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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세타(Meseta)는 고원지대를 말한다. 중절모자 형상이라고 할까. 부르고스(Burgos)에서 온타나스(Hontanas)까지, 두 군데 메세타 거리를 합하면 20km 정도 된다. 900m 이상을 올라간 다음 그 거리만큼 평지를 걸어야 끝이 난다는 말이다.

평지 한가운데에는 길이 있다. 평화롭고 조용한 들판을 가로지르는 마른 흙길. 길 양쪽으로 펼쳐지는 끝없는 농경지. 상대적으로 비옥한 땅에서는 밀을 키우고 그보다 덜한 곳에서는 보리를 심는다. 그 외의 땅은 목초지이다. 가끔 목동과 양떼들을 만날 수 있다. 고개를 들어 주위를 둘러봐도 잠시 쉴 그늘 한 점 없다. 사방 지평선이 눈에 들어온다.

그래서 여름이면 사막과 같은 태양을 벗 삼아야 하고 방풍림이 없는 겨울에는 온전히 눈보라를 받아내야 한다. 순례자들에게는 악명 높은 길이다. 끝나지 않을 것 같은 황량함을 벗 삼은 더위 속에서의 걷기는 그야말로 콜타르 같은 정적을 뚫는 것과 같다.

내 발걸음 소리만 유일하다. 간혹 이 끝없이 지루한 길이 무서워서 버스나 기차를 타고 통과하는 이도 있다고 했다. 하지만 내게는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 지루함까지 즐기기로 작정했으니깐 말이다. 나는 시 한 편을 떠올려서 나를 위로했다.

메세타 길
 메세타 길
ⓒ 차노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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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탑이 있는 메세타
 돌탑이 있는 메세타
ⓒ 차노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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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막에서 그는
너무도 외로워서
때로는 뒷걸음질로 걸었다
자기 앞에 찍힌 발자국을 보려고
- 오르텅스 블루의 〈사막〉 전문


전날, 부르고스에서 하룻밤을 더 묵을까도 생각했다. 발가락 핑계를 대며 그 많은 성당들을 둘러보면서 소일해도 될 것 같았다. 늘, 자고 나면 기분이 달라졌다. 아침에 일어났을 때 컨디션이 좋았다. 발가락도 병원에서 가져온 제2의 피부와 같다는 밴드로 감싸서인지 통증이 덜 했다. 부기도 빠져 있었다. 새 신발을 사려면 9시까지 기다려야했지만 기다릴 수가 없었다. 걷고 싶은 충동에 가슴이 뛰었다. 길을 나서는 순례자들을 보고만 있을 수가 없었다. 일 년 동안 잘 길들인 '내 신발'을 믿어보기로 했다.

부르고스에서 출발하여 5.3km에 있는 비얄비야(Villalbilla) 바(Bar)에서 아침을 먹었을 때는 최고의 상태였다. 그곳 주인장이 유난히 친절했다. 성당에서 기도하면 발이 아프지 않을 거라고, 목적지까지 무사히 도착할 수 있을 거라고 했다. 스페인어로 말했지만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 나는 내내 '그라시아스'라고 응대했다. 그 모습이 예뻤는지 내가 식사비를 지불하자 그가 목걸이를 선물했다.

주인장 친절에 비해 또띠아가 너무 짰고 만든 지 한참 지난 것을 전자레인지에 데워준 듯 딱딱했다. 하지만 선물로 받은 목걸이가 이 모든 것을 용서케 했다. 콧노래를 흥얼거리면서 아침 햇살에 반짝이는 들판으로 향했다.

앞서 걷는 노부부(늘 봐도 보기 좋다)
 앞서 걷는 노부부(늘 봐도 보기 좋다)
ⓒ 차노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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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각 아래 낙서 그림
 교각 아래 낙서 그림
ⓒ 차노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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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시골 풍경(메세타 포함)은 거대한 퀼트(quilt) 보자기이다. 농경지가 너른 들판과 낮은 둔덕으로 정리가 잘 되어 있다. 멀리서 보면 유사한 색의 세모, 네모 헝겊을 덧대어 바느질 해놓은 것과 같다.

