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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S <까칠남녀 : 모르는 형님, 성소수자 특집>에 나온 출연진 사진.
 EBS <까칠남녀 : 모르는 형님, 성소수자 특집>에 나온 출연진 사진.
ⓒ E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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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생 시절 EBS 강의를 보면서 수능공부를 했던 까닭에 EBS는 제게 참 친숙한 채널입니다. <Space 공감>이라는 음악 프로그램은 이 상업 음악의 척박한 땅에서 샘물 같은 존재였고, <지식채널e>의 출현은 한국의 교육문화콘텐츠에 굉장히 중요한 기점이 되는 프로그램이었지요. 그러고 보니 EBS <다큐프라임>도 꽤나 애정합니다. 교육과 관련해서 참고할 수 있는 연구들을 쉬운 언어로 전달하는 몇 안되는 훌륭한 프로그램이거든요.

그런 와중에 <까칠남녀>는 시청목록에 별표 3개쯤 추가해놓은 프로그램이었습니다. 지난 몇 년간 꾸준히 제기되어 온 한국 사회 내 젠더 이슈들을 직접적으로 다루는 유일한 방송이었으니까요. 엉킬 대로 엉킨 실타래들을 한 올, 한 올 풀어나가겠다는 의지가 느껴지는 프로그램이어서 저는 볼 때마다 참 감동이었습니다.

일부 남성패널의 질문이나 입장을 듣다보면 고구마 천 개 쯤 삼킨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했지만 여성 패널들의 수고롭고 슬기로우며 친절한 설명을 듣다 보면 체기는 조금씩 내려갔고 희망의 빛줄기가 보이는 것 같기도 했거든요. 그래서 저는 까칠남녀를 보는 것은 복근운동과 비슷하다고 느꼈습니다. 아무리 해도 전혀 반응 없는 나의 복부를 보는 느낌(분명히 보이지 않는 무언가는 만들어지고 있다고 믿고 싶은 심정)으로 시청하곤 했던 것이지요.

하지만 지난 성소수자편 방영 이후, 갑작스러운 은하선씨에 대한 까칠남녀의 일방적 하차통보와 그 이후 이어진 문제제기에 EBS의 대응을 보고 있자니 한숨이 푹푹 나옵니다. 개인적으로 까칠남녀의 정점은 이 모든 사단의 원인으로 지목되기도 하는 성소수자편 방송이었다고 생각합니다.

2017년 성탄절에 맞추어 방송된 성소수자편은 일부 보수 기독교인들에게는 성탄절의 의미에 대한 의도적 훼손처럼 받아들여졌나 봅니다. 그 방송 이후 매우 적극적이고 적대적인 EBS 규탄이 시작되었는데요. "뿡뿡이를 방송하는 EBS가 어떻게 이럴 수 있냐"는 학부모의 절규와 콘돔이 쓴 당근이 EBS에 나뒹구는 장면을 바라보면서 저는 세기말의 하늘빛은 주황색일지도 모르겠구나 생각하였습니다.

9일 오전 일산 EBS 신사옥 앞에서 전국교육학부모시민단체연합을 비롯한 22개 단체에서 약 50여 명의 사람들이 모여 피켓을 들고 'EBS <까칠남녀> 폐지, 최혜경 본부장·장해랑 사장 징계' 등을 요구하고 있다. 이들은 지난 5일 EBS 1층 로비를 점거하는 등 돌발 행동을 했다. EBS 측에서는 정문을 폐쇄하는 등 대처에 나섰다.
 9일 오전 일산 EBS 신사옥 앞에서 전국교육학부모시민단체연합을 비롯한 22개 단체에서 약 50여 명의 사람들이 모여 피켓을 들고 'EBS <까칠남녀> 폐지, 최혜경 본부장·장해랑 사장 징계' 등을 요구하고 있다. 이들은 지난 5일 EBS 1층 로비를 점거하는 등 돌발 행동을 했다. EBS 측에서는 정문을 폐쇄하는 등 대처에 나섰다.
ⓒ 유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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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선 하차는 단 하나의 사건이 아니다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EBS는 이번 일은 은하선이라는 한 사람의 하차로 인해 벌어진 골치 아픈 논쟁이 아니라 EBS의 설립 이념이자 근간이 훼손된 엄청난 사건임을 인지하셨으면 합니다. 시간이 모든 것을 해결해주리라 생각하실지 모르겠지만 그런 태도로 일관하신다면 결과적으로는 EBS의 큰 손실이자 회복하는 데 시간이 꽤 걸릴 실수이며, 공공기관으로서의 책무성 위반이라는 사실도 말씀드립니다. 이 무슨 비약이냐고 생각하실 수도 있겠지만 사실이 그렇습니다.

