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남극 내륙 탐사를 위해 헬리콥터를 이용한다. 정찰 대원들은 비상키트와 함께 남겨진다
▲ 설원에서 이륙하는 헬기 남극 내륙 탐사를 위해 헬리콥터를 이용한다. 정찰 대원들은 비상키트와 함께 남겨진다
ⓒ 김진홍

관련사진보기


남극은 가장 특별한 여행지였다. 하얀 빙원, 눈 폭풍 블리자드, 혹독한 환경에 살아가는 펭귄들... 제자리로 돌아온 지금 여운이 오래 남는다. '남극에서 살아보기' 수첩 한켠에 적어놓은 버킷리스트 한 줄을 지웠다. 2015년 - 2017년 남극 장보고기지 하계 안전요원으로 생활한 파르밧 김진홍 대원의 남극탐사, 극지의 일상으로 초대한다. - 기자 말

'두두두두' 헬리콥터가 눈보라를 일으키며 솟구친다. 하얀 순백의 세상이다. 시속 200km/h로 날고 있지만 속도감이 없다. 잔잔한 물결을 넘으며 항해하는 것 같다. 슬로우 비디오 풍경이다. 기지에서 30km 떨어진 곳에 활화산 멜버른산(2,732m)이 우뚝 서 있다. 내륙으로 비행할 때 항상 지나는 곳이다. 마치 히말라야 산군을 날고 있는 듯하다.

해빙으로 만들어진 파란색 물 웅덩이(Puddles), 2년생 이상 오래된 얼음이 여름철 해빙기에 녹아 불규칙적인 작은 연못을 형성한다
▲ 남극의 활화산 멜버른산 빙하지대 해빙으로 만들어진 파란색 물 웅덩이(Puddles), 2년생 이상 오래된 얼음이 여름철 해빙기에 녹아 불규칙적인 작은 연못을 형성한다
ⓒ 김진홍

관련사진보기


설원의 지휘자, 바람이 빚은 예술작품

바람은 오케스트라의 지휘자다. 때론 빠르고 여리게 설원을 조율한다. 온통 바닐라 생크림을 발라놓았다. 갈라진 빙하크랙, 파란 호수 퍼들, 조각칼로 깎아 낸 바위산군. 바람의 사수를 받은 예술가의 작품이다.

하얀 사막에 눈이 내리면, 아련한 시야에 과거의 시간이 보인다. 남극점으로 향하는 탐험가의 그림자를 따라간다. 뒤돌아서면 흔적 없이 사라지는 발자국. 가도 가도 끝이 없다. 술래가 된 개구쟁이 천사와 '얼음 땡' 놀이를 한다. 계곡 사이로 흐르던 빙하가 깜짝 놀라 멈췄다. 천사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조금씩 소리 없이 움직인다.

태초의 신비로운 자연이 이랬을까?
▲ 남극 내륙 설원의 모습 태초의 신비로운 자연이 이랬을까?
ⓒ 김진홍

관련사진보기


빙하, 시간여행을 떠나는 타임캡슐

첫 탐사는 빙하팀과 함께한다. 남극 종단 산맥의 고원 해발 3,000m, 장보고 기지에서 180km 떨어진 내륙으로 들어간다. 날씨가 좋지 않아 탐사 일정이 지체되었다. 영하 40도 살벌한 환경에서 지내야한다. 눈에 반사되는 자외선이 강하다. 선크림도 효과가 없어 바라클라바(얼굴 전체를 덮는 모자)를 쓰는 게 낫다.

빙하 탐사장비가 어마어마하다. 짐 수송을 위해 헬기 4대가 지원되었다. 약 100만 년 동안 형성된 얼음은 기후 변화의 나이테다. 채취된 샘플들은 냉동 보관되어 한국의 연구소로 옮겨진다. 지구의 오랜 비밀을 푸는 열쇠다.

3,500m에서 고도를 낮춘 헬리콥터가 선회한다. 눈보라를 일으키며 안착한다. 정찰 대원들을 남겨두고 떠난다. 조금 움직여도 호흡이 거칠어진다. 히말라야 4,000m에서 느끼는 초기 고산증세를 느낀다. 저기압으로 남극에서 체감하는 고소영향이 크다.

