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이른바 '펜스룰'을 다룬 <워싱턴포스트> 기사. "마이클 펜스는 혼자서 다른 여자와 식사하지 않는다고 말했고, 우리는 모두가 놀랐다."
 이른바 '펜스룰'을 다룬 <워싱턴포스트> 기사. "마이클 펜스는 혼자서 다른 여자와 식사하지 않는다고 말했고, 우리는 모두가 놀랐다."
ⓒ 워싱터포스트

관련사진보기


한국에서 '펜스룰'이 유행이라고 한다. 신기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본고장이라 할 미국에서도 부대통령의 이 '원칙 아닌 원칙'이 공개되었을 때, 대다수가 뜨악한 반응을 보였다. '부통령, 알고 보니 신석기시대인' 같은 이야기로 들렸기 때문이다.

16년 전 펜스는 <더 힐>과 인터뷰를 했고, 여기서 '부인의 동석 없이 다른 여자와 개별적으로 만나지 않는다'는 발언이 나왔다. 인디애나주 하원의원으로 막 당선된 시절의 이야기다. 당시 그의 말은 전혀 주목받지 못했지만, 부통령이 된 2017년부터 재조명되기 시작했다. 

비교적 덜 놀란 사람들은 보수파 기독교인들이었다. 비록 '펜스'의 이름이 붙었지만, 보수 개신교도 사이에서는 '유혹 예방책'으로 널리 알려진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이 원칙은 미국 목사의 이름을 따 '빌리 그레이엄룰'로도 불린다. 

하지만 기독교인이라도 '정교분리' 같은 근대국가 원리를 믿는 이에게 펜스의 발언은 놀라울 수밖에 없었다. 그는 교회의 담임목사가 아니라 한 나라의 부통령이기 때문이다. 펜스룰이 보도된 뒤 미국사회에 잠시 '멍'한 충격파가 찾아왔고, 곧이어 조롱 섞인 논란이 밀려들었다. 

"펜스는 혼자서 독일 메르켈 총리 못 만나겠네?" 
"영국 메이 총리와 회담할 때마다 부인이 옆에서 지켜야겠네?" 

내가 앞에서 이른바 펜스룰을 '원칙 아닌 원칙'이라고 부른 까닭은, 현실에서 지킬 수 없는 원칙이기 때문이다. 세상과 동떨어진 수도원에 사는 사람이 아니라면 말이다. 내가 아는 한 미국의 펜스는 사회인이고, 한국의 펜스들도 대부분 사회인일 것이다.

'죄를 짓지 않으려면 유혹에서 멀리 떨어져라.' 기도원이나 사찰 등이 도심지에서 떨어진 외진 곳에 세워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사람들, 특히 남자들을 제어 능력이 결여된 존재로 인식하는 탓이다. 다시 말해 스스로를 '잠재적 죄인'으로 여기는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펜스룰'로 귀의한 남성 가운데 '남자를 잠재적 가해자 취급 말라'고 흥분하는 경우를 많이 본다. 게다가 '펜스룰'은 여성배제 원칙이 아니라 철저한 '여성의존 원칙'이다. 펜스가 자신의 모든 원칙에 '아내가 동석하지 않으면'이라는 단서를 붙이는 것을 보라. 

펜스는 2002년 <더 힐>과의 인터뷰에서 아내가 아닌 여성과 단둘이 밥을 먹지 않으며, 아내가 동석하지 않으면 술자리에 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유를 직접 들어보자.

"술을 마셔서 기분이 알딸딸해지면, 그 자리에서 가장 매력적인 갈색 머리 미녀에게 다가가고 싶어지거든요."

남자들은 '일촉즉발'의 위험한 존재들이므로, 아내가 (혹은 어머니가) 눈을 부릅뜨고 지켜야만 사고를 치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이제 곧 한국의 모든 술자리는 부부동반 아니면 모자동반 모임으로 바뀌게 될까? 아무쪼록 한국판 펜스들의 건투를 빈다.

