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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지인의 집을 방문했다가 이제 막 열 살이 된 그녀의 아이를 만났다. 책을 읽고 있는 모습이 기특하고 반가워서 너는 책을 좋아하나 보구나, 하고 말을 건넸더니, 아이는 책이 싫단다. 읽어야 한다니 억지로 읽는 거란다.

아, 이걸 어쩌나. 좋은데, 참 좋은데 설명할 수 없다던 어떤 광고처럼, 나는 잠시 할 말을 잃었다. 책은 세상 밑바닥에 떨어진 것 같을 때도 나를 건져 올려준 존재라는 둥 내 평생의 친구라는 둥, 어쭙잖게 설명한다 해도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아이가 몸소 느끼고, 체험하지 않는다면.

<한 권으로 끝내는 초등 독서법> 책표지
 <한 권으로 끝내는 초등 독서법> 책표지
ⓒ 라온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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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생각을 하는 와중에 <한 권으로 끝내는 초등 독서법>이 눈에 띄었다. 책을 읽는 행위에 정해진 왕도란 없다고 생각하지만, 아직 자신만의 방법을 찾지 못한 아이를 독서의 세상으로 인도하기에는 좋은 길라잡이가 될 듯하다.

14년 차 초등학교 교사인 저자는 "정말 나는 그냥 직업인으로서 교사였다"고 고백한다. 매사에 열심히 했지만 잘하고 있다는 확신은 없었고, 많은 일에 교사 탓, 학교 탓, 교육 탓으로 돌리는 사회 분위기에 자꾸만 자신감을 잃고, 교사로서의 자부심도, 자존감도 낮아졌다고 한다. 그런 와중에 저자를 변화시킨 것은 다름 아닌 독서모임이다. 아이들을 책으로 인도하기 전에, 저자 자신이 먼저 책을 통한 변화를 체험한 것이다.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물음에 대한 답을 찾아나가면서 인생의 목표를 찾았고, 교사로서 정체성을 만들어나갔다."


저자는 교육의 문제는 어느 한쪽도 아닌, 학생, 교사, 학부모, 사회가 함께 노력해서 해결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교사로서 자신은 아이들에게 독서의 힘을 알려주기로 결심한 것이다. 이 책에는 저자가 아이들을 큰 성장과 변화로 이끌 수 있었던 독서법과 그 성과는 물론 교육에 관한 그의 진지한 고민들이 담겨 있다.

저자가 여러 번 강조해 마지않는 것은 책은 단순히 읽는 것이 아니라, 비판적으로, 주체적으로 읽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는 힘을 길러야 함은, 아이뿐만 아니라 어른에게도 유효한 독서법일 것이다.

"결국 책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것은 읽는 사람이다. 책은 상상력과 모험이 가득한 놀라운 이야기를 쏟아내기도 하고 누군가의 인생이 통째로 녹아들어 있거나 인류의 발자취가 담겨 있기도 하다. 책을 읽어가며 실천을 통해 나를 변화시키고 다른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은 놀라운 책의 힘이자 우리가 책을 읽는 이유일 것이다."


저자가 그간 실제로 적용하고 성과를 거뒀던 많은 독서법들 중 '본깨적 독서법'이 한 눈에 쏙 들어온다. '본 것, 깨달은 것, 적용할 것'으로 생각의 틀을 형성해 나가고, 어떤 실천으로 삶을 바꿔나갈지 끊임없이 고민하는 독서 방법이다. 이는 책뿐만 아니라 영화나 체험학습 혹은 기타 프로젝트에도 적용이 가능하다고 한다.

책은 처음부터 거창한 목표를 세우기보다 하루 15분씩 일정한 시간을 정해 책을 읽는 '습관'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또한, 가족이 함께 하는 독서모임을 해볼 것을 권하기도 한다. 이는 독서 교육뿐만 아니라 아이와 깊이 소통하고,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이 되기도 한다니, 일석이조가 아닐 수 없다.

아이들을 책과 사랑에 빠지게 하기 위한 저자의 노력과 그 방법은 실로 무궁무진하다. 체험학습을 대형 서점으로 가기도 하고, 대한민국 자기경영대상 페스티벌에 참석하기도 한다. 또한, <세계가 교실 세상이 교과서>를 함께 읽으며 아이들의 사고를 확장시키기도 하고, 세계 일주에 성공한 고등학생 선배들과 대화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들기도 한다. 

책을 통해 아이들이 달라지는 모습은 퍽 감동적이다. 학년 초에는 적응하지 못해 어수선했던 아이들이 어느 순간 책에 몰입하게 된다. 뿐인가. 초등학교 5학년 아이들이 <논어>를 일상으로 받아들일 정도. 당연히 생각은 깊어지고, 글의 무게감까지 갖추게 되었다고 한다. 책을 통해 아이히만을 배우며 악의 평범성을 생각하고, 자신의 사고를 돌아보게 되는 아이들이라니, 그 어떤 예쁜 표정보다 사랑스럽다.

아이들은 독서를 실생활에 적용하기도 한다. <아이의 식생활>과 <인간이 만든 위대한 속임수 식품첨가물> 등의 책을 보며, 즐겨먹던 스포츠 음료를 아이들 스스로 제한하고, 올바른 먹거리를 선택하려고 노력하는 등 어른보다 더 기특할 정도다. 또한, 책을 통해 외국에 사는 아이들에 대해 알아가며 그들을 위한 '필리핀 비타민 후원 프로젝트'까지 성공으로 이끄니, 독서의 쾌거가 아닐 수 없다.

책은 아이들의 독서가 왜 중요한지, 어떻게 독서로 변화할 수 있는지를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다. 동시에, 아이들을 사랑하고 교육을 고민하는 저자 본인이 책을 통해 변해가는 모습 또한 진솔하게 담고 있어서 매우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저자는 독서광인 것이 분명하다. 꼭 '초등 독서법'에 연연하지 않더라도, 책을 사랑하는 사람과의 대화를 하는 기분이 들어 책을 읽는 동안 퍽 유쾌했다. 또한 그 진정성이 아이들이 책을 삶 속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된 바탕이 되진 않았을까 추측해 본다.

제목은 '한 권으로 끝내는' 초등 독서법이지만, 이 책을 진지하게 받아들였다면 부모도, 아이도 한 권으로 끝낼 순 없을 것이다. 이 책에 소개된 책들로 계속해 손을 뻗어나가고 말테니.

부모로서 이 책을 만났다면, 책에 나온 독서법을 하나씩 아이와 함께 따라해 보는 것도 좋은 시도일 것이다. 그러나 그러지 않는다 해도, 책에 등장하는 수많은 책들에 관심이 가기 시작했다면, 그래서 책을 조금 더 가까이 하고 싶어졌다면, 이미 이 책의 역할은 톡톡히 한 것이 아닐까 한다. 함께 책을 읽을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아이는 독서의 세계로 한걸음 더 깊이 발을 들여놓을 것이다.


한 권으로 끝내는 초등 독서법 - 현명한 엄마는 책으로 아이를 키운다

최원일 지음, 라온북(2017)


태그:#한 권으로 끝내는 초등 독서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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