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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거 1970년대 크메르루즈정권에 의해 자행된 강제결혼식 모습을 담은 사진자료. (사진 자료 제공 : Documentation center of Cambodia)
 과거 1970년대 크메르루즈정권에 의해 자행된 강제결혼식 모습을 담은 사진자료. (사진 자료 제공 : Documentation center of Cambo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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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 수도 프놈펜에서 차로 4시간 떨어진 남부 깜폿주(州) 작은 시골마을에 사는 60대 여성 몸 분은 아직도 과거의 악몽에 시달리며 살아가고 있다. 그녀는 1970년대 크메르루즈 정권 당시 자행된 강제결혼 피해자 중 한 명이다. 당시 무려 25만 명이 넘는 젊은 청춘남녀가 잔악무도한 크메르루즈 정권이 주도한 강제결혼의 희생양이 됐다.

마오쩌뚱식 급진혁명공산주의자 폴 폿이 이끌던 크메르루즈 정권은 긴 내전에 이어, 이웃 베트남과 전쟁을 벌이는 과정에서 많은 인명피해를 입었고, 결국 이로 인해 생산연령인구가 급격히 줄어든 상태였다. 게다가 설상가상으로 1975년 4월 프놈펜 함락이후 당시 정권이 시행한 도시민 강제이주정책은 출산율을 급격히 떨어뜨려 놓았다. 당시 정권이 자본주의에 물든 도시민들을 일명 '재교육센터'로 불리는 집단노동수용소로 보내 강제노역에 동원시키는 한편, 사상학습과 지도부에 대한 충성심을 높이기 위한 목적으로 나이와 성별로 구분해 강제로 격리 수용해 가족이란 개념을 없애버렸기 때문이다.

이에 지도부는 인구를 늘리기 위한 궁여지책으로 전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강제결혼정책'을 고안해냈다. 당시 '앙카(Angkar)'라 불리는 최고권력 지도부가 정한 결정에 따라 결국 수많은 젊은 여성들이 사랑하지도, 심지어 단 한 번 본 적도 없는 낯선 남성과의 결혼을 강요당했다.

결혼식이라고 해서, 특별한 의복으로 갈아입거나, 성대한 음식이나 제물이 차려진 것도 아니었다. 오직 당지부 내 간부 몇 명만이 참석한 가운데, 10여 명의 젊은 남녀들을 불러놓고 집단결혼식을 치렀다. 축하해줄 가족도 친구도, 친지도 그 자리에는 없었다. 앙카의 명령에 무조건 따르고, 충성하겠다는 서약이 예식의 처음이자 끝이었다. 허름한 건물 내 임시로 마련된 결혼식장에 마지못해 끌려온 젊은 여성들은 대부분 자신이 처한 운명과 현실에 놀라 울음을 터뜨렸으며, 남성들 중 일부도 눈물을 글썽였다. 

일본인 동남아학술연구가 카스미 나카가와씨가 최근 발행한 강제결혼 관련 저서(Against Her Will: Stories of Mass Weddings)에는 당시 강제결혼여성 중 결혼 전 배우자가 될 남성의 이름을 미리 안 경우는 채 절반도 되지 않는다는 충격적인 통계조사결과가 나와 있다. 그만큼 당시 정권이 주도한 강제결혼은 말 그대로 매우 강압적인 분위기 속에 이뤄졌다. 하지만, 말도 안 되는 이 같은 강제결혼식을 그 어느 누구도 감히 거역할 수는 없었다. 결혼을 거부한다는 것은 앙카에 대한 명령불복종이자, 도전으로 간주되었고, 이는 곧 죽음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얼굴도 모르는 사람과의 강제결혼... 그리고 성폭력

 당시 최고권력핵심부 기관인 '앙카'가 주관한 집단결혼식에 참석한 젊은 남녀들. (사진 자료 제공 : Documentation Center of Cambodia)
 당시 최고권력핵심부 기관인 '앙카'가 주관한 집단결혼식에 참석한 젊은 남녀들. (사진 자료 제공 : Documentation Center of Cambo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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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퐁참주에 사는 쁘렉 콤헹씨는 당시 불과 14살 나이에 결혼을 해야만 했다. 그녀는 "결혼을 원치 않는다고 말했지만, 만약 거부할 경우 죽을 수도 있다는 협박에 어쩔 수없이 결혼을 했다"고 최근 현지신문 <프놈펜 포스트>와 가진 인터뷰에서 밝혔다.