흔히 EBS라는 이름으로 불리지만 EBS는 한국교육방송공사법에 의해 설립된 공공기관이며 공식 명칭은 한국교육방송공사입니다. 한국교육방송공사법을 살펴보면 EBS의 설립 목적(제1조)은 "국민의 평생교육과 민주적 교육발전"이며 공사의 자본금은 "전액은 정부가 출자하는 것(제4조)"으로 명시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EBS는 학교교육을 보완하기 위해 만들어진 세금으로 운영되는 공공기관인 것이지요.

한국교육방송공사(EBS)의 담당 CP는 은하선씨에 대한 일방적 하차 결정에 대해 성소수자 탄압으로 해석하지 말라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하지만 시기적으로 <까칠남녀> 논란을 통해 은하선씨의 성적지향에 대한 외부의 문제제기가 들어온 상태였고, 공격이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이에 맞물려 하차한 점을 고려할 때, 이번 결정은 성소수자에 대한 사회적 탄압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롭기 어렵습니다.

EBS는 "성소수자 방송에 대한 반대 시위와 무관하다. 정치적 탄압"도 아니며 "EBS 출연자로 적절하지 않다는 CP(류재호 부장)의 최종 결정"이라는 공식입장을 내놓았습니다. 성소수자 탄압으로 해석될 여지가 높은 정황적인 요인들을 고려했을 때, 담당부장의 입장표명으로 EBS의 입장을 대변하기는 역부족으로 보입니다.

본 이슈가 은하선 개인에 대한 류재호 담당 CP의 판단이라는 입장에서 개인 간의 문제로 정리하고 싶은 EBS의 욕구는 충분히 알겠습니다. 하지만 지극히 개인적인 것은 항상 정치적인 것이라는 사실을 생각할 때, 그리고 특히 본인을 바이섹슈얼로 정체화하는 은하선씨가 그 '개인'일 경우에 이 사안은 개인적인 차원의 문제로 끝날 수 없으며 끝나서도 안 된다는 점을 EBS도 이미 알고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EBS는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평생교육과 민주시민교육' 담당 공공기관입니다. 본 사안에 대한 책임 있는 입장표명을 해야만 하는 위치에 놓여 있다는 것을 몰라서는 안 됩니다. 만일 EBS가 본 사안에 대한 책임 있는 입장을 내놓지 않을 경우, 공공기관으로서의 책무를 게을리한다는 비판을 각오하셔야 할 겁니다.

저는 일련의 상황과 EBS의 대응을 보며 이 사건을 교육공무원의 직무유기이자 근무태만으로 이름 붙이기로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본 사안은 유네스코 회원국으로서의 한국 정부가 글로벌 교육의제에 따른 책무를 이행하지 않은 대표적 사례이지 않은가 생각합니다.

2015 인천 송도 세계교육포럼(World Education Forum)
 2015 인천 송도 세계교육포럼(World Education Forum)
ⓒ Korea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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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네스코는 2015년 세계교육포럼을 통해 2030 글로벌 교육의제에 합의했습니다. 2030 교육의제는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 교육을 지향하며 모두를 위한 양질의 교육(Quality Education for All)을 성취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국제사회의 공동규범이자 선언입니다.

공교롭게도 이 선언문은 한국정부가 주최한 2015 세계교육포럼을 통해 인천 송도에서 채택되어 "인천선언(Incheon Declaration)"이라는 이름을 얻었는데요. 이 선언에 동의한 유네스코 회원국 모두는 그 선언의 내용을 준수하고 이행할 책임이 있고 대한민국은 회원국이자 인천선언의 주역이었습니다.

