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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눈에 백내장이 온 건가? 베란다를 통해 밖을 보니 세상이 온통 뿌옇다.

"아들, 왜 이렇게 뿌옇지? 눈이 너무 침침해."
"엄마 오늘 미세먼지가 심각하게 온대요."

한 겨울에 미세먼지 주위보라니 뜬금없다. 꽃샘추위보다 한 발 앞서 먼저 달려온 미세먼지. 작년 봄, 유난히 미세먼지가 많아 구입한 공기청정기를 다시 틀었다. 하늘은 진흙탕 물을 손으로 휘저어 놓은 것 같다.

문을 열고 환기는 불가능. 문 닫고 청소기를 돌리기도 찜찜해서 물걸레질을 했다. 안 그래도 끝도 없고 티도 안 나는 집안일에 일이 하나 추가되었다. 보통 성가신 게 아니다. 밖에는 미세먼지로, 집안에서는 빨래건조대로 거실이 꽉 차서 숨이 막힌다.

창문을 열 수 없으니 빨래가 마를 때 풍겨 나오는 세제와 섬유 유연제가 석인 냄새가 갇힌 공기를 점령하고 이대로 숨 쉬어도 괜찮은지 걱정이다. 냄새는 공기 청정기로도 감당이 안 된다.

며칠 한파 때문에 길이 꽁꽁 얼어 걷기도 힘들었다. 날이 좀 풀려 강아지를 앞세우고 산책이라도 좀 해볼라 치니 이번에는 미세먼지다. 날씨는 '뭐 좀 해결되나 싶으면 또 뭔가 일이 생기는 인생'이랑 꼭 닮아있다.

며칠 집안에만 갇혀있는 우리 집 강아지 미미, 미나도 고향을 떠나온 실향민 마냥 하염없이 밖을 쳐다 본다. 라디오를 듣는데 DJ가 한파가 나은지 미세먼지가 나은지 문자 투표를 했더니 한파가 낫다는 사람들이 더 많다. 동감이다. 한파는 요새 유행인 롱패딩으로 어찌어찌 피할 수 있지만 미세먼지는 머리카락 사이로, 피부로 깊숙이 파고 들어와 방독면으로도 피할 길이 없다.

메르스가 유행일 때 사 놓은 의료용 마스크 한 박스를 꺼냈다. 마스크 위쪽으로 철사가 길게 붙어있어 코 위로 꾹꾹 누르면 얼굴 모양대로 철사가 휘어져 밀착이 잘 된다. 일반 마스크 보다 들뜬 공간이 없어 기능도 좋다.

하지만 실내에서 마스크를 벗으면 철사 자국이 양쪽 눈 밑과 콧등 위로 선명하게 남아 얼굴이 괴상하게 보인다. 만나는 사람마다 묻기도 전에 "이거 마스크자국이에요" 주변 모든 사람들이 듣도록 큰소리로 말하고 '이게 다 미세먼지 때문'이라는 억울한 표정을 짓는다. 나이가 드니 한번 눌린 피부는 다시 돌아오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

지긋지긋한 미세먼지, 내게 주어진 '새로운 미션'

집근처에 붕어빵과 계란빵을 파는 포장마차가 있다. 장보러 가는 길에 그 곳에 들러 어묵국물에 하나씩 먹는 붕어빵은 장보러 가는 길을 즐겁게 하는 행복한 일과이다. 십년 넘는 단골 포장마차 주인은 들어오지 않고 눈인사만 하고 지나가는 사람들 때문에 애가 타는 얼굴이다. 한 상 가득 구어 놓은 붕어빵은 제수용품처럼 말라가고 있다.

차마 지나치지 못하고 들어가 붕어빵을 들고 한입 베어 물며

"먼지 때문에 장사 안 되시죠? 한철 장사인데 큰일이네요."
"그러게요, 우리 같은 사람들은 어찌 살라고 날씨까지 이러는지."

안타까운 맘에 3천원어치를 샀다. 다행히 나는 장이 강해서인지 웬만한 거 먹어도 탈이 안 난다. 미세먼지가 계속되니 포장마차는 며칠째 문을 닫았다. 꽁꽁 묶여있는 포차를 보니 애타던 주인 할아버지 얼굴이 떠오르고 맘이 좋지 않다. 할 수만 있다면 도깨비를 울리고 싶은 심정이다. 비라도 세게 내리면 깨끗해지지 않을까.(드라마 <도깨비>에서는 도깨비가 울면 비가 온다)

tvN <도깨비> 스틸 사진.
 tvN <도깨비> 스틸 사진.
ⓒ 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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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래미 대학 합격했다고 한턱 쏜다던 친구가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전화했다. 독감이란다. 요즘에는 독감 안 걸린 사람 찾기가 더 힘들다. 급격한 기온 차이 때문인지 미세먼지에 딸려오는 바이러스 때문인지 병원마다 독감환자로 북새통이다. 이래저래 약속이 취소되어 며칠을 집안에만 있으니 혼자 놀기에 달인인 나조차 슬그머니 기분이 다운된다. 찌푸린 하늘만큼 내 마음도 찌뿌둥해진다.

