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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근처 미용실에 가서 숏컷을 하고 싶다고 했다. 하지만 직원이 거부하는 바람에 결국 원하는 대로 자를 수가 없었다. 너무 더워서 좀 잘라냈으면 좋겠다고 하니, 겉으로는 단발머리인데 안쪽은 머리칼이 거의 다 밀려 있는 이상한 투블럭컷을 하기 시작했다.

작년 여름이었다. 그놈의 머리 길이가 뭐라고! 좀만 더 자르면 되는 것을. 그런 이상한 머리를 한 몇 달간은 유지했다. 내가 원해서 내 돈 주고 하겠다는데 도대체 왜 어떻게든 '여자 머리(?)'를 유지하려고 기를 쓰는 건지 참 모르겠다. 몇 번은 좀 따져 묻기도 했다.

"남자가 긴 머리, 여자가 짧은 머리를 하면 어떻게 되는 거예요?"
"남자랑 여자는 머리가 달라서 비용도 달라요."

뇌도 성별에 따라 다른 점이 없다는데 머리카락이 다를 수가 있나? 직원 본인이 생각하기에도 영 아니다 싶었는지 말을 바꿨다.

"원장님이 결정하신 거예요."

한번은 속만 투블럭인 상태에서 숏컷을 꼭 하겠다고 했다. 그랬더니 돌아온 말이 참 가관이었다. 남자는 귀밑머리를 다 잘라도 상관없는데 여자는 귀밑머리를 다 잘라낸 상태로 숏컷을 하는 건 불가능하다나. 나는 실습용 마네킹 같은 게 아니라 사람이라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남들이 보기에는 별일이 아닌 걸 자꾸 따지고 드는 것 같아서 또 내가 하고 싶은 머리를 못하고 돌아왔다. 정말 이상한 일이다. 초등학생 때만 해도 항상 숏컷이었다. 여중, 여고를 다니면서부터는 왜인지 줄곧 단발을 유지했다. 아마 또래 사이에서 튀어 보이지 않으려고 그랬던 것 같다.

대학교를 다닐 때는 어깨 아래로 내려오는 머리를 펌도 해보고, 아예 허리 정도까지 길러보기도 했다. 그런데 사실은 짧게 자르고 싶었다. 내 마음을 무시하고 완전히 반대로 해봤다가 굉장히 질려버렸다. 숱이 많아서 머리를 감을 때마다 힘들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내 모습이 너무나 마음에 안 들었다. 긴 머리를 다시 단발로 자르고 난 다음부터는 언젠가 짧게 잘라야겠다는 생각을 계속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미용실에만 가면 다시 단발로 하고 와버렸다. 그게 수년 동안 반복되었다.

분노 조절이 잘 안 되던 시기 중의 어느 날, 나는 나 자신에게도 화가 많이 났다. 왜 늘 하고 싶은 대로 하지 못하고 남에게 끌려다니는 듯 사는 걸까 생각하면서, 묶은 머리를 가위로 마구 잘랐다. 좀 엉성한 숏컷이 되었다. 한동안 엉망인 머리로 돌아다니다가 미용실을 다시 찾아갔다. 머리를 집에서 자른 거냐고 묻기에 그렇다고 했다. 사적인 일이라고 생각한 건지 왜 그랬냐고 묻지는 않았다. 그렇게 머리를 막 자른 게 난생 처음이었는데 희한하게도 창피하거나 두렵지 않았다.

난 그래도 성에 안 차서 몇 달 전에 아예 한쪽 머리를 밀어버렸다. 이번에는 미용실에서도 수습을 하기 어려워서 반쪽을 싹 밀어낸 머리가 나중에는 잔디처럼 괴상하게 자라났다. 원래는 3분의 1을 밀어야 하는 건데 내가 가운데까지 밀어버려서 가운데 부분을 길러야 한다. 완성(?)되려면 내년까지는 기다려야할 것 같다.

원하는 머리를 하기 위해 일 년 반 정도가 걸리는 셈이다. 남자들은 아예 삭발을 한 사람도 자주 보이는데 왜 여자라는 이유로 숏컷조차도 못하게 하는 걸까. 머리를 자르면 실연을 당했거나 혹 레즈비언이냐는 등의 편견을 씌운다. 성별에 의해 모든 것이 두 가지로만 딱 나뉠 수 있을까?

자기 머리도 마음대로 못하는 사회에서, 성소수자들 특히 대부분의 트랜스젠더들은 자꾸만 자기 몸을 싫어하며 살 수밖에 없다.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쓸 뿐만 아니라 자기검열도 심하게 하게 된다. 여성이나 남성으로 패싱(자신이 정체화한 성별로 남들이 보는 것)이 안 될까봐 60% 이상의 트랜스젠더가 화장실 가기를 포기한다고 한다. 이분법적인 젠더 규범 때문에 생리적인 작용조차 해결하지 못하는 것이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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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는 남성, 여성이라는 두 가지 도식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이상한 존재로 규정해버린다. 숏컷 하려고 시달린 내 체험이 바로 그 증거다. 그러나 세상에는 더 많은 성별이 있으며, 그 성별마다 어떤 규범대로 살아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수년 전 여성도 남성도 아닌 성별로 정체화한 사람이다(성소수자 용어로는 논바이너리 트랜스nonbinary trans라 하는데, 우리말로 하자면 '비이분법적 성별인 트랜스젠더'다).

중성적인 사람으로 보이기 위한 최선의 방법은 성별을 헷갈리게 하는 것뿐이었고, 그중 하나가 머리를 짧게 잘라버리는 것이다. 어떻게든 한쪽 성별로 보려고 하는 사람들 때문에 외출을 하기가 싫었다. 여성 슬랙스에 남성 카디건을 입고 나갔더니 "여자가 왜 저런 옷을 입어?"라는 말을 뒤통수에서 들었고, 짧은 머리로 다닐 때에도 "머리 꼴이 저게 뭐냐, 쯧쯧." 하는 소리를 버스터미널에서 들었다. 길거리에서 여자냐 남자냐 하는 말을 듣는 건 너무 흔한 일이라서 몇 번이나 들은 건지도 기억이 안 난다.

수년 동안 살아가면서 뒷말하는 사람들을 원망하기도 하고 나 자신이 잘못된 인간이라는 생각도 했다.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다는 느낌에 매우 우울하고 괴로웠다. 침대보다 키가 크면 몸을 잘라서 죽이고 작으면 늘려서 죽였다는, 신화 속 인물 프로크루스테스와 현재 사회가 다른 점이 무엇인가. 다양성을 존중하고 포용하는 사회로 변해갔으면 좋겠다.

덧붙이는 글 | <작은책> 12월호, 장애인 인권 글모음집 <이제는 유턴 시대>에 실린 글을 조금 수정했습니다.



태그:#성소수자, #트랜스젠더퀴어, #젠더퀴어, #정신장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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