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내가 베트남에 대해 아는 거라곤 세계를 호령하는 미국과 맞짱(!) 떠서 이긴 당찬 나라라는 것, 그 단순한 정보 하나였다. 그렇게 아는 것 쥐뿔 없이 두 번의 베트남 여행을 했다. 그 짧은 지식으로 인한 편견 덕분일까. 도로를 빽빽하게 메운 오토바이 행렬도, 사람들의 바쁜 몸놀림도, 내 눈엔 퍽 근사하게 보였다.

내가 살아보지 못했거나, 살아봤다 한들 너무 어려 겪었다고 하기 힘든 한국의 1970-1980년대를 보는 느낌도 들었다. 어르신들을 통해 들었던, 정치적으로 엄혹했지만 경제적으로 희망을 품게 했다는 그 시대. 사람들은 열심히 일하고, 도시엔 활기가 가득하다. 여전히 잘 알지 못하지만, 가보기 전에도 가본 뒤에도, 베트남은 내게 매력적인 나라다.

<세계문화여행 베트남> 책표지
 <세계문화여행 베트남> 책표지
ⓒ 시그마북스

관련사진보기


그래서 세 번째 베트남 여행을 계획했다. 여행을 앞두고, 조금은 더 알고 싶다는 욕심으로 <세계 문화 여행_베트남>을 펼쳤다. 책은 베트남에 대한 지극히 개론적인 정보들을 담고 있지만,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관광 가이드북은 아니다. 유명 맛집이나 호텔에 관한 정보보다, 이국의 풍습과 문화를 알고 싶은 사람에게 좋을 듯하다.

동남아시아의 심장부이자 인도차이나 반도의 동쪽에 위치한 베트남은 지정학적 요인으로 인해 여러 강대국이 탐내는 대상이 되었다. 중국은 국력이 강해질 때마다 베트남에 대한 주도권을 유지하려 안간힘을 썼다. 반대로 베트남은 중국의 힘이 약해질 때마다 독립을 쟁취할 기회를 노렸다.


오랜 시간 강대국들의 탐욕의 대상이 되었다는 베트남. 어째 남의 나라 이야기 같지가 않다. 그렇게 베트남은 중국, 프랑스, 미국을 상대로 오랜 투쟁을 벌인 끝에 독립과 통일을 이룩했다. 그 과정 중에 남베트남과 북베트남으로 갈라져 전투까지 벌여야 했으니, 다시금 우리나라의 역사를 떠올리며 슬픈 동질감을 느꼈다.

잘 알려져 있고 책에서도 짚고 있듯, 베트남은 1990년대에 들어 중앙계획경제를 포기하고 시장중심 체제로 돌아섰다. 2001년 이래 경제자유화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고 경제선진화에 주력하는 동시에 경쟁력 있고 수출주도적인 산업을 육성해온 것.

그렇게 경제개혁은 빠르게 일어나고 있지만, 정치 체계의 변화는 그것을 따라가지 못하는 듯하다. 현재까지도 베트남 공산당은 정치적으로 허용되는 유일한 정당이라고 한다. 책에 의하면, 베트남 사회주의 공화국 헌법 4조는 이렇게 명시되어 있다.

베트남 공산당은 베트남 노동자 계층의 선봉대이자 노동자, 고통당하는 인민, 그리고 국가 전체의 권리와 이익을 충실히 대변하며 마르크스-레닌주의와 호찌민 사상에 따라 국가와 사회를 선도하는 유일한 힘이다.


베트남 공산당은 그들만이 나라를 승리로 이끌고 민족 독립을 쟁취한 유일한 세력이라는 논리로 정당성을 주장한다고 한다. 또한, 베트남 정부는 공산당에 대한 그 어떤 사소한 공개적 비난도 용납하지 않으며 정치적 다원주의, 민주주의, 언론의 자유 등을 요구하는 성명서도 허용하지 않는다고.

