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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 제58주년 제주4.3희생자 위령제에 참석해 묵념하고 있는 노무현 전 대통령(왼쪽)과 그로부터 12년이 지난 2018년 4월3일 제70주년 4.3희생자 추념식에 참석해 추념사를 하고 있는 문재인 대통령.
 2006년 제58주년 제주4.3희생자 위령제에 참석해 묵념하고 있는 노무현 전 대통령(왼쪽)과 그로부터 12년이 지난 2018년 4월3일 제70주년 4.3희생자 추념식에 참석해 추념사를 하고 있는 문재인 대통령.
ⓒ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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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력충돌과 진압 과정에서 국가권력이 불법하게 행사되었던 잘못에 대해서 제주도민 여러분께 다시 한 번 사과드립니다."

"국가폭력으로 말미암은 그 모든 고통과 노력에 대해 대통령으로서 다시 한 번 깊이 사과드리고 (...)"

2006년, 그리고 2018년 열린 4.3희생자 추념식에서 고 노무현 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이 각각 낭독한 추념사 중 한 구절이다. 이 한 문장에서, 나는 독일에 머무는 내내 생각했던 어떤 핵심을 간만에 끄집어낼 수 있었다. 독일이 어떤 나라인가? '사과의 달인' 경지에 오른 나라가 아니던가!

'사과 잘하기로' 유명한 나라 독일. 하지만 독일 전역에 있는 유대인 강제수용소, 나치와 홀로코스트를 기록한 박물관 등을 돌아다니다 보면 '사과 잘하는 나라 독일'에 대한 경탄이 깡그리 사라져버린다. 그들이 자행한 것들이 상상 그 이상으로 끔찍해서 '이건 사과도 안 하면 인간이길 포기하는 거다. 사과 잘한다고 칭찬할 게 아니었네...'라는 생각에 다다르기 때문이다(강제수용소에 다녀온 건 내 생을 통틀어 가장 충격적인 경험이었다. 다녀와 보기를 꼭 추천하긴 하지만, 나는 다시는 가기 싫다). 독일 스스로가 전시해놓은 살육의 현장을 보고 나면, 전후 독일이 지금까지 해오고 있는 무한한 뉘우침에 감격하기보다는 그들의 야만적 실체를 진정으로 마주하고 치를 떨게 된다.

폴란드를 비롯해, 나치 독일에 의해 많은 국민이 학살당한 여러 유럽국뿐만 아니라, 전세계가 독일의 흑역사를 기억하고 그것은 인류 최악의 야만이었음을 안다. 더욱이, 자국민들을 향해 학살의 총을 겨눈 조국에 대한 독일인들의 혐오감은 치유될 수 없을 정도로 상당했다(이 혐오감은 실제로 '왜 히틀러를 막지 못했느냐'는 부모세대를 향한 자녀세대의 원망으로 표출되었으며, 독일에 불가해한 세대갈등을 낳았다). 어딜 가나 '독일인임을' 자랑하거나 뽐내지 않는 것은 독일인들의 주된 정서가 되었고, 학살에 대한 죄의식은 후속 세대가 영원히 짊어지고 가는 중이다.

'히틀러' 대신 '국가폭력'을 강조한 독일

베를린 홀로코스트 메모리얼 박물관에 들어가기위해 줄 선 사람들. 정식 명칭은 'Memorial to the Murdered Jews of Europe'이다.
 베를린 홀로코스트 메모리얼 박물관에 들어가기위해 줄 선 사람들. 정식 명칭은 'Memorial to the Murdered Jews of Europe'이다.
ⓒ 남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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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이 역사를 기억하고, 뉘우치고, 사과하는 방식을 흔히들 '히틀러를 최대한 객관화해서 한 톨도 남김없이 폭로하고 비판한다'는 스탠스로 이해하지만, 독일에 막상 가보니 그들의 전략은 오히려 이와 정반대였다. 독일은 '히틀러'(나치)를 객관화하거나, '독일'과 결코 분리해서 생각하지 않는다. 독일의 사과가 진정성이 느껴지는 이유는, '히틀러'라는 정권/인물과-'독일'이라는 국가를 동일시하는 전략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베를린 '홀로코스트 메모리얼'에서 이 흔적을 찾을 수 있었다. 나치의 집권과 학살 과정, 그리고 그 유명한 전범 재판까지의 기록을 독어와 영어로 기록해놓았는데, 아주 흥미로웠던 지점은 학살의 주체를 'Nazis'(나치)나 'Hitler'(히틀러)가 아닌 'Germany(Deutschland)'(독일)로 표기하며 설명하더라는 것이다.

