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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북구 양정동 현대차 정문 앞에 있는 쪽방. 이상범 전 구청장이 혼자 거주하는 곳이다
 울산 북구 양정동 현대차 정문 앞에 있는 쪽방. 이상범 전 구청장이 혼자 거주하는 곳이다
ⓒ 이상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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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벌이 좋아야 출세하는 이 세상에서 중졸도 아니고 '중학교 중퇴' 학력으로 18만 도시의 구청장을 역임한 사람. 바로 이상범 전 울산 북구청장의 이야기다.

그는 충북 보은에서 가난한 농부의 3남 2녀 중 넷째로 태어났지만 중학교 2학년때 부모님이 차례로 돌아가시며 학업을 중단하고 험한 세상으로 뛰어들었다.

성실한 삶을 살아온 그는 고졸 이상 취업할 수 있는 현대자동차라는 굴지의 대기업에 생산직으로 취업할 수 있었다. 직장생활 중 노동법을 공부하면서 제2의 인생을 살기 시작했다. 현대차 2대 노조위원장을 지낸 그는 결국 중학교 중퇴 학력의 구청장이라는 신화를 쌓기에 이른다.

이상범 전 구청장은 남들이 '귀족노조'라고 부러워 하는 현대자동차 정규직으로 38년을 일하고 지난해 말 퇴직했다. 타인은 이런 그가 "퇴직금만 해도 넉넉히 먹고 살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퇴직 후 현대차 직원 사택에서도 쫓겨난(?) 그는 최근 울산 북구 양정동 현대자동차 정문 앞 상가건물의 3층에 3m×4m크기 쪽방을 마련했다. 혼자 살아갈 쪽방에는 책상, 컴퓨터, 옷장, 서랍장, 옷걸이, 이불이 전부다.

이상범 전 구청장은 "돌아보니 단칸 셋방살이로 시작하던 신혼 초에도 이보다 별반 나은 것이 없었으니 초심으로 돌아왔다 생각하면 그만이다"면서 "하늘 가리고, 비바람 추위 막고, 발 뻗어 누울 공간 있으니 이만하면 감사한 조건"이라고 애써 만족했다.

"넉넉한 노후가 될 것"이라고 믿고 있을 남들의 생각과 달리, 그가 사랑하는 가족과도 떨어져 쪽방에서 살아가는 이유는 뭘까? 궂이 그 답을 찾는다면 '정치의 무상함'이라고나 할까?

막판 울산시장 후보 야권단일화, 패배하자 수억원의 빚만 남아

2014년 5월 29일 오전 울산시의회 기자실에서 심규명 새정치민주연합 울산시당위원장과 조승수 후보, 이상범 후보, 이선호 조승수 후보 선대위원장(왼쪽부터)이 단일후보 발표를 한 후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 . 경선에서 패한 이상범 후보의 표정이 어둡다
 2014년 5월 29일 오전 울산시의회 기자실에서 심규명 새정치민주연합 울산시당위원장과 조승수 후보, 이상범 후보, 이선호 조승수 후보 선대위원장(왼쪽부터)이 단일후보 발표를 한 후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 . 경선에서 패한 이상범 후보의 표정이 어둡다
ⓒ 박석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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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전인 지난 2014년 6.4 지방선거. 울산광역시장 후보로 나선 제1야당 새정치민주연합 이상범 후보와 정의당 조승수 후보에게는 시민사회와 진보세력 등으로부터 "새누리당 후보를 이기려면 후보단일화를 하라"는 요구가 빗발쳤다.

진보와 보수가 어우러진 울산지역 정치판은 민주진보진영의 후보 단일화가 있어야 보수정당과 맞대결 할 수 있을 정도의 인구수적 구성을 보였다. 민주노총 등 일각에서는 이같은 기계공학적인 단일화에 반대하는 목소리도 냈지만 선거 때만 되면 어김없이 단일화 요구가 나왔다.

선거전 막판, 두 후보는 결국 울산시장 후보를 단일화하기로 합의한다. 이럴 경우 지는 한쪽은 이미 들어간 수억 원에 달하는 선거비용을 한 푼도 보전받지 못할 것이라는 전제를 깔고 있었지만, 이들에게는 야권단일화가 숙명처럼 다가왔다.

