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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도림역 빅이슈 판매원 문영수씨가 <빅이슈>를 들고 웃고 있다
 신도림역 빅이슈 판매원 문영수씨가 <빅이슈>를 들고 웃고 있다
ⓒ 박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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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 보고 눈물 펑펑 ㅠㅠ 제 마음 다 알아주시는 듯이 다독여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빠한테도 받아본 적 없는 이런 정성스런 편지라니..."

"신도림 빅판분 편지도 그렇고 엽서도 그렇고 ㅠㅠㅠ 덕분에 내가 더 따뜻해져 갑니다"

홈리스들의 자립을 돕는 잡지 <빅이슈> 168호(2017년 12월 1일 발행)는 가수 엑소의 멤버 카이가 표지 모델로 등장해 '대박'이 났다. 발매 이틀 만에 1만5천부가 팔렸고, 추가 인쇄를 거듭했다. 그 과정에서 엑소 팬들 사이에선 '신도림 빅판(빅이슈 판매원의 약자)'이 화제가 됐다. 친절한 응대뿐만 아니라 잡지 안에 손편지가 들어있어서 뜻하지 않게 감동 받았다는 후기가 SNS에 올라왔다.

사진으로 본 편지 속 글씨가 예사롭지 않았다. 읽고만 있어도 기분이 좋아졌다. 지난 3일 오전에 찾아간 신도림역 빅이슈 판매원 문영수(59)씨의 사당동 집도 그의 글씨처럼 단정했다. 직접 만든 캘리그라피 엽서와 손편지, 사진과 그림 등이 집안 곳곳에 배치되어 있었다. 기자가 그의 글씨와 그림을 둘러보고 감탄하자 문씨는 "계속 책만 팔 수는 없으니까요. 저도 변화를 해야죠"라며 미소를 지었다.

'캘리그라피' 통해 자립 꿈꾸는 빅이슈 판매원

빅이슈 판매원 문영수씨가 연말에 손님들에게 나눠주기 위해 직접 만든 캘리그라피 엽서들
 빅이슈 판매원 문영수씨가 연말에 손님들에게 나눠주기 위해 직접 만든 캘리그라피 엽서들
ⓒ 박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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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영수씨는 2015년 2월부터 약 3년째 빅이슈 판매를 하고 있다. 문씨는 빅이슈 판매원 내에서도 성실하기로 손꼽힌다. 자립을 위해 빅이슈에서 주최하는 목공, 그림, 사진 등을 배우면서 다양한 활동을 했다. 2015년 12월에는 동료 빅판들과 그림 전시회를 열었고, '희망 아카데미'에서 한강을 촬영해 환경재단에서 주는 상을 받고 광화문에서 '희망사진사'로 활동했다. 

배움을 통한 변화를 꿈꾸는 문영수씨는 최근에는 캘리그라피를 배우고 있다. 오전 9시 반에 집을 나선 그는 판매처인 신도림역이 아니라 서울대입구역 근처로 향했다. 오전 10시부터 2시간 동안 캘리그라피(손글씨) 수업을 듣는다. 지난해에 문영수씨가 <빅이슈>에 기고한 글에서 '캘리그라피'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내용을 보고, 캘리그라피 선생님인 김솔민(29)씨가 재능기부를 선뜻 자원한 것이다. 문씨는 지난 10월부터 일주일에 한 번씩 스터디룸에서 김씨로부터 개인교습을 받고 있다.

"저도 몰랐는데 캘리그라피를 배운 뒤에 손편지 글씨가 더욱 늘었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는 격주로 새로운 <빅이슈>가 발간되면, 그때마다 새로운 손편지와 시 한 편을 쓴 종이를 <빅이슈> 안에 끼워 넣는다. 2015년 5월, 부천 역곡에서 신도림으로 판매지를 옮긴 이후부터 편지를 썼다. 그의 <빅이슈>가 특별한 이유다. 연말을 맞아서는 직접 캘리그라피 엽서를 만들어 손님들에게 나눠주기도 했다.

"우리 판매원들이 스스로 일어나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대견스러워서 의무적으로 사는 사람들이 많아요. 그 분들을 위해서 내가 뭘 해줄 수 있을까 고민했어요. 그러다가 글씨 쓰는 것 자체를 좋아하니까 편지 한 편과 시를 적어서 나눠주자는 생각을 했어요. 편지를 쓸 때는 독자들에게 가장 진실한 마음을 표시하고 싶어서 온 힘을 다해 씁니다."

캘리그라피를 배우는 그의 눈빛은 진지했다. 집중해서 붓으로 가로 선과 세로 선을 긋고, '그대와 함께' '비가 오는 날엔 네가 생각나' 등의 글씨를 따라 썼다. 선생님의 설명을 들으며 국화도 그렸다. '천천히 쓰는 게 좋다'는 선생님의 지적에 바로 글씨 쓰는 속도를 늦추기도 하는 등 모범생처럼 성실하게 배우고 있었다.

