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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치기 어리게도 우리나라에 있는 모든 절을 몽땅 다 둘러 볼 거라는 걸 호언하고 다녔던 적이 있었습니다. 몇 년 동안 정말 열심히 다녔습니다. 산산 골골, 물 좋고 산 좋은 곳, 경치 좀 좋아 보이는 곳곳마다 절이 있었습니다.

내로라하는 절들, 명산대찰쯤 찾아다니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습니다. 문제는 찾아다니면 찾아다닐수록 아담소담한 절들이 너무 많았습니다. 그나마 겉으로 드러나 있는 절들은 어떻게라도 찾아다닐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절인지 점집인지 무당집인지 그 경계가 모호한 곳들이 너무나 많았습니다. 그렇다고 임의로 이건 절, 저건 무당집으로 가늠할 수도 없었습니다.

문패만한 표시 하나 없는 절, 단독주택, 아파트, 상가건물 등 골목골목 어디쯤에 이런저런 불상만 모셔놓은 곳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결국 '우리나라에 있는 모든 절을 몽땅 다 둘러보겠다.' 한 호언은 치기였음을 스스로 선언하며 포기했습니다.

우리나라에 있는 절들은 삼보사찰(불보 통도사, 법보 해인사, 승보 송광사)을 비롯해 5대 적멸보궁, 3대 관음도량, 3대 지장도량 등으로 불리며 그 절의 특징이나 상징성을 분류하기도 합니다.

<원당, 조선 왕실의 간절한 기도처>

 <원당, 조선 왕실의 간절한 기도처> / 지은이 탁효정 / 펴낸곳 ㈜은행나무 / 2017년 11월 27일 / 값 17,000원
 <원당, 조선 왕실의 간절한 기도처> / 지은이 탁효정 / 펴낸곳 ㈜은행나무 / 2017년 11월 27일 / 값 17,000원
ⓒ ㈜은행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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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당, 조선 왕실의 간절한 기도처>(지은이 탁효정, 펴낸곳 ㈜은행나무)는 우리나라에 있는 많고 많은 절들 중에서 원당, 조선 왕실의 간절한 기도처였던 절만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원당(願堂)은 원찰(願刹)이라고도 하며 죽은 사람의 화상이나 위패를 모셔 놓고 명복을 비는 법당을 이르는 말입니다.

원당 중에서는 왕이나 왕비, 죽은 왕자의 명복을 빌던 곳도 있지만 애틋한 사연쯤으로 치부하기엔 너무 간절히 기도를 올리던 곳도 있습니다.

책에서는 태조와 연을 맺은 석왕사를 원당 1번지로 시작해 조선 마지막 왕비가 된 순정효황후가 간절한 불심으로 기도하던 백운사까지 40여 곳의 원당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억불숭유, 불교를 억압하고 유교를 숭상하던 조선왕조에 왕실 원당이 뭐 그렇게 많았느냐에 대한 답은 조선왕실에 스며있는 풍파 같은 애환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왕실 사람들도 마음 기댈 곳이 필요했습니다. 간절하게 기도해 이루고 싶은 소원이 있었습니다. 누군가의 위패를 모셔야만 하는 생로병사가 있었습니다.

세종이 꺼내 든 카드 "왕 노릇 못 해 먹겠다."

결국 세종이 꺼내 든 카드는 "왕 노릇 못 해 먹겠다"였다. 세종은 정말 짐을 싸들고 넷째 아들인 아들 임영대군의 집으로 가버렸다. "큰아들에게 왕위를 물려줄 테니, 잘들 해보라"는 말과 함께 말이다. -<원당, 조선 왕실의 간절한 기도처> 59쪽-

1448년(세종 30), 광평대군, 평원대군이 연이어 요절한 데다 소헌왕후마저 세상을 떠나자 세종은 궁궐 안에 불당을 짓겠다고 선언했습니다. 그러자 영의정부터 말단 관리까지 하나같이 반대 상소를 올리고 사직 성명을 냈습니다.

뿐만 아니라 성균관 유생들은 단식투쟁에 돌입한 채 출강을 거부하고, 사부학당 학생들까지 수업 도중 모두 해산해 버리며 반대합니다. 이러한 반대에 세종이 선택한 투쟁(?)은 "왕 노릇 못 해 먹겠다"며 궁을 떠나는 것이었습니다. 

어느 절 어떤 원당 하나 전설로 곱씹을 만한 사연 없는 곳은 없습니다. 단청에 가려있는 사연 중에는 실록에서 읽을 수 있는 정사도 있지만 야사나 비화로 전해지는 애틋한 곡절을 품고 있는 곳 또한 적지 않습니다.

신륵사가 평지가람임에도 폐사되지 않을 수 있었던 건 영릉의 음덕이 있었기 때문이며, <실록>에서 '공공의 적'으로 등장하는 세 스님, 신미와 학조 그리고 보우가 남긴 사적은 바윗돌에 새긴 마애불만큼이나 역사적 흔적으로 또렷합니다.

해인사 팔만대장경판을 보관하고 있는 장경판전을 불사한 학조 스님은 유생에게 구타까지 당하는 수모를 겪어야 했고, 성 스캔들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여성들이 절에 출입하는 걸 꺼리게 해 불사를 막고자 날조한 스캔들, 십여 명에 가까운 여인들과 얽힌 성 스캔들까지 겪어야 했던 학조 스님이 남긴 인고의 사리가 장경판전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왕이었지만 가장이고 아비였던 왕실 남자들, 중전이고 왕후였지만 한 여인이기도 했던 왕실 여인들이 간절히 기도했던 곳이 원당입니다. 전국 방방곡곡에 있는 40여 개의 원당, 그 원당에 서려있는 구구절절한 사연들을 새기다보면 절집을 채색하고 있는 단청처럼 그들이 기도하던 간절한 사연들이 읽는 이의 가슴에 또한 알록달록한 단청으로 물들어 갈 거라 기대됩니다. 

덧붙이는 글 | <원당, 조선 왕실의 간절한 기도처> / 지은이 탁효정 / 펴낸곳 ㈜은행나무 / 2017년 11월 27일 / 값 17,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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