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2014년 4월 16일, 전 국민을 슬픔에 잠기게 한 세월호 참사 4주기가 다가오고 있다. 총 304명의 희생자가 우리 곁에 돌아오지 못했고 아직도 5명의 미수습자가 남아있다. 구조할 수 있었음에도 '가만히' 있었기에 더 많은 희생자가 나왔다. 우리가 여전히 세월호 참사를 잊지 않고 기억해야 하는 이유이다.

약 4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선명하게 밝혀진 진실이 없다. 아직도 많은 사람이 참사 당시의 상황에 가닿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기자는 지난 2월 대학생 세월호 참사 기억비 건립 프로젝트의 일원으로 활동했다. 더 많은 사람이 세월호 참사를 기억해주길 바라는 마음에서 기사를 쓴다. '기억동행'이라는 취지에 맞게, 독자들도 우리의 행보에 함께하는 기분을 느낄 수 있길 바란다.

세월호 참사 기억비 건립 프로젝트는 세월호 참사를 함께 기억하고, 더 많은 사람들이 잊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서 대학생들을 중심으로 시작됐다. 프로젝트 기획단은 '대학생 세월호참사 기억동행'이라는 명칭으로 지난 2월 23일(금)부터 24일(토)까지 1박 2일간 안산 합동분향소, 단원고 기억교실, 진도 팽목항, 기억의 숲 그리고 목포신항을 차례대로 방문했다. 더불어 현장별로 세월호 유가족 간담회를 진행했다.

사실 기자는 안산으로 출발하는 버스를 타기 전까지만 해도 걱정이 많았다. 유가족을 만나면 무슨 말을 해야 할지도 몰랐으며, 참사의 현장을 직접 보는 것이 두려웠던 것 같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걱정과 함께 처음으로 들린 안산 합동분향소. 그곳에 들어간 순간 숨이 턱 막혔다. 304개의 영정사진 앞에서 감정이 소용돌이 쳤다.

분향소란 장소는 익숙하지 않은 장소였다. 누구의 사진을 보며 묵념을 해야 할지조차 알 수 없었다. 슬픔을 밀어 넣기 급급했다. 감정을 추스르기도 전에 유가족을 만났다. 그분들은 자신을 '신호성 엄마' 그리고 '오영석 엄마, 아빠'로 소개했다.

안산 합동분향소에서 유가족 간담회를 진행 중 '신호성' 학생 어머니
▲ '신호성' 학생 어머니 안산 합동분향소에서 유가족 간담회를 진행 중 '신호성' 학생 어머니
ⓒ 임혜림

관련사진보기


보통의 경우와는 다른 소개에 혹시나 당시 단원고 2학년과 같은 나이였던 기자를 보고 슬퍼하시진 않을까 걱정이 앞섰다. 하지만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유가족분들은 기자에게 환한 미소와 함께 멀리까지 와줘서 고맙다는 말을 전했다. 간담회를 진행하던 중 알게 된 유가족분들의 생각은 오직 하나였다. 세월호 참사의 '진실'을 밝히고 '안전한' 대한민국을 만드는 것. 그래서 다시는 이러한 희생이 발생하지 않는 것 말이다.

두 번째로 간 곳은 단원고 기억교실이었다. 1박 2일간의 '기억동행'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을 뽑으라면, 기자는 아마 이곳을 뽑을 것이다. 교실을 둘러보기 전 희생자를 기억하자는 의미에서 250명의 학생과 11명의 교사, 그리고 일반인 희생자까지 총 304명의 이름을 담은 영상을 보았다. 처음엔 그저 묵념의 마음으로 지켜보다가 시간이 흘러도 끝나지 않는 영상에 슬픈 마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앞에는 유가족분이 있었기에 눈물을 참아보려 했지만, 계속해서 들리는 이름에 눈물은 멈출 생각을 하지 않았다.

단원고 기억교실
▲ 기억교실 단원고 기억교실
ⓒ 임혜림

관련사진보기


영상이 끝나고 교실을 둘러보는 시간 또한 쉽지 않았다. 261이라는 숫자는 생각보다 훨씬 큰 숫자였고, '참사'의 의미를 다시 한번 깨우치게 해주었다. 교실엔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꽃다발과 편지가 가득했고, 그곳엔 아이들의 온기가 남아있었다. 2014년, 기자와 같은 나이였던 열여덟 아이들은 그곳에서 친구를 아끼며, 선생님을 존경하며 꿈을 키워나갔을 것이다. 추모의 글을 쓰고 싶은 마음에 편지지를 들고 갔는데, 결국 그 어떤 말도 쓰지 못했다. 적을 수 있는 말이라곤 '잊지 않을게'라는 말뿐이었다.

아이들의 온기를 뒤로 한 채 팽목항으로 향했다. 팽목항에선 '고우재,' '권순범' 학생의 유가족분들과 식사를 하며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이야기를 나눴다. 그날 기자는 우재와 순범이가 어떤 학생이었는지, 꿈은 무엇이었는지에 대해 알게 됐다. 아마도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자는 건 이런 의미가 아닐까. 이렇게 희생자 한 명 한 명의 이야기를 듣고, 기억하는 것 말이다. 다음날, 아침이 찾아왔고 진도의 바다가 드넓게 보였다. 이 바다에서 304명이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했다는 걸 떠올리면 온몸에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팽목항에서 '고우재', '권순범' 학생 유가족분들과 함께
▲ 팽목항 팽목항에서 '고우재', '권순범' 학생 유가족분들과 함께
ⓒ 임혜림

관련사진보기


유가족분들과 아쉬운 작별을 하고 마지막 목적지인 목포신항으로 향하였다. 목포신항에선 많은 유가족과 함께 세월호 참관을 진행했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훼손된 선체는 그야말로 '끔찍'했다. 그 순간 기자의 머릿속에 두 가지의 바람이 떠올랐다.

'저기 있는 세월호가 왜 가라앉게 되었는지 밝혀내는 것. 그리고 아직 돌아오지 못한 5명의 희생자를 찾는 것.'

'세월호 참사 기억동행'을 통해 참사의 현장을 직접 찾아 더 가까이 마주하면서 진실이 밝혀질 때까지 기억하고 행동하겠다는 다짐을 세울 수 있었다. 유가족이 바라는 딱 한 가지, 그것만을 기억하고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세월호의 진실이 인양될 때까지 기억하고 함께 할 것이다.

슬프다고 외면해버리면 달라지는 것은 없다. 안전한 대한민국을 만들어 다시는 이런 참사가 일어나지 않도록 끝까지 노력해야 한다. 그리고 마침내 진실이 밝혀진다면, 우리는 304명의 희생자를 가슴에 새기며 기억해야 할 것이다. 그 한 명 한 명의 삶과 꿈을 잊지 말아야 한다. 아무리 기억해도 모자라기에.

세월호 참관 후 유가족분들과 함께
▲ 목포신항 세월호 참관 후 유가족분들과 함께
ⓒ 임혜림

관련사진보기


덧붙이는 글 | 잊지 말아주세요. 기억합시다.



태그:#세월호
댓글2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44,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세월호 기억비 프로젝트 기자단 이남주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