두 달째 그를 가르치는 김솔민씨는 "손재주가 좋으신 편이에요. 그림도 잘 그리시고, 손글씨를 잘 쓰시다 보니까 붓글씨도 잘 쓰시는 것 같다. 숙제는 따로 안 드리는데 복습을 해서 가져오기도 해요"라며 가르치면서 놀랐다고 말했다. 이어 "정성이 들어간 편지글이나 수업에 임하시는 태도를 보면 제가 오히려 부끄러워요. 수업하면서 배운 게 많아요"라며 문씨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빅이슈 판매원 문영수씨가 선생님 김솔민씨의 지도에 맞춰서 국화를 그리고 있다.
 빅이슈 판매원 문영수씨가 선생님 김솔민씨의 지도에 맞춰서 국화를 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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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이슈 판매원 문영수씨가 캘리그라피 손글씨를 연습하고 있다.
 빅이슈 판매원 문영수씨가 캘리그라피 손글씨를 연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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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영수씨는 어릴 때부터 손글씨와 그림에 관심이 많았다. 라디오에 손편지 사연을 자주 보내기도 했고, 이상무 화백의 '독고탁'을 따라 그린 적도 있다. 2016년에는 디자인회사인 '손편지 제작소' 대표를 찾아가 자신의 사연을 알렸고, 이 일은 손편지 제작소에서 2016년 5월 <빅이슈> 부록으로 '카네이션 감사카드'를 만드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앞으로 전업으로 캘리그라피 작품을 만드는 일을 할 거냐고 묻자, 그는 "실력을 더 쌓아야죠, 실력을"이라며 부끄러워했다. 그는 스스로의 능력으로 돈을 벌 수 있을 정도로 경쟁력을 갖고 싶어 했다.

빅이슈 판매, 다리 꽁꽁 얼지만 손님들 성원에 힘 낸다

문영수씨는 캘리그라피 수업을 들은 뒤 녹번동에 있는 서울혁신파크 안 빅이슈 사무실로 향했다. 그는 이렇게 거의 매일 잡지를 사기 위해 빅이슈 사무실에 들른다. 평소에는 아침 일찍 가는 경우가 많지만, 오늘은 캘리그라피 수업을 듣느라 1시가 넘어서야 사무실에 도착했다.

잡지를 30권 사고, 그 안에 한 권 한 권씩 일일이 정성스럽게 반으로 접은 손편지를 넣는다. 그는 "마음 같아서는 하나하나 손으로 다 쓰고 싶은데, 그건 너무 힘드니까요"라며 독자들에게 복사본을 주는 게 미안하다고 말한다. 그 다음엔 잡지를 일일이 포장지에 담는다. 점심은 빅이슈에서 주는 빵과 코코아로 간단히 때운다.

"점심 먹고 배가 부르면 일하기 싫어져요. 그래서 이렇게 간단히 먹을 때가 많아요."

그는 서울대입구역에서 불광역 부근으로 왔다가, 책을 챙기고 다시 신도림역으로 향한다. 벌써 오후 3시 반, 오늘은 시작이 늦었다. 캘리그라피를 배우지 않는 날이면 낮 12시쯤 판매를 시작해서 오후 8시쯤 마친다. 빅이슈에서 지정된 근무시간은 월~금 5시간(동절기 기준)이지만 보통은 더 팔기 위해 매일 8시간을 일하고, 주말까지 일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지난 3일 오후 체감 온도는 영하 5도. 지나가는 사람마다 "춥다" "너무 추워"를 연발했다. 문영수씨와 함께 신도림역 1번 출구에서 현대백화점으로 연결되는 야외통로에 서 있으니 30분 만에 발이 꽁꽁 얼었다. 콧물이 줄줄 나고 귀가 빨개진다.

유동인구가 많은 신도림역. 하지만 빅이슈에 눈길을 주는 사람은 극히 드물었다.
 유동인구가 많은 신도림역. 하지만 빅이슈에 눈길을 주는 사람은 극히 드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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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씨는 "겨울에 오래 서 있으면 발목에서부터 종아리까지 완전히 마비되는 기분"이라고 말했다. 단지 추워서가 아니다. 그는 두 번이나 산업재해를 당해 왼쪽 발과 무릎을 다쳤기 때문에 추우면 더 움직이기가 힘들어진다.