방귀 뀐 놈이여, 당당히 성내라?

문제는 일부 한국 남성들이 금욕주의 선언을 하게 된 까닭이 숭고한 종교적 깨달음이 아니라는 데 있다.

"겨우 '뽀뽀 미수'로 이 난리야? 여자들과 일 못 하겠네."

이게 무슨 펜스가 노하실 말씀인가? 펜스의 나라에서는 동의 없이 입술을 들이미는 정도가 아니라, 상대 앞에서 혼자 입술 소리를 내거나, 남을 지속해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성희롱 처벌을 받을 수 있다. 직장에서 이런 일이 발생했을 때 고용주가 사실을 알고도 조처를 하지 않으면, 가해자뿐 아니라 고용주에게도 책임이 돌아간다. 

'방귀 뀐 놈이 성낸다'는 말이 이만큼 잘 들어맞는 상황도 없을 것이다. '나는 방귀 뀐 적 없다'고 항변할 사람도 있겠으나, '내가 언제 방귀를 뀔지 모르니 다른 사람들이 내 근처에 오는 것을 금하겠다'는 생각 역시 정상으로 보기는 어렵다. 방안의 맑은 공기를 유지하고 싶으면 방귀 뀐(뀔) 놈을 내보내야지, 왜 코 달린 사람을 내쫓는가? 

한국의 어떤 펜스 추종자는 기사 댓글에서 '이제 여자를 안 뽑겠다'고 용감히 선언하기도 했다. 물론 존재하지 않는 가상의 회사일 터이다. 고용 관련법의 기초도 모르는 사람이 고용주일 가능성은 희박하며, 설사 있다 해도 앞으로 고용주로 남게 될 가능성은 무척 희박하다. 

최근 검찰은 KB은행의 인사담당자를 구속했다. 공채 과정에서 남자를 더 뽑을 목적으로 남성 지원자에게 가산점을 준 혐의다. 그로 인해 충분히 합격할 수 있던 여성 지원자들이 서류심사에서 탈락했다.

이번 사건은 검찰이 채용 성차별을 본격 수사한 첫 사례로, 과거에 공공연히 이뤄졌던 차별행위는 이제 더 이상 용납되지 않는다. 남녀고용평등법의 제 7조(모집과 채용)는 "사업주는 근로자를 모집하거나 채용할 때 남녀를 차별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분명히 명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래전부터 있던 법이 이제야 제 역할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익숙하지 않다는 것이 변명이 될 수는 없으므로, 최대한 빨리 적응하는 편이 좋을 것이다. 세상을 등지고 산으로 들어갈 게 아니라면 말이다.

성폭력을  성차별로 막자고?

 페이스북의 셰릴 샌드버그는 미투 운동이 여성배제로 나아가는 움직임에 우려를 표했다.
 페이스북의 셰릴 샌드버그는 미투 운동이 여성배제로 나아가는 움직임에 우려를 표했다.
ⓒ 샌드버그

관련사진보기


미투운동이 확산하며 미국 재계에서도 '펜스룰'이 논란이 되었다. 직장 내 성희롱은 가해자뿐 아니라 고용주에게도 책임을 묻기 때문에,일부  회사가 아예 문제가 될 상황 자체를 차단하려는 태도를 보인 것이다. 예컨대 출장에 이성을 함께 보내지 않거나, 남녀 직원이 함께 만나는 모임 등을 축소하는 식으로 대처하는 것이다.

페이스북의 최고운영책임자 셰릴 샌드버그는 이런 움직임을 경고했다. 성폭력 예방을 성차별로 귀결시키는 모순을 범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는 '만일 여자 동료와 단둘이 밥을 먹지 않겠다면, 남성 동료와도 단둘이 밥을 먹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단체 모임만 갖고 일대일 만남 자체를 없애는 경우라면 반대할 이유가 없다. 문제는 성폭력 예방을 빌미로 여성들을 배제하는 것이다. 샌드버그는 여성이 남성에 비해 승진에 불이익을 받는 이유 중 하나로 개별적 지도와 조언을 받는 '멘토링' 기회의 차별을 꼽는다.

