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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월 21일 제주벤처마루 10층 윗세오름홀에서 열린 포럼 <제주여성 4.3의 기억>
 12월 21일 제주벤처마루 10층 윗세오름홀에서 열린 포럼 <제주여성 4.3의 기억>
ⓒ 오승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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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의 기억보다 버거운 것은 '남성적 기억'

지도 딸이멍.(자기도 딸이면서)

추석 때 누나가 엄마에게 했던 말이 오래도록 귓가에 남는다. 제주의 남성으로 태어난 이유로 저도 모르게 수없는 반사 이익을 얻으면서 살아왔던 나로선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몰랐다. 비교적 최근 들어서야 누나의 말에 대해서 생각하기 시작했다.

12월 21일 '제주여성 4.3의 기억'(제주여민회가 주최) 포럼에 다녀왔다. 제주벤처마루 10층 윗세오름홀 현장의 열기는 무척 뜨거웠다. 오후 2시~5시 20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수강생은 대부분 자리를 지켰고, 참석자의 질문을 받느라 포럼 시간은 5시 반이 넘어서도 끝날 줄 몰랐다.

제주여민회 김영순 대표의 인사에 이어 김은실 교수(이화여대 아시아여성학센터 소장)의 "제주4.3, 여성연구의 필요성",  여성학 강사 이정주씨의 "제주4.3에 대한 여성주의적 고찰"이라는 주제의 발표가 있었고 허영선 시인이 좌장을 맡은 토론이 이어졌다. 토론에는 황정아(전 광주전남여성단체연합 대표, 5.18 구술사 서술 경험의 여성주의적 해석), 조미영(제주4.3연구소 이사, 제주4.3 현장 연구가로서의 성찰), 조영희(평화를 만드는 여성회 이사, 국가 폭력과 여성 해외 사례를 중심으로), 고명희(제주여성인권연대 대표, 제주4.3과 여성단체의 고민) 등이 토론에 나섰다.

포럼을 들으며 나는 무릎을 탁 쳤다. "제주4.3과 여성"이라는 주제야말로 지금까지 진지하게 생각해보지 못했던 주제였고, 제주 여성 문제에 대한 관심에 제주4.3의 주제를 연결해야만 이해할 수 있는 세계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4.3을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 제주를 정체하게 만든 가장 큰 이유다.

대학 시절부터 제주 청년인 나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았던 질문이 바로 '4.3의 궁극적 해결은 뭘까?'였다. 역사적 진실성 확보, 피해자 명예회복과 적절한 보상, 유해발굴,  4.3에 대한 불필요한 논쟁 종식과 '바른 이름[正名]' 찾기, 이를 반영한 특별법 개정. 그리고 그 다음은?

'여성'이라는 주제를  들었을 때 처음에는 갸우뚱했다. 제주 여성의 위상이 꼭 4.3이라는 계기로 절하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조선시대 제주 유배형은 사약 다음으로 가혹한 형벌이었고 추사, 광해군 등 양반들이 거주하면서 소일거리로 서당을 열었으니 성리학적인 가부장제와 남존여비가 <어린 왕자>에 나오는 너도밤나무보다 더 견고히 뿌리를 내렸다. 게다가 남존여비 문제가 제주도만의 것도 아니지 않은가? 하지만 주제 발표자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고착화된 남녀차별구조가 4.3이라는 대사건을 통해 폭발했다.

바로 이것이다! 이제까지 4.3을 생각할 때 생각해보지 않았던 관점. 여성들은 4.3의 기억과 남성이라는 버거운 짐을 하나 더 지고 있었다. 이것을 해방시키지 않으면 4.3의 궁극적 해결이란 공염불일 뿐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12월 21일 제주벤처마루 10층 윗세오름홀에서 열린 포럼 <제주여성 4.3의 기억>
 12월 21일 제주벤처마루 10층 윗세오름홀에서 열린 포럼 <제주여성 4.3의 기억>
ⓒ 오승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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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대화는 계속되고 있다. 그리고 침묵도..

