇳물을 내기도 했는데"라 하셨다. 양양군엔 철광석이 오래전부터 생산되던 고장이다. 큰집이 있는 갈천에도 구룡령 자락에서 철광석이 나온다. 예전 신작로 곳곳에 뒹구는 새까만 돌이 철광석이다.

이 철광석을 녹이는 작업은 아무래도 쇠를 달구는 정도의 열만으로는 불가능하겠다. 그런데 이걸 숯불로만 했다고 하니 그 고된 작업 과정이 사뭇 경이롭다. 그뿐인가. 물 하나만으로 담금질을 해 쇠의 물성을 바꾸는 과정 또한 경이롭지 않을 수 없다. 큰아버지께 궁금해서 여쭈어 본 적이 있다.

쇳조각 하나를 새빨갛게 달궈 물에 넣었다 꺼내신 뒤 집게로 모루에 올려주시더니 망치로 쳐 보라고 하셨다. 부러졌다고 해야 할지, 깨졌다고 해야 맞는지 잿빛에 가까운 무늬가 선명하게 드러난 쇳조각은 거짓말처럼 망치질 한 번에 조각났다.

낫 대장간에 낫을 만들 때 용도에 따라 두께가 달라진다. 나무를 자르거나 찍을 때 사용하는 낫은 ‘목낫’이라고 하는데 이건 두껍고 완만하게 둥근 형태를 지니게 만든다. 굵은 나무를 찍었을 때 부러지거나 휘지 않게 하며 적당한 무게감으로 능률을 높이기 위해서다. 논두렁을 깎거나 벼를 베는 등의 작업에 이용되는 풀낫은 전체적으로 얇게 만들어 예리하게 풀을 벨 수 있게 만든다.
▲ 낫 대장간에 낫을 만들 때 용도에 따라 두께가 달라진다. 나무를 자르거나 찍을 때 사용하는 낫은 ‘목낫’이라고 하는데 이건 두껍고 완만하게 둥근 형태를 지니게 만든다. 굵은 나무를 찍었을 때 부러지거나 휘지 않게 하며 적당한 무게감으로 능률을 높이기 위해서다. 논두렁을 깎거나 벼를 베는 등의 작업에 이용되는 풀낫은 전체적으로 얇게 만들어 예리하게 풀을 벨 수 있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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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강하면 부러지거나 깨지고, 너무 무르면 낫은 나무를 찍어도 날이 문드러지고 호미는 휜다는 걸 그때 배웠다. 심지어 도끼도 담금질을 제대로 하지 않고는 나무를 쪼개기는커녕 쇠를 쳤을 때처럼 날이 무뎌졌다. 담금질의 중요성을 큰아버지는 이렇게 쇠를 무르게 한 상태에서 낫이나 도끼를 써 볼 수 있게 하셨다.

이런 추억을 간직한 덕에 서울에서도 광희문 앞에 있는 대장간이 낯설지 않았고, 양양시장에 대장간을 옮겨오면 좋겠단 이야기를 2002년에 제안할 수 있었다. 장터 풍경이 대부분 옷이나 먹을 거 위주로 펼쳐진다. 여기에 오래전부터 있었어도 장터가 아닌 외진 곳에 자리할 수밖에 없던 대장간을 옮기면 좋겠단 이야기를 했을 때 처음엔 크게 의미를 두지 않는 게 역력했다.

괭이들 그리 넓지 않은 우리나라에서도 지역에 따라 괭이나 호미는 형태가 다르다. 충청도에서 이곳 강원도에서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끝이 뾰족한 괭이를 찾으니 없었다. 마치 자귀처럼 생긴 괭이만 있었다. 나무뿌리를 파거나 할 일이 적고 풀을 뿌리 바로 위의 생장점에서 자르기엔 용이할 수 있는 형태로 날을 새운 괭이만 있었다. 호미는 어떨까 싶어 확인하니 그것도 강원도에서 볼 수 있는 종류와는 모양이 달랐다. 강원도 호미는 왼손호미와 오른손잡이가 사용하는 호미가 다를 정도로 호미의 형태가 길고 역직삼각형이며 끝이 뾰족하다. 충청도가 고향인 김석수 대장장이는 이 두 종류의 향토적인 농기구를 모두 제작한다.
▲ 괭이들 그리 넓지 않은 우리나라에서도 지역에 따라 괭이나 호미는 형태가 다르다. 충청도에서 이곳 강원도에서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끝이 뾰족한 괭이를 찾으니 없었다. 마치 자귀처럼 생긴 괭이만 있었다. 나무뿌리를 파거나 할 일이 적고 풀을 뿌리 바로 위의 생장점에서 자르기엔 용이할 수 있는 형태로 날을 새운 괭이만 있었다. 호미는 어떨까 싶어 확인하니 그것도 강원도에서 볼 수 있는 종류와는 모양이 달랐다. 강원도 호미는 왼손호미와 오른손잡이가 사용하는 호미가 다를 정도로 호미의 형태가 길고 역직삼각형이며 끝이 뾰족하다. 충청도가 고향인 김석수 대장장이는 이 두 종류의 향토적인 농기구를 모두 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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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구경이 사람을 모으고, 거기에 나름의 장단이 있는 대장간 풍경만큼 이야기가 풍성할 수 있는 조건을 지닌 것도 드물다는 이야기를 했다. 거기에 하나 더해서 뻥튀기까지 함께 시장에 터를 잡게 하면 좋겠단 이야기를 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시장 한 쪽에 대장간과 뻥튀기가 옮겨왔고 10년이 넘어섰다.

욕심 같으면 김홍도의 풍속화에 등장하는 대장간 풍경을 그대로 되살렸으면 싶다. 그러나 관리 자체가 어려워진다. 물론 지붕이야 따로 기둥을 세우고 얹을 수 있다. 하지만 난장에 설치할 수도 없는 일이다. 각종 집게며 다양한 종류의 망치 등 대장간이라면 반드시 있어야 될 공구들이 온전히 벽이 없는 장소에서 보존되리란 건 요원한 꿈이다.

하지만 이만큼이라도 되살려 놓았으니 양양장터를 찾았을 때 아이들에게도 이곳을 체험할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 앞으로도 오랜 시간 유지되겠지만, 오래전 조상들이 어떻게 농기구를 만들어 사용했는지 배울 기회를 주는 학습의 장으로는 충분하니까.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정덕수의 블로그 ‘한사의 문화마을’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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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은 불편하지만 부끄러움은 아니다. 한계령 바람같은 자유를 늘 꿈꾸며 살아가며, 광장에서 오늘을 역사로 기록하고 시로 표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