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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보면 정서적으로 여유가 있는 사람을 만나곤 한다. 다른 사람에게 적당히 베풀 줄 알고, 여유가 있어서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도 안정을 주는 그런 사람 말이다. 그들은 자존감이 높아서 딱히 심한 열등감을 느끼지도 않고, 외적 자극이 있어도 자신의 자아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살아간다. 외적 자극에 흔들리지 않는 평정심과 나름의 인생관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

반면 객관적으로 보았을 때 경제적인 문제가 거의 없는데도 불안이나 집착을 느끼는 사람도 있다. 특별히 외적인 문제는 별로 없어 보이지만 이상 행동을 보이도 한다.

심리학자인 최성애 교수는 이런 문제를 '애착 손상'이라는 개념을 가지고 설명한다. 어렸을 때 적절하게 가족과 애착을 형성하지 못한 사람들 중에는 부모와의 정서적 유대감 결핍으로 인해 애착손상이라는 후유증을 앓는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 그러나 화목한 가정에서 가족과 안정된 애착을 형성하면 좋은 인간관계를 맺고 살아갈 수도 있다.

정서적 흙수저와 정서적 금수저
 정서적 흙수저와 정서적 금수저
ⓒ 최성애,조벽,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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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성애 교수가 자신의 애착에 관한 이론을 알기 쉽게 풀어 쓴 책이 <정서적 흙수저와 정서적 금수저>다. 책의 제목이 다소 자극적이다. 흙수저와 금수저라는 표현을 사용해서 수저론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 눈에 띄도록 하기 위함이었을까. 다행히 책의 내용은 자극적이지 않고, 대중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다.

책의 주제이자 저자가 힘주어 말하고 싶은 것은 '애착의 중요성'이다. 이 책은 한 아이가 자라나서 정서적으로 문제가 없는 성인이 되기까지의 기간 동안 애착이 가지는 중요성에 대해 말한다.

저자에 따르면, 부모나 자신의 주위 사람들에게 적정한 애착 관계를 형성한 사람들은 성인이 되어서도 큰 문제를 겪지 않지만, '애착 손상'을 겪은 아이는 인간 관계를 회피하거나, 인간 관계를 두고 혼란을 겪을 가능성이 있다.

우리나라에는 애착 손상이 다소 낯선 개념이다. 저자가 설명하기를, 부모가 억압적이거나, 자녀를 방치하거나 학대할 때 아이가 애착 손상을 입는다고 한다. 성적이나 성과에 따라 조건부 사랑을 주거나, 부모 간의 갈등으로 아이에게 사랑을 주지 못하면 자녀는 애착에 손상을 입는다. 여기에 더해 부모로부터 외면당하거나, 거부당하면 사람에 대한 믿음이 낮아진다. 결국 불신, 불안, 두려움 등 부정적 감정이 생기며 부정적 생각 패턴이 발생할 수도 있다.

무서운 점은 애착 손상이 생긴 본인도 자신의 애착 손상을 모를 수 있다는 것이다. 애착손상은 학대처럼 겉으로 드러나는 게 아니기에, 애착 손상을 입은 이들이 자신의 문제를 모를 수도 있다는 것이 저자의 견해다. 다만, 애착 회복은 어릴수록 잘 되지만 나이가 든 후에도 가능하다고 하니, 심리치료로 증상을 완화시킬 수 있다고 한다.

여기까지 설명을 들으면, 부모와 자녀사이에 애착이 중요하다는 사실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다. 너무 당연한 이야기라 도움이 안 될 수 있다는 반론이 있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놀랍게도, 이런 이야기는 예전에 당연하지 않았다고 한다. 서양에는 한때 아이를 냉정하고 엄격하게 권위적으로 다루는 육아법도 있었다고 한다.

오늘날의 한국에서는, 이혼이 증가하고 아이를 사교육 시설에 맡기는 시간이 점점 늘면서 애착 문제는 점점 악화된다. 아이가 부모와 가까운 거리에서 애정을 느끼지 못하고 계속해서 바깥만 돌은 결과로, 그들의 마음도 안정된 관계를 유지하지 못하는 것이다. 

여기에 지나치게 많은 근로시간으로 인해 자녀와 있을 시간이 없는 부모들의 안타까움이 더해진다. 부모들은 자녀와 대화를 할 시간 자체가 절대적으로 부족하고, 이는 아이들이 심리적 거리를 멀게 느끼게 만든다.

안타깝게도, 부모가 잘못된 애착 관계를 형성해서 감정적인 문제를 겪는 경우, 자식이 부모와 같은 애착 관계를 가질 확률이 있다고 한다. 부모에게도 나름의 어려움이 있고 이에 따른 어쩔 수 없는 사정도 있지만, 어린 아이가 이런 문제까지 이해하는 일이 쉽지가 않다.

저자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부모가 최대한 자녀와 애착을 가져야한다고 말한다. 부모가 자녀를 키우는 데에 있어 자신들의 시간을 어떻게 분배할 것인지, 육아는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합의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아이를 키우기 위해 적절한 환경이 마련될 수 있도록 사회와 국가도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저녁이 있는 삶이 이루어질수록 애착을 형성하기 쉽다. 국가는 부모와 아이가 가까운 관계를 가질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지원해야 한다. 가화만사성이 건강한 사회의 근본이 되기 때문이다.

"애착의 관점에서 보면 부모가 화목하고 다정한 정서적 환경은 아이가 부모 양쪽과 안정적인 애착을 형성할 수 있는 기본 토대입니다. 체계론적 가족 치료사인 살바도르 마누친 박사에 의하면, 가족의 기본 하위 구조인 부부가 서로 안정적인 애착 관계를 이뤄야 자녀가 부모로부터 받는 애정과 지지를 통합하면서 성장할 수 있고, 훗날 기능을 제대로 하는 건강하고 화목한 가정을 이룰 확률이 높다고 합니다. 이 모든 연구 결과를 요약한다면 한 마디로 '가화만사성'입니다." - 232p

물론 이런 노력에는 부모가 쏟아야 할 노력이 많다. 사회와 국가의 지원에도 비용이 든다. 하지만 저자는 적절한 애착을 형성하지 모한 이들이 성장해서 겪는 문제로 인한 비용을 생각하면 어릴 때 지원하는 것이 옳다고 한다.

나중에 나이가 들어서 일탈, 탈선으로 인해 겪는 본인의 고통과 사회적인 문제들은 개개의 이유가 있겠지만 근본적으로는 심리적인 원인에 있을 수 있다. 정서적 빈곤은 개인과 가족 차원의 불행에 그치지 않으며, 학교폭력처럼 자신 주변에 피해자를 양산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국가와 사회가 발 벗고 나서는 것이 옳다는 것이 저자의 지론이다.

어린 시절의 안정적인 애착 형성은 작게는 개인의 기쁨이지만, 크게는 사회와 국가에도 영향을 끼친다. 어린 시절의 관계와 애착에 대해 의문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읽고 자신의 삶에 대한 보충 설명을 받을지도 모른다.

저자는 이 책을 읽고 독자들이 우울함을 느끼는 대신, 이제라도 좋은 애착 관계를 맺겠다고 스스로에게 단단히 약속하길 바란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정서적 지지와 배려를 베푸는 사람이 되도록 만드는 것을 저자가 바란다고 하니, 저자의 바람이 이뤄지길 빈다.


정서적 흙수저와 정서적 금수저 - 최성애.조벽 교수가 전하는 애착 심리학

최성애.조벽 지음, 해냄(2018)


태그:#심리, #정서, #애착, #인간관계, #어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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