성폭력이 권력의 차이에서 발생한다는 점을 생각하면, 여성배제는 성폭력을 해결하기보다 악화시킬 가능성이 크다. 예컨대 직장 내 성폭력이 남성 부하직원과 여성 상사의 관계보다, 남성 상사와 여성 부하 직원 사이에 훨씬 심각하다는 사실을 보아도 알 수 있다.

여성을 괴롭히는 비정규직, 저임금, 기회의 불평등은 성폭력을 재생산하는 사회적 조건이 된다.  차별과 성폭력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다. 그런 점에서 여성들에게 더 많은 기회와 권력을 부여하는 것이야말로 궁극적인 성폭력의 해결책이다.

펜스룰, 남자들을 머저리취급하다

 <워싱턴포스트>는 '펜스룰' 등의 여성배제 방식이 남성에게 치욕적인 행동이라고 비판했다. 남성을 절제력 없이 본능대로 움직이는 집단으로 매도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워싱턴포스트>는 '펜스룰' 등의 여성배제 방식이 남성에게 치욕적인 행동이라고 비판했다. 남성을 절제력 없이 본능대로 움직이는 집단으로 매도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 워싱턴포스트

관련사진보기


여기서 '만나면 성폭력, 안 만나면 여성배제, 그럼 어떡하란 말이냐?'며 포효하는 남성이 있을지 모르겠다. 그런 사람들은 이런 제안을 받을 때 어떻게 반응할지 생각해 보라.

"성폭력 당할래, 아니면 집단 따돌림당할래?"

정말로 남자가 여자 앞에서 할 수 있는 게 성폭력 아니면 따돌림뿐이라고 믿는다면, 이는 심각한 남성 모독이다. 우선 이런 '폭탄'들을 사회에 풀어놓는 게 온당한가? 남자들을 잠재적 가해자 취급하지 말라며?

<워싱턴포스트> '펜스룰'에 대해 "남자들을 머저리 취급하는 게 성폭력 예방책일 수 없다"는 칼럼을 실었다. 글을 쓴 해리스 오말리는 성폭력을 예방한답시고 여성을 분리하고 배제하는 것은 우선 남성에게 치욕적인 일이라는 것이다. 남성이 오직 성욕에 따라 움직이는 비이성적 집단이라고 말하는 셈이기 때문이다.

물론 책임을 전가하려는 '꼼수'도 숨어 있다. '성추행당했다고? 알아서 피했어야지, 왜 남자 옆에 있었어.'

"성폭력 당하면 어떻게 할 거예요?"

최근 한국의 공공기관 입사 면접에서 나온 질문이다. 이 회사는 아무나 막 뽑아 승진시킨 뒤, 그들의 추태를 견딜 맷집을 지닌 신입 사원을 찾는 모양이다. 여기서 면접관 4명 모두가 남자였다는데, 이들은 남성 지원자들에게 이런 질문을 할지 궁금하다.

"조인트 까이고 쌍욕 얻어먹으면 어떻게 할 거예요?"

이른바 글로벌 경쟁시대라는데, 이런 '머저리'들을 회사에 두는 것도 모자라 면접관까지 시키는 게 현명한 일일까? 물론, 현명하지 못해 머저리이겠다만.


댓글52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5,000 응원글보기
원고료주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

펜실베니아주립대(베런드칼리지)에서 뉴미디어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몰락사>, <망가뜨린 것 모른 척한 것 바꿔야 할 것>, <나는 스타벅스에서 불온한 상상을 한다>를 썼고, <소셜네트워크 어떻게 바라볼까?>와 <미디어기호학>을 한국어로 옮겼습니다. 여행자의 낯선 눈으로 일상을 살고자 합니다.

오마이뉴스 김도균 기자입니다. 어둠을 지키는 전선의 초병처럼, 저도 두 눈 부릅뜨고 권력을 감시하는 충실한 'Watchdog'이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