결국 두 후보는 한국갤럽, 서울마케팅리서치 두 여론조사 기관에 의뢰해 선거 일주일 전인 5월 28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10시까지 여론조사 경선을 벌였고 그 결과 정의당 조승수 후보가 승리했다.

야권후보 단일화 결과 발표는 5분 만에 끝이났지만 패한 이상범 후보에게는 처음 후보로 나서면서의 의욕이 참담함으로 바뀜과 함께 수억 원이라는 선거비용이 빚으로 남게 됐다.

선거 후 그는 가족과 살던 집을 팔고 퇴직금을 미리 정산하면서 빚을 갚았지만 남은 빚은 수억원에 달했다.

선거 후 3년간 급여는 은행 채무 원천공제...월 1백만원으로 생활

그는 2014년 지방선거 후 지난해 말 퇴직하기까지의 3년 동안 금융기관 채무 원리금을 공제한 후 1백만원 남짓한 월 급여를 가지고 혼자 생활비와 용돈을 해결한다는 목표를 정하고 생활했다. 선거 빚을 갚기 위해 집을 팔면서 그의 부인은 어느 외딴섬으로 거주지를 옮겼다. 따라서 이때부터 부부는 별거 아닌 별거를 하게 됐다.

이 전 구청장은 "3년간 생활비와 용돈은 내 의지로 줄일 수 있었지만 의지만으로 줄일 수 없는 것이 세 가지 있었다"고 술회했다. 그것은 바로 시민사회단체 및 각종 모임 회비와 경조사 부조금, 차량유지비 등이었다.

더욱이 아내 생활비와 보험료 공과금 등 매월 급여만으로는 감당이 안 되는 부족한 금액은 격월로 지급되는 상여금으로 충당했다.

그는 "각종 회비는 재직 기간 동안에는 차마 끊을 수 없었고, 경조사는 나름 줄이려고 노력했지만 그래도 불가피한 경우가 많았다"면서 "차량유지비 지출을 줄일 수 없었던 것은 아내와 멀리 떨어져 살다 보니까 생활비와 주거비를 아껴서 교통비로 충당하는 꼴이 되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빚은 이것만이 아니었다. 원천 공제되는 금융기관 채무외 2014년 선거당시 '펀드'로 도움받은 지인들의 채무가 상당했던 것.

제1야당 후보로 당당히 울산시장 선거에 나선 그는 결국 완주해보지도 못하고 중도하차하면서 상실감을 얻은 데 이어 거액의 빚까지 떠안게 됐다. 하지만 어느 누구 하나 책임져 주는 사람은 없었다.

그는 "시장선거 단일화 경선에 패배해 빚쟁이로 전락하자 세상 인심은 딱 두갈래로 갈라졌다. 자기 돈을 먼저 받으려는 쪽과 자기 돈은 천천히 갚거나 안 갚아도 된다는 쪽"이라면서 "살던 아파트 매각과 퇴직금 중도청산을 통해서 급한 불은 껐지만 받지 못할 수 있음에도 기다려줌을 택한 지인들의 채무는 아직 그대로 남았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그 은혜 잊지 않고 어떻게든 갚아나갈 생각이다. 정 안되면 농작물을 직접 가꾸어서 그 수확물이라도 현물로 공급하더라도.."라고 말끝을 흐렸다.

앞서의 이야기는 지난 3년간 일이고 1달이 채 안된 정년퇴임 후부터 앞으로의 생활은 어떻게 될까? 그는 "급여에서 공제하던 사내 모임회비는 자동으로 종결처리되고 자동이체 되던 시민사회단체 회비는 월 1만원 한도로 조정할 것"이라면서 "의식주는 물론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던 회비와 경조금 차량유지비를 최대한 줄여서 월 1백만원 이하로 생활하겠다"는 각오를 보였다.

이상범 전 구청장은 "이같은 경제적인 노후대책은 초긴축 재정을 통해 해결하고 건강한 몸과 정신을 단련해 인생 이모작 밑천으로 삼기로 작심했다"면서 "내 몸이 건강하다면, 어떤 상황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희망을 가지고 도전할 수 있다면 뭐든 할 수 있다"고 환하게 웃었다.


태그:#이상범, #지방선거, #울산 북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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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지역 일간지 노조위원장을 지냄. 2005년 인터넷신문 <시사울산> 창간과 동시에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활동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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