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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10일 오전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신년 기자회견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답변하는 문 대통령 문재인 대통령이 10일 오전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신년 기자회견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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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대통령 신년사의 핵심은 앞부분과 뒷부분에 있다는 얘기가 있다. 10일 발표된 문재인 대통령의 신년사에서는 앞부분에 '일자리 확대', 뒷부분에 '건국 100주년'이 배치됐다. '현실'과 '역사' 사이에서 적절한 균형을 이루려는 문 대통령의 의지가 엿보이는 지점이다.

신년사 후반부에 배치된 지방선거-개헌 동시 국민투표와 남북관계, 위안부 문제 등은 일자리 확대 등에 비하면 그 비중이 상대적으로 적었다. 하지만 문 대통령은 "남북대화 성사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공은 매우 크다"라고 말할 정도로 남북관계에서는 상당한 자신감을 보였다.

문 대통령, 구체적 개헌 일정 제시

올 상반기 가장 큰 정치 이슈는 지방선거-개헌 동시 국민투표다. 이는 문 대통령의 대선공약이었다. "30년이 지난 옛 헌법으로는 국민의 뜻을 따라갈 수 없"기 때문에 국민의 기본권을 확대하고, 지방분권과 자치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개헌하자는 것이 그의 확고한 생각이다.

문 대통령은 "개헌은 논의부터 국민의 희망이 되어야지 정략이 되어서는 안된다, 국회가 책임있게 나서서 개헌에 대한 합의를 이뤄 달라"라며 "국회의 합의를 기다리는 한편 필요하다면 정부도 국민의 의견을 수렴한 국민개헌안을 준비하겠다"라고 말했다.

지방선거-개헌 동시 국민투표가 이루어지려면 국회 개헌특위에서 2월 말까지는 개헌안에 합의하고, 3월에는 개헌안을 발의해야 한다. 하지만 여야 갈등으로 국회에서 개헌안을 발의하지 못할 경우 독자적인 정부안을 발의하겠다는 것이다.

문 대통령은 "개헌에는 두 가지 길이 있다"라며 "국회가 의지를 갖고 정부와 협의한다면 최대한 넓은 개헌이 될 수 있고, 국회에서 합의되지 않고 정부가 발의한다면 국민들이 지지하고, 국회에서 의결받을 수 있는 길이 좁아질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 되도록 정부보다는 국회에서 합의한 개헌안을 발의해 달라는 요청이다.

다만 문 대통령은 "중앙권력구조 개편은 이견이 있을 수 있다"라며 "그 부분(중앙권력구조 개편)에서 하나의 합의를 이뤄낼 수 없다면 이 부분의 개헌을 다음으로 미루는 방안도 생각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4년 중임제, 이원집정부제, 내각제 등 권력구조 개편에서 합의를 이루지 못할 경우 그 부분은 빼고 기본권 강화와 지방분권 확대를 중심으로 개헌하자는 '단계적 개헌론'을 내놓은 것이다.

'5.24 조치 해제'에는 신중

10일 오전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문재인 대통령 신년 기자회견에서 취재진이 질문을 하기 위해 대통령을 향해 손을 들고 있다.
 10일 오전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문재인 대통령 신년 기자회견에서 취재진이 질문을 하기 위해 대통령을 향해 손을 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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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대통령이 최근 가장 만족할 만한 성과를 낸 분야가 남북관계다. 평창올림픽(평창동계올림픽·패럴림픽) 기간 중 한미연합군사훈련 중단을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제안해 성사시켰고, 이를 바탕으로 9일 남북고위급회담을 열어 북측 대표단과 선수단 등이 평창올림픽에 참가한다는 합의를 이끌어냈다.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남북관계를 개선하겠다'는 문재인 정부의 '평화올림픽 전략'이 서서히 성과를 거두고 있는 분위기다.  

문 대통령은 "어제 열린 북한과의 고위급 회당으로 꽉 막혀 있던 남북대화가 복원됐다"라며 "평창올림픽이 평화올림픽이 되도록 끝까지 노력하고, 이를 통해 남북관계 개선과 한반도 평화의 전기로 삼아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올해를 "한반도 평화의 새로운 원년"으로 선언했다.

문 대통령이 남북관계에서 상당한 자신감을 보여주는 장면도 나왔다. 신년사 발표 이후 1시간여 진행된 자유 질의, 응답에서 <워싱턴포스트> 기자가 "대통령이 생각하기에 남북회담 성사에 트럼프의 공이 어느 정도라고 생각하느냐?"라는 질문에 문 대통령은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남북대화 성사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공은 매우 크다"라고 답하면서 웃음을 터뜨렸다.  

하지만 개성공단 가동과 개성, 금강산 관광 재개 등은 당분간 어려울 전망이다. 지난 2010년 5월 24일 이명박 정부는 북한의 천안함 폭침사건에 대응해 ▲ 북한 선박의 남측 해역 운항 전면 불허 ▲ 남북 교역 중단 ▲ 국민의 방북 불허 ▲ 대북 신규 투자 금지 ▲ 대북 지원사업의 원칙적 보류 등을 발표한 바 있다(일명 '5.24 조치'). 이후 북한은 이러한 5.24 조치의 해제를 지속적으로 요구해왔다.