최근에 개봉한 영화 <다운사이징>이 떠오른다. 정치적 투쟁을 벌이다 강제로 다운사이징을 당했던 녹 란 트란 역은 베트남의 이런 정치적 상황을 배경으로 한 것일 테다. 다양성은 인정되어야 마땅하지만, 다양성을 막는 것 자체를 다양성으로 인정받을 순 없을 것이다. 책을 읽으며 2018년의 대한민국 역시 떠올려 보게 되었다.

정치·경제적 이야기보다 문화를 이야기할 때 저자가 서양인임을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가령,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한 살로 간주하는 아시아의 방식이 그에겐 영 어색했던 듯하다. 새해 전날 태어난 아기는 태어난 지 이틀 만에 2살이 될 수 있다고 저자는 풀어 설명한다. 옳고 그름과 무관하게, 내게 익숙한 것을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며 문화의 다채로움을 느꼈다.

나는 팁 문화를 그다지 바람직하게 보지 않는다. 서로 다른 문화들이 접촉하며 좋은 문화는 퍼져나가길 바라지만, 팁 문화는 내게 그것에 속하지 않는다. 고객의 입장에서 팁이 아깝다기보다, 노동자의 입장에서 내 노동의 대가가 보다 공정하게 이뤄지길 바란다. 내 노동의 대가가 운에 따라 달라진다고 생각하면 유쾌하지 않다. 정해진 임금이 지나치게 적다면 팁보다는 임금을 올리기 위한 사회적 노력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저자는 "베트남은 공식적으로는 팁을 주고받지 못하게 되어 있다"라고 하면서도, "(그리고) 계속해서 좋은 서비스를 받고 싶다면 팁을 제공하는 것은 확실히 효과적인 방법이다"라고 말한다. 팁 문화가 익숙하지 않던 아시아에 어떻게 이 문화가 퍼져 나가게 되었는지 짐작하게 해, 어쩐지 안타까운 마음도 들었다.

젓가락 사용법과 그 예절에 대한 대목은 웃음을 터뜨리게 했다. 젓가락으로 음식을 쿡 찌르는 것은 좋지 않다는 조언과 더불어 다음의 말이 이어진다.

최대한 노련한 솜씨로 재빨리 음식을 집어야 하지만 기름진 음식은 미끄럽기 때문에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때문에 이런 음식이 나왔다면 젓가락을 가져다 대기 전에 어떻게 해야 할지 잠시 궁리를 해보는 게 좋다.


시간적 여유만 있다면, 유럽에서 베트남까지의 육로 여행도 가능하다고 한다. 모스크바에서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기차를 몇 번 갈아타 북경까지 갈 수 있고, 그렇게 기차로 하노이까지 갈 수 있다고. 이렇게 육로로 하는 세계여행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부러운 마음을 감출 수가 없다. 태생이 섬나라라면 어찌할 수 없겠지만, 섬이 아닌데 마치 섬처럼 살고 있는 국민으로서.

책을 통해 몰랐던 베트남에 대해 알아가는 재미가 있었다. 음력 설을 쇠고, 젓가락을 사용한다는 동질감은 물론, 정치적으로 우리와 다른 노선을 선택한 나라의 변화과정 또한 흥미로웠다. 덕분일까, 베트남에 대해 알기 위해 펼쳤다가 뜻밖에 우리나라를 생각하게 되는 재미 역시 쏠쏠했다.

무엇보다 이 책의 묘미는 서양인이 아시아를 바라보는 시각을 엿보는데 있지 않을까 한다. 타인의 시선을 내면화할 필요는 없지만, 나를 더 잘 알기 위해서 타인의 시선을 통과해 보는 것은 때로 흥미로운 경험일 것이다.


세계 문화 여행 : 베트남

제프리 머레이 지음, 정용숙 옮김, 시그마북스(2017)


태그:#세계문화여행 베트남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