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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록삼 서울신문 사주조합장이 지난달 27일 청와대 앞 광장에서 '서울신문 사장 겉으로는 불개입 속으로는 낙하산 오만&불통 청와대'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 서울신문 청와대 앞 1인 시위 박록삼 서울신문 사주조합장이 지난달 27일 청와대 앞 광장에서 '서울신문 사장 겉으로는 불개입 속으로는 낙하산 오만&불통 청와대'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 박록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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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님, 안녕하십니까. 저는 <서울신문> 우리사주조합 조합장 박록삼입니다.

지난달 28일 아침 청와대 앞 분수대 광장에 서있던 중 UAE에서 돌아오시는 모습 지켜봤습니다.  오는 27일로 예정된, 세계사적 대전환을 이뤄내야 하는 남북정상회담 준비에 박차를 가하는 속에서도 베트남, UAE 등 주변 국가들과 새로운 관계를 정립해가는 모습에 가슴 속 깊이 뜨거운 박수 보냈습니다. 이와 더불어 새로운 세상의 약속과 함께 민주주의의 본질적 심화를 이뤄내야 하는 개헌이라는 중차대한 문제까지도 꼼꼼히 챙기셔야 하니 아마 몸이 열 개라도 모자르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늘 응원하고 있습니다.

70%를 넘나드는 국민들의 열화와 같은 지지는 단순히, 어떤 구체적 성과가 있어서만은 아닐 것입니다. 대통령님이 보여주시는 이러한 진정성 어린 개혁과 혁신에 대한 의지, 그것을 실천해내려는 철학과 가치를 국민들이 공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 또한 그 추웠던 겨울 매번 주말마다 빠짐없이 광화문 광장으로 나가 천만 촛불 중 한 개를 들고 적폐 청산 및 희망의 민주정부 탄생을 간절히 염원했기에 이런 성과 자체가 마치 제 것이나 되는 듯 기쁘고 뿌듯하기만 합니다. 70%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정말 가슴 벅찬 일입니다.

그런데도 저는 요즘 아침 7시면 청와대 앞으로 나가 1인 시위를 하고 있습니다. 또한 프레스센터 회사 로비에 연일 대자보를 붙이며 청와대를 비판하고 있습니다. 청와대를 향해 목소리를 높이고 있지만, 마음 속 한 구석에는 증오와 분노가 아닌 참담함이 더 큽니다. 나는, 우리는 왜 이렇게 됐을까. 청와대는 왜 이렇게 하고 있을까하는 쉬 풀리지 않는 질문만 거듭 하게 됩니다.

<서울신문>은 114년 영욕의 역사를 가진 신문사입니다. 그 중에서도 최근 20년 가까운 시간 동안 겪었던 나름의 격변에 대해 먼저 말씀 드리겠습니다.

대통령님께서도 충분히 잘 아시리라 생각됩니다. <서울신문>은 사실상 정부기관지였습니다. 국민의정부 시절 김대중 전 대통령께서 정부가 신문사를 소유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판단에 따라 소유구조를 개편했습니다. 그 결과, 2001년 <서울신문>(당시 <대한매일>) 사원들은 상여금, 급여, 퇴직금 등을 긁어모아 38.98%의 지분을 가진 우리사주조합을 탄생시켰습니다. <서울신문> 1대 주주였습니다. 물론 정부가 여전히 2대 주주로서 30%의 지분을 갖고 있는 불완전한 형태의 소유구조 개편이었습니다. 하지만 당시 정부는 대주주임에도 그 권한을 행사하지 않고, 대신 사원이 주인인 독립언론의 길을 제대로 갈 수 있도록 지원한다는 입장을 명확히 밝혔습니다.

