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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나리 변호사(전 판사)가 26일 오후 서울 서초구 자신의 변호사 사무실에서 <오마이뉴스>와 만나 대법원이 일선 판사들의 성향을 분석한 문건을 작성한 것에 대해 “국정원이 80년대 운동권 학생들을 관리하듯이 관리됐다는 느낌이 들었다”라며 “법원에서 같은 판사들끼리 그렇게 생각할 게 있나”고 말했다.
 윤나리 변호사(전 판사)가 26일 오후 서울 서초구 자신의 변호사 사무실에서 <오마이뉴스>와 만나 대법원이 일선 판사들의 성향을 분석한 문건을 작성한 것에 대해 “국정원이 80년대 운동권 학생들을 관리하듯이 관리됐다는 느낌이 들었다”라며 “법원에서 같은 판사들끼리 그렇게 생각할 게 있나”고 말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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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나리 변호사는 지난해 2월 판사 생활을 정리했다. 큰 문제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조금 답답하다는 개인적인 이유였다. 지난 1월 22일 대법원 추가조사위원회(위원장 민중기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가 공개한 '법관 사찰 문건'에 그런 윤 변호사의 이름이 올랐다. 그는 "자유분방하고 직설적인 면은 있으나 선을 넘는 편은 아니다"라고 규정돼 있었다. 윤 변호사는 "화가 나기보다는 슬펐다"라고 말했다.

앞서 대법원 추가조사위원회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가 판사들을 뒷조사하고, 이들의 성향을 분류해 기록한 문건이 다수 발견됐다고 공개했다. 이 문건은 현직 판사들이 운영하는 포털 사이트 카페에 올라온 게시글과 댓글을 분석하기도 했다. 또 박근혜 청와대와 대법원이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항소심과 상고심을 두고 서로 교감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문건도 공개됐다(관련 기사 : '판사 블랙리스트' 사실로... "선동가 기질 있다" 판사 뒷조사도).

윤 변호사는 26일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동료 판사들의 말에 의하면 (나에 대한) 그 평가가 상당히 정확하다고 한다. 정확하다면 저랑 가까이 지냈던 동료나 선후배가 (법원행정처에 정보를) 올린 게 아니겠나"라며 "판사는 외부 접촉이 금기시되기 때문에 동료애가 진한데, 그 동료 중 한 명이 나를 그렇게 평가해서 올렸다고 생각하니 슬펐다"라고 말했다.

이번 추가조사위가 공개한 문건에는 법원행정처가 특별 관리한 핵심판사 21명의 명단, 소위 '판사 블랙리스트' 외에도 '사법행정위원회 위원후보자 검토' 등 판사들의 동향과 각종 개인정보를 적어둔 문건이 다수 있었다. 윤 변호사는 위원회 위원후보자 검토 문건에 포함돼 있었다.

윤 변호사는 자신의 이름이 담긴 문건을 가리켜 "블랙리스트도 아니고, 화이트리스트도 아닌 회색분자 리스트로 일종의 꼼수 리스트"라고 표현했다. 그는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사법관료 등 문제가 터져 나오자 대법원이 다양한 목소리를 수용하는 것처럼 위원회 외관을 형성하기 위해 정리해둔 문건"이라며 "법원행정처 방향에 크게 반기를 들지 않을 판사들인데 제가 그런 사람으로 포함돼있다는 게 기분이 나빴다"고 했다.

윤 변호사는 "법원행정처가 주목하는 몇 명 판사들에 대한 보고서가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했지만, 추가조사위 발표 문건은 생각보다 훨씬 더 광범위하고 자세했다"라고 말했다. 예상보다 법원행정처의 법관 사찰 규모가 컸다는 얘기다. 그는 "이 정도까지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국정원이 1980년대 운동권 학생들을 관리하듯이 (판사들이) 관리됐다는 느낌이 들었다"라고 말했다.

윤 변호사는 "법원에서 같은 판사들끼리 생각의 방향과 방법이 다르다고 해서 이렇게까지 같은 동료들을 배제하고, 배척하고 그 사람들에 대한 영향력을 축소시키기 위해 조직적으로 움직일 필요가 있었나"라고 비판했다.

