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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결문 공개는 해당 사건의 당사자의 정의를 위해서만이 아니라 다른 모든 사건의 당사자들 ,그리고 잠재적인 당사자들인 국민 전체를 위해 필요한 것이다.

공개재판 원칙은 원래 형사 피고인의 인권이 국가에 의해 유린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장치였다. 하지만 모든 개별재판은 반드시 기속력 있는 판례로 추대되지 않더라도, 그리고 판례법 국가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추후의 비슷한 재판에 법적인·사실적인 영향을 미치기 마련이므로 당사자 외의 모든 국민들에게 잠재적이고 누적적으로 영향을 주게 되어 있다.

'유전무죄', '전관예우' 등에 대한 우려는, 개별재판의 공정성은, 다른 재판과 격리되어 확보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재판과의 비교 속에서 확립된다는 평등주의적 법감정의 산물이다. '사슴을 말이라고 했는지 아닌지'는 다른 사건들에서 무엇이 '사슴'으로 정의되고 무엇이 '말'로 정의되는가에 따라 판가름 나는 것이지 한 사건만을 가지고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옳든 그르든 하나의 판결에 대해 '지록위마'라는 비판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모든 판결문들이 수록된 데이터베이스에 접근할 수 있는 판사일 수밖에 없다.

또 법치주의 국가에서 국민이 법이 어떻게 해석되고 집행되고 있는지를 모른다면 그 법치주의는 민주적 정당성을 상실하여 민주주의가 법치주의와 공존하기 위해 필요한 법의 정당한 권위를 상실할 수밖에 없다.

여기서 '법'은 당연히 대법원이 국가법령정보사이트에 공개할 정도로 자신감을 느끼는 판결문들로 이루어진 주관적인 법이 아니라 국민이 자신의 능력에 따라 법을 해석할 수 있고 이해하는 자료가 되는 판결문들 전체, 즉 객관적인 법을 말한다. "판사는 판결로만 말한다"는 법관의 직업적 자긍심은 그 판결들을 만천하에 공개할 수 있을 때 객관적인 의미를 획득한다.

공개해야 할 이유는 차고 넘친다

이재용 항소심 판결문 표지 2월 5일 서울고등법원 제13형사부가 선고한 이재용 삼성그룹 부회장의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관련 뇌물공여죄 등 항소심 판결문의 표지
▲ 이재용 항소심 판결문 표지 2월 5일 서울고등법원 제13형사부가 선고한 이재용 삼성그룹 부회장의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관련 뇌물공여죄 등 항소심 판결문의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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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결문 공개는 법치주의의 효율성을 증대시킨다. 우리나라의 소송 숫자는 인구 대비 절대로 적지 않으며 항소율과 상고율은 심각할 정도로 높다. 판결문의 공개는 잠재 또는 현재 당사자들이 또는 그의 대리인들이 자신들의 법적 상태를 객관적으로 검토할 수 있는 자료를 제공하여 합의에 이를 가능성을 높여주고 제소율, 항소율, 상고율을 낮춘다.

판결문의 공개는 경제발전에도 영향을 준다. 국내외 투자자들의 결정을 어렵게 만드는 것은 투자에서 발생하는 비용이 아니라 – 시장의 특성상 고비용 투자는 더욱 높은 매출과 연계되기 때문에 – 불확실성이며 판결문의 공개는 법에 대한 더욱 시의성 있고 정확성 있는 해석을 가능케 하여 투자판단에 윤활유 같은 역할을 한다.

그런데 판결문의 공개에 있어서 가장 큰 걸림돌로 논의가 되는 것이 개인정보자기결정권이다. 판결문은 사건 당사자들에 대한 수많은 개인정보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개인정보보호법은 "다른 법률에 특별한 규정이 있는 경우" 정보주체의 동의가 없어도 정보처리자가 개인정보를 수집, 이용, 제3자제공을 할 수 있도록 하고 있고, 2011년 7월 18일에 개정된 민사소송법 제163조의2 및 형사소송법 제59조의3이 판결문 공개를 통제하고 있으므로 개인정보보호법 자체가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현재 민사소송법과 형사소송법 상의 판결문 공개는 매우 한정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전체 판결의 0.5%도 되지 않는 국가법령정보사이트나 대법원정보사이트에 '공간'(공식적으로 공개)된 판결서들 외에 첫째, 형사는 2013년 1월 1일 이후, 민사는 2015년 1월 1일 이후에 확정된 판결서만 공개되고 있어 아직도 판결에 영향을 주는 판례들을 일반인들이 접하기 어렵다.

둘째, 미확정된 판결서는 공개대상이 아니어서 미확정된 사건에 대해 국민들이 의견을 제시할 수 있는 통로가 차단되어 있고 셋째, 형사는 임의어 검색이 불가능하여 원하는 판결번호를 제시해야 판결문을 받아볼 수 있는 상황이라서 판결의 공정성을 검토하기 위해 다른 사건들을 비교하기 위한 시도가 원천적으로 차단되어 있다.

