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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고추 농사 잘 되었어요?"
"고추 심어 놓고 가물어서 평년작도 안 돼유. 잘돼도 안 돼도 내 마찬가지유."
"네? 왜요? 잘되면 더 많이 버는 거 아녜요?"
"그럼 얼마나 좋겠시유. 농사가 그래유. 잘되면 이미 밭 뙤기로 넘겨놨으니 더 받을 수 없구유, 안 되면 계약금도 비싸다고 더 줄 생각을 안 하구유. 이래저래 농민만 봉이지유. 뭐! 허나 어쩌겠시유."

동네 분과 올가을 초 나눈 대화는 대강 이렇습니다. 농사가 잘 되면 값이 하락하거나 이미 계약 재배한 터라 농민에게는 이익이 없다고 합니다. 계약 재배를 하면 일정한 값을 받기는 하나 풍년이 돼도 농민이 이익을 더 가져가는 구조가 아니라 중간상이 이익을 독점하는 구조랍니다.

흉년이면 계약한 값을 다 치르지 않으려고 압력이 보통이 아니라고 합니다. 하는 수 없이 내년 농산물 팔 생각을 하며 농민이 양보하는 게 현실입니다. 아닌 데도 있겠지만 이웃은 그렇다고 말합니다. 보장된 판로를 잃는다는 게 농민에게는 여간 두려운 일이 아니겠지요. 이래저래 농민은 자신이 열심히 일한 몫을 빼앗기고 마는 형국입니다. 어떤 구조 때문에 이렇게 되는 걸까요. 이런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는 없을까요.

농민의 몫을 빼앗는 '구매자 권력'이 있다

<누가 농민의 몫을 빼앗아 가는가> (르 바지크 지음 | 김진환·한수정 옮김 | 따비 펴냄 | 2017. 9 | 192쪽 | 1만1000 원)
 <누가 농민의 몫을 빼앗아 가는가> (르 바지크 지음 | 김진환·한수정 옮김 | 따비 펴냄 | 2017. 9 | 192쪽 | 1만1000 원)
ⓒ 따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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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 바지크의 <누가 농민의 몫을 빼앗아 가는가>는 바로 이런 구조적 농민 착취에 대한 현실과 그에 대한 대안을 제시한 책입니다. 앞의 대화 속에선 아주 작은 구조에 대한 불합리가 드러나지요.

하지만 책에서는 저자가 '거대한 성벽'이라고 표현하는 전 세계에 걸친 광범위고 불합리한 구조적 결함에 대하여 말합니다. 농민은 그게 무엇인지도 모르고 당한답니다.

"오늘도 착실히 진행되고 있는, 거대하고 은밀한 구조다. 약한 사람의 힘을 빼앗아 자신의 힘을 더 강화하는 사람들이 있다. 힘 있는 자들은 그것을 교섭력, 정보력, 독점력이라는 경영의 언어로 포장한다.

그리고 이런 자신의 힘을 영구불변하게 지속하기 위해 생산지에서부터 선진국의 대형마트까지 일사불란한 공급망을 설계하고, 이어서 선두기업 간의 인수합병을 통해 아무도 넘볼 수 없게 성벽을 높게 쌓는다."(7,8쪽)

계란으로 바위치기? 맞습니다. 혹 이런 구조적 결함에 대하여 항의하는 농민이 있다면 '계란으로 바위치기'에 불과할 것입니다. 아마 내 이웃도 그런 푸념을 하는 거겠지요. 이미 불록을 형성한 이익집단과 맞서 승리할 농민이 얼마나 있겠습니까. 이웃의 말이 지금도 귀에 쟁쟁합니다.

"허나 어쩌겠시유."

그의 이런 체념은 알면서도 당한다는 뜻입니다. 정말 알면서도 이리 당하고만 있어야 하는 게 농민의 입장이라면 얼마나 억울할까요. 억울해하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책이 가르쳐 주는 협동조합을 배우면 말입니다.

저자는 불균형한 먹거리 공급사슬의 개선은 협동조합이 답이라고 말합니다. 협동조합이 모든 문제의 해결사는 아니지만 그래도 협동조합과 공정무역을 통해 농민이 자신의 몫을 챙길 수 있음을 알려줍니다.

농민들이 알면서도 체념할 수밖에 없는 건 '가격후려치기'를 할 수 있는 대규모 농산물 구매업체가 압도적 '구매자 권력(Buyer power)'을 토대로 농민에게 더 많은 양보를 얻어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저자는 구매자 권력은 자기 강화 메커니즘이 작동하여 글로벌 공급사슬의 영역을 확장하며 식품의 생산과 유통 사슬을 집중하고 심화한다고 말합니다.