다음은 윤 변호사와 나눈 일문일답이다.

"내부 전쟁 같은 느낌... 상상도 못 했다"

-추가조사위 문건에 이름이 올라왔다. 심경이 어땠나.
"저는 법원에 없으니까 그 리스트를 먼저 보지 못했다. 동료 판사들이 카카오톡으로 '자유분방하고 직설적이지만, 선은 지키는 윤 판사'라고 말하더라. 이게 무슨 소리냐고 하니까, 리스트에 제 이름이 있다고 했다. 평가 자체는 나쁜 평가가 아니라 법원 생활을 그렇게 못하지는 않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리스트 자체는 기분 나쁜 리스트였다. 일종의 회색분자 리스트, 꼼수 리스트다. '사법행정위원회 위원후보자 검토 문건'은 법원행정처가 다양한 목소리를 수용하는 것처럼 외관을 형성하면서 실질적으로 행정처가 원하는 방향에 크게 어긋나지 않을 것 같은 판사들의 리스트였다. 기분이 나빴다.

동료들의 말에 의하면 그 평가가 상당히 정확하다고 한다. 평가가 정확하다면 저랑 가까이 지냈던 동료, 선후배가 (법원행정처에) 올린 것 아니겠나. 되게 슬펐다. 화가 난다기보다는 슬펐다.

법원에 있을 때 동료 판사들에 대해 애정이 컸다. 판사들은 워낙 외부 접촉이 금기시되는 분위기이기 때문에 판사들끼리 친하다. 동료끼리 매우 친한데 그 동료 중 한 명이 나를 그렇게 평가해서 올렸다고 하니까 슬펐다."



-핵심판사 관리문건 등 법원이 이런 문건을 작성하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저는 법원행정처가 주목하는 몇 명 판사들에 대한 보고서가 있을 거라고 예상했다. 근데 이 정도까지라고는 생각을 못 했다. 생각보다 훨씬 더 규모가 크고, 광범위하고 자세했다. 무엇보다 그 태도가 놀라웠다. 국정원이 80년대 운동권 학생들을 관리하듯이 관리됐다는 느낌이 들었다.

법원이 잘 돼야 하고, 판사들이 제대로 재판을 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선 법관 독립이 필요하다. 그 생각에 대한 방향과 방법이 다르다고 해서 이렇게까지 같은 동료들을 배제하고, 배척하고 이 사람들의 영향력을 축소시키기 위해 조직적으로 움직일 필요가 있었을까. 그런 게 너무 놀라운 거다. 같은 판사이지 않나."

-사실 동료 판사들을 뒷조사했다는 '거점 법관'이라는 용어도 없었던 단어 아닌가.
"이번 문건에 왕당파, 거점 법관, 핵심판사 등 재밌는 용어가 많았다. 그 리스트 전에는 그런 용어가 있는지도 몰랐다. 그 전에야 잘 나가던 판사나 보통 판사 정도였다. 사실 이건 적이나 프락치, 내 편 이런 식으로 나눈 거다. 내부 전쟁 같은 느낌이다. 상상도 못 했다."

"판사 동향 파악한 뒤 리스트 이용했을 것"

-핵심판사 21명 중 2010년부터 7년 동안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부에 배치된 판사는 단 한 명이었다는 MBC 보도도 있었다. 실제 대법원이 이들에게 인사 불이익을 준 건 아닌가.
"그 말은 옛날부터 파다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부는 지금도 국정농단 사건 등 모든 중요 사건이 몰리는 곳이다. MB 정부 때도 촛불 재판이 있지 않았나. 형사부는 단독 판사 자리도 중요하고, 합의부 자리도 중요하다. 그래서 믿을 만한 판사들을 보낸다는 말이 있다.

여기서 믿을 만하다는 건 물론 실력도 실력이지만, 대세를 거스르지 않을 순치된 판사들을 보낸다는 뜻이다. 소위 말하는 튀는 판결, 소신껏 재판하는 판사를 보내지 않는다. 예를 들어 양심적 병역거부를 무죄로 판결하지 않을 판사, 촛불 재판을 위헌제청 하지 않을 판사다.