넷째, 임의어 검색이 가능한 민사의 경우에도 85개의 개별 법원 별로 검색해야 할 뿐만 아니라 검색 결과로 제시된 판결서를 읽어보기 위해서는 판결서당 1000원을 지불해야 한다. 검색을 통한 지식습득의 자동화라는 목표가 실질적으로 사장된다고 볼 수 있다. 검색을 해본 사람이라면 진정으로 원하는 자료 1건을 찾기 위해 해당 검색어를 포함하는 문서를 최소한 100건 정도 열람해보는 것은 상식인데, 그렇다면 판결서당 1000원이 아니라 10만 원을 지불해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다섯째, 모든 판결서에 등장하는 당사자들 외에도, 모든 등장인물 및 법인들이 비실명처리 되면서 판결서의 가독성이 매우 떨어진다. 물론 법원도서관을 통해 사전에 예약을 하고 모든 판결문들을 검색할 수 있는 방법이 있지만 5천만 전국민을 상대로 단 4개의 터미널이 열려있다는 것은 의미 있는 해법이라고 할 수 없다.

위와 같이 민사소송법과 형사소송법이 공개를 요구하고 있음에도 기간, 방법 등에 있어서 매우 열악한 공개가 이루어지고 있는 행태를 정당화하고 있는 것은 개인정보자기결정권과 관련된 우려들이다. 특히 민사소송법과 형사소송법이 "판결서 등에 기재된 성명 등 개인정보가 공개되지 아니하도록 대법원규칙으로 정하는 보호조치를 하여야 한다"라고 하고 있어 대법원규칙은 개인정보보호법이 보호하는 가치를 염두하고 위와 같은 판결문의 공개를 제약하고 있다.

예를 들어 민사판결서 원스톱통합검색을 허락하지 않는 이유로 '열람 대상 판결의 당사자를 알아낼 위험성이 통합 시스템 구축으로 높아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시된다. 또 미확정판결문의 공개에 대한 반대의견에도 '개인정보, 개인의 사생활과 명예 침해의 가능성이 커질 수 있음'이 등장하고, 형사사건의 임의어 검색 허용 반대의견에도 '개인정보와 사생활 및 명예를 침해 할 가능성이 커짐'이 등장한다.

물론 이외에도 '미확정판결을 공개할 경우 이것이 확정된 법리로 오인할 우려' 등의  우민주의적 발상들이 등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가장 진지한 판결문 공개반대론의 뒤에는 개인정보보호법으로 보호되는 개인정보자기결정권에 대한 우려가 존재한다.

우리 법원의 구차한 논리

 판결이 선고된 지 보름이 지난 2018년 2월 20일 오후 6시 현재까지,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건 관련 삼성 이재용 부회장의 뇌물공여죄 등 항소심 판결문이 등록되어 있지 않은 서울고등법원 홈페이지의 <우리법원 주요판결> 첫 화면 모습.
 판결이 선고된 지 보름이 지난 2018년 2월 20일 오후 6시까지,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건 관련 삼성 이재용 부회장의 뇌물공여죄 등 항소심 판결문이 등록되어 있지 않은 서울고등법원 홈페이지의 <우리법원 주요판결> 첫 화면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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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미국의 경우는 말할 것도 없고 우리나라처럼 강력한 개인정보보호법을 가진 캐나다, 호주 등에 판결문은 실명으로 검색가능한 형태로 확정/미확정을 가리지 않고 거의 100% 공개된다.

왜 이런 차이가 생겨날까? 사과(apple)는 무엇인가? 사과의 정체성은 다른 것들과의 차이 속에서 현출되는 것이지 사과 혼자 존재할 수는 없는 것이고 사과성(appleness)이라는 어떤 객관적인 실재가 있는 것도 아니다. 사과는 오렌지와 다름으로써 사과가 되는 것이지 독야청청 사과가 되는 것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정체성은 우리를 둘러싼 관계와 관계를 생성하고 유지하는 언어들로 이루어져 있다. 교육도 그 관계를 형성하기 위한 훈련을 받는 것이다. 내가 교수로서 강의를 하는 것은 나 혼자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나를 교수로 보고 들어주는 학생들이 있어야 가능한 것이다. 내가 변호사로서 활동하기 위해서는 내가 대리할 의뢰인이 필요하다. 내가 한국인이 된 것은 한국인이라는 어떤 특질이 내 안에 있어서가 아니라 특정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 서로 동질감을 느끼면서 집단을 형성하면서 한국인이라고 부르기 시작해서 그리 된 것이다.

여기서의 관계란 사람 사이의 관계이다. 그렇다면 내가 특정한 관계에 있다는 것은 나의 개인정보이지만 그 관계에 있는 다른 사람의 개인정보이기도 하다. 이미 정보를 그렇게 공유하는 것이 자연상태이다. 우리는 비밀리에 태어날 수도, 비밀리에 살아갈 수도 없다. 내가 누군가를 폭행하면 폭행의 피해자가 알고, 피해자의 가족들이 알게 되고, 이를 수사하는 경찰이 알게 된다. 나는 내가 상대를 폭행했다는 정보를 숨기고 싶겠지만 상대는 그것을 알리고 싶을 수 있다.