문 대통령은 "5.24 조치 중 (개성공단 같은) 경제적 교류, 개성·금강산 관광은 지금 국제적으로 이루어지는 유엔 안보리 제제의 틀 속에서 판단해야 할 듯하다"라며 "(그것이) 유엔 안보리 제재 범위라면 우리가 독자적으로 해제하기는 어렵다"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지금 북한과의 대화가 시작되긴 했지만 북핵문제가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에 한국은 국제사회와 제재 보조를 맞출 것이다"라며 "한국이 국제적인 대북 제재와 별개로 (5.24 조치 해제 등 대북 제재를) 완화할 생각은 갖고 있지 않다"라고 말했다. 남북대화는 진행하되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의 틀 안에서 움직이겠다는 '실용론'이다.

문 대통령의 남북관계 구상은 '북핵문제 해결'과 '남북관계 개선'의 선순환에 가 있다. 그는 북핵문제 해결과 남북관계 개선은 함께 갈 수밖에 없고, 그 두 가지 방향이 선순환 작용할 것이라고 보고 있다. 남북고위급회담 등 남북대화를 통해 북한을 비핵화 대화의 장으로 이끌어 내는 것이 최선이라는 것이다. 그가 "북핵 대화의 장이 우리의 목표가 될 것이다"라고 말한 이유다.

12.28 위안부 합의 문제 "충분히 만족할 수 없더라고 현실적 최선 찾아야"

문 대통령은 지난해 취임한 이후에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에도 각별한 관심을 보였다. 지난 4일에는 8명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를 청와대로 초청해 오찬을 함께 했고, 같은 날 병원에 입원해 있는 김복동 할머니를 직접 찾아가 만났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 8명과의 오찬 자리에서 문 대통령은 "할머니들의 뜻에 어긋나는 합의를 한 것에 죄송하고, 대통령으로서 사과 드린다"라며 "지난 합의는 진실과 정의의 원칙에 어긋날 뿐만 아니라 내용과 절차가 모두 잘못된 것이다"라고 사과했다.

2015년 한일간 이루어진 '12.28 위안부 문제 합의'에 관한 이러한 기조는 신년사로도 이어졌다. 문 대통령은 "한일 양국간에 공식적인 합의를 한 사실은 부인할 수 없지만 잘못된 매듭은 풀어야 한다"라며 "진실을 외면한 자리에서 길을 낼 수는 없다, 진실과 정의라는 원칙으로 돌아가겠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지난 4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과의 오찬 자리에서도, 이날 신년사 발표에서도 '합의 파기'나 '재협상 요구' 가능성은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오히려 문 대통령은 신년 기자회견에서 "충분히 만족할 수 없더라도 앞서 정부간 합의한 일이기 때문에 현실적 최선을 찾아내야 한다"라며 "피해자를 배제한 가운데 문제를 해결한 것 자체가 잘못된 방식이었지만, 기존 합의를 포기하고 재협상을 요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기존 합의를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하면서 왜 합의를 파기하고, 재협상을 요구하지 않느냐'고 말할 수 있다"라며 "(하지만) 저는 기본적으로 위안부 문제는 진실과 정의의 원칙에 의해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라고 강조했다.

이후 정부가 당장 12.28 위안부 문제 합의를 파기하고 일본 정부에 재협상을 요구할 가능성을 일축한 것이다. 문 대통령은 "일본이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진실을 인정하고, 피해자 할머니들에게 진심으로 사과하고, 그것을 교훈으로 삼아 다시는 그런 일이 없도록 국제사회와 함께 노력해서 할머니들이 일본을 용서하는 것"이 "위안부 문제의 완전한 해결"이라고 말했다. 

다만 일본 정부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에게 위로금 성격으로 준 10억 엔의 처리와 관련, 문 대통령은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 시민단체, 일본 정부와 협의하겠다"라고 말했다. 그는 "그 돈이 위안부 문제를 해결할 좋은 목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면, 그 사용에 일본 정부와 위안부 할머니들이 동의한다면 그것도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협의하겠다", "동의받겠다" 등의 전제를 달긴 했지만 10억 엔을 일본 정부에 돌려주는 방안에는 신중한 태도를 보인 것으로 해석된다. 다만 문 대통령은 "할머니들의 상처를 치유해야 하는데 할머니들은 일본돈으로 치유하는 것을 받아드릴 수 없다"라며 "할머니들의 치유 조치는 우리 돈으로 하겠다"라고 말했다.


태그:#문재인, #신년 기자회견, #지방선거-개헌 동시투표, #남북고위급 회담, #12.28 위안부 합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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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전남 강진 출생. 조대부고-고려대 국문과. 월간 <사회평론 길>과 <말>거쳐 현재 <오마이뉴스> 기자. 한국인터넷기자상과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2회) 수상. 저서 : <검사와 스폰서><시민을 고소하는 나라><한 조각의 진실><표창원, 보수의 품격><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국세청은 정의로운가><나의 MB 재산 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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