이착륙시 강한 눈보라를 일으킨다
▲ 설원에 착륙하는 헬기 이착륙시 강한 눈보라를 일으킨다
ⓒ 김진홍

관련사진보기


바람이 불어도 피할 곳이 없다. 날씨는 순식간에 변한다. 구름이 빠르게 몰리더니 앞이 보이지 않는 화이트 아웃이다. 캠프 설치를 서두른다. 단단한 눈을 커다랗게 조각내 블록을 쌓는다. 바람을 막기 위함이다. 식당과 2인1실의 숙박, 화장실 텐트를 설치한다. 남극 조약에 가입된 회원국들은 환경보호의 의무사항이 있다. 남극 생태계를 보호하기 위한 노력이다. 탐사가 끝나면 유해물질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 모두 기지로 회수해 본국으로 보내지게 된다.

장보고 기지로부터 180km, 3000m 고도에 설치한 빙하 캠프. 눈 평원의 한가운데 유일한 안식처가 된다
▲ 내륙 빙하 캠프 장보고 기지로부터 180km, 3000m 고도에 설치한 빙하 캠프. 눈 평원의 한가운데 유일한 안식처가 된다
ⓒ 김진홍

관련사진보기


텐트는 강풍에 견딜 수 있게 단단히 로프로 고정을 한다. 추위 때문에 체력 소모가 크다. 캠프 설치를 완료했다. 제일 먼저 따뜻한 물을 끓인다. 물은 걱정이 없다. 텐트 주변의 눈을 녹이면 된다. 모든 음식들은 돌덩이처럼 얼어버렸다. 식사를 위해서 해동을 시켜야한다.

문명의 일상에서 단절을 느낄 때, 비로소 '오지에 왔구나! 생각이 든다. 소고기, 삼겹살, 열량이 높은 단백질로 식사를 한다. 어떤 인연이 있어 남극의 텐트 안에 모였다. 세상과의 단절감은 있지만 대원들과 의지하며 가깝게 소통하게 된다. '지금, 여기' 시간에 집중한다. 행복의 시간은 멀리 있지 않음을 상기한다.

"설마 텐트가 날아가지는 않겠지?" 동료대원이 묻는다.
"귀마개 줄까?" 바람소리가 너무 크게 들리긴 한다.

소리와 시각으로 느끼는 두려움이 크다. 눈 블록을 쌓았지만 수시로 바람의 방향이 바뀌어 버린다. 누군가 밖에서 텐트를 부여잡고 흔들어대는 것 같다. 백야라 밖은 낮과 같다. 귀마개와 눈가리개를 하니 조금 편안해진다. 입에선 김이 하얗게 난다. 따뜻한 물을 담은 물통을 '꼬옥' 품고 침낭에 들어간다. 탈수 예방을 위해 수분 섭취를 충분히 해주어야한다.

파란하늘 맑은 날씨라도 순식간에 구름이 하늘을 덮는다. 외부 탐사시 방향감각을 잃을 수 있기 때문에 긴장하게 된다. 수시로 쌓인 눈을 걷어낸다
▲ 시야가 없는 화이트 아웃 파란하늘 맑은 날씨라도 순식간에 구름이 하늘을 덮는다. 외부 탐사시 방향감각을 잃을 수 있기 때문에 긴장하게 된다. 수시로 쌓인 눈을 걷어낸다
ⓒ 김진홍

관련사진보기


눈폭풍 블리자드가 캠프를 지난다.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새벽 녘 구름사이로 빛이 열리고 있다
▲ 남극의 천지창조(?) 눈폭풍 블리자드가 캠프를 지난다.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새벽 녘 구름사이로 빛이 열리고 있다
ⓒ 김진홍

관련사진보기


남극의 빙원 아래에는 무엇이 있을까?

남극 빙하(Glacier)는 역사실록이다. 오랜 시간 눈이 쌓여 녹지 않고 얼음이 된다. 겹겹이 쌓인 눈의 압력으로 조금씩 이동을 한다. 산위에서 낮은 곳으로 흘러간다.

