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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의 아득함. 소통의 노력이 온갖 오해로 점철될 수밖에 없다는 확고한 이해. 이것이 외로움의 본질'이라고 말하는 이가 있다. 은둔형 외톨이도 아닌데 타인과의 관계가 가장 어렵다고 조심스레 고백하는 그는 바로 밀리언셀러 작가이며, 유명 팟캐스터 채사장이다.

2014년 첫 출간한 책 <지적인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아래 지대넓얕)이 밀리언셀러에 오르면서 일약 유명 작가가 된 채사장. 이후 현실 인문학을 다루었다는 <시민의 교양>과 성장 인문학을 다루었다는 <열한 계단>까지 그의 저서들은 모두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랐다.

<우리는 언젠가 만난다> 책 표지
 <우리는 언젠가 만난다> 책 표지
ⓒ 웨일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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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그가 이번에는 관계를 이야기한다. 타인과의 관계, 세계와의 관계, 그리고 죽음까지. 2017년 연말 출간한 <우리는 언젠가 만난다>는 관계에 대한 통찰을 문학, 철학, 종교, 역사, 예술을 통해 담아낸 자기고백적 인문교양서이다.

"우리는 인생의 여정 중에 반드시, 관계에 대해 말해야만 한다. 내가 타인과 맺고 있는 관계에 대해서, 내가 세계와 맺고 있는 관계에 대해서. 왜냐하면 타인과 세계의 심연을 들여다봄으로써 거기에 비친 자아의 진정한 의미를 비로소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저자의 말 중에서)

사람도 그렇지만 책도 궁합이 맞는 책이 있다. 우연히 기대 없이 집어 들었는데 마치 친구를 만난 것처럼 생각이 잘 통하는 책. 연말에 가볍게 읽을 거리를 찾다 집어든 책인데, <우리는 언젠가 만난다> 제목의 암시처럼 정말 만나기로 예정된 것처럼 만나졌다.

마치 내 생각을 읽고 있기나 했던 것처럼 지난 가을 이후 내 머릿속에 맴돌던 생각들이 고스란히 활자로 펼쳐져 있었다. 단지 추상적이고 막연했던 생각들이 때론 시적(詩的)이고 때론 서사적으로 철학적 사유를 담아 정리되어 있었다.

만다라는 인생이다

"만다라가 진정으로 아름다운 이유는 미적인 색감과 모양과 승려들의 정성 때문이 아니다. 더 근본적인 이유는 만다라가 완성과 함께 무너지기 때문이다. 승려들은 만다라를 남기지 않는다. 모든 것이 완벽히 쌓여진 그 순간, 승려의 모진 손이 둘레의 가장자리부터 중앙까지를 훑는다. 망설임 없는 그 손짓에 모래는 뒤섞이고 선명한 색상은 혼합되어 빛을 잃는다." (본문 117쪽)

저자는 삶을 움켜쥐고 싶을 때 만다라를 생각한다고 한다. 우주의 진리와 깨달음의 경지를 담고 있는 만다라는 제작 과정 자체가 하나의 수행이 된다. 작은 금속관에 모래를 담아 진동시켜 흘려보내는 방식으로 그려지는 만다라에 대한 승려들의 진지함은 사람을 숙연하게 한다.

하지만 만다라가 완성되는 그 순간 승려들은 그것을 허물어뜨린다. 저자는 말한다. 만다라가 인생에 대한 상징이라고. 모든 노력과 정성이 집착이 되어 모래처럼 쌓여가고, 붙들고 싶지만 결국은 금세 사라지고 마는 것. 그나마 한 줌이라도 움켜쥐고 싶지만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고 마는 것. 그것이 인생이라고.

그러니 어찌할 것인가. 성숙한 영혼이라면, 더 많은 것을 배우고자 하는 용기 있는 영혼이라면 무너지는 것 안에서 배우려고 할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실패, 빈곤, 불만, 좌절, 가난함과 같은 힘든 상황에서도 그것을 이해하고 수긍할 수 있는 결연한 의지를 가진 자신을 기대할 것이라고 말이다.

통증은 신체가 건네는 말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위경련을 겪으며 통증과 상념이 만들어내는 소용돌이 속을 헤매다 어느 순간 이해하게 된 통증의 실체. 저자는 모든 관계는 통증이라고 말한다. 통증은 말, 신체가 나에게 건네는 말이라고 한다.

"통증은 자아와 신체가 관계 맺고 있는 방식이고, 동시에 자아와 신체는 통증으로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게 된다. 나는 통증을 통해 비로소 내 신체의 내면을 보고, 신체는 통증을 통해 내면을 보는 나를 본다." (본문 136쪽)

이처럼 통증이 하나의 관계 방식이라면, 통증은 나의 아픔이라는 주관적 상태에 한정되지 않고, 보편적 지위를 획득해서 타자와 관계 맺는 방식도 넓은 의미에서는 통증이라고 저자는 이야기한다.

통증은 세계를 인식하는 일종의 기준이 되기도 한다. 나에게 가깝고 소중한 것일수록 통증은 더 직접적이고, 먼 것일수록 간접적이 된다. 그리하여 작은 개인이 세계의 고통이라는 무거움을 짊어지지 않는 것은 다행이나, 이때문에 우리가 세상의 고통을 방치하게 되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어떤 곳에서는 음식물 쓰레기 처리 때문에 골머리를 앓는 반면, 또 어떤 곳에서는 굶어 죽는 사람들이 있고, 화려함과 세련됨이 넘치는 도시에서 누군가는 쓰레기통을 뒤져야 하는 그 모든 이유가 멀리 떨어진 고통이 나에게는 강렬하게 다가오기 않기 때문에, 즉 우리가 통증을 기준으로 재편된 세계에 살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세계의 거대한 통증이 우리와 완전히 단절된 것은 아니라서 간접적이고 서사적인 방식을 통해 우리에게 전해진다고 한다. 책을 통해, 영화를 통해 혹은 음악을 통해 전해져 보편적 윤리와 은폐된 고통에 관심을 기울이게 된다는 것이다.

이처럼 <우리는 언젠가 만난다>에서 저자는 관계를 이해해야 나와 세계, 그리고 삶과 죽음의 의미에 대해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한다. 저자는 우리는 자기 안에 우주를 담고 있는 영원한 존재라고 철학적으로 속삭인다.

우리는 언젠가 운명처럼 다시 만나게 될 테니 모든 관계에서 헤어짐도, 망각도, 죽음도, 아쉬운 것은 없다고 초연히 그리고 담담하게 이야기한다. 문득 2500만년 뒤 다시 만나자던 <은비령>이 중첩되면서 아득히 별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덧붙이는 글 | <우리는 언젠가 만난다>, 채사장 지음, 웨일 북스 펴냄, 2017년 12월, 252쪽



우리는 언젠가 만난다 - 나, 타인, 세계를 이어주는 40가지 눈부신 이야기

채사장 지음, 웨일북(2017)


태그:#채사장, #우리는 언젠가 만난다, #만다라,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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