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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울공동체에서 제작 기록한 영상 "굿바이, 인계동 10구역: 안녕, 우리들의 골목길" 이 수원영상미디어센터에서 상영되었다.
▲ 굿바이, 인계동 10구역! 다울공동체에서 제작 기록한 영상 "굿바이, 인계동 10구역: 안녕, 우리들의 골목길" 이 수원영상미디어센터에서 상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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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개발이란 과정에서 남아 있는 아쉬움들이 치유될 수 있길 바라며 이 영상을 남기게 되었어요."

사라질 날이 머지않은 수원시 인계동의 골목과 사람을 기록한 영상 "굿바이, 인계동 10구역 '안녕, 우리들의 골목길'"이 지난 9일 수원 영상미디어센터에서 상영되었다. 제작을 주도한 다울영상제작단의 송은정씨는 "이런 치유야 말로 재개발에서 놓치지 말고 꼭 다뤄야 할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며 영화보다 더 진했던 영상의 가치를 전했다.

'안녕, 우리들의 골목길'이란 제목에 맞게 사라질 인계동 10구역의 골목길들을 비춰 주었다.
▲ '굿바이 인계동 10구역' 의 한장면 '안녕, 우리들의 골목길'이란 제목에 맞게 사라질 인계동 10구역의 골목길들을 비춰 주었다.
ⓒ 강봉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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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인계동 847-3 일원은 2009년 7월 주택재개발 정비구역으로 고시를 받고, '팔달 10구역' 혹은 '인계동 115-9구역'으로 명명되었다. 2015년 12월 재개발사업시행인가 고시 받은 지 2년 만에 2017년 3월 24일 관리처분계획인가를 앞두고 있었다.

그러나 이 곳이 사라지는 것을 아쉬워하는 사람들은 스스로 다울공동체를 만들어 슬럼화되가는 골목과 빈집들을 가꾸고 꾸미기 시작했다. 이날 영상 발표와 제작을 주도한 다울영상제작단이 바로 다울공동체로 활동했던 인계동 주민들이다. 수원에서 가장 실력 있는 마을 미디어 협동조합, 미디어 작당과 함께 작업한 이 영상에는 이곳을 지키며 살아온 사람들의 진한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인계동의 사람들을 기록한 사진들이 상영관 복도에 전시되었다. 미디어 작당의 문은정 사진작가가 촬영한 사진을 재촬영함.
▲ 인계동 이발사 인계동의 사람들을 기록한 사진들이 상영관 복도에 전시되었다. 미디어 작당의 문은정 사진작가가 촬영한 사진을 재촬영함.
ⓒ 문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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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가 너무 고파서... 그때는 정말 아무거라도 벌이만 되면 닥치는 대로 할 각오가 돼 있었죠. 그때 잡은 가위를 여태까지 잡고 있네요. "

10년, 20년 살았다고 자랑했다간 우리 새내기 왔느냐고 예뻐해 줄 법한 화면 속 주인공들은 모두 인계동에서 20년 이상을 살아오신 주민들이었다. 결혼을 계기로, 일자리를 찾아 이곳까지 와서 아내로, 엄마 아빠로 살아낸 주인공들의 표정과 이야기들이 영화처럼 펼쳐졌다.

"여기가 다 논이었어. 결혼은 했는데 아무것도 없었지. 하꼬방에 세를 들어 살았는데, 밥상도 없어서 나무판자로 만든 사과 박스를 엎어서 상으로 쓰고 그랬지. 허허."

"공군기지로 가는 사람들의 통근 버스가 여기를 지났지. 그래서 여기에 식당을 차리고 숙박을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기 시작했어. 누가 힘들게 농사짓겠어, 그게 훨씬 편하니. 광이고 창고고 죄다 방으로 만들었는데 금세 다 나갔지."

문은정 사진 작가가 촬영한 부부. 인계동 10구역에는 20년 넘게 살아오신 분들이 많다.
▲ 인계동 부부 문은정 사진 작가가 촬영한 부부. 인계동 10구역에는 20년 넘게 살아오신 분들이 많다.
ⓒ 문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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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이 생산도시가 되었거든. 한일합섬, 선경섬유 다 여기 있었어. 여공들이 정말 많았지. 봉급날이 되면 모두가 잔칫집이 되었어. 회식을 식당에서 하니까. 여기로 기차가 쭉 지나가면 아주 매연이 그득히 찼었는데..." 

