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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밤에 주차장을 가득 채웠던 차들이 아침이 되자 하나둘 빠져 나갔다.
 간밤에 주차장을 가득 채웠던 차들이 아침이 되자 하나둘 빠져 나갔다.
ⓒ 이재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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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촌 2년차. 서울이나 시골이나 특별히 문화생활을 즐기지 않는 이상 삶의 본질에는 큰 차이가 없다. 시골 사람들 중에도 까칠한 사람은 많고, 한 다리만 건너면 다 아는 좁디좁은 인간관계 속에서 아웅다웅 지지고 볶으며 살기도 한다. 가끔 시골의 삶은 오히려 서울보다도 더 치열할 때가 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종종 내가 아직은 사람 냄새가 살아 있는 시골에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사건이 벌어지곤 한다. 오늘 새벽도 그랬다. 불길한 예감 탓일까. 자다가 화들짝 놀라서 깼다. 느낌이 이상했다. 불안한 마음에 핸드폰을 살폈다. 낯선 전화번호가 찍혀 있었다.

지난 밤 영화를 관람하고 지인들과 수다를 떨다가 늦은 시간에 귀가를 했다. 때문에 차를 주차장에 주차하지 못했다. 주차장은 이미 만차였다. 이른 새벽 잠에서 깬 이유도 주차장 통로에 차를 세워 놓은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부랴부랴 그 낯선 번호로 전화를 했다. 약간의 번역이 필요한 구수한 충청도 사투리가 들려 왔다.

아저씨 : "누구슈?" (누구세요?)
나 : "아, 네 혹시 좀 전에 전화하셨나요?"
아저씨 : "이, 차 때미 전화했었슈." (아, 차 때문에 전화했습니다.)
나 : "죄송합니다. 전화기가 무음으로 돼 있어서 못 들었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아저씨 : "딨슈 다른 차 타구왔슈." ("괜찮아요, 다른 차타고 나왔어요.")

전화를 끊자마자 주차장으로 나가 보니 내 차에 사이드 브레이크가 걸려 있었다. 아뿔싸, 전화도 받지 않고 차에는 브레이크까지 걸려 있으니 아저씨는 꽤 답답했을 것이다. 자신의 차를 빼기 위해 내 차를 밀어도 보고, 전화도 하느라 새벽부터 꽤 고생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저씨는 짜증 한 번 내지 않고 오히려 나에게 구수한 사투리로 괜찮다고 말했다. 이럴 때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숨고 싶은 심정이 든다. 비록 본의는 아니었다고 해도 나는 순식간에 '무개념 운전자'가 되어 있었다. 아저씨가 큰소리로 화를 낸다고 해도 달게 받아야 할 처지였다. 하지만 아저씨는 오히려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만약 이런 일이 서울에서 벌어졌다면 내 차는 서울 외곽 어딘가로 견인돼 갔을 지도 모른다. 교통이 불편한 시골에서는 오히려 차가 두 대 이상인 집이 많다. 그렇다고 시골에 갑부들이 사는 것도 아니다. 20년 이상 된 중고차를 아끼고, 또 아끼며 타는 사람들이 많다. 다행히도 아저씨 댁에는 차가 두 대였던 모양이다.

어쨌든 아저씨의 여유롭고 유머 있는 대처에 내 실수는 그렇게 조용히 마무리 됐다. 아저씨가 나에게 베푼 배려는 이 다음에 나에게 작은 실수를 범한 누군가를 너그럽게 용서하는 것으로 갚기로 했다.


태그:#주차장 , #무개념 주차 , #나의 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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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주의자. 개인주의자. 이성애자. 윤회론자. 사색가. 타고난 반골. 충남 예산, 홍성, 당진, 아산, 보령 등을 주로 취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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