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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삐앤루팡'에서 진행하는 레드클럽에서 김희경의 <이상한 정상가족>을 읽었다. 한국 사회에서 가족주의의 형성을 추적하는 이 책은 '정상가족'의 억압적인 구조가 가정에서 가장 약자인 아이를 어떻게 소유물처럼 대해왔는지를 분석한다.

'정상가족'은 정상과 '다른' 가족을 '비정상'화함으로써 사회적 약자들을 배제해왔다. 김희경은 '사람의 개별성을 존중하며 타인과 공감하는 태도의 변화, 즉, 일상의 민주화'가 이뤄질 때, 가족안의 억압된 존재들과 '정상가족' 외부의 타자들과 공존하는 삶의 공동체가 가능해질 것이라고 말한다.

1. 엄마 정체성과 다른 정체성 사이에서 균형 잡기

 가족은 자율적이고 평등한 개개인이 만나 서로 지지하고 격려하는 관계 아닐까?
 가족은 자율적이고 평등한 개개인이 만나 서로 지지하고 격려하는 관계 아닐까?
ⓒ 박지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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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으며, 엄마와 아내 역할을 하며 불편했던 순간들이 떠올랐다. 엄마의 역할을 '잘하는' 사람들을 만나거나 그들의 얘기를 들으면 나는 왠지 모르게 자신감이 없어졌다. 가족에게 항상 따뜻한 밥을 해주고, 지극정성으로 아이들을 보살피고, 항상 집안을 청결하게 유지하는, 집안일 잘하는 사람들 말이다.

아주 더럽지도 않지만, 적당히(?) 지저분한 우리 집. 끼니마다 새 밥에 새 반찬을 해주지 못하는 나. 있는 밥 먹고, 있는 반찬 먹어도 가족이 건강하면 괜찮다고 생각하는 나. 아이의 일정과 내 일정이 엇갈릴 때, 아주 중요한 문제가 아니면 나는 내 시간을 지킨다. 내가 지치지 않는 수준에서 돌봄을 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최고의 수준을 따라가려다 지쳐 나가떨어지는 것보다는, 가능한 수준을 하고 그 여분의 에너지는 '나'에게 들이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우선순위를 아이에게 두고, 항상 아이 곁에 있어주는 엄마들을 보면 왜 '내가 잘못하고 있는 건가'라는 생각이 드는 걸까? 사람은 조금씩 다르니까, 처한 상황도 다르니까라고 생각하면 될 것을 나는 왜 괜한 열등감을 갖는 걸까?

'여성성=모성'으로 이해되는 사회 속에서, 나도 모르게 '좋은 엄마' 이데올로기를 내면화한 것 같다. 엄마가 된 것은, 자연인 ○○○으로서 나의 여러 가지 정체성에 엄마 정체성 하나가 추가된 것인데, 엄마 정체성을 최우선의 가치로 두고 살아야할 것 같은 느낌.

그러나 그동안 공부하고 일하는 자로서 나의 삶은, 엄마가 되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사회 속에서 나의 역할을 해나가기 위한 것이었다. 송수진 교수는 엄마 자아와 사회인 자아라는 두 가지 소명을 다하고자 하는 것을 '듀얼 콜링(dual calling)'으로 설명한다.

엄마의 역할 만큼이나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사회적으로 성취하고 싶은 욕구를 가진 사람으로서, 'dual calling'은 나의 상태를 정확하게 표현해주는 언어로 다가왔다. '좋은 엄마'는 한 가지 모양이 아니라 각자의 상황과 성격에 따라 100개, 1,000개, 혹은 그 이상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내가 원하는 것'을 하면서 엄마, 아내의 정체성과도 균형을 이루며 살아가려고 한다. 그러다 보면 때로 집이 지저분할 수 있고, 묵은 밥을 먹을 수도 있다. 깨끗한 집과 맛있는 밥도 아이의 건강한 성장을 위해 필요하지만, 인생 선배로서 엄마의 행복한 삶이 아이에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아이가 만나는 첫 번째 어른의 모습이 엄마, 아빠이기 때문이다.

2. 서로 다른 개체들이 가정에서 조화롭게 공존하는 법

 엄마의 정체성은 엄마, 아내 말고도 수많은 이름들로 구성된다.
 엄마의 정체성은 엄마, 아내 말고도 수많은 이름들로 구성된다.
ⓒ 박지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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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인간관계는 서로에게 의존하지 않고 불평등한 권력관계에 놓이지 않는 개인들 사이에서만 가능하다. 자율적이고 평등한 개개인 사이에서만 사랑과 우정 같은 인간적 교류가 이루어진다. 심지어 부모와 자녀 관계에서도 서로 의존적이고 굴욕을 강요하는 권력관계가 존재하는 한 진정한 사랑은 불가능하다고 바라본다. 국가는 이런 굴욕감에서 개인을 해방시킬 의무가 있다는 것이다."

스웨덴의 역사학자 라르스 트래가르드의 '스웨덴식 사랑이론'을 김희경이 인용한 부분이다.

아이가 어릴 때 부모의 보호는 필수적이다. 아이가 '독립적인 존재'로 성장할 수 있도록 '물심양면(物心兩面)'으로 노력해야 한다. 그러나 의존과 독립 사이의 균형이 필요하다. 아이는 처음에는 약해서 부모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지만, 내가 맘대로 할 수 있는 소유물이 아니다.

아이가 성장하는 만큼 아이의 자율성을 존중하고, 아이와 나 사이의 거리를 인정해야 한다. 아이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찾아가고 사회적 자아가 형성되면서, 때때로 가족과 충돌할 수 있지만, 서로를 알아가며 조화를 이뤄갈 것이다.

'서로에게 의존하지 않고 불평등한 권력관계에 놓이지 않는 개인들' 사이에서만 진정한 인간관계가 가능해진다는 말은, 부모가 아이들의 개별성을 인정하는 것으로 국한되지 않는다. 여성의 가사노동과 나홀로 돌봄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구조를 깨야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몸이 힘들면 마음도 힘든 법이다. 가정에서 여성의 일을 남편과 분담해야 한다. 그리고 나눈 만큼의 시간을 엄마 자신을 위한 것으로 되돌려야 한다. 물심양면, 몸과 마음을 다하는 노력이 아이들에게 건강한 에너지로 갈 수 있으려면, 엄마의 마음이 건강해야 하니까.

그리고 엄마들이, 여성들이, 자신이 좋아하는 무언가를 위해 에너지를 쏟기를 소망한다. 건강한 가족이 각자의 자율성을 존중하는 것에서 비롯된다면, 남편과 아이의 자율성 만큼 엄마의 자율성도 존중되어야 한다. 엄마가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것에서 기쁨을 느낄 때 스스로 자율적인 존재가 될 수 있다.

'평등한' 개개인은 누군가에게 일방적으로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 1인분의 삶을 즐겁게 살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가정은 1인분의 삶을 살아가는 개인들이 서로 만나서 마음을 의지하는 공간이다.

커갈수록 서로 다른 시간을 살아갈 개인들이 가정에서 서로를 위로하고 격려할 수 있으려면, 각자 '자기만의 방'을 갖고 서로의 문을 열고 닫아야 한다. 그리고 서로의 방에 노크하고 그 방에 들어가서 대화를 나눌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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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와 용기, 평안을 가진 삶을 소망한다. 영화를 보고 글쓰고 강의하는 일을 하다 10년간 직장인의 삶을 살았다. '삐삐앤루팡'에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고 있다. 모든 사람들이 '내 삶을 디자인'할 수 있도록 돕는 동행자가 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