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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무엇을 듣고 있을까?
 나는 무엇을 듣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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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옆집 어르신 집에 벨을 눌렀다.

"안녕하세요. 과일 조금 가져왔어요."

지난 설에 받은 페루 망고가 많아서 드리고 싶었다.

"아유. 뭘 이런 걸 가져왔어요. 젊은 부부가 마음씨도 고와라."

적당히 인사하고 돌아설 생각이었는데 어르신은 계속 말을 이어가셨다.

"항상 느끼지만 둘이 웃으니까 너무 보기 좋아요. 아무리 힘들어도 웃으면서 살아야 돼. 그 뭐냐 요즘 젊은 사람들 뭐라고 하더라... 흙수저? 금수저? 그런데 흙수저든 금수저든 자기 처지를 감사하고 살아야 돼요. 그러면 복이 따라와요. 그렇죠? 호호호."

나는 멈칫했다. 차마 맞장구 칠 수 없었다. '같은 흙수저끼리 왜 이러세요?'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참았다. 가까스로 어르신의 말씀을 다 듣고 헤어졌다. 나는 아내에게 분통을 터뜨렸다.

"흙수저인 것도 감사하라고? 태어날 때부터 수저가 다른데 어떻게 감사하지?"

타고난 빈부격차를 감사하며 살 수 있는 비결은 별로 배우고 싶지 않았다. 어르신의 지혜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2
지난 설에 부모님께 세배를 드렸다. 아버지께서는 빨리 취업하라며 덕담을 건네셨다.

"요즘 젊은 애들은 힘든 일은 안 하려고 해. 인력 시장 가보면 일이 널렸어. 근데 젊은 사람 있는 줄 알아? 없어. 편한 일만 찾으면 언제 취업하려고..."

나뿐만 아니라 애꿎은 젊은이들에게도 덕담(?)을 해주셨다. 나는 할 말이 많았지만 적당히 듣기만 했다. '얼마 전까지 공무원 하라고 한 사람이 누군지, 세상에 편한 일이 과연 존재하는지, 기준이 높은 게 아니라 높은 기준을 요구하는 세상은 아닌지' 속으로 생각했다. 나는 말하지 않고 한동안 듣고만 있었다. 아버지께서는 요즘 젊은 사람들을 잘 알고 계신 듯했다. 그런데 누구를 만난 걸까? 만난 적은 있을까?

공감받을 때 어른들의 조언을 경청하기 시작한다.
 공감받을 때 어른들의 조언을 경청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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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하고 공감하는 어른이 그립다

내 나이 서른 넷이다. 8년 동안 대학생들을 만나는 일을 했다. 일하면서 대학생들이 싫어하는 어른들의 태도를 알게 되었다. 학생들은 자신의 말만 하는 어른을 힘들어 했다. 바꿔 말하면, 질문하지 않는 어른이다.

안타깝게도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수들 중에 그런 사람이 많았다. 간담회에서 자신의 이야기만 하다가 끝난다. 학생들은 적당히 비위를 맞춘다. 한 번은 나도 남자 교수와 식사한 적이 있다. "나는 대학생 때"라는 말로 시작해서 자기의 인생을 나열하다가 식사시간이 끝나 버렸다.

위에 나온 옆집 어르신도 나에게 질문하지 않는다. 어르신은 종종 집에 찾아와 자기가 믿는 종교에서 나온 신문을 읽어준다. 밑줄까지 그어 오신 정성에 현관문 앞에서 5분 동안 듣는다. 그분은 우리가 다른 종교를 믿는다는 걸 알고 있다.

아버지는 가끔 질문하신다.

"앞으로 직장은 어떻게 할 거냐?"
"아기는 언제 나을 거냐?"
"지금 살고 있는 전셋집에 계속 살 거냐?"

새로울 것이 없는 질문이다. 오랫동안 들어왔다. 내 이야기를 진중하게 하기도 어렵다. 반대로 어른들에게 감히 여쭙고 싶다. 34살에 그런 답을 다 가지고 있었는지. 고민 없이 아기를 낳으셨는지. 돈을 모으는 게 모두가 추구하는 행복이라고 어떻게 확신하는지.

우리나라는 어른에게 발언권이 몰린다. 나이가 많은 사람이 말하기 쉬운 문화다. 나이가 어린 사람은 자기 검열을 하며 이야기한다. 그들은 질문을 받아야 말할 수 있다. 거창한 질문을 원하는 게 아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물어봐야 한다. 누구나 나이가 많아지면 내가 옳다는 확신이 굳어진다. 그래서 어른이 될수록 나와 다른 존재에 대한 경험이 필요하다. 그 낯선 경험이 건강한 확신을 가지도록 돕는다.

정직한 어른이 그립다. "나도 너 나이 때 많이 몰랐어. 천천히 배우면 돼. 나도 처음엔 힘들더라." 이런 말을 할 줄 아는 어른을 보고 싶다. 본인의 서툴렀던 과거를 고백하며 젊은 세대를 공감해 준다면, 젊은 세대들은 자신의 서투름을 말하고 어른들의 조언을 경청하기 시작한다.

점점 대학생들은 성공담이 아니라 실패담에 위로를 얻는다. '나도 저렇게 잘 살 수 있다'는 신화는 무너지고 있다. 오히려 '누구나 실수하며 산다'는 말이 힘을 준다. 토크 콘서트에서는 미숙한 너와 나를 발견하며 공명한다.

인생을 성실하게 책임지는 어른도 있다. 그들은 취업, 출산, 육아, 집 문제를 능숙하게 해결하는 것처럼 보인다. 인생철학도 뚜렷해서 요동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많지 않은가?

나는 여전히 어른이 되어가고 있다. 아침에 일어나 이불 개는 습관을 가지기까지 30년이 걸렸다. 남이 주는 밥만 먹다가 27살 때 처음 어묵 볶음을 만들어봤다. 그전에는 라면밖에 할 줄 몰랐다. 자취와 결혼을 거치며 인생을 책임지는 방법을 조금씩 배우고 있다. 나만의 인생철학을 만들어가는 중이다.

짐작하건대, 대부분의 어른들이 그렇게 조금씩 자라지 않았을까? 나도 정직한 어른이 되고 싶다. 지금의 미숙함을 잘 기억해두고 공감해줄 수 있는 어른으로 자라길 원한다. 그렇다면 기성세대와 젊은 세대가 조금 더 연결될 수 있지 않을까?


태그:#질문, #공감, #정직, #세대갈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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