'구매자 권력'에 맞설 수 있는 것은 협동조합이다

생산과 유통의 사슬이 집중되고 심화할수록 농민의 몫은 더 줄어들 수밖에 없습니다. 역으로 농민도 구매자 권력의 '권력과 집중'을 역지사지로 삼으면 된다는 게 저자의 생각입니다. 저자는 대규모 구매업체가 수직통합, 종속적 계약 방식, 관계형 네트워크, 모듈형 사슬을 거버넌스 패턴으로 사용한다며, 이에 맞서기 위해서는 협동조합을 결성하여 대항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협동조합을 강화하면 농민의 교섭력을 키울 수 있고, 저장 시설부터 소규모 가공 공장에 이르기까지 공유재산에 투자해 더 많은 부가가치를 확보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중략) 농민의 조직화와 시장의 구조 개선으로 보다 포용적이고 정의로운 시장을 만드는 일을 경쟁법이 대체할 수는 없습니다."(17쪽)

저자는 '시장'이라 불리는 완전 경쟁 모델이 농민에게 정당한 몫을 챙겨주지는 않는다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구매자 권력'은 완전 경쟁이란 미명 아래 그들의 절대 권력을 맘대로 사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그들의 권력이 휘두를 수 없는 대안이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게 협동조합이고 공정무역이라고 말합니다.

서문에서 말한 "공정무역 운동이 개입해야 할 생산자에서의 농민 조직화 사업, 소농과 선진국의 무역관계, 그리고 선진국 내부에서의 공정거래 관행 확립"이라는 책의 목적으로 보면, 이 책의 내용을 잘 적용한다면 농민의 빼앗긴, 빼앗기는 몫의 환수는 가능하다 할 수 있습니다.

쉽게 말하면, 조직화되고 글로벌한 '구매자 권력'에 맞서 조직화 되고 글로벌한 '생산자 권력'을 만들면 된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생산자가 항상 생산자만은 아닙니다. 즉 생산자이면서 구매자일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저자는 생산자 조직인 협동조합과 구매자 조직인 협동조합 모두를 추천합니다.

저자는 구매자 권력과 불공정 거래 관행을 규제하는 민간 이니셔티브로, 생산자들을 위한 안전망 역할을 할 공정무역의 최저 보장 가격을 정하라고 말합니다. 또한 소농이나 노동자가 공동체 발전기금을 출연하여 구매자 권력에 맞서는 각종 활동을 진행할 수 있다고 귀띔해 줍니다. 물론 책에서는 성공적인 협동조합과 공정무역의 실제적 예도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협동조합과 공정무역이라는 두 날개를 달면 어느 정도 "허나 어쩌겠시유"라고 허탈해하는 농민은 없지 않을까요. 워낙 노령에다 소농이다 보니 우리 이웃은 책 내용의 적용도 쉽지 않아 보이는 게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협동조합이 어떤 유익이 있는지 저자의 말로 가름하며 글을 마칩니다.

"소농과 노동자는 자신이 속한 민주적 풀뿌리 조직을 통해 더 나은 경영능력과 교섭력을 획득한다. 자신의 권리를 주장할 수 있고, 공급사슬 내에서 더 나은 지위를 얻고, 다른 이해 관계자들과 상호작용하며, 거래 대상으로 인정받는다. 또한 이들은 지역사회의 지속 가능한 생계의 보장, 그리고 환경을 더 잘 보호하려는 장기 전략을 수립할 수 있다." (154쪽)

덧붙이는 글 | <누가 농민의 몫을 빼앗아 가는가> (르 바지크 지음 | 김진환·한수정 옮김 | 따비 펴냄 | 2017. 9 | 192쪽 | 1만1000 원)
※뒤안길은 뒤쪽으로 나 있는 오롯한 오솔길입니다. 책을 읽으며 떠오르는 생각의 오솔길을 걷고 싶습니다. 함께 걸어 보지 않으시겠어요.



누가 농민의 몫을 빼앗아가는가 - 농업 공급사슬의 권력 집중과 불공정 거래 관행 연구

르 바지크 지음, 김진환 외 옮김, 따비(2017)


태그:#누가 농민의 몫을 빼앗아 가는가, #르 바지크, #서평, #협동조합, #공정무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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