서울신문 사원들 또한 정부라는 안온한 울타리를 벗어나 광야로 나서는 심정이었습니다. 불안하기도 하고, 두렵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저희들은 적극적인 변화를 선택했습니다. 임금을 스스로 줄였고, 편집국장 직선제를 실시했고, 사장을 사원들이 직접 뽑는 사장추천위원회 제도를 운영하기 시작했습니다. 회사의 게시판에서는 매일 새로운 제안과 아이디어, 다양한 형태의 의견들이 쏟아졌고, 그에 대해 비판하기도 하고 동의하기도 하는 등 진정한 사원이 주인인 독립언론의 틀을 하나씩 다져갔습니다. 얼핏 좌충우돌의 혼란과 같은 모습이면서도, 서로 칭찬하고, 비판하고, 부추기고, 다독이면서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나가고 있었습니다. 당시 '조중동'이라는 보수언론 프레임에 맞서는 개혁언론의 연대체로서 만들어진 '한경대'라는 신조어는 저희들의 자부심이기도 했습니다.

2001년 독립언론 첫 발, 하지만 5년 만에 뺏어가

희망과 기대를 한껏 부풀리며 독립언론으로 자리를 잡아나가던 2006년 5월 참여정부 후반부였습니다. 당시 사원들이 사장추천위원회를 꾸려서 사장 선임 절차를 이어가던 중이었습니다. 정부(당시 재정경제부)는 회사에 공문을 보내 '현재 사장추천위를 해산하고 대주주, 즉 정부의 의도가 반영되는 사장추천위를 만들라'고 요구했습니다. 사실상 2001년 이전 상황, 정부기관지로 돌려놓겠다는 요구였습니다.

청천벽력이었습니다. 회사 내 격론이 붙었고 절반 가까운 사원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일방적 요구를 받아들였습니다. 독립언론의 길이 너무도 험난한 탓에 '이렇게 되면 정부가 혹시 재정적으로 서울신문을 도와주지 않을까'하는 사원들 마음 속 일말의 기대감이 반영된 결과이기도 했습니다.

짧은 독립언론의 길을 뒤로 하고 그때부터 <서울신문>에 다시 낙하산 사장이 내려오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도 이미 다져진 제도를 마다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서울신문> 낙하산 사장이 반복됐습니다. 그 기간 동안 청와대로 상징되는 범정부 대주주들은 3년마다 나타나 대주주의 권한이라며 낙하산 사장을 내려보낸 뒤 사라졌으며, <서울신문> 사원들이 내핍하고 자산 매각하며 악전고투하는 동안 대주주로서 제대로 된 책임을 진 적이 없었습니다. <서울신문>의 운명과 삶에 대해 책임감 있게 고민한 대주주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오직 <서울신문> 사주조합원들만 있었을 뿐입니다. 자율적이고 독립적인 언론에 대한 사원들의 열망은 그 낙하산 투입의 횟수와 중량만큼 줄어들었다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닙니다.

그렇게 12년이 흘러 2018년이 됐습니다. 촛불의 열망을 담은 새 정부가 들어섰고요. 저희들은 <서울신문>에서도 적폐를 청산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신문사 사장 낙하산이야말로 과거 적폐 제도의 핵심이라고 봤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한 번 독립언론의 의지를 불태우면서 사장추천 활동에 임했습니다.

하지만 돌아온 것은 변함없는 낙하산이었습니다. YTN 사장이 되겠다며 준비했다가 떨어진 한겨레 출신 언론인이었습니다. 이명박-박근혜에서 면면히 이어오던 적폐를 문재인 정부에서 한 치의 어긋남도 없이 그대로 계승한 것입니다. 오히려 이명박-박근혜 정권보다 더욱 노골적이기까지 했습니다.

청와대 행정관이 나서서 마치 군사 작전 하듯이 사장 공모 마감 사흘 전 급조한 인사를 내세웠습니다. 청와대 행정관이 개입한 것은 명백한 사실이었고, 해당 후보조차 공개된 자리에서 그 사실을 시인했습니다.

급조된 후보인 만큼 당연히 그가 작성한 경영계획서도 졸속이었습니다. 심지어 다른 후보의 경영계획서를 베끼듯 참고하기까지 했습니다. <서울신문>이 현재 당면한 과제가 무엇인지, 실상은 어떻게 되고 있는지, 미디어 기업으로서 어떤 비전을 가져야 하는지 등 모든 것이 서울신문의 현실과 동떨어졌습니다.