프라이버시는 인격의 자연상태가 아니라 정보공유의 상태에서 자신을 숨길 자유를 말하는 것이다. 자신에 대한 정보를 차단할 자유를 말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정보공유의 자유, 즉 모든 정보공유는 정보의 전달로 이루어지고 정보의 전달은 표현이므로 프라이버시는 표현의 자유와 같은 재질로 이루어져 있다.

정보공유를 통한 해방과 정보통제로 존엄성이 충돌하는 지점에, 이를 망각하고 프라이버시를 자연상태로 보호하는 것이 프라이버시 운동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우리나라 법원이다. 현재 법원의 판결문 공개 상황이 처참하다는 얘기는 이미 했다. 그럼에도 법원은 판결문을 더 공개할 마음이 없다. 심지어 2015년 1월 1일 이후의 민사 판결문, 2013년 1월 1일 이후의 형사 판결문들은 이미 익명화 작업까지 마친 상황이라고 한다. 그럼에도 한번 읽어보는 값으로 1천 원을 받아가 사람들의 연구욕구를 꺾고 있다.

왜? 법원은 '판결문에는 성폭행 피해자가 어떻게 성폭행 당했는지 자세한 묘사가 있다', '판결문에는 회사의 내부상황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다'는 등의 이유를 댄다.  이런 것들은 현행법상 영업비밀 또는 사생활의 비밀을 이유로 판결문 공개를 하지 않으면 된다.

이에 대해 법원은 '당사자나 관계자가 아니지만 당사자나 관계자의 삶 속에 있음으로 해서 자신의 생활이 드러나는 사람은 어떻게 하느냐'고 한다. 예를 들어, 당사자가 살인을 저지르기 위해 칼을 '부산상회'에서 샀다고 판결문에 적시되어 있다고 하자. 부산상회의 주인은 자신이 살인범에게 칼을 팔았다는 개인정보가 자신의 동의 없이 일반에게 공개되는 상황을 마주하게 된다는 것이다.

'개인 정보 보호'는 절대적 가치가 아니다 

 <오마이뉴스>는 이재용 삼성그룹 부회장의 박근혜-최순실게이트 관련 항소심 판결문을 공개했다. 본문만 A4규격 144쪽짜리이고 별지까지 포함하면 166쪽에 달한다.
 <오마이뉴스>는 이재용 삼성그룹 부회장의 박근혜-최순실게이트 관련 항소심 판결문을 공개했다. 본문만 A4규격 144쪽짜리이고 별지까지 포함하면 166쪽에 달한다.
ⓒ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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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개인정보가 그런 상황에서도 보호되어야 할까? 누구에게 칼을 파는 것이 은밀한 일도 아니고 명예를 훼손당할 일도 아니다. 물론 개인정보는 그런 위험까지 미리 예방하기 위해 정보주체가 개인정보를 '소유'한 것으로 간주하는 디폴트(default)규칙을 만들자고 나온 개념이긴 하다.

하지만 그건 디폴트일 뿐 절대적인 것이 아니다. 판결문이 공개되어야 할 정치적·경제적· 인권적 이유는 차고 넘친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잘못을 하고 용서를 받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재판도 그런 여러 길 중에 하나다. 누군가의 정보가 그 사람과의 상의 없이 들어있다고 해서 판결문을 공개하지 못한다면 세상의 언론사는 모두 문을 다아야 할 것이다. 사람은 관계 속에서 살아간다. 그 관계를 통한 정보의 흐름을 차단하려는 모든 자유를 인정해주려는 것이야말로 가장 극우적인 형태의 자유지상주의(libertarianism)이다.

법원 관계자가 그런 말을 했다. "재판을 한 번이라도 받아본 사람들은 판결문에 드러난 자신의 창피스러운 점들 때문에 공개 반대할 것"이라고. 그래서 "국민을 위해서" 판결문 공개를 안 하는 거란다. 의료보험도 아프지 않은 사람들은 반대한다. 돈 많은 사람들도 반대한다. 두 그룹 다 의료보험이 주는 혜택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 모두를 위해 의료보험료를 지급한다. 의료보험이 없으면 생명을 구해줄 치료를 받지 못할 수도 있는 사람을 위해서 말이다.

판결문 공개도 재판을 이미 거친 사람은 필요 없을지 모르지만 장래에 재판을 치를 사람 또는 재판을 피하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너무나 큰 가치가 있다. 나에 대한 정보가 다른 사람들에게 얼마나 필요하든 (또 재판을 통해 이미 공개되었든 말든) 나에 대한 정보는 내 맘대로 하겠다는 것이나 나는 아프지 않거나 돈이 많으니 의료보험 반대하는 것이나 개인주의이고 자유지상주의이다.

우리 모두 우리 모두를 위해 의료보험료 한 푼 내는 것처럼, 우리 모두 우리 모두를 보호하는 제대로 된 사법감시와 민주적 사법을 위해 자기에 대한 판결문 공개를 허락하자.

덧붙이는 글 | 글쓴이 박경신씨는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이자 사단법인 오픈넷 이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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