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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 12. 9. 일본 미 해군기지에서 한국으로 가는 군함에 군수물자를 가득 싣고 있다.
 1950. 12. 9. 일본 미 해군기지에서 한국으로 가는 군함에 군수물자를 가득 싣고 있다.
ⓒ NA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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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6월 25일 일요일 새벽, 먼동과 함께 북위 38선 일직선에서 울려 퍼진 포성과 탱크 캐더필러소리로 시작한 한국전쟁은 마침내 1953년 7월 27일 구불구불한 원한의 군사분계선(휴전선)에서 멈췄다. 3년 남짓, 1129일간 지루하게 계속된 한국전쟁은 승자도 패자도 없는 '끝나지 않은 전쟁' '잠시 쉬는 전쟁'으로 일단 그 막을 내렸다.

한국전쟁은 세계 전쟁사에 그 유례를 찾기 어려운 동족상잔의 참혹한 전쟁으로, 그 피해는 피아 150만 명의 전사자와 360만 명의 부상자를 양산했고, 1000만 명 이상의 이산가족을 만들었다. 포성이 멈춘 한반도 전역은 초토화돼 도시와 마을은 온통 잿더미였다.

미국은 한반도의 잿더미 위에서 군수산업의 호황을 누렸다. 20세기 제1의 뉴딜(New Deal)정책에 이어 한국전쟁은 제2 국가부흥의 계기가 된 것이다. 그 결과 미국은 세계 초 군사강대국의 지위를 누릴 수 있었다. 또한 일본은 태평양전쟁 패전으로 빈사 상태에 놓였지만, 한국전쟁을 계기로 경제부흥의 기회를 잡았다. 일본 입장에서 한국전쟁은 '신이 내린 선물'이었다. 이번 25회에서도 한국전쟁 중, 치열했던 전투 사진을 골라 게재한다. - 기자 말

융단폭격

유학산 정상 839고지는 대구가 빤히 바라보이는 중요한 지형이라 유엔군 측은 이곳을 결코 포기할 수 없었다. 839고지 쟁탈은 곧 다부동전투의 승패를 가름했다. 왜관에서 다부동에 이르는 다부동전선은 대구와 부산을 점령하려는 인민군의 주공선인 반면, 유엔군에게는 그곳을 지키는 주저항선이요, 최후의 보루였다.

유엔군은 8월 15일 전투에서 유학산 고지를 인민군에게 빼앗기자 미8군사령부에 급히 항공 지원을 요청했다. 지원 요청에 따라 미8군사령부는 이튿날인 8월 16일 정오 전후로 낙동강전선 전방지역에 융단폭격을 실시한다는 작전계획을 내려 보냈다.

융단폭격은 대상을 가리지 않는 무차별 폭격으로, 이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연합군이 노르망디 상륙작전에 앞서 프랑스 해안에 쏟아부은 대폭격 작전의 원용이었다. 이날 오전 11시 58분부터 오후 12시 24분까지 26분 동안 왜관 약목 구미 일대(폭 5~6km, 거리 12km) 폭격지점에 B-29 폭격기 5개 편대 98대가 약 960톤의 폭탄을 마구 쏟았다. 그러자 그 일대는 삽시간에 지축이 흔들리는 듯 폭풍의 불바다로 변했다.

피폭 지점 일대는 폭음과 폭풍 그리고 검은 연기와 파편으로 하늘조차 뿌옇게 가려졌다. 그런데 폭탄이 떨어진 곳은 인민군 진지뿐만 아니었다. 무차별적으로 투하한 폭탄이라 인민군 진지 외 장소에 더 많이 떨어졌다. 그러다 보니 인민군 못지않게 민간인들과 피란민의 피해도 매우 컸다.

유엔군은 융단폭격이 끝나자 전날의 패배를 만회하기 위해 대반격 작전을 펼쳤다. 그날 국군 1사단 13연대는 수암산 건너편 328고지를 다시 빼앗았고, 1사단 12연대는 다부동까지 침투한 적을 밀어낸 뒤 유학산 8부 능선까지 탈환했다. 또 1사단 11연대도 가산고지를 되찾았다.