'나치가 그랬어', '히틀러가 그랬어'가 아니라 '우리 독일이 그랬다, 독일이라는 나라가 유대인, 장애인, 성소수자 600만 명을 학살했다'고 서술한다. 이는 내게 거대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히틀러라는 희대의 악마 혹은 나치라는 추악한 정권에 모든 책임을 묻고 '독일'이라는 나라는 한 발자국 물러날 수도 있었다. '독일' 차원이 아니라, '히틀러'라는 과거의 악인을 대신해 사과하는 스탠스를 취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독일은 학살의 주체부터를 'Germany'라고 명시하는 결단을 내린다. 이것은 히틀러라는 한 미치광이의 만행이 아니라, 독일이 국가 차원에서 저지른 국가 주도의 학살이었다는 점을 끊임없이 강조하겠다는 의지인 것이다.

'오판의 역사'를 기억하며 용서를 구하는 법원

뮌헨지방법원(Justizpalast  Munchen)의 모습.
 뮌헨지방법원(Justizpalast Munchen)의 모습.
ⓒ 남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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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흔적은 '뮌헨지방법원'에서 발견했다. 뮌헨법원엔 외부인도 쉽게 출입이 가능하다. 판사들이 일하고 공판의 장소로 쓰이는 곳이지만, 그 콧대 높은 법원이 외부인의 출입을 허용하고 장려하는 이유가 있다. 뮌헨법원은 1943년, 뮌헨대학교 학생들과 교수로 구성된 '백장미단' 전원에 사형을 구형하고 집행한 법원이다. 백장미단의 죄목은 히틀러의 만행을 고발하는 전단지를 시내에 뿌렸다는 것.

이 판결은 독일 사법부의 수치이고 나치 정권 당시 국가폭력이 극악에 치달았다는 사실에 대한 증명이다. 패전 후, 독일 사법부는 이 사실을 은폐하기는커녕, 사법부가 부조리한 정권에 부역했음을 더 널리 알리기 위해 법원 내 재판장을 '백장미단 기념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이 재판장에서 백장미단에 대한 사형 판결이 내려졌는데, 벽면에는 형장에 이슬로 사라진 6명의 사진이 걸려있고, 사법부의 오판을 참회하고 용서를 구하는 리플렛이 관람객들을 위해 배치되어 있다. 이 재판장은 지금도 공판의 장소로 사용되고 있으며, 독일 사법부 구성원들은 이 자리에 앉을 때마다 다시 한 번 마음을 다잡을 것이다.

뮌헨법원으로부터 사형선고를 받은 여섯 명의 백장미단 단원들의 모습.
 뮌헨법원으로부터 사형선고를 받은 여섯 명의 백장미단 단원들의 모습.
ⓒ 남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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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려 법원 안에 자신들의 치욕스러운 오판을 전시하고 용서를 구한다니, 정말 충격적이고 도대체 어느 나라에서 이런 광경을 볼 수 있을까 싶었다. 사법 권력의 절대성이 국민 앞에 무릎 꿇고, 법도 틀릴 수 있다고-언제든지 올바르지 못한 길을 갈 수 있다고, 자신들의 한계성을 토로하고 국민들로 하여금 이토록 부족하고 모자란 사법 체계를 용서하기를, 그리고 앞으로 믿고 지지해 주기를 요청하는 광경은, 독일에서만 볼 수 있겠다는 경외감이 순식간에 몰려왔다. 이제 사과 잘하는 나라 독일을, 좀 칭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다시 제주로. 지난 3일은 제주 4.3사건 70주기였다. 올해 4.3 사건이 유독 관심을 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노무현 정부가 4.3사건에 대해 국가 차원에서 처음으로 사과한 뒤, 두 번째로 맞이하는 진보정권 하에서의 4월 3일이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앞선 두 보수정권은 4.3사건의 실체를 지우기에 급급했다). 그리고 이번 추념사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4.3사건 희생자들을 향해 "국가폭력"에 대해 "대통령으로서" "사과"한다는 뜻을 다시금 명백히 밝혔다. 12년 만이다.

