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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7년 동안 자취를 했지만 집안일을 “정말”내 일로 생각하지 않았다.
 나는 7년 동안 자취를 했지만 집안일을 “정말”내 일로 생각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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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집안일 도와줄게."

연애할 때 아내에게 했던 말이다. 내가 가정적인 남자라는 인상을 주고 싶었다.

"왜 도와준다고 해? 집안일은 우리의 일이잖아. 같이 하는 거지."

아내는 못마땅한 말투로 나를 핀잔했다. 나는 곧 미안하다고 했다

이 이야기를 생각할 때마다 부끄럽다. '도와준다'는 말은 타자의 일을 내가 해줄 때 쓰는 말이다. 무의식에서 이 단어를 선택했다. 내 생각의 민낯이었다. 나는 7년 동안 자취를 했지만, 집안일을 "정말" 내 일로 생각하지 않았다.

결혼한 지 6개월 정도 지났을 때, 아내가 물어봤다.

"여보, 지금은 집안일이 정말 자신의 일이라고 생각해?"
"몸은 열심히 하고 있는데 생각은 아직 아니야."
"정말?"

사실이었다. 우리 부부는 돌아가면서 요리하고 설거지를 한다. 한 사람이 요리를 하면 다른 사람이 설거지를 한다. 대부분의 집안일을 그렇게 한다. 그럼에도 나는 아직 이 일이 "정말" 내 일이라고 받아들이지 못했다. 설거지를 할 때 마음속으로 가끔 주문을 외운다. '이건 우리의 일이다. 먼저는 나의 일이다.'

자취를 할 때는 달랐다. 혼자 살 땐 더 그랬다. 요리는 나의 일이라고 생각했다. 빨래를 하는 일, 화장실 청소를 하는 일도 내 몫이라고 생각했다. 둘이나 셋이 지낼 때는 누구 한 사람이 집안일을 도맡아 하지 않게 했다. 서로 눈치도 봤다. 하기 싫은 일은 나름 당번도 정했다. 같이 살기 때문에 그랬다. 그런데 왜 결혼을 하고 아내와 살 때는 내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그리고 나는 집 밖일, 소위 돈을 벌어오는 일이 "좀 더" 내 일이라고 생각할까? 갈 길이 멀다.

어렸을 때, 나의 아버지는 운송업을, 어머니는 집안일을 하셨다. 내가 대학에 입학할 즈음에는 어머니도 취직하셨다. 어머니는 아침 8시 30분까지 출근하시고 저녁 7시, 늦으면 밤 10시에 퇴근하신다. 토요일까지 일을 하시고, 가끔 일요일에도 출근하신다. 그래도 집안일은 여전히 어머니의 몫이었다. 반찬을 만들기가 어려우셔서 가게에서 사오실 때가 많아졌다. 어머니가 출근하신 사이, 집에 계신 아버지에게 전화하면 "차려주는 사람이 있어야 밥 먹지"라고 하실 때가 있다. 아버지는 혼자 먹기가 싫으신 걸까, 차릴 줄 모르시는 걸까?

자료를 찾아봤다. 2016년 통계청과 여성가족부(이하 여가부)가 조사한 '부부간의 가사분담' 통계 자료에 따르면, 전체 성인 응답자 4884명(여자 2508명, 남자 2376명) 중 81.2%의 사람이 '아내가 남편보다 가사 노동을 많이 한다'고 대답했다. 압도적이었다. '비슷하게 분담한다'고 말한 사람은 13.3%, 남자가 더 많이 하는 경우는 5.6%에 불과했다. 맞벌이 부부만 따로 조사한 결과도 있다. 성인 응답자 2385명 중 75.9%가 '아내가 가사노동을 더 많이 한다'고 답했다. 경제 활동 여부와 나이에 상관없이 여자가 가사 노동을 많이 하고 있다.

다른 나라와 비교해보고 싶었다. 2015년 통계청, 여가부 자료를 보면, 우리나라 남자의 평균 가사 노동 시간은 45분이다. OECD 회원국 중 가장 짧은 시간이며 남아프리카 공화국(92분)의 절반 수준이다. 드라마 한편 분량보다 짧다. 여자는 3시간 47분이다. 남녀의 격차는 182분으로 회원국 중 가장 컸다.

  집안일은 나의 일이다.
 집안일은 나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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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와 남편이 상생하기 위하여

아내와 남편이 항상 균등하게 가사 일을 해야 한다고 말하는 건 아니다. 어떤 부부는 집안일과 집 밖 일을 나눠서 하는 게 좋을 수 있다. 형과 형수님도 대화 끝에 역할을 나눴고 아주 만족하고 있다. 형은 주로 밖에서 일하며 돈을 벌고, 형수님은 가사와 육아를 한다. 우리 부부는 역할을 나누지 않기로 했다. 벌이와 가사를 같이 해보려고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선 '집 밖의 시간'과 '집안의 시간' 모두 확보해야 한다. 자연히 돈 버는 시간은 줄어든다. 적은 수입을 감수해야 한다. 언젠가 역할이 나뉠 날이 올 수도 있지만, 최대한 발버둥쳐보고 싶다.

이 기울어진 판을 반성하고 저항하는 사람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그것은 '본디 집안일은 나의 일'이라는 인식을 갖는 데서 출발한다. 이것은 역할을 나누는 일보다 중요하다. 아내의 일인데 내가 도와주는 것이 아니다. 원래 나의 일이다. 그런데 아내가 더 많이 하고 있는 현실이다. 결코, 아내가 더 잘해서 집안일을 하는 게 아니다. 기울어진 판에 있다 보니 남편보다 잘하게 되었을 뿐이다. 남편은 안 하다 보니 '아내가 나보다 잘해'라는 믿음이 생겨버렸다. 바라기는, 불공평한 판에 균열이 생기길, 아내와 남편이 상생하는 집안이 되기를 기대한다.

덧붙이는 글 | 관련된 통계청 자료와 기사를 링크시켰습니다. 확인 부탁드립니다.



태그:#집안일은나의일, #아내와남편, #상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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