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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상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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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에게 부치는 편지'

(지난 토요일 시집간 딸이 저 시집가고 나면 함께 놀아줄 사람도 없을 테니 오마이뉴스에 '딸에게 부치는 편지' 글이나 열심히 쓰라며 노트북을 선물했습니다.)

사랑하는 딸아 고맙구나. 한두 푼 하는 물건도 아니고 그토록 아버지가 갖고 싶어 하던 맥북을 선물해줘서 요즈음 네 말 대로 심심치 않다. 하지만 아버지가 아직은 젊어 혼자서도 잘 논단다. 노트북을 펴놓고 글을 쓰다 말고 힘들게 결혼준비를 하며 아버지까지 챙겨주는 그 마음에 괜스레 미안해서 "에휴" 한숨을 토한다. 아버지는 단순하게 글만 쓰는 사람이라 굳이 이렇게 좋은 노트북이 필요 없는데 고맙다.

누구는 종이 위에 시를 쓰고
누구는 사람 가슴에 시를 쓰고
누구는 자취 없는 허공에 대고 시를 쓴다지만...

류시화 시인의 '눈 위에 쓰는 시' 일부분이다. 아버지는 종이 위도 사람 가슴도 아닌 근사한 노트북에 글을 쓰게 됐구나. 눈이 안 좋은 아버지가 노트북을 네 동생에게 빼앗기고 조그만 스마트패드나 스마트폰으로 글을 쓰느라 애를 먹었는데 네 덕분에 아버지의 글이 사라지지 않고 노트북에 고스란히 남게 됐다. 굳이 노트북이라서가 아니라 행복하구나.

누가 아버지한테 묻더라. 그래서 그랬지.

"글 써서 밥 먹고 사는 분도 아니고 뭘 그렇게 맨날 썼다 지웠다 합니까?"

"밖에 나가서 술 마시고 딴짓하는 거보단 낫지 않습니까? 그리고 나의 글쓰기는 아내와 두 딸이랑 또 다른 소통이지요. 두 딸이 아버지 마음을 읽고 그 아버지는 두 딸과 대화를 나누지요."


아버지 나이 쉰여덞, 장가를 일찍 가서 아버지 친구 중에 첫 번째로 자식을 여의는구나. 친구들은 아버지를 무척 부러워한다만, 사실은 아버지도 좋다.

-

남자 나이 쉰다섯

한옥순

지나던 길에 꽃 한 송이 보았지
그 꽃 하도 예뻐 꺾어 보았지
어울리는 꽃병에
반쯤 물 담아 꽂아 두었지
몇 날 며칠을 바라만 봐도
참 행복했었지

바람 한 번 쏘이면 그 꽃 활짝 웃었지
햇볕 한번 쪼이면 수줍어도 했지
자꾸자꾸 바라보니 싫증도 났어
버려 버릴까 생각도 해 보았지
모두 잠든 밤중에 12층 창밖으로 던져 버렸지
그 꽃 내 손 놓지 않으려 안간힘을 썼지

근데 그게 꿈이었어
시든 꽃 모양을 하고 잠든 아내의
축 늘어진 팔이 내 목을 누르고 있었지
왠지 식탁 앞에 아내 얼굴 바로 볼 수 없었어
낡은 구두 밑으로 밟히는
노란 은행잎을 비켜가며 출근했지

빛바랜 은행잎 하나 집어 들었지
코트 주머니에 넣었어
공연스레 눈물이 나더군




태그:#모이, #딸바보, #아빠, #딸사랑,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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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안한 단어로 짧고 쉽게 사는이야기를 쓰고자 합니다. http://blog.ohmynews.com/hana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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