이 같은 강제결혼식을 마친 뒤 나이 어린 여성들을 기다리는 건, 정권이 인정한 '합법적인 성폭행'이었다. 당시 앙카는 스스로 부모임을 강조하며,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 젊은 가임여성들에게 최소 3~5명의 아이들을 낳으라고 강요하기까지 했다. 심지어, 유부녀임에도 강제이혼 끝에 재혼을 강요당한 사례들도 일부 진실로 드러났다.

18세 어린 나이에 강제 결혼한 쁘레아 비히어주 출신 순 벙씨는 "평소 알던 이웃 여성들은 강제결혼을 거부하고 자살하기까지 했다"고 같은 신문과 가진 인터뷰에서 밝히기도 했다. 이름을 밝히기를 거부한 또 다른 피해여성은 그때의 악몽을 지금까지도 결코 잊을 수가 없다. 그녀는 크메르루주 하급군인이었던 남자의 아내가 되었지만, 남편이 된 남자는 그녀를 사랑하고 보살펴야 할 아내로 여기기는커녕, 오로지 성적노예로만 그녀를 대했다고 털어놨다. 다른 강제결혼여성들과 마찬가지로 그녀 역시 성폭력 피해자였던 셈이다.

정권이 무너지자, 대부분의 강제결혼 피해자들처럼 결국 그녀 역시 남편과 곧바로 헤어졌다. 하지만, 정권붕괴 직전 둘 사이에는 원치 않던 생명이 잉태됐다. 이제는 성인이 된 딸은 아버지의 얼굴을 전혀 기억 못한다. 그녀는 아버지의 생사 여부도 알지 못한다고 현지신문과 가진 인터뷰에서 말했다.

그런 가운데, 지난 2017년 4월 크메르루즈 정권하에서 자행된 강제결혼 범죄를 다룬 50분짜리 다큐멘터리 영화가 제작돼, 캄보디아 현지사회는 물론, 국제인권단체들 사이에도 적지 않은 관심과 파장을 일으켰다. 주캄보디아영국대사관이 자금을 지원해 제작된 <침묵을 깨다(원제 Breaking the Silence)>라는 제목의 다큐멘터리 영화다. 앞서 언급한 강제결혼 피해자들 중 한 명인 몸 분도 출연해 눈길을 끌었다. 

이름과 신분을 밝히기를 거부한 다른 희생자들과 달리, 그녀는 카메라를 향해, 담담하면서도 매우 용기있게, 자신의 숨은 과거를 밝히고, 잊을 수 없는 악몽의 순간들까지도 솔직하게 털어놨다. 그녀는 말미에 "법의 심판을 통해 반드시 정의가 실현되길 원한다"고 말했다.

이 다큐멘터리는 그동안 과거를 숨기고 살아온 많은 강제결혼 피해여성들에게 용기를 불어넣어 주는 한편, 캄보디아 사회가 스스로 서로의 아픔과 상처를 공유하고 치유할 수 있도록, 상호 공감대를 형성하는 계기를 마련해주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미국 유명 영화배우이자, 현재 영화감독으로도 활약중인 안젤리나 졸리 역시 이 다큐멘터리 속 인터뷰에 응해, 과거 아픔을 딛고 용기를 내 출연을 결심한 여성피해자들에 대해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들은 우리 모두에게 영웅이다."

(참고로, 영화 <툼 레이더> 출연 당시 현지 로케가 인연이 되어 캄보디아 남자아이를 입양하고, 이후 캄보디아국적까지 취득한 졸리는 2017년 크메르루즈의 잔혹상을 소녀의 시각을 통해 고발한 영화 <처음, 그들은 나의 아버지를 죽였다 (원제 First They killed my father)>를 공동제작, 금년 골든 글로브 외국영화부문 후보작에 오른 바 있으며, 캄보디아 여성인권신장에도 관심이 많다. 현재 그녀는 '분쟁 지역 성폭력 방지 프로그램(Preventing Sexual Violence Initiative)'의 공동 설립자이기도 하다.)

'강제결혼'은 성폭력에 버금가는 또 다른 반인륜적 범죄

과거 역사를 되짚어보면, 전쟁기간 중 여성들이 성폭력의 대상이 된 사례는 이루 헤아리기 힘들 정도로 많다. 하지만, 강제결혼만큼은 다른 나라에서는 사례를 찾아보기 힘든, 매우 특별한 형태의 성폭력 범죄임이 틀림이 없다. 