처진 기분을 '업'시켜보려고 강아지들과 이방 저방 달리기도 해보고 유튜브에서 줌마댄스인지, 줌바댄스인지 동영상을 틀어놓고 따라해 본다. 이거 효과가 있다. 이름도 요상하게 아줌마를 연상시키는 줌마댄스. 라틴댄스와 피트니스 동작을 접목했다는 이 댄스는 5분만 해도 등줄기가 후끈해지며 땀이 난다. 웃기기도하고 재미도 있고 무엇보다도 살짝 기분 전환이 된다.

미세먼지는 '먼지'라는 이름으로 날아와 어떤 사람에게는 우울이 되고 어떤 사람에게는 한숨이 되며 또 어떤 이에게는 독감이 된다. 지나치는 사람의 눈빛 하나에도 신경이 쓰이는 나에게 그것은 '새로운 미션'이다.

'날씨가 이래서' 짜증이 난다는 사춘기 아들에게는 맵고 단 요리로 기분을 달래줘야 하고, '날씨가 이래서' 길에 다니는 사람도 없고, 그래서 장사가 안 된다고 한숨 쉬는 남편에게는 이럴 때가 읽고 싶은 책을 읽을 수 있는 기회라고 부추긴다. 당장 나가야 하는 돈이 정해져 있는데 태평한 소리한다고 구박을 한다.

내가 어떻게 해 볼 수 없는 일 앞에 잠시 할 말을 잃다가 "내가 더 줄여볼게. 아들들! 오늘부터 밥 한 그릇씩만 먹어. 긴축재정이야" 내가 소리치자 각자 방에 흩어져있던 아이들이 큰소리로 "네" 답한다. 분위기가 좀 누그러졌다. '엄마'라는 건 365일, 24시간 집안일은 물론 식구들의 기분까지 돌봐야 하는 극한 직업이다.

포털에서 검색해보면 미세먼지의 원인이나 '생활 속 미세먼지를 줄이는 작은 실천'들이 깨알처럼 올라와있다. 이 중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은 무엇일까.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일에서부터 일회용품 사용을 줄여 환경을 살리는 일까지 어렵지 않게 실천할 수 있는 일들을 숙지해본다(근데 아무리 생각해도 미세먼지의 주범으로 한때 몰린 고등어는 얼마나 억울했을까? 온몸을 태워 단백질과 DHC를 공급해줬더니 이런 누명까지 쓰고. 안타깝다).

환기를 못하는 일. 마스크를 써야하는 일. 외출을 자제하는 일. 물걸레질을 더 자주해야 하는 일. 장사를 접어야 하는 일. 마음이 우울해 지는 일. 호흡기 감염에 걸리는 일. 먼지 하나에도 극복해야 하는 일이 너무도 많다.

있을 때는 그 소중함을 모르는 공기. 미세먼지는, 평소에는 아무도 소중히 생각하지 않지만, 없으면 모두를 소멸시켜버리는 공기의 소중함을 깨닫게 한다. 이런 공기처럼 문득 '공기 같은 존재들'에 대해 생각해본다.

너무 가까이, 너무 흔해서, 너무 당연해서, 함부로 대하거나 놓치고 있는 소중한 뭔가가 있는 건 아닌지. 소중한 것을 소중한 것으로 알지 못하면 결국 놓쳐버리고 후회하게 되니까. 깨끗한 공기의 소중함처럼 내 주변의 공기 같은 존재들의 소중함도 다시금 생각해 본다.

이번주부터 한파와 함께 강한 바람으로 미세먼지가 사라진다고 한다. 춥더라도 온 집안의 문을 활짝 열고 공기를 바꾸고 싶다. 그리고 소중한 이들에게 다짜고짜 밑도 끝도 없는 문자발송을 해야겠다.

"붕어빵에 커피 한잔 하자. 우리 집에 놀러와."


태그:#미세먼지, #공기, #마스크, #고등어, #독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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