기존 판례를 뒤집지 않을, 관례대로 할 판사들을 보낸다는 뜻 아니겠나. 입증된 바는 없으나 그럴 위험이 있는 판사들을 (형사부에) 배제한다는 말은 파다했다. 실제로 핵심판사 중 몇 분은 자격요건이 되고, 1순위로 지망했는데도 다른 곳으로 배치됐다는 보도를 봤다. 그랬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

-법원행정처의 판사 인사 개입은 재판 개입이라고도 볼 수 있다.
"그렇다. 이제는 누가 판사한테 전화해 '이렇게 결론 내달라, 저렇게 내달라' 이런 시대는 아니다. 단정할 순 없지만 대부분 그런 식으로 흘러가지 않는다. 그런데 중요한 포스트(위치)에 주류에 거스르지 않을 것 같은 순치된 판사를 미리 보내놓을 순 있다. 골이 안 새도록 골키퍼처럼. 충분히 그럴 수 있다.

예전에는 문제 되는 재판을 시스템적으로 일부 믿을 만한 판사들에게 몰아주기 배당을 할 수 있었다. 근데 촛불 재판 때 문제가 되면서 100% 전자배당으로 바뀌었다. 그 후엔 더 철저하게 판사들의 성향을 파악해 튀는 판결이 안 나오도록 할 필요성이 생겼을 수 있다.

솔직히 밥을 지을 땐 먹으려고 짓지, 보려고 짓진 않는다. 판사들의 동향을 파악했으면 뭔가 그걸 이용하려고 하지, 이용하지 않으려고 했을 리 없다. 그런 애먼 고생을 왜 하나. 아직 열지 않은 파일 760개 중 수상한 이름이 많은데 제일 의심스러운 문건이 하나 있다. '국제인권법연구회(인사)'다. 인사와 관련된 파일 아니겠나."

-재판부 인사개입은 재판을 받는 시민에게도 영향을 준다.
"판사에 따라 결론이 달라지는 게 정상이냐고 문제를 제기하는 판사들도 있다. 그러나 그분들 논리는 딱 인공지능(AI)이 판결하게 하자는 거다. 사회가 다양해졌으니 다양한 의견이 있는 거다. 그래서 재판도 하급심이 있고, 중간이 있고, 상급심이 있는 거다. 그 과정을 거친 뒤 지금 현상에서 하나의 의견으로 모이는 거다.

이전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에도 마찬가지로 그런 식으로 관리할 게 아니라 다양하게 생각하는 판사들의 의견을 들어보고, 수용할 부분은 적극적으로 수용해서 절충하는 단계로 갔더라면 아무 문제가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해도 사법부는 망하지 않는다. 오히려 공식적으로 다른 의견을 받아들이고, 그 의견들을 절차로 소화해내는 게 건강하다."

"이명박-박근혜 악행 그대로 답습한 리스트"

윤나리 변호사(전 판사)는 “사실 이명박, 박근혜 정부 때 우리 시스템이 많이 무너졌다. 이 정도는 우리가 민주화 이뤄냈으니까 물러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부분들이 많이 깨졌다”라며 “정치가 무너지니까 방송, 공공분야가 무너지고 사법부도 이 모양이 됐다. 정치 후퇴로 인해서 싹 다 후퇴됐다. 다시 이전으로 회복해야 한다”고 말했다.
 윤나리 변호사(전 판사)는 “사실 이명박, 박근혜 정부 때 우리 시스템이 많이 무너졌다. 이 정도는 우리가 민주화 이뤄냈으니까 물러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부분들이 많이 깨졌다”라며 “정치가 무너지니까 방송, 공공분야가 무너지고 사법부도 이 모양이 됐다. 정치 후퇴로 인해서 싹 다 후퇴됐다. 다시 이전으로 회복해야 한다”고 말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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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와 대법원이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댓글 사건 관련 재판을 두고 교감한 문건도 공개됐다.
"양승태 대법원장 체제가 이 자체로 굴러간 게 아니라 정치랑 엮어서 함께 갔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특징을 답습할 수밖에 없었다. 계속 무언가를 지시하는 정권이었다. 김기춘 전 비서실장은 틈나는 대로 법원을 길들이고, 재판을 못 하게 하고, 사법부에 지시하고 뭘 요구하는 게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는 정권이었다.

