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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 때 태국 여행을 가서 처음으로 외국의 길고양이를 마주쳤다. 내가 바싹 붙어 지나가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늘어지게 낮잠을 잤다. 고양이라면 모두 사람을 경계하고 눈이 마주치자마자 잽싸게 몸을 날려 사라지는 줄로만 알았던 내게 신선한 충격이었다.

길고양이와 눈높이를 맞추고 셀카를 10장쯤 찍는 동안에도 고양이는 시큰둥하게 하품을 할 뿐이었다. 흔히 길고양이는 사람을 무서운 눈으로 쳐다보며 경계하며 잽싸게 사라지는 모습으로 떠올리지만, 그건 모든 길고양이의 습성이 아니었다. '우리나라' 길고양이의 습성이었을 뿐.

길고양이 새벽이가 만난 고양이들 

 <길고양이 새벽이의 지구별 여행기>
 <길고양이 새벽이의 지구별 여행기>
ⓒ 더난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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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의 어느 캄캄한 새벽에 태어난 길고양이 새벽이는 엄마를 잃고 길 위에서 울다가 고마운 사람들의 도움으로 겨우 겨울을 나고 봄을 맞이한다. 그리고 지구별에서 살고 있는 전 세계의 고양이들을 만나보기 위한 긴 여행에 나선다. 기행에세이 <길고양이 새벽이의 지구별 여행기>의 주된 내용이다.

그러고 보면 길고양이의 삶 자체가 하나의 긴 여행과도 같다. 길 위에서 걷고, 낯선 사람들을 마주치고, 그 안에서 새로운 인연들이 생기기도 하니까. 물론, 그 여행은 예기치 못한 사고로 갑작스레 끝나버릴 수도 있지만.

새벽이가 첫 번째로 도착한 곳은 '고양이의 천국'이라 불리는 일본의 아오시마다. 아오시마에는 사람보다 더 많은 고양이가 살고 있고, 그곳에 고양이가 있다는 사실을 모두들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길고양이 밥 주는 것을 금지하고, 차가 쌩쌩 달리고, 온갖 곳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서울에서는 상상할 수 없었던 풍경에 새벽이는 놀란다. '사람들의 공간에 고양이가 끼어들어 사는 것'과 '원래 사람과 고양이가 사는 곳'의 풍경은 이렇게나 다르다.

"그곳이 고양이의 천국인 이유는 맛있는 것이 많아서도, 넓고 좋은 집들이 있어서도 아니었어요. 그곳에는 그저 우리를 죽게 하는 것들이 없었어요." - 29페이지


서울에서는 길고양이를 일종의 '방해꾼'처럼 바라보는 시각이 많다. 사람들의 아파트를 더럽히고, 골목길에서 시끄러운 소리를 내고, 심지어 근거도 없이 나쁜 병을 옮긴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하지만 고양이는 사람과 적대 관계에 있고자 하는 존재가 아니라, 같은 지구별을 공유하여 공존하는 존재가 아닐까. 그렇게 생각한다면 자연히 고양이를 없애는 방향이 아니라, 더 좋은 공존의 방법을 찾기 위해 노력할 수 있을 것이다.

태어난 환경에 따라 바뀌는 묘생 

새벽이가 거쳐 간 지구별의 여러 나라를 비교해 보면, 같은 고양이로 태어났지만 어떤 환경에 놓여 어떤 시선을 받느냐에 따라 그 삶이 천차만별로 달라졌다. 고양이의 습성을 존중하여 보호하면서도 자유롭게 살 수 있도록 배려하는 독일의 티어하임 같은 곳이 있는가 하면, 호주에서는 길고양이가 멸종 위기에 처한 다른 야생동물을 잡아먹기 때문에 길고양이 200만 마리를 살처분하겠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고양이는 어떤 나라에서는 이웃이자 친구였고, 어떤 나라에서는 생태계를 어지럽히는 주범이 되었다.

"물론 고양이들만 그런 건 아니에요. 사람도 똑같을 거예요.어떤 나라, 어떤 집에 태어나느냐에 따라 살아가는 방식도, 삶의 질도 달라지죠. 그런데 우리 길고양이들의 진짜 바람은 좀 달라요. 사실 열악한 환경을 탓하는 길고양이들은 별로 없어요. 우리가 정말 무서워하는 건 차가운 시선이에요." - 66페이지


고양이가 살아가는 환경은 결국 사람들의 시선에 의해 만들어진다. 죽일 듯이 차갑고 냉정한 시선이 쏟아지는 곳에서는 고양이의 삶도 열악해지고, 자연스러운 존재로 따뜻하게 바라봐주는 곳에서는 고양이의 삶이 한 박자 느긋해질 것이다.

 대만의 고양이 마을 허우통에서 만난 길고양이
 대만의 고양이 마을 허우통에서 만난 길고양이
ⓒ 박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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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길고양이의 삶이 늘 춥고 배고픈 것은 아니라는 걸, 사람들과 '공존'할 수 있다면 훨씬 따뜻한 서울이 되리라는 걸 깨달은 새벽이는 지구별 여행을 끝마치며 마음속에 희망의 씨앗을 하나 심는다. 실제로 우리나라도 예전에 비하면 길고양이를 바라보는 시선이 많이 바뀌고 있다.

하지만 올해의 매섭고 긴 겨울을 나는 동안 길고양이에게 밥이나 잠자리를 제공해주는 것을 금지한다는 여러 안내문을 보면서 마음이 씁쓸한 적도 여러 번 있었다. 우리보다 훨씬 작고 약한 동물이 살기 좋은 세상이라면 당연히 사람에게도 그만큼 따뜻하고 다정한 도시가 될 것이다.

새벽이가 품은 공존에 대한 희망의 씨앗이 여러 군데에서 조만간 떡잎으로 피어나기를 나 역시 마음속으로 응원했다.


반려동물 에디터 sogon_about@naver.com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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