4.3당시 많은 인명 피해와 함께 숱한 성폭행과 강제 결혼이 행해졌을 거라는 사실은 짐작이 되고도 남는다. 하지만 4.3 성폭행 피해 신고 접수 건수는? 0건이다. 이 무지막지한 숫자 안에 도사리고 있는 거대한 침묵의 세계를 우리는 오랫동안 외면해 왔다. "역사란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는 E.H.카의 말이 새삼 떠오른다.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일 뿐만 아니라 '끊임없는 침묵'이기도 했다. 발표자와 토론자에게 듣는 여성 생존자 할머니들의 이야기는 가슴 아팠다. 엄마가 생각났다.

그들에게 자녀가 몇인지 물으면 딸을 빼놓고 아들의 숫자만 이야기한다. 채록을 할 때도 남성, 연장자, 여성 순서로 신뢰를 보내며 되도록 그들을 향해서 이야기하려고 한다. 그리고 자신들의 피해 경험을 '추접하다'(지저분하다)고 한다. 그리고 자신의 친정이 4.3 당시 지목된 것을 뼈아파하고, 경찰 가족이 있었으면 하고 바란다. 제주도에 유난히 양자가 많은 이유 중 하나는 남성 혈통 보존을 위해서 여성이 대속을 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토벌군이 정착할 때 제주 여성과 강제결혼을 하려고 해도 막지 못했다. 새로운 피해가 우려되었기 때문이다. 학살 전에도, 학살 시점에도, 학살 후에도 여성은 끊임없이 대가를 치르고 있다. 여성들이 침묵을 강요당하는 틈에는 왜곡된 정보가 마치 사실처럼 활보한다. 국방부에서 발간했다던 <한국전쟁사1>이 대표적인 사례라고 발표자는 말했다.

한국전쟁 전후로 제주도에 파견된 남성의 결혼이 증가했다. 이는 제주민들의 지지가 높다는 증거다. 
- '한국전쟁사1'의 내용, <제주여성 4.3의 기억> 포럼에서 재인용

억울하게 돌아간 망령들, 그리고 살아남은 자들의 상처도 우리에게 끊임없이 말을 건다. 여성들을 침묵의 상태로 방치하는 한 구술 작업이 의미를 갖기는 어렵다. 할머니들을 대상화하면서 낡게 만들어버리기 때문이다. 결국 증언자도 증언도 화석이 되고 만다. 화석이 된 이야기가 미래에 어떤 의미를 줄 수 있을 것인가? "듣는 자와 말하는 자가 만나는 공간은 새로운 공간이어야 한다"는 발표자의 말에 울림이 있었다. 4.3 피해 할머니들과 유족들, 그리고 이와 관련된 사람들에게 "우리는 과연 누구였나?"라는 질문을 던지고 싶다. 아직 이 질문에 제대로 된 대답이 나오지 않았으니까.

새로운 역사와 새로운 관점에 대한 열망으로 귀를 기울였을 때 한 할머니가 기적과 같은 말을 남겼다. 다른 말은 다 잊힐지도 모르겠지만, 이 말만큼은 오래 기억될 것 같다.

다 잊어버린 줄 알았는데, 듣고자 하는 자가 있으니 생각이 난다.

할머니의 전언을 들으며 나는 새롭게 알고 새롭게 들어야 할 것들에 대해서 생각했다. 2017년의 제주 여성 스스로가 내면화한 자기 비하의 역사를 뒤집어야겠다고. 그리하여 할머니들이 너무 깊이 숨겨놔서 기억이 안 나는 귀중한 이야기들이 세상의 빛을 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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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고전으로 가족 소통하려고 <인문고전으로 하는 아빠의 아이 공부>(글라이더)을 썼고, 그림책으로 소통하려고 <책 놀이 책>(이야기나무)을 썼어요. 가족, 청소년을 위해서 계속 쓰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