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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의 한 중학교 졸업생들이 후배들을 위해 구시대적인 학생생활규정(교칙) 개정을 학교 쪽에 제안했다는 보도(2018. 3. 23/29) 후 인천지역 중·고등학교의 학생생활규정을 살펴봤다. 상당수 학교는 여전히 구시대적인 조항이 존재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인천 A고교의 교칙 징계기준을 보면 불온문서를 은닉·탐독·유포한 학생은 최고 퇴학처분의 징계를 받을 수 있다. B고교는 불건전한 이성교제로 풍기문란을 한 학생에게 최고 출석정지, 동맹 휴학을 선동하거나 동참한 학생에겐 최고 퇴학처분을 할 수 있다.

이 학교들의 징계 기준표를 보면 불온문서와 불건전한 이성교제, 풍기문란 등 군사독재 시대를 떠올릴만한 단어들이 나오는 것이다.

C고교는 학교장의 허가없이 학생이 대외행사에 참가할 수 없고, D중은 불온동아리를 신고한 학생에게 상점을 부여해준다. E중은 남녀학생 단 둘의 만남은 항상 개방된 장소를 이용하지 않으면 교칙 위반이 된다. 이들 학교의 교칙은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들이다.

지나치게 복장을 규제하는 교칙이 담긴 학교들도 있었다. 교복 바지 하단의 폭이 20㎝ 이상이어야 한다는 조항과 빨간·노랑·파랑 등 원색의 운동화와 가방을 착용하면 안된다는 조항이 있는 고교, 토시나 장식이 많은 양말을 금하고 스타킹은 검정색·살색·커피색만 가능하다는 고교도 있었다.

휴대폰이나 전자기기에 대해서도 엄격하게 하는 학교들이 있었다. 등교 후 수거하고 하교 시 돌려주는 중학교는 담임교사의 허락이 없으면 사용이 불가하다. 기숙사를 운영하는 고교는 월요일 등교 시 휴대폰을 걷어 금요일 하교 시에 돌려준다는 조항이 담겨 있다. 이 고교는 수요일에만 쉬는 시간에 잠깐 휴대폰 사용이 가능하다. 휴대폰 미제출이나 사용으로 적발 시 1개월이나 학교가 보관했다 돌려준다는 조항도 있었다.

다양성이 강조되는 사회 흐름을 반영하지 못하고 '성평등의식'을 '양성평등의식'으로 표현하거나 임신한 학생을 징계한다는 조항이 있는 학교들도 있었다.

이는 인천시교육청이 2015년부터 생활 지도가 아닌 '회복적' 생활교육을 강조하며 학생들의 의견이 반영된 학생생활규정 개정을 추진해왔지만, 상당수 학교들이 시교육청이 공문을 내려보낸 선도부와 벌점제 폐지 정도만 교칙 개정에 반영했기 때문이다.

특히 행복배움학교(인천형 혁신학교) 등 일부 학교를 제외하고는 학교 관리자나 교사들이 구시대적인 조항을 개정할 의지가 없거나 학생들의 의견을 반영하지 않는 것이 가장 큰 원인으로 보인다.

행복배움학교인 석남중학교는 학생생활규정 개정을 학생들 스스로 토론해서 결정하게 했다. 2017년 6월에는 학생회 임원 탄핵 조항을 신설하기도 했으며, 소지품 검사와 휴대폰 수거 관련해서도 학생들의 의견을 반영해 개정했다.

고보선 석남중 교장은 "학생 스스로 만든 규정이기에 더 잘 지킨다"며 "입학식과 졸업식도 학생들이 스스로 준비하고 진행했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학생들을 통제와 지도의 대상으로만 보던 생각이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인천의 현재 상황은 학생인권조례를 제정하고 '2017년 학생생활규정 예시안'을 마련해 일선 학교가 교칙에 시대적 흐름에 맞는 학생의 인권을 적용할 수 있게 방향성을 제시하는 서울시교육청과 대조된다.

서울시교육청은 예시안에 '학생을 단지 효과적으로 교육시켜야 할 피교육자나 보호의 대상이 아닌 권리의 주체로 대하며 학습자의 능력이 최대한 발휘될 수 있도록 인식의 전환이 요구된다'는 학생생활규정의 원칙을 밝히고 있다.

또한, 예시안에는 학교장과 교직원이 휴대폰 등 전자기기의 소지나 사용 자체를 금지해서는 안되며 학생이 참여한 교칙 제개정을 근거로 휴대폰 소지 관련 규정을 정할 수 있다고 돼있다. 임신 중이거나 출산을 한 학생의 학습권을 침해하는 과도한 징계를 내리는 것도 금지한다는 조항도 담겨있다.

서울시교육청 민주시민교육과 관계자는 "예시안과 매해 일선 학교 점검으로 구시대적인 학생생활규정이 있는 학교들이 많이 줄어들고 있다"고 말했다.

반면, 인천시교육청은 2015년 선도부 폐지, 2016년 벌점제 폐지 추진 외에는 별다른 학생생활규정 관련 정책이 없다. 예시안도 없어 각 학교별로 학생생활규정이 천차만별이다.

이에 대해 시교육청 생활교육팀 관계자는 5일 <시사인천>과의 전화통화에서 "매년 학교 생활지도부장 워크샵에서 학생 인권과 시대 흐름에 맞는 학생생활규정을 이야기 하고 있지만 일선 학교에 반영이 잘 안되고 있다"며 "올해 상반기에 학교별로 인권 침해적인 소지가 있는 학생생활규정을 파악하고 하반기에는 예시안 등 대안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답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시사인천(http://isisa.net)에도 실렸습니다.



태그:#학생생활규정, #학생 인권, #인천시교육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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