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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엇이 보이는가. 두 눈? 콧구멍?
 무엇이 보이는가. 두 눈? 콧구멍?
ⓒ 김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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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호학 강의를 할 때마다, 나는 학생들에게 검은 점 두 개를 보여준다. 아무 의미 없이 나란히 찍힌 점, 학생들은 여기서도 의미를 찾아낸다.

"사람 눈으로 보여요."

가장 흔한 답변이다. 다른 학생이 손을 번쩍 들고 말한다.

"콧구멍 같은데요?"

학생들이 웃는다. 내가 당부한다. 아무 의미 없는 점일 뿐이니, '눈'이나 '콧구멍'이 아닌, '있는 그대로의 점 두 개'로 보라고 말이다. 물론 불가능한 주문이다. 사람의 뇌는 무의미한 형태에서조차 유의미한 대상을 찾아내기 때문이다. 

하늘에 뜬 구름, 벽에 진 얼룩, 칠판 지우개가 훑고 지나간 자국을 들여다 보라. 예상치 못한 기묘한 형태가 떠오르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형상이 특정 대상과 닮았을 때, 우리는 거기에 각별한 의미를 부여한다.

2004년, 플로리다의 한 중년여성이 토스트를 베어먹다가 소스라치게 놀랐다. 빵 위에서 누군자 자기를 쳐다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성모마리아를 닮았다는 이 '기적의 토스트'는 인터넷 경매사이트 이베이에서 2만8000달러(약 3000만 원)에 팔렸다.

 미국에서 약 3천 만 원에 팔린 '성모 마리아' 샌드위치.
 미국에서 약 3천 만 원에 팔린 '성모 마리아' 샌드위치.
ⓒ 공개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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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을린 빵을 '성화'로 인식하려면 꽤 많은 상상력을 쏟아부어야 한다. 왜 그 얼굴이 앞집 여학생이나 옆집 아주머니가 아닌 '성모 마리아'일까? 게다가 얼룩을 들여다 보면 다양한 형체를 볼 수 있다.

피자 조각을 물어 뜯는 꼬마 모습 같기도 하고, 턱에 묻은 음식물을 소매로 훔치는 젊은 여성 같기도 하며(중국집에 강림한 마리아?), 검은 수염난 남자의 옆모습(하품하는 예수?) 같기도 하고, 심지어 멱살잡고 싸우는 두 사람으로 보이기도 한다.

점 두 개는 단순해서 의미부여에 한계가 있지만, 이것들을 조금만 찌그러뜨려도 해석의 여지는 거의 무한해진다. 심리검사를 위한 잉크얼룩도 같은 방식으로 작동한다.

이렇게 점 두 개로 한 시간 토론을 할 수 있지만, 최근 한국 정치인 두 명이 흥미진진한 추가 수업자료를 제공해줬다. 이들은 평창에서 '평양'을, 미남 가면에서 '김일성'을, 대낮에 '칠흑같은 어둠'을 보는 희귀한 학술 사례다. 

나는 이것을 '빨갱이 기호학' 또는 '종북 심리학'으로 부르고자 한다.

'복순이'에게 마음 빼앗긴 김일성? 

 무엇을 보는지는 보는 사람의 머리에 달려 있다.
 무엇을 보는지는 보는 사람의 머리에 달려 있다.
ⓒ 강인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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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사자인 바른미래당 하태경 의원과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에게 검사지를 보여주는 것으로 시작하자. 위 그림에서 무엇이 보이시는가?

심리검사에 쓰는 잉크 얼룩은 아무런 의미도 담고 있지 않다. 피검사자가 머리 속에서 불완전한 형태를 이어붙여 자신만의 형상을 그려낼 뿐이다. 검사지는 보는 사람의 생각을 비추는 거울이며, 흥미롭게도 평창올림픽과 북한 응원단이 검사원의 역할을 해줬다.