그는 빅이슈에 오기 전 한 공장에 다니다가,  2011년 11월에 사고를 당한 후 발가락이 괴사해 5개 모두를 절단해야 했다. 회복이 된 후에 다시 일터로 나갔지만 2013년 3월에는 호이스트 고리가 떨어져 무릎을 다쳤다. 이후 트라우마가 생겼고, 저임금에 잦은 추가 노동을 요구하는 회사에 대한 신뢰도 잃었다. 더 이상 일하지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일을 그만뒀다.

그런데 공장 컨테이너 기숙사에서 숙식을 해결하던 그는 갈 곳이 없었다. 채무가 많아 신용등급이 낮고, 나이가 많은 그는 재취업도 어려웠다. 친형 집에 잠시 얹혀살다가 <다큐3일-빅이슈 편>을 보고 빅이슈를 찾게 됐다.

빅이슈 판매원이 된 후 새로운 삶을 살고 있지만, 서서 일하는 일 특성 상 여전히 다친 왼쪽 다리와 발은 그를 괴롭힌다. 왼쪽 발에는 항상 붕대를 감고 있고, 매일매일 발목 부근에 오는 통증으로 고통 받는다. 그럼에도 그는 꿋꿋하다. "의지만 있으면 못할 게 뭐 있겠냐"는 것이다. 그는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열리는 홈리스 월드컵에 '골키퍼'로 출전하기도 했다.

옆에서 지켜본 빅이슈 판매 자체는 결코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추위를 온몸으로 견뎌야 하는 것은 물론 손님이 안 올 때의 초조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오후 6시부터 8시까지가 제일 잘팔리는 시간이라는 문씨의 말과는 달리, 이날 6시 35분부터 7시 15분까지 40분 동안 많은 유동 인구 중 단 한 명도 빅이슈를 사지 않았다. 춥고 배고프고, 졸리고 무기력해졌다. 하지만 문씨는 표정 변화 하나 없이 꿋꿋하게 "카드 결제 환영"이라는 푯말을 들고 있었다. 문씨에게 너무 사람이 안 온다고 하소연하자 담담하게 답했다.

"이런 건 뭐 아무것도 아니에요. 3시간 동안 2~3명 살 때도 있어요. 그래서 어느 날은 그만하고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하지만 전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도 독자들과의 약속이라고 생각해요. 항상 고정된 시간에 있어야 독자들이 언제든 사러 올 수 있죠."

침묵의 시간이 지나간 뒤에는 갑자기 손님이 많이 왔다. 단골들과 안부를 나누던 문씨는 함박웃음을 짓기도 했다. 그는 "단골분들이 한 달치 핫팩을 사오기도 하고, 캘리그라피 준비한다니까 노트와 과자 등을 상자째 보내기도 했다. 내가 살아가는 것을 응원해주는 사람이 이렇게나 많다는 걸 느꼈다"며 "자신을 도와준 사람에게 무엇을 베풀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다"고 전했다.

문영수씨에게 <빅이슈>를 사는 손님들의 모습
 문영수씨에게 <빅이슈>를 사는 손님들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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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영수씨의 마음은 손님들에게도 전해졌다. 일부러 이곳에 들려서 빅이슈를 구입한다는 이아무개(28, 여)씨는 "남 앞에 서는 일이 쉬운 일은 아닐 것인데, 항상 보면 열심히 사시는 것 같아요. 특히 손글씨 편지 보고 제가 참 위로를 많이 받거든요. 그래서 여기서 사게 돼요"라며 문씨에게 감사를 표했다.

흔하지 않은 남성 장년층 손님인 윤아무개(62)씨는 "열심히 사시는 게 보기에 좋잖아요. 제가 뭐 도와드릴 것도 없고, 마음 속으로만 응원하는 거죠. 시랑 손편지 열심히 쓰시고 세상을 밝은 쪽으로 보시는 것 같아요"라며 문씨를 격려했다.

빅이슈 판매원 문영수씨가 이번 <빅이슈> 170호에 넣으려고 쓴 시와 손편지.
 빅이슈 판매원 문영수씨가 이번 <빅이슈> 170호에 넣으려고 쓴 시와 손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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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어느덧 오후 8시 30분, 문영수씨는 "어제는 8시간 동안 28부 팔았는데, 오늘은 기자님 때문에 34부나 팔았다"며 고맙다며 악수를 했다. 설치해둔 가판대를 치우고, 남은 잡지를 보관함에 넣으며 판매를 종료했다. 집으로 가서 늦은 저녁식사를 한다는 그에게 앞으로의 계획을 물었다.

" 제게 캘리그라피를 더 배운 후에 같이 일하자는 분도 계셨어요. 캘리그라피와 사진을 더 열심히 배워서 직업으로 선택하고 싶고, 나아가 받은 만큼 재능기부도 하고 싶어요."


태그:#빅이슈, #빅이슈판매원, #신도림 빅이슈, #빅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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