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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1. 2. 16. 대구, 아이들의 머리에 몸에 이를 없애고자 DDT 분무기를 뿜어주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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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박도 기자의 사진 근현대사' 27회부터 29회까지는 전란 중의 민간인 생활상으로 꾸며봤다. 서방 종군 기자들 카메라 앵글에 담긴 사진을 게재한다.
이에 곁들여 한국전쟁 중 서울대학교 사학과 조교수로 인공(人共) 치하 전란을 몸소 겪은 김성칠 선생의 6.25 일기(<역사 앞에서>)를 싣는다. 글과 사진으로 당시의 생활상을 가늠해볼 수 있을 것이다. - 기자 말
도토리
[1950년 9월 7일] 이즈음 우리 마을에서는 어느 집이나 도토리를 따다 말리지 않는 집이 없다. 모두들 북한산에 올라가서 도토리 따는 것이 생업이 되었다. 그런 줄 알았음인지 산에서도 또 의용군 모집이 있기 때문에 젊은 남자들은 며칠씩 나가다가 말고 이 고된 일도 역시 노인네와 여인들과 아이들이 맡아 하게 됐다.
도토리를 따다 껍질을 벗기고 물에 담가서 오랫동안 유독 성분을 우려낸 후 말려서 가루로 빻아 떡도 해 먹고 묵도 만들어 먹는다. 옛날에 비황(備荒, 흉년 대비) 책에서나 듣고 보고 하던 이야기를 20세기의 한 마루턱에 앉아서 몸소 겪게 되었다. 하루 진종일 도토리 껍질을 벗기고 나면 손톱 밑이 얼얼하니 아프다. 그리 못 견디게 아픈 것은 아니지만 생각하면 절로 눈물이 난다. - 위의 책 19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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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0. 10. 맥아더 사령부의 긴급 구호양곡을 수레로 나르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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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0. 10. 서울, 한강나루터에서 쌀가마니를 등으로 져다 나르는 노동자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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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0. 7. 27. 전쟁 중이라도 벼는 자란다. 한 농사꾼이 수차로 논에 물을 대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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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0. 11. 2. 농부들은 전쟁 중임에도 추수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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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0. 11. 6. 추수 장면. 추수 후 볏짚을 달구지에 싣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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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1. 1. 23. 유엔군들이 상여가 나가는 것을 신기하게 바라보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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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1. 1. 25. 보리밭에 분뇨를 거름으로 주는 농사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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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1. 11. 18. 맷돌로 빻은 밀가루를 체로 치는 한국의 아낙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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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2. 4. 25. 부산,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 투표를 하는 유권자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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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2. 10. 2. 인천, 두 여인이 시장을 가다가 잠시 쉬고 있다. 한 여인은 가슴을 드러내고 있는데, 그 무렵 한국에서는 이런 광경을 자주 볼 수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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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2. 11. 18. 아낙네가 시골집에서 저녁밥을 짓고자 아궁이에 장작불을 때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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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3. 한 아낙네가 가슴을 드러낸 채 빨랫감을 머리에 이고서 시냇가로 가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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