낙동강 방어와 유학산 정상 839고지를 둘러싼 '다부동전투'는 한국전쟁 중 가장 격렬한 전투로 기록됐다. 1950년 8월 초순에 시작해 그해 9월 24일에 끝났다. 50여 일의 전투 기간 동안 유엔군 1만여 명, 인민군 1만7000여 명이 죽거나 다쳤다. 이 기간 중 유학산 839 고지의 주인은 아홉 차례나 바뀌었다. 유학산 능선과 골짜기는 시체로 산을 이루고, 전사자의 피로 시내를 이루게 됐다. 문자 그대로 '시산시해(屍山屍海)'의 전투였다.

전선 곳곳에는 피아 병사들의 시체가 산더미로 뒤덮였다. 날마다 전투가 끝나면 까마귀 떼가 날아와 사람의 시체를 마구 뜯어먹었는데 누구 한 사람 쫓는 이도 없었다. 날이 갈수록 많은 병사들의 시체가 뽕잎 채반의 누에처럼 널브러진 채 유학산 일대를 뒤덮었다.

1951. 7. 10. 조치원, 한 유엔군 트럭이 불타고 있다.
 1951. 7. 10. 조치원, 한 유엔군 트럭이 불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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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 9. 유엔군 전차가 서울 시가지로 진입하고 있다.
 1950. 9. 유엔군 전차가 서울 시가지로 진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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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1. 7. 22. 청진, 미 군함이 동해에서 북한진지를 향해 맹렬히 함포 사격하고 있다.
 1951. 7. 22. 청진, 미 군함이 동해에서 북한진지를 향해 맹렬히 함포 사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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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 10. 미 해병대들이 전투 중에 생포한 포로들을 논길로 인솔하고 있다.
 1950. 10. 미 해병대들이 전투 중에 생포한 포로들을 논길로 인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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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1. 1. 3. 서울 북쪽 10마일 지점에서 유엔군들이 후퇴하고 있다.
 1951. 1. 3. 서울 북쪽 10마일 지점에서 유엔군들이 후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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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3. 2. 7. 철원, 박격포 진지에서 전방으로 지원사격을 하고 있다.
 1953. 2. 7. 철원, 박격포 진지에서 전방으로 지원사격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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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1. 10. 28. 거듭되는 포화로 나무도 풀도 제대로 자라지 못한 802고지
 1951. 10. 28. 거듭되는 포화로 나무도 풀도 제대로 자라지 못한 802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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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3. 1. 4. 최전방 참호와 교통호.
 1953. 1. 4. 최전방 참호와 교통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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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 10. 21. 미 해군함정이 청진항을 향해 함포사격을 하고 있다.
 1950. 10. 21. 미 해군함정이 청진항을 향해 함포사격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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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 10. 26, 원산에 상륙하는 유엔군 함정들.
 1950. 10. 26, 원산에 상륙하는 유엔군 함정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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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 11. 30. 장전호전투에서 유엔군이 몰아닥친 한파로 보급품을 낙하산으로 투하하고 있다.
 1950. 11. 30. 장전호전투에서 유엔군이 몰아닥친 한파로 보급품을 낙하산으로 투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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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여기에 수록된 사진 이미지들은 눈빛출판사에서 발간한 박도 엮음 <한국전쟁 ‧ Ⅱ>에 수록돼 있습니다.



태그:#한국전쟁,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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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은퇴 후 강원 산골에서 지내고 있다. 저서; 소설<허형식 장군><전쟁과 사랑> <용서>. 산문 <항일유적답사기><영웅 안중근>, <대한민국 대통령> 사진집<지울 수 없는 이미지><한국전쟁 Ⅱ><일제강점기><개화기와 대한제국><미군정3년사>, 어린이도서 <대한민국의 시작은 임시정부입니다><김구, 독립운동의 끝은 통일><청년 안중근>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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