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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지막이 일어나는 토요일 점심으로는 면 요리가 제격이다. 혼자 있는 날이라 밥 챙겨 차리기 귀찮고 냉동실에 여분 밥도 없다면 면 요리가 더더욱 편하다. 간편하게 조리하는 라면 아니면 배달시켜 먹는 짜장면이 땅기는데, 선택은 토요일 오전 컨디션에 달렸다. 금요일 밤 술이라도 마셨으면 국물 있는 라면이 제격이지만, 라면이 없거나 나가서 사 오기 귀찮은 날이라면 짜장면이 딱이다.

라면은 남이 끓여줘야 맛있는데 손수 끓여야 한다. 이도 저도 귀찮고 피곤하다면 배달시켜 먹는 짜장면이 최고다. 그렇지만 한 그릇 주문은 갓 헤어진 여자친구에게 거는 전화와 같다. 통화하고 싶지만 환영받지 못할까 봐 주저하게 되는 그런 전화? 아니면 새벽에 취한 김에 거는 무례한 전화? 하여튼 하고 싶은 말이 있지만 걸기 꺼려지는 그런 전화와 같다.

그런데도 먹고 싶어 주문한 적이 있다. 현관에 붙어 있던 두 장의 전단지를 놓고 고민하다 'ㅇㅇ옥'에 주문을 하였다. "짜장면 하나에 군만두 하나요. 아, 서비스 만두 아니고요." 기대했던 맛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짜장면을 먹었다는 만족감은 왔다. 그다음 주에는 'ㅇㅇ루'에 주문했는데, 'ㅇㅇ옥'에 주문했을 때 왔던 사람이 배달 왔다. 같은 맛인 걸 보니 같은 집이 확실해서 그 후론 중국요리 배달을 시키지 않았다.

짜장면이 먹고 싶은 날이었다
 짜장면이 먹고 싶은 날이었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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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장면은 첫 젓가락을 입으로 가져갈 때까지 기다리는 과정이 안달 나게 하는 음식이다. 주문하고 현관 벨 소리만 기다리는 그리움, 마침내 배달된 그릇의 랩을 벗겨야 하는 인내심, 마지막으로 면을 비벼야 하는 조바심이 극대화되어야 겨우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오래도록 음미하기는 어려운 애증의 음식이기도 하다. 신속하게 먹어야 한다. 맛을 천천히 즐기다간 면이 불거나, 질퍽거리다 흥건해지기 때문이다.

지난 몇 주말마다 짜장면이 생각났지만 오래전 실패한 배달의 기억 때문에 주저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가서 먹자. 기왕이면 맛있는 집에서'라고 생각했다. 지난 토요일에 그런 맘이 최고조로 올라갔다. 먹으러만 나가기 아쉬우니 산책 채비도 하고 나섰다.

곧장 가는 길이 있었지만, 탄천 이쪽 산책로로 올라가 징검다리를 건너 탄천 저쪽 산책로로 내려왔다. 직장인들이 많이 가는 식당가에 있는 중국집은 주말인데도 손님이 많았다. 평일에는 직장인들이 많다 했는데 주말에는 자전거 타는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맛집인가 했는데, 간판에 티브이에 많이 나오는 그 남자의 그림이 있다.

음식의 특성은 먹는 소리로도 구분되는 데, 다른 테이블의 먹는 소리로 무엇을 먹는지 알 수 있다. '후 후' 불면서 먹는 건 짬뽕이고, '후루룩 후루룩' 소리가 연속으로 들리면 짜장면이다. 내 짜장면이 나왔다. 배달시켰다면 랩을 벗겨야 하는 인내심이 필요하지만, 식당에서는 그런 게 없어서 좋다. 그러나 면과 소스를 비빌 때 오는 조바심은 여전했다.

옆 테이블 손님처럼 고춧가루를 뿌려 보았다. 맛에 어떤 차이가 나게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까만색 위에 흩뿌려지는 빨간색이 도발적이다. 까만색이라 했지만, 완전 검정이 아닌 밤색 톤이 들어간 소스가 누르스레한 하얀 면에 비벼져 물들어갈 때의 그 조바심이 짜장면의 맛을 극대화 시킬 듯했다.

그토록 먹고 싶던 짜장면 맛은 어땠냐고? 뭐, 짜장면 맛이 그렇지 뭐···. 항상 그랬다. 짜장면을 먹고 나면 드는 생각이. 짜장면 맛은 항상 그렇다. 짜장이 짜장이지 뭐겠냐고.

그럼 나만의 짜장면집은 있냐고? 생각해 보니 짜장면? 하면 생각나는 중국집이 없다. 국수 먹고 싶을 때 가고 싶은 칼국숫집이나 잔치국수 집은 있지만. 끼니때 중국집에 갈 기회가 있으면 그 집의 특선 요리가 짬뽕이더라도 나의 주문은 항상 짜장면이었고, 먹은 다음의 감상은 '짜장면 맛이 그렇지 뭐···,'였다. 칭찬도 실망도 아닌 그런···.

그렇다고 짜장면 맛집을 찾아다니진 않았다. 맛으로 먹었다기보다는 먹고 싶은 것을 먹었다는 만족을 위해 먹었던 것 같다. 그냥 자연스레 자리 잡은 마음의 음식이랄까. 짜장면은 항상 짜장면이었다.

그런 짜장면을 짜장면이라 부르지 못하고 자장면이라 부르던 시절이 있었다. 자장면이라 쓰고 짜장면으로 읽던 시절. 물론 방송에서는 자장면이라는 어색한 발음을 하기도 했지만, 나는 짜장면이라는 된 발음으로 읽었다. 나만 그런 것은 아니었다.

안도현은 '짜장면'에서 이렇게 썼다.

"어떤 글을 쓰더라도 짜장면을 자장면으로 표기하지는 않을 작정이다. 그것도 어른들 때문이다. 어른들은 아이들이 짜장면이라고 쓰면 맞춤법에 맞게 기어이 자장면으로 쓰라고 가르친다. (중략) 중국집에는 짜장면이 있고, 짜장면은 짜장면일 뿐이다. 이 세상의 권력을 쥐고 있는 어른들이 언젠가는 아이들에게 배워서 자장면이 아닌 짜장면을 사주는 날이 올 것이라 기대하면서···."
문학가도 고민했듯이 불과 얼마 전까지 짜장면은 바른 표현이 아니었고 '자장면'이 바른 표현이었다. 안도현이 바랐듯이, 이제 자장면은 사전 한구석에만 있고, 짜장면이 세상에 떳떳이 바로 서 있다. 생각해 보니 자장면이었던 시절도 그 뜻과 맛은 짜장면이었던 것.

된 발음을 싫어하는 어른들 때문이었나? 문자로 기록된 역사만이 진짜라고 믿었던 어른들 때문이었나? 보고 듣고 체험한 역사와 교과서에서 읽은 역사가 다른 것을 알게 된 새로운 어른들이 역사를 바꿔가고 있다. 건전, 민주, 애국을 다른 뜻으로 해석하는 사람들이 있는 듯하지만 그런다고 세상이, 역사가 달라질까. 건전한 세상에서 자란 아이들이 민주를 몸으로 배워 가슴으로 애국하는 세상이 오고 있다.

짜장면을 먹다가 역사를 생각했다. 위대한 짜장면이다.

덧붙이는 글 | 개인 블로그에도 올릴 예정입니다.



태그:#짜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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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대 중반을 지나며 고향에 대해 다시 생각해봅니다. 내가 나고 자란 서울을 답사하며 얻은 성찰과 다양한 이야기를 풀어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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