이러한 과정과 결과를 기획한 청와대 직원이 원했던 것은 그럴싸한 이미지였는지 모르지만, <서울신문>은 그 과정에서 자존감이 짓밟히는, 모멸감을 갖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저희 <서울신문> 구성원들은 당연히 이러한 낙하산 사장을 반대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위에서 말씀 드렸듯 정부의 뜻이 반영되는 사장추천위가 만들어진 2006년 이후 <서울신문> 사주조합의 의사는 절차적으로도, 구조적으로도 어떤 힘도 쓸 수 없게 됐습니다. 그럼에도 저희들은 독립언론에 대한 간절한 기대와 염원을 담아 낙하산 사장은 안된다는 입장을 피력했습니다.

결과는 파행이었습니다. 파행 이전부터 지금까지도 청와대는 신문사 인사에 개입하지 않는다는 대외적 명분만을 반복적으로 밝히고 있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낙하산 사장 후보를 관철시키기 위해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도 볼 수 없었던 폭거에 가까운 일들이 연일 벌어지고 있습니다.

박록삼 서울신문 우리사주조합장이 2일 아침 청와대 앞 분수대 광장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 서울신문 낙하산 사장 안돼요~! 박록삼 서울신문 우리사주조합장이 2일 아침 청와대 앞 분수대 광장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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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이어 문재인 정부에서도 반복된 낙하산 적폐

정부에서는 이제 서울신문사의 회사 정관을 어기는 불법을 저지르면서까지 낙하산 사장을 관철시키려 하고 있습니다. 또한 사주조합이 사원들의 총의를 모아 만장일치로 선택한 사장후보에게 지속적인 사퇴 압박을 넣어서 결국 사퇴시키는 무도한 일까지 저질렀습니다. 모두 낙하산 사장을 내려보내기 위한 치밀하면서도 저열한 공작으로 보여집니다.

저희들은 이러한 일련의 파행에 청와대 특정 인사의 분명한 의지가 개입돼 있다는 합리적 의심을 하고 있습니다. 회사의 질서도 파괴하고, 법도 지키지 않고, 사주조합의 자율적 선택마저 무력화시키는 이 상황은 촛불정부에서 벌어지는 일이라고는 차마 믿겨지지 않습니다. 군사작전을 방불케하는 일방적 폭거를 저지르는 동안 책임 있는 대주주는 어떤 진지한 제안도, 대화도 건네지 않았습니다.

대통령님께 여쭙고 싶습니다.

<한겨레> 출신 인사면 낙하산이 아닌가요? 촛불 정부 청와대가 일방적으로 내려보낸 인사는 낙하산이 아닌가요?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제대로 저항하지 못한 업보가 적폐와 모순을 고스란히 계승해야 하는 이유가 되는 건가요?

이것은 평등한 기회도, 공정한 과정도, 정의로운 결과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청와대의 일부 직원들이 대통령님의 눈과 귀를 가린 채 대통령님의 철학과 가치를 왜곡하고 우롱하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먼 길을 돌아왔습니다. 잘못이 있으면 바로 잡아야 합니다. 저희들은 여전히 늦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중간에 심각하게 훼손됐지만, 18년 전 국민의정부가 첫 단추를 꿴 독립언론 <서울신문> 미완성의 길을 문재인 대통령님께서 마무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진짜 '문재인 대통령다운' 일이리라 확신합니다.

부디 대통령님께서 한반도 평화와 민주주의의 질적 심화, 그리고 우리 사회 곳곳에 쌓인 악습을 청산해야 하는 과제를 성공적으로 완수하시길 진심으로 기도하고 기대하고 있습니다. 희망과 정의, 평화가 강물처럼 넘쳐나는 세상 만드시는 모습 늘 꿈꾸겠습니다. 대통령님의 몸은 개인의 몸이 아님을 유념하시면서 건강 잃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긴 글로 대통령님 몸과 마음을 어지럽히지는 않았는지 걱정됩니다. 편지 마치겠습니다.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태그:##서울신문낙하산반대, ##청와대1인시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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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김도균 기자입니다. 어둠을 지키는 전선의 초병처럼, 저도 두 눈 부릅뜨고 권력을 감시하는 충실한 'Watchdog'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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