최근 들어, 크메르루즈 정권이 저지른 강제결혼정책과 관련, 인류의 보편적 정서와 인권을 무시한 채 절대 권력을 가진 국가집단이 획일적으로 주도해 저지른 반사회적 중대범죄였다는 사실을 밝히는 노력과 함께, 뒤늦게나마 정의를 구현하려는 움직임들이 서서히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러한 관심과 열기에 부응해 피해여성들의 심리적 안정과 치료를 위한 NGO 단체들의 관심과 활동도 현지사회에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근래에 와서는 사회적 관심과 반향을 일으키는 수준과 범주를 넘어, 문화예술계에 영감을 주는 소재로 점차 번져가는 분위기다.

 캄보디아 현대창작무용단 '소필린 아트 앙상블'이 지난해 1월 크메르루즈정권하에 자행된 강제결혼과 여성을 아픔을 소재로 만든 작품 ;뿌카 슬라'의 한 장면. 이 작품은 유엔크메르루즈전범재판소(ECCC)가 후원해 화제가 된 바 있다.
 캄보디아 현대창작무용단 '소필린 아트 앙상블'이 지난해 1월 크메르루즈정권하에 자행된 강제결혼과 여성을 아픔을 소재로 만든 작품 ;뿌카 슬라'의 한 장면. 이 작품은 유엔크메르루즈전범재판소(ECCC)가 후원해 화제가 된 바 있다.
ⓒ John Shapi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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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7년 1월 캄보디아창작예술공연단 소필린 아트 앙상블(Sophiline Arts Ensemble)이 기획해, 국립 짜토목 극장 무대에 올린 창작무용작품 <뿌카 슬라>도 그중 하나다. 뿌카 슬라는 캄보디아 전통결혼식에서 신랑이 신부에게 주는 꽃을 의미한다. 이 작품은 크메르루즈 정권 당시 강제결혼으로 인생을 송두리째 빼앗긴 당시 여성들의 처절한 삶과 그간의 아픔을 신선하면서도 심도 깊게 표현해, 현지문화계 평론가들로부터도 많은 호평을 받았다.

그리고 1년이 지난 지금 이제는 '강제결혼'이란 주제가 주는 강렬한 메시지와 파급효과가 창작무용을 넘어 창작열로 가득한 미술작가들의 영감을 자극하기 시작했다. 지난 1월 10일부터 20일간 수도 프놈펜에 위치한 보파나 시청각센터 내 전시관에서는 크메르루즈 집권당시 강제결혼을 주제로 한 특별작품전시회가 열렸다. 5명의 캄보디아 출신 젊은 신진화가들이 내놓은 작품들은 강제결혼과 성폭력의 희생양이 되었던 당시 여성들의 아픈 기억과 트라우마가 고스란히 녹아 있었다.

그중 가장 눈에 띄는 작품은 젊은 신진화가 싸앵 남씨가 그린 '여성과 기억'이라는 제품이었다. 두 눈을 질끈 감은 채 검은 옷에 붉은 끄로마천을 목에 맨 슬픈 여성의 얼굴 위로는 강제결혼으로 인해 여성들이 겪었던 트라우마와 참혹한 현장이 오버랩돼 관람객들에게 강렬한 메시지를 전달해주었다. 이번 전시회는 과거 강제결혼을 소재로 한 국내 첫 미술작품전시회라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크메르루즈정권 당시 자행된 강제결혼을 주제로 한 5인의 미술창작작품전시회가 열린 보파나 시청각 센터의 모습.
 크메르루즈정권 당시 자행된 강제결혼을 주제로 한 5인의 미술창작작품전시회가 열린 보파나 시청각 센터의 모습.
ⓒ 박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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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캄보디아출신  30대 젊은 화가 싸엥 남씨가 강제결혼을 테마로, 그린 여성과 기억이란 제목의 작품.
 캄보디아출신 30대 젊은 화가 싸엥 남씨가 강제결혼을 테마로, 그린 여성과 기억이란 제목의 작품.
ⓒ 싸앵 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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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세의 이 젊은 화가는 "이미 결혼을 했음에도 강제로 재혼을 강요당한 가운데, 사랑하던 첫 남편이 어디론가 끌려가 사라졌던, 한 여성의 실제 이야기를 모티브로 이 작품을 만들었다"고 밝혔다.

화가 싸앵 남씨를 포함해 이번 작품전시회에 참여한 젊은 화가 모두 1970년대 킬링필드 시대 이후에 태어난 젊은 세대다. 과거를 기억하지 못함에도, 그는 자신을 소개하는 글에서 "최근 강제결혼에 관한 많은 다큐영상물과 공연을 보며, 예술적 영감을 떠올렸고, 며칠 밤을 새워서라도, 반드시 작품을 만들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고 밝혔다.