그래선지 일주일 이상 풍경에 노출된 눈에는 이 풍경이나 저 풍경이나 비슷하게 보였다. 마을마다 성당이 있었다. 성당은 모두 오래되었고 비슷한 양식 건축물이었다. 누군가가 그랬다. 일주일이 지나니깐 사진 찍는 것도 귀찮아진다고. 이 풍경이 저 풍경 같고 저 풍경이 이 풍경 같다고. 나도 그 말에 동감했다. 처음보다는 확실히 사진 찍는 횟수가 줄었다. 이제는 바깥 풍경에 마음을 빼앗기는 대신 마음의 풍경에 눈을 돌려야 할 때라고 말하는 듯했다.

나는 변화 없는 풍경을 벗삼아 마른 흙길을 터벅거리며 걸었다. 신발 밑창에 돌멩이가 괴었다가 빠져나갔다. 햇살만큼이나 강한 정적이 내 걸음을 잡고 늘어졌다. 간혹 먼지바람이 일었다. 밀 냄새가 맡아졌다. 마음의 풍경이라. 머뭇거리면서 어렸을 때로 되돌아가봤다.

그래, 감나무에서 떨어졌어. 아니, 나는 높은 곳에서 자주 떨어지거나 넘어졌어. 늘 중심이 흔들렸지. 그래 중학교 때 초등학생인 동생하고 대판 싸웠지. 말 안 듣는 동생을 보기 좋게 힘으로 제압해서 큰소리 좀 치려했는데 동생을 이겨내지 못했어. 무승부였지. 한참 성장하던 동생. 나보다 훌쩍 커버려 그 뒤로 몸싸움을 할 수가 없었어.

머리 위로 낮게 새 한마리가 날아갔다. 정적을 깨는 새가 고마워 뒤돌아봤다. 그것은 내 마음과는 달리 잽싸게 지평선 너머로 사라지려고 했다. 사라지려는 찰나, 순례자 한 명이 점처럼 나타났다. 그는 점점 모습을 키워갔다. 순간 셰퍼드 한 마리가 튀어나왔다. 아주 너른 마당 한쪽에 아버지는 개를 키웠다. 등치 큰 셰퍼드였다. 몇 년이 지나자 그 개는 사라졌고 조그마한 강아지가 묶여 있었다. 개가 사라질 때마다 무감각했던 어린 아이는 어른이 되어서야 가슴이 아팠다. 깜박 잊고 한여름 내내 씻지 않고 처박아놓았던 보온밥통에서 맡아지던 냄새처럼 고약했다. 의외로 상념들이 순서 없이 펼쳐졌다. 내 속에서 한없이 쏟아지는 그것들을 나는 그대로 두었다. 

햇살은 더 따가워져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몸을 약간 숙인 채로 신발을 보며 걸었다. 뒤에서 바싹 따라오던 순례자가 가볍게 인사하고 앞서 갔다. 호리호리한 키에 괴나리봇짐처럼 짐이 가볍다. 훌쩍 날아가는 것만 같다. 사는 데에 그리 많은 짐은 필요 없을 것이다. 움직일 수 있을 정도의 짐들. 최소의 것들. 그래야 저렇게 훌훌 날 듯 걸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생각 또한 최소한의 것들이어야 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더 쏟아내야 했다.

이번에는 과거에서 훌쩍 뛰어 현재로 되돌아왔다. 맥스는 잘 가고 있겠지. 프란체스코는 어디 즈음 걷고 있을까. 12일 동안 휴가를 내서 걷는다던 니콜라는 오늘이 마지막 길 여행일까. 아님 집으로 가는 중일까. 데이비드는 부르고스에서 생일 맥주를 마셨을까. 

오르니요 델 카미노(Homillos des Camino) 성당 앞 닭 조형물
 오르니요 델 카미노(Homillos des Camino) 성당 앞 닭 조형물
ⓒ 차노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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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구름이 있는 메세타
 흰구름이 있는 메세타
ⓒ 차노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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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사방을 훑어보았다. 끝없이 굽이치는 언덕이 눈앞에 있었다. 굴곡졌지만 시야에 다 들어온 그것은 밀밭이었다. 그 끝에 풍력 발전기가 줄 서 있었다. 돌아가지는 않았다. 그때였다, 갑자기 심한 갈증에 목이 타오르는 것이. 나는 손을 뒤로 넘겨 배낭 주머니를 더듬었다. 물통이 없었다. 가방을 벗고 안을 살폈다. 없었다. 잠깐 요기를 했던 바에 두고 온 것일까. 아니면 풀섶에 앉아서 발을 식혔을 때 빠진 것일까.