"정들면 고향이라고... 이제 수원에서 죽게 생겼네. 하하"

하늘에서 촬영한 인계동의 모습이 펼쳐졌다. 기와집이 드문드문 보이고, 지붕 없는 옥상을 가진 단독주택과 빌라들이 보였다. 틈마다 자리 잡은 제각각 모양의 집들이 골목을 만들고 그 골목이 끝나는 길에 거인처럼 아파트가 나타났다.

"개발이 필요한 동네인 건 맞아. 그렇지만 나가기 싫어."
"결정난 거 어쩔 수 없죠."
"아, 아파트 짓고 그렇게 살면 서로 모르고 살겠지. 알 수 있겠어?"

35년 살아온 자택에서 사진을 남기신 김창현 선생님은 남겨둘 가치가 있는 것은 남겨두자고 말씀하셨다.
▲ 문은정 사진작가가 찍은 김창현 선생님 35년 살아온 자택에서 사진을 남기신 김창현 선생님은 남겨둘 가치가 있는 것은 남겨두자고 말씀하셨다.
ⓒ 문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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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영관 앞에는 미디어 작당의 문은정 사진 작가가 촬영한 사진들이 액자에 넣어져 전시되고 있었다. 마침 사진에 찍힌 김창현 선생님을 만나 직접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었다.

"내가 올해 예순 아홉이니까 65년을 살았네. 구치소 앞에서 살다, 철도길 앞에서도 살고... 나머진 다 여기서 살았네. 이석근씨가 놋광을 만들어 사람들 일거리를 주었지. 여기 항아리 굽는 가마도 있었고, 난 메뚜기 잡아먹고 살았지. 1974년부터 도로가 시작된 거 같아. 선술집이 많았고, 지금 뉴코아 자리가 수원에서 제일 큰 화물차 주차장이었지."

"군인들이 하숙을 참 많이 했어. 세를 살면 그 때 돈으로 3천 원이었지. 그때 공무원 봉급이 1만5천 원이었는데, 큰 돈이지. 동일옥이라는 음식점이 있었는데 군인 도시락을 이만큼 쌓아놨어. 군인들 퇴근하면 그게 다 없어졌지. 그게 인계동 역사야."

후에 영상을 다 보고 나서 마이크를 잡으셨던 김창현 선생님께서는 눈물을 참지 못하셨다.

"내가 감정이 아직 살아있네. 너무 고마워요. 이렇게 우리 세대의 이야기를 남길 수 있어서. 재개발하더라도 보존할 수 있는 건 남겨두고 하는 개발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난 그런 거 원해요."

포스터는 '미디어작당'의 류종미씨가 제작했다. 다울영상제작팀은 미디어작당과 함께 마을 기록 작업을 계속해왔다. 사진 왼쪽부터 송은정님, 하재희님,그리고  미디어작당의 홍종희님.
▲ '굿바이 인계동 10구역' 포스터와 다울영상제작단원 포스터는 '미디어작당'의 류종미씨가 제작했다. 다울영상제작팀은 미디어작당과 함께 마을 기록 작업을 계속해왔다. 사진 왼쪽부터 송은정님, 하재희님,그리고 미디어작당의 홍종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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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하고, 밤새 안녕하셨냐고 묻던 그런 것들이 막 생각나요. 이제 새로운 동네로 태어나면 또 다시 그렇게 할 수 있을지... 그게 두렵고 걱정되는 거."

'굿바이, 인계동 10구역~ 안녕, 우리들의 골목길' 제작에 함께한 하재희씨(다울영상제작단)는 인계동 다울 마을의 기록이 오늘은 치유하는 약으로 쓰였지만, 내일은 또 어떤 쓰임을 갖게 될지 모른다고 말했다. 포스터 제작과 영상 편집을 맡은 유종미씨(미디어작당)는 푹 자고 싶다며 이날의 작품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공을 들였는지를 간접적으로 말해주었다.

수원 영상미디어센터는 도시가 놓치고 살아온 사람과 이야기의 가치를 마을 미디어 지원사업을 통해 채워갈 계획이다. 이날 상영이 있기까지 수원시 지속가능도시재단이 함께 했다.

'굿바이 인계동 10구역~ 안녕, 우리들의 골목길'

'굿바이 인계동 10구역, 안녕 우리들의 골목길' 영상의 앞부분
▲ 굿바이 인계동 10구역~ '굿바이 인계동 10구역, 안녕 우리들의 골목길' 영상의 앞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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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다울영상제작단, #미디어작당, #수원영상미디어센터, #수원시 지속가능도시재단, #마을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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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한 환경에서 자라난 사람은 필연적으로 무섭거나 치욕적인 일들을 겪는다. 그 경험은 겹겹이 쌓여 그가 위대한 인간으로 자라는 것을 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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