인천선언문은 "교육 내에서의, 그리고 교육을 통한 포용과 형평성"은 교육에 대한 "접근, 참여, 학습성과에서 일어나는 모든 형태의 배제와 소외, 격차와 불평등에 대처하는 것"임을 분명히 하고 있으며 어떤 교육목표라고 하더라도 "모두에게 미치지 못하면 달성된 것으로 간주될 수 없음"을 명시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인천선언 8번은 "모두가 교육받을 권리(right to education)"를 달성하는데 있어 "성평등(Gender Equality)의 중요성" 및 "성인지적"인 교육정책 및 성인지적 교육담론의 주류화를 약속하고 "성에 기반한 차별과 폭력을 제거할 것"을 강조하고 있지요. 하지만 선언문에 합의한 이후 한국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성차별적 사건들과 박근혜 정권의 실정을 보면 지난 정부가 성과 쌓기에 급급하여 문서를 대충보고 서명한 것 아니냐는 우스갯소리가 허투루 들리지 않습니다.

한국사회에서 성적소수자의 교육접근성은 어떻습니까? 이 질문에 대해 성적소수자의 학교 진학을 막지 않았는데 무슨 교육접근성 타령이냐는 반론이 있을 수 있습니다. 교육을 학교에 발을 들여놓는 것으로만 전제하면 한국사회에서 성적소수자들은 의무교육 대상에 포함되므로 교육접근성에 있어 불이익을 당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요. 하지만 교육은 학교에 입학하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사회 안에서 경험할 수 있는 모든 것이 사실은 교육이기 때문이지요.

그렇다면 EBS의 은하선씨 하차는 어떤 잠재적 교육과정으로 작동할까요? 성소수자라서 일방적으로 하차 통보를 한 것이 아니라고는 하지만 그렇다면 아니라는 사실을 입증할 책임이 EBS에게 남겨집니다. 바로 이 지점이 제가 EBS에게 공공교육기관으로서의 입장표명을 요구하는 이유입니다. 

지금의 한국 사회에서 한 청소년이 학교 안에서 성적소수자임을 커밍아웃한다면 어떤 상황들을 직면하고 감내해야 할까요? 한국사회에서 성적소수자임을 드러내는 것은 내가 직면할 혐오와 차별, 배제를 전제로 엄청난 용기를 내야만 하는 일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저는 한국사회에서 성적소수자 청소년의 교육접근성은 현저히 낮다고 생각합니다.

교육과정마다 지겹도록 이야기하는 청소년기의 과업인 자아 정체감 형성만 생각해보더라도 성적소수자 청소년들은 이 교육과정으로부터 배제된다고 볼 수 있지요. 내가 나임을 드러낼 수 없는 곳에서 도대체 무슨 자아정체성을 어떻게 확립할 수 있단 말인가요?

지속가능발전목표 4번 - 교육목표 모두를 위한 양질의 교육
 지속가능발전목표 4번 - 교육목표 모두를 위한 양질의 교육
ⓒ Asian Development Ba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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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수자도 똑같이 권리·의무 있는데... 공허한 선언

글로벌 교육의제의 일곱 번째 목표(지속가능발전목표/SDGs 4.7)는 "지속가능발전, 지속 가능한 생활양식, 인권, 성평등, 평화와 비폭력 문화 확산, 세계시민의식, 문화다양성 존중과 지속가능발전을 위한 문화의 기여 등에 대한 교육"과 같은 다양한 주제들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세계시민교육이 글로벌 교육의제의 주요 내용으로 채택되는 데 큰 역할을 한 한국 교육부와 각 시도교육청이 정작 학교 공동체에 존재하는 성적소수자 청소년 또는 교사에게 안전한 공간 하나 마련하지 못하는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합니다. 뿐만 아니라 성평등에 대해 연구하고 나름의 시도를 해오던 초등교사들에게 쏟아지던 비난을 모른 척한 교육부의 태도는 세계시민교육을 주도하겠다는 그 의지와 지향에 비추어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총 4장짜리인 인천선언문이 만들어진 2015 세계교육포럼에 당시 44억 원의 정부예산이 소요되었습니다. EBS를 설립하는 데는 1000억 원의 정부자금이 출자되었지요. 세금 덕분에 작성될 수 있었던 인천선언문의 열두 번째 항목은 2030 글로벌 교육의제 이행의 근본책임이 각국 정부에 있음을 명시하고 있습니다. 조세납부의 의무와 시민의 권리를 생각하면 우리 사회의 성적소수자들은 사회 구성원으로서 납세의 의무를 성실히 이행하고 있으면서도 동등한 시민으로서의 권리는 누리지 못하고 있는 매우 불평등한 사회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인천선언 이후, 교육부와 각 시도 교육청, 유네스코 관련기관들은 세계시민교육에 열을 올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나는 이런 사람이라고 말하기 위해 엄청난 두려움과 공포를 극복해야 하는 환경에서 교육은 어떤 존재들을 지속적으로 배제해 왔을까요? 내가 성적소수자라고 말한 이후에 받게 될 차별과 배제를 알고 있는 이들에게 한국정부가 이행하는 시민교육은 얼마나 공허할까요? 내가 성적소수자임을 밝힐 수 없는 학교에서 세계시민교육이라는 것은 어떻게 가능한가요?