내 불찰이었다. 점심을 먹지 않아 허기도 졌지만 허기와 갈증 중에서 갈증이 더 급한 법이었다. 5분 전에 이런 심한 갈증에 시달렸다면 조금 전 앞서가던 순례자에게 물 한 모금 얻어 마실 수 있었다. 하지만 황량한 이 길 위에 지금, 나는 혼자였고 몸이 한없이 가벼워 보이는 순례자는 새처럼 날아가고 있었다. 갈증을 해소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마을에 도착하는 것뿐이었다. 배낭을 다시 맸다.

십분도 되지 않아서 나는 알았다. 갈증이 모든 생각을 멈추게 해버렸다는 것을. 제기랄, 이 더위와 황량함과 갈증이라니. 그렇다면 갈증이라는 본능이 모든 사고를 멈추게 했으니, 사고보다 본능이 우선한다는 것인가.

"'갈증'이라는 단어가 머릿속에 떠오르니, 다른 것은 생각도 할 수 없었다. 그 말 자체가 짭짤하기라도 한 것처럼, 그 생각을 할수록 결과는 더 나빠졌다. 공기가 부족한 것이 물에 대한 갈증보다 다급하게 느껴진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러나 몇 분간만 그럴 것이다. 몇 분 후에는 죽을 테고, 질식의 고통은 사라지니까. 반면 갈증은 느릿느릿 일어난다.

보라. 십자가의 예수는 질식해서 죽었지만, 그가 유일하게 불평한 것은 갈증이 아니었던가. 갈증이 인간의 모습으로 온 신까지 불평하게 만들 만큼 힘든 보통 인간은 어땠을지 상상해보기를. 나는 미쳐서 펄쩍펄쩍 뛸 것 같았다. 입에서 썩은 맛이 나고 끈적끈적한 것처럼 고약한 게 있을까. 목구멍 뒤쪽에 달라붙어 있는 참을 수 없는 이 압박감. 이 피가 걸쭉해져서 잘 돌지 않은 느낌. 사실 그런 고통에 비하면 호랑이(같은 공간에 있는 야수)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 얀 마텔 〈파이 이야기〉, 작가정신, p.191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가 유일하게 불평했다던 갈증. 생각과 몸을 갈증이 완전히 마비시키려는 순간, 나는 길 아래에 있는 성당 첨탑을 보았다. 한 걸음 더 걸으니 첨탑 주위로 옹기종기 모여 있는 지붕들이 눈에 들어왔다. 메세타가 끝난 것이다. 드디어 길 위에서의 7시간이 마무리되고 있었다. 본능적으로 나는 스틱을 위로 쳐들고는 포효하듯 외쳤다. 
메세타 길 아래로 보이는 온타나스(Hontanas)성당 첨탑과 마을
 메세타 길 아래로 보이는 온타나스(Hontanas)성당 첨탑과 마을
ⓒ 차노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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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오늘도 해냈다! 차노휘 장하다!"

마비됐던 내 사고는 후다닥, 바람처럼 깨어나고 있었다

덧붙이는 글 | ‘산티아고 순례길 프랑스길’은 2017년 6월 13일에 걷기 시작해서 7월 12일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도착했습니다. 30일만의 완주였습니다. 그 다음 날, ‘세상의 끝’이라는 피니스테레와 묵시아까지(100km)까지 내처 걸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34일 동안 900km 여정을 마쳤습니다. 몇 십 년 인생이라는 길 위에서, 34일의 여정은 짧을 수 있으나 걸으면서 느꼈던 것들은 제게 인생의 축소판처럼 다가왔습니다. 움츠린 어깨를 펴게 하고 긍정적인 미래를 내다보게 했습니다. 이곳에서 34일 간의 힘들었지만 행복했던 시간들을 도란도란 풀어놓으면서 함께 공유하려고 합니다.



태그:#산티아고 순례길, #프랑스 길, #메세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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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이자 문학박사. 저서로는 소설집 《기차가 달린다》와 《투마이 투마이》, 장편소설 《죽음의 섬》과 《스노글로브, 당신이 사는 세상》, 여행에세이로는 《자유로운 영혼을 위한 시간들》, 《물공포증인데 스쿠버다이빙》 등이 있다. 현재에는 광주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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