원칙적으로 이런 요구하지 말라고 얘기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을 것 같다. 그러나 문제는 법원행정처도 블랙리스트를 똑같이 하시지 않았나. 그런 걸 보면 청와대에 어쩔 수 없이 방어만 한 건 아닌 것 같다. 이명박-박근혜 정부가 하던 이상한 관행, 악행 등 소위 말하는 적폐를 상당히 유사하게 답습했다."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전에도 이런 경우가 있었나.
"안 그래도 예전에 계시던 판사님들에게 이전에도 이랬느냐고 여쭤봤다. 그분들이 이전엔 없었다고 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 우리 시스템이 많이 무너졌다. 민주화를 이뤄냈으니까 이 정도는 후퇴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부분들이 많이 깨졌다.

정치가 무너지니까 방송, 공공분야가 무너졌고, 이제 드러났지만, 사법부도 이 모양이 됐다. 정치 후퇴로 싹 다 후퇴됐다. 다시 이전으로 회복해야 한다. 제가 알기론 지금은 전혀 커넥션(법원-정부 사이의 소통)이 없다고 알고 있다. 그게 정상 아닌가. 앞으로는 정권이 바뀌더라도 확실히 이 선은 넘지 않아야 한다."

-검찰 수사를 해야 한다는 의견도 많다.
"너무 이르다. 추가조사위가 조사하지 못한 암호 파일 760개와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PC가 남아있는 상황에서 그냥 덮을 수 없는 문제라는 건 모두 다 알고 있다. 법원도 그걸 알기 때문에 최선을 다하지 않을까.

제 생각엔 법원에 그 기회를 한 번 더 줬으면 한다. 1차 조사위 이후에 1년 동안 이 문제를 묵히지 않고 여기까지 밝혀낸 건 판사들의 힘이었다. 결국엔 비밀번호를 건 사람들이 그냥 암호를 알려주면 된다. 그 사람들이 알려주지 않으면 비밀침해죄 우려가 커져 법원 내에서 하기 힘들 수 있다.

법원은 국민의 신뢰를 먹고 사는 기관이다. 법원이 행정부와 입법부를 견제하는 곳인데 검찰은 행정부이지 않나. 검찰이 압수수색 영장 등을 청구하면 또다시 그걸 법원이 판단해야 한다. 한번 손상된 권위, 신뢰가 빨리 회복되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김명수 대법원장이 추가로 내부 기구를 꾸리겠다고 언급했는데.
"법원 내부 인사로만 구성하기는 조금 힘들지 않겠냐는 생각도 한다. 사법 개혁에 대한 외부 바람들이 많지 않나. 법원은 법원의 것이 아니다. 국민의 것이다. 국민이 지금 여기에 많은 관심을 두고 있기 때문에 아마 외부인도 관여하는 방향으로 가지 않을까 생각한다.

법원 외부나 내부에서 서로 믿을 수 있는, 양쪽 다 합의할 수 있는 분이 1~2명 더 들어오지 않을까. 조속한 시일 내에 다시 기구를 꾸려야 한다. 최소 760개 파일, 임종헌 전 차장의 PC는 열어봐야 한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나.
"국민 여러분이 걱정하지 않으셨으면 한다. 조금만 시간을 갖고 지켜봐 주시면 사법부는 진정으로 거듭날 것이다. 촛불시민 덕분에 우리 사회가 더 맑아졌듯이 이번 사건을 계기로 법원도 더 맑아지고 좋아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태그:#양승태, #대법원, #블랙리스트, #윤나리, #대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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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진기자. 진심의 무게처럼 묵직한 카메라로 담는 한 컷 한 컷이 외로운 섬처럼 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징검다리가 되길 바라며 오늘도 묵묵히 셔터를 누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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