지난 10일, 평창 동계올림픽 여자 아이스하키 조별 예선경기에서 북한 응원단이 <휘파람> 노래를 부르먼서 남자 가면을 쓰는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노컷뉴스>가 이것을 별생각 없이 '김일성 가면'이라고 보도한 뒤, 하태경 바른미래당 의원은 페이스북을 통해 문재인 대통령을 비난하기 시작했다. 

"북한 응원단이 대놓고 김일성 가면 쓰고 응원하네요. 여기는 평양올림픽이라고 생각하는 거죠. 문 대통령이 그 현장에 함께 있었는데도 김일성 가면 응원을 하지 않았습니까? 문 대통령을 호구로 생각하지 않았다면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이후 해당 언론사가 오보라고 사과하고 기사를 삭제했으나, 하태경의 확신은 바뀌지 않았다. 얼마 후 전문가들이 나서서, '북한에서 추앙받는 김일성의 가면을 만들어 눈에 구멍까지 뚫을 리 만무하다'고 밝혔으나, 그는 '김일성 젊은 시절 모습이 확실하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궁금해진 나는 노래의 가사를 찾아보았다.

북측응원단 '가면' 앞뒤 모습은? 10일 오후 강원도 강릉 관동하키센터에서 열린 2018 평창동계올림픽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 1차 예선경기에서 북측응원단이 참석해 '가면'을 이용해 응원을 펼치고 있다. 가면에는 앞을 볼 수 있도록 눈동자 부분에 구멍이 뚫려 있으며, 뒷면에 손잡이가 붙어 있다.
▲ 북측응원단 '가면' 앞뒤 모습은? 10일 오후 강원도 강릉 관동하키센터에서 열린 2018 평창동계올림픽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 1차 예선경기에서 북측응원단이 참석해 '가면'을 이용해 응원을 펼치고 있다. 가면에는 앞을 볼 수 있도록 눈동자 부분에 구멍이 뚫려 있으며, 뒷면에 손잡이가 붙어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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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순이네 집 앞을 지날 땐 이 가슴 설레어~
나도 모르게 안타까워라 휘파람 불었네~
……
복순이도 내 마음 알리라 알아~주리라~
휘휘휘 호호호....... 휘휘휘 호호호........"

그러니까, 하태경 의원은 이 노래를 '김일성과 복순이의 사랑가'로 보고 있는 것이다. 한국에서도 비슷한 노래를 부르면서 박정희나 이승만 가면을 쓰고 고개를 좌우로 흔들면 보수세력이 흐뭇해 할까? 문제의 가면도 다시 봤지만, 전혀 김일성 얼굴로 보이지 않았다. 내 반공의식이 빈약할 탓일까, 아니면 당사자에 대한 애정이 부족해서일까? 

'김일성 가면' 구글 이미지 검색해 보니

북한 전문가도 못 바꾼 하태경의 아집을 내가 바꿀 수는 없을 터이기에, 중립적으로 판단해 줄 '제3자'가 필요할 듯했다. 마침 그가 '4차산업혁명'의 열렬한 지지자라는 사실을 기억해 내고는, 구글 알고리즘의 판단에 맡겨보기로 한다. 구글에는 사진을 분석해 비슷한 이미지를 검색해주는 기능이 있다.

크고 선명하게 나온 가면 사진을 찾아 검색 창에 넣고 결과를 기다렸다. 드디어, '닮은꼴'로 여러 개의 사진이 뜬다. 그 가운데 김일성 사진은 하나도 들어있지 않다. 그대신 엉뚱하게, 아주 잘 생긴 케이팝 가수의 얼굴이 첫 번째로 떠오른다. 

이 놀라운 결과를 두고 나는 당황한다. 하태경 의원을 비웃어야 할지, 국정원으로 대공상담 전화를 넣어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는 것이다.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케이팝조차 '종북'의 온상이 됐단 말인가.