저는 누군가의 유예된 권리에 대해 모른 체하며 혐오와 폭력 속에 교사들을 방치했던 교육부와 성적소수자 시민들의 당연한 권리를 외면하는 한국 정부가 그리는 세계시민성이 무엇인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대한민국 헌법은 모든 국민의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와 국가가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보장할 의무"를 가짐을 명시하고 있습니다(제10조). 뿐만 아니라 모든 국민이 "법 앞에 평등"하며 "누구든지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함"을 보장하고 있지요(제11조). 그렇기 때문에 말로만 세계시민이 아니라 내가 발 디디고 있는 사회에서 '시민'이 되어가는 경험을 제공할 책임이 국가에 있습니다.

논란이 되는 것들을 억압하여 침묵하도록 하는 국가권력이 아니라 대립하고 갈등하는 지점들을 건강하게 드러내고 논쟁하며 합리적으로 토론할 수 있는 안전한 환경을 제공할 의무가 국가에 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배움의 환경을 제공받을 권리가 평생교육의 관점에서 모든 국민에게 있습니다.

우리나라 교육기본법은 모든 국민의 "평생에 걸쳐 학습하고, 능력과 적성에 따라 교육 받을 권리(제3조)"와 "성별, 종교, 신념, 인종, 사회적 신분, 경제적 지위 또는 신체적 조건 등을 이유로 교육에서 차별을 받지 않을 권리(제4조)"를 보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법에 의해 설립된 EBS는 공공 교육기관으로서 이러한 권리를 보장할 책무가 있는 것이지요.

EBS <까칠남녀> '성소수자 특집' 엔딩
 EBS <까칠남녀> '성소수자 특집' 엔딩
ⓒ E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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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도 배제하지 않는 교육, 지금이 시작이다

저는 EBS가 본 사안을 무마하기에 바쁜 것이 아니라 헌법과 교육기본법, 글로벌 교육의제 2030의 4.7 목표에 기반하여 책임감 있는 입장을 밝히셔야 한다는 점을 알립니다. 평생교육과 민주시민교육을 담당하는 공공교육기관으로서 책임감 있게 분석하고 대책을 수립하고 공유해야 할 책임이 EBS에게 있습니다. 그리고 본 사건이 교육을 통해 "모든 국민"의 행복추구권을 어떻게 보장할 수 있을지 깊이 고민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촛불로 채워진 광장에는 모두가 있었습니다. 촛불을 통해 당선된 문재인 정권에서만큼은 누구의 정체성도 다른 이의 정체성보다 우월하지 않으며, 동료 시민의 부당한 고통을 묵인할 수 없다는 보편적 인권의 기준이 공무원 교육을 포함한 모든 공교육과정에 분명히 담겼으면 합니다. 후보시절 문재인 대통령의 페미니스트 선언의 현장에서 문제제기를 했던 한 성소수자 활동가에게 현장에 있던 사람들이 외쳤던 말을 잊지 못합니다. "나중에! 나중에!"

시간은 흘렀고 저는 그 나중이 바로 지금이라 믿습니다. 헌법과 교육기본법에 보장된 평등권에 기반하여 "성적소수자를 포함한 모두를 위한 양질의 교육 환경"을 위한 대책을 수립하고 시행해야 할 시급성을 EBS와 한국 정부에게 알려드립니다.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교육을 통해 혐오에 인내하지 않는 사회"를 함께 만들어내야만 하는 책임이 지금을 사는 우리에게 있으며 이것은 나중으로 미룰 수 없는 숙제임을 다시금 환기 드립니다.

약자와 소수자에 대한 혐오야말로 묵을 때로 묵은 이 사회의 적폐입니다. 그러니 부디 욜로(YOLO, You Only Live Once)의 정신으로 지금의 갈등을 변화의 계기로 만들어갔으면 합니다. 나중은 언제나 없고 우리들에게는 지금만이 유일한 삶의 순간이니까요.


태그:#은하선, #까칠남녀, #EBS, #양질의교육, #SDGS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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