만년설이 있는 산악지방이나 극지방에서 빙하가 형성된다. 남극의 빙하는 평균 2,300m의 두께다. 공기방울에 흔적을 남겨 놓았다. 과거 지구 대기와 온도변화를 알 수 있는 지문과 같다.

빙하 코어(Glacier core)
남극이나 북극에서 오랜 기간 눈이 쌓여 얼음층이 형성된 것. 표면에 원통형 스크류를 박아서 채취한다. 깊은 얼음은 당시의 먼지, 화산재, 중금속 등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 샘플 연구를 통해 기후변화를 예측한다.

샘플 연구를 위해 시추한 얼음을 조심스럽게 뽑아 내고 있다
▲ 빙하 코어 샘플 연구를 위해 시추한 얼음을 조심스럽게 뽑아 내고 있다
ⓒ 김진홍

관련사진보기


대륙을 덮고 있는 수천 m 얼음 아래에 70여개의 호수가 있다. 가장 큰 호수는 4km 아래의 보스톡 호이다. 새로운 생물의 발견에 기대가 크다. 하지만 연구를 위한 접근이 쉽지 않다. 해발 3,500m, 러시아 보스톡 기지는 지구상에서 가장 추운 곳이다. 영하 -89도를 기록하기도 했다.

지구상의 대부분의 생명체는 60% 이상이 물로 이루어져 있다. 최초의 생명이 탄생한 것은 깊은 바닷속 열분출에 의한다. 남극의 빙저호(얼음아래 호수) 탐사는 새로운 생물 발견의 기대가 크다.

현재 남극 내륙에서 3,000미터 이상 얼음시추에 성공한 나라는 러시아, 일본, 프랑스, 이탈리아 4개국이다. 빙하시추는 오랜 기간 작업을 해야 하기에 내륙 기지가 필요하다. 헬기로 이동하는 것은 한계가 있어 탐사 장비와 물자를 육로로 수송해야한다. 해안에서부터 안전한 길을 확보해야한다. 남극을 가르는 종단 산맥을 넘는 육상루트 탐사(KOREAN ROUTE)도 진행되고 있다.

원통형의 시추기는 스크류처럼 되어 있다. 전기를 이용해 강하게 회전시키면 얼음 속으로 들어간다. 하얀 코어(얼음 덩어리)들은 조심스럽게 다룬다. 떡가래가 나오듯이 일정한 간격으로 샘플을 채취한다.

바람막이 없는 평원의 추위속에서 극한의 작업이 진행된다
▲ 빙하 시추 작업 중인 탐사팀 바람막이 없는 평원의 추위속에서 극한의 작업이 진행된다
ⓒ 김진홍

관련사진보기


아침부터 밤까지 반복되는 시추작업이다. '극한직업'에 나옴직한 장면이다. 바람막이 하나 없는 곳에서 추위와의 사투다. 40, 50, 60미터...시추 일주일째. 드디어 80m 코어를 올렸다.

매섭게 몰아치던 눈보라가 멈추었다. '뽀드득 뽀드득' 발자국 소리가 크다. 텐트 주변에 눈이 많이 쌓였다. 수시로 걷어 내도 끊임없이 눈이 쌓인다. 대자연 앞에 인간은 티끌과 같은 존재다.

대자연 속에서 깊은 침묵의 소리를 듣는다
▲ 남극 내륙 설원 대자연 속에서 깊은 침묵의 소리를 듣는다
ⓒ 김진홍

관련사진보기


지구 온난화 현상에 대한 관심이 크다. 지난 1세기 동안 아프리카 킬리만자로 빙원은 80%가 감소하였다. 남극의 빙원들도 변화하는 속도가 빨라졌다. 극지에서 소리 없는 변화들은 언제가 우리에게 다가올 미래다.

덧붙이는 글 | 2015년 - 2017년 남극 장보고기지 하계 안전요원으로 생활한 파르밧(김진홍 대원)의 탐사경험, 남극의 일상을 소개합니다.



태그:#남극, #남극여행, #남극펭귄, #파르밧, #오지여행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지, 트레킹 / 남극 장보고기지 안전요원. 해난구조대(SSU)대위 전역 / 산. 바다. 여행을 통해 삶의 가치를 배운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