큐레이터 티엥 삐셋씨는 "당시 강제결혼은 우리 캄보디아인들에게도 잊을 수 없는 큰 충격이다. 이번 기획전도 이러한 역사적 진실을 알리는 동시에 작가들에게 영감을 주기위해 마련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 전반적으로 강제결혼이 일반적인 성폭력보다는 상대적으로 죄질이 그다지 나쁘지 않다는 편견을 갖고 있다. 우리는 이런 편견과도 싸울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본 전시회를 기획한 보파나시청각센터 찌어 소페압 이사 역시, "강제결혼으로 인한 여성들의 아픔과 고통을 치유하고 함께 공유하려는 노력들이, 이제는 사회적 이슈와 관심 수준을 넘어 문화예술계에 영감을 주고 작품소재로 등장한 사실에 대해 매우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싶다"고 말했다. 

강제결혼 피해자들이 원하는 건 '실제 범죄자들'에 대한 처벌

 1978년 12월 크메르루즈정권 패망직전 캄보디아를 방문한, 미국의 유명종군기자 엘리자베스 베커가 찍은 어린 크메르루즈 여성 군인들의 모습.
 1978년 12월 크메르루즈정권 패망직전 캄보디아를 방문한, 미국의 유명종군기자 엘리자베스 베커가 찍은 어린 크메르루즈 여성 군인들의 모습.
ⓒ Elizabeth Beck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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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유엔이 주도하는 크메르루즈전범재판소(ECCC) 역시도 당시 정권에서 자행된 강제결혼정책을 반인륜적 중대범죄 중 하나로 간주하고, 지난 2015년부터 이 사건의 재판을 심의중이다.

이에 앞서 당시 권력 2인자였던 누온 체아와 국가주석을 지낸 키우 삼판은 나란히 대량학살 범죄혐의로 첫 번째 공소재판(사건번호 002/01)에서 이미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당시 외신들은 세기의 재판이 마침내 끝났다고 호들갑을 떨었지만, 당시 정권을 단죄하려는 세기의 재판이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다. 거의 10년 가까이 재판이 진행 중임에도 아직도 남은 재판들이 훨씬 더 많다. 두 번째 공소재판에 해당되는 강제결혼에 관한 재판은 아직 이렇다 할 결말을 못 맺은 채 해를 넘긴 상태다.

이에 대해 유엔 크메르루즈전범재판소 백강진 판사는 최근 기자와 가진 SNS 인터뷰를 통해 "강제결혼을 포함한 12가지 범죄사실에 관한 재판변론이 이미 지난 2017년 1월 11일 종결된 상태며, 금년 6월경 최종 선고가 내려질 예정"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의외로 강제결혼 피해 당사자들은 두 명의 전범지도자들의 재판결과에는 별로 관심이 없어 보인다. 오히려 무덤덤한 반응이다. 대부분의 피해자들은 과거 두 지도자에 대한 단죄로 강제결혼과 관련된 범죄사건이 종결돼선 절대로 안 된다고 거듭 주장하고 있다. 이들은 실제 범죄자를 법정에 세워야 진정한 정의가 실현될 수 있다는 일관된 입장이다. 크메르루즈 재판을 빨리 끝내길 내심 바라는 현 훈센정부의 입장과는 전혀 생각이 다르다. 

이 문제와 관련해, 다큐영상에 등장한 또 다른 여성 피해자는 이렇게 말했다.

"그들(누온체아와 키우삼판)은 당시 정책을 입안해 결정한 자들일 뿐이다. 당장 심판을 받아야 할 자들은 그 아래 있던 실제 범죄에 가담한 자들이다. 그들은 나를 강간하고 내 인생을 망쳐놨다. 반드시 잡아내 법정에서 세워야 하며, 평생 감옥에 가두어야 한다."

40년이나 지난 사건임에도 여전히 분을 참지 못한 채 울먹이는 이 피해여성의 모습이 영상을 한 가득 채웠다. 이 여성은 과거 강제결혼에 따른 오랜 트라우마 탓인지, 이런 말을 말미에 덧붙였다.

"지금도 TV에서 화려한 결혼식 장면이 나오면, 일부러 채널을 돌려버리거나 뒤로 돌아 누워버려요."

피해여성들은 아직도 과거 강제결혼과정에서 겪었던 정신적, 육체적 고통과 충격에서 여전히 헤어나지 못한 채 남은 여생을 견디며 살아가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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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프라자 뉴스 편집인 겸 재외동포신문 기자

행복의 무지개가 가득한 사회를 그립니다. 오마이뉴스 박혜경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