나는 이 태도에서, 독일에서 내내 느꼈던 그 감정을 다시 느낄 수 있어 벅찼다. 국가가 자행한 폭력을, 특정 정권이나(이승만) 특정 인물이나(이승만) 특정 교란자들(미군정)에게 단순히 그 책임을 미뤄버린 것이 아니라, 이것은 국가 주도의 학살이었다는 것, 가장 넓은 책임은 '국가'에 있으며 그렇기에 국가는 무조건적으로 사과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다. 정당이나 이념 간의 갈등에서 발생한 일이고, 누가 더 잘못했고 덜 잘못했음을 가리자는 태도는 이제는 지양되어야함을 국가적으로 인식했다고도 볼 수 있겠다.

물론, 특정 인물이나 정권이 아닌, 국가가 모든 책임과 사과의 폭넓은 주체가 되어야 한다고 해서 실제적 가해 주체를 역사적으로 고증해내는 것을 포기하자는 말은 물론 아니다. 가해자와 피해자, 그 사이에 얽혀있는 복잡한 실타래를 풀어내 예민하게 살을 발라내는 작업은 계속되어야 한다.

국가폭력은 '악한 개인'의 '미친 짓'이 아니다

나이, 성별, 국적이 서로 다른 여섯 희생자의 모습은, 600만 홀로코스트 희생자를 대표한다. 홀로코스트 메모리얼 박물관 내부 모습.
 나이, 성별, 국적이 서로 다른 여섯 희생자의 모습은, 600만 홀로코스트 희생자를 대표한다. 홀로코스트 메모리얼 박물관 내부 모습.
ⓒ 남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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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십 년 전, 어느 정권이 자행한 국가폭력을 "그 정권의 미친 짓"으로만 생각하면 안 된다. 그 '미친 짓'과 지금의 정부를 비교해 "지금 정부는 OO에 비하면 낫지"라는 생각도 하면 안 된다. 과거의 학살과 현정부를 비교해서 어느 한 쪽을 격상할 것이 아니라, 책임을 폭넓게 함께 짊어지어야할 국가라는 동일한 실체로 여겨야 한다.

인혁당 사건은 그저 박정희의 미친 짓이며, 광주 시민 학살은 그저 전두환의 미친 짓으로 기억해야 할까? 결국 그렇게 추악한 역사를 자국의 역사로 지니게 된 것은 후손된 우리들이며-지금의 정부다. 역사는 과거이지만 피해자는 남아있다. 과거 학살에 대한 책임은 국가가 지어야 하며, 특정 인물이나 정권의 악행임을 부각하는 데 그치는 것은 국가 차원의 진정한 사과가 아님을 깨달았다.

진보진영이 5.18이나 또 다른 국가폭력들을 지금껏 그렇게 활용해온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과 반성이 동시에 들었다. 전두환을 악마화하며 진보정권의 선함을 부각하고, 박정희를 악마화하며 진보정권의 합리성을 극찬해왔던 것은 아닐지. 나부터 다시 한 번 돌아보게 된다.

3일 문재인 대통령이 보여준 사과를 통해, 자국민을 대상으로 한 국가의 폭력에는 이념과 정당을 불문하고 '국가'라는 실체로서 책임을 지어야한다는 명제를 재확인했다. 사법부의 잘못을 한 명의 판사에 돌리 지 않고 독일 사법부 전체가 용서를 구했듯, 학살의 주체를 히틀러로 표기하지 않고 '독일'이라 기술했듯 말이다.

4.3은 겨우 시작일 뿐이다. 일제강점기와 전쟁과 민주화운동을 지나면서 국민을 향해 수없이 자행된 국가폭력들에 대한 사과는 시작도 되지 않았다. 돌이켜보면, 우리는 '제대로 된' 사법부의 사과도, 경찰의 사과도, 군대의 사과도, 국가의 사과도 받아본 적이 없다. 그들에게 끌려가고, 그들에게 죽어간 사람은 그렇게나 많았는데도.

책임은 넓게, 사죄는 깊게. 그 후 용서는 어떻게 할 것인가는-결국 우리의 화두로 다시 돌아오게 되리라. 국가폭력에 희생된 모든 영령의 명복을 빈다.


태그:#제주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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