기호적 관점에서 보면, 편집증은 여러 대상에서 일관되게 하나의 의미만 부여하는 증상이다. 태극기를 형상화한 국가대표 유니폼에서 '인공기'를 보고, 제 나라에서 열리는 올림픽이 '평양올림픽'으로 보이고, '아이돌 가수' 닮은 곱상한 얼굴에서 '김일성'을 보는 등, '모든 길이 북한으로 통하는' 증상을 예로 들 수 있다.

 국가보안법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30년 가까이 검찰 창고에서 망가진 신학철 화백의 <모내기>. '자유민주주의 수호'를 빙자한 편집증적 반공주의가 어떻게 자유민주주의를 파괴하는지를 보여준다. 위 이미지는 신 화백이 1993년 다시 그린 그림. 아래 이미지는 1989년 압수 후 되돌려받은 <모내기>.
 국가보안법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30년 가까이 검찰 창고에서 망가진 신학철 화백의 <모내기>. '자유민주주의 수호'를 빙자한 편집증적 반공주의가 어떻게 자유민주주의를 파괴하는지를 보여준다. 위 이미지는 신 화백이 1993년 다시 그린 그림. 아래 이미지는 1989년 압수 후 되돌려받은 <모내기>.
ⓒ 신학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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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공 편집증'은 한국 사회가 오랫동안 앓아온 고질적 질병이기도 하다. 최근 검찰 창고에서 국립현대미술관 창고로 옮겨진 그림이 있다. 신학철 화백이 1987년 통일미술전에 출품했던 <모내기>라는 작품이다. 검찰은 1989년 그림을 빼앗아 압수물 보관창고에 30년 가까이 처박아놨다.

게다가 작품을 신문지처럼 접어서 방치한 탓에 군데군데 탈색 되고, 금이 가고, 캔버스에서 물감이 떨어져 나갔다. 신학철 화백이 1993년에 다시 그린 윗그림과 비교해 보면, 그림이 얼마나 처참하게 망가졌는지 알 수 있다.

그림이 미술관에 걸려 관객과 만나는 대신 검찰청 창고에서 먼지를 맞고 있던 까닭은, 검찰이 그림에서 '북한 찬양'을 봤기 때문이다. 검찰은 작가를 국가보안법으로 기소한 뒤, '호숫가의 초가집이 김일성 생가가 아니냐' '왜 위쪽(북한) 사람들은 잘 먹고 노는데 아래쪽 사람(남한)은 왜 힘들게 일만 하느냐' 따위의 질문을 던졌다고 한다.

꽃이 핀 초가집에서 '김일성 생가'를 보고, 잘 생긴 남자의 얼굴에서 '김일성'을 보는 게 한국 우익의 과거와 현재다.

하태경, <노동신문> <조선중앙TV> 전면 개방하라더니

1980년대 학생운동 이력을 자랑하던 하태경 의원은 30년 세월을 건너뛰어 공안검사의 자리로 옮겨앉은 꼴이 됐다. 하지만 그의 정치적 행보는 상황에 따라 편리하게 바뀐다.

"한물 간 빨갱이 장사 계속하면 보수 폭망한다."

지난해 6월 홍준표가 한국당 당대표 경선에 나서면서 "이 나라가 주사파 운동권들의 세상이 됐다"라고 포효하자, 하태경 의원이 쏟았던 비난이다. 더 나아가 그는 '종북몰이 보수' 청산을 위해 북한의 <노동신문>과 <조선중앙TV>를 국민에게 전면 개방해야 한다'고까지 말했다. 

"<노동신문>과 <조선중앙TV>를 자유롭게 볼 수 있도록 북한 정보를 개방하면 북한이 21세기에 안 맞는다는 걸 알게 되고, 오히려 안보의식이 강화된다. 몸 안에 항체가 생기려면 바이러스가 조금 들어와야 한다."

 북한 응원단을 구성했던 하태경 의원.
 북한 응원단을 구성했던 하태경 의원.
ⓒ TV조선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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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롭게도 그는 2014년에 주도적으로 나서서 북한팀 응원단을 꾸리기도 했다. 당시 새누리당(현 한국당) 의원들 20여 명이 대형 인공기가 펄럭이는 경기장에서 '북한 승리'를 외쳤다. 당시 흐뭇한 표정으로 이 사실을 다뤘던 종편 TV조선 보도 내용을 보자. 

"새누리당 의원 20여 명이 여차축구 결승전에 진출한 북한팀을 응원하기 위해 경기장을 찾았습니다. 의원들은 '우리는 하나다'라는 문구가 새겨진 현수막을 들고 '북한팀의 승리'를 외쳤습니다. 응원단 모집을 제안한 새누리당 하태경 의원은 '북한여자응원단 방문 취소에 대한 아쉬움과 안타까움을 달래기 위해 응원단을 만들었다'며 북한과의 관계개선 의지를 보였습니다." 

하태경 의원의 태도는 편집증적이면서 동시에 분열적이기도 하다.

지금이 'Darkest Hour'라는 홍준표

지난 1월, 홍준표 대표는 어린이가 통일 그림에 인공기를 그렸다며 '대한민국 안보불감증'을 맹비난했다. 이때 하태경 의원은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는 종북 피해망상증 환자"라면서 "어린이 그림까지 빨갱이에 이용하는 게 제정신이냐"라고 반박했다. 하지만 지난 한달 사이 두 사람은 구분하기 어려울만큼 가까와졌다. 

하태경 의원이 '김일성 가면' '김여정 임신 5개월' 따위를 말할 때, 홍준표는 '평창올림픽을 평양올림픽으로 만들었다'는 주장을 되풀이했다. 그리고 홍 대표는 며칠 뒤 페이스북에 "한국은 지금 Darkest Hour(가장 어두운 시간)"라고 썼다. "정치 인생 23년을 거쳤지만 나는 이런 정권은 처음 본다"라며 "김대중·노무현 정권도 이렇게 까지 후안 무치하고 무지막지 하지 않았다"라고도 했다.

홍준표의 23년 기억 속에는 김대중과 노무현 정부만 들어있는 모양이다. '편리한대로 사고하는' 하태경 의원과의 또다른 공통점이 발견되는 순간이다. 어쩌면 이명박·박근혜 정권은 정권 취급도 하지 않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이명박·박근혜 시절이 지금보다 밝았다고 믿고 있을까? 아니면 정말 어두운 세상에 익숙해 있다 보니, 이제 눈이 부셔 잘 보지 못하는 것일까?

골인에 환호하는 새누리당 의원-북한 응원단 북한 여자축구대표팀의 라은심이 1일 오후 인천 문학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14 인천아시아경기대회' 여자축구 일본과의 결승전에서 후반 52분 두번째 골을 성공시키자, 경기장을 찾은 새누리당 의원과 북한 응원단이 기뻐하며 축하해주고 있다. 이날 응원전에는 김명연, 황인자, 류지영, 김을동, 윤명희, 조명철, 염동열, 이한성, 박대동, 장윤석, 조해진, 김영우 의원 등이 참여했다.
 2014년 10월 1일 인천 아시안게임 북한 대 일본 여자 축구 결승전 당시. 북한 여자축구대표팀의 라은심이 후반 52분 두번째 골을 성공시키자, 경기장을 찾은 새누리당 의원과 북한 응원단이 기뻐하며 축하해주고 있다. 이날 응원전에는 하태경 의원도 참여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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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실베니아주립대(베런드칼리지)에서 뉴미디어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몰락사>, <망가뜨린 것 모른 척한 것 바꿔야 할 것>, <나는 스타벅스에서 불온한 상상을 한다>를 썼고, <소셜네트워크 어떻게 바라볼까?>와 <미디어기호학>을 한국어로 옮겼습니다. 여행자의 낯선 눈으로 일상을 살고자 합니다.

오마이뉴스 정치부 기자입니다. 조용한 걸 좋아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