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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 청사.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 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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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리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임은정 검사 징계 조치를 비판하는 등 법무부에 이견을 개진했다가 퇴출당한 전직 검사 A씨는 복귀할 수 있을까. 최근 법원은 검찰 게시판에 내부 비판 글을 올린 게 영향을 미쳤다며 법무부의 퇴직 명령을 취소했다. 이제 '찍어내기' 당사자인 법무부가 이를 받아들이면 A씨는 검찰로 돌아올 수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 법무부는 대법원 상고를 검토하고 있다.

서울고등법원 행정4부(부장판사 조경란)는 22일 A씨(현 변호사)가 법무부 장관을 상대로 낸 퇴직명령 처분 취소 항소심에서 원고의 청구를 받아들인다고 밝혔다. 지난 2015년 황교안 법무부 장관이 제청해 박근혜 대통령이 내린 퇴직 명령을 취소한 것이다.

'괘씸죄'는 사실이었다

A는 지난 2004년 도입된 검사적격심사에서 탈락한 첫 사례였다. 검찰총장을 제외한 모든 검사는 임명 후 7년 마다 적격심사를 받는다. 직무 수행 능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검사를 퇴출해 국민 신뢰를 높인다는 취지이지만 젊은 검사를 길들이기 위한 수단이라는 지적을 받아왔다. A씨 역시 적격심사 후 어떠한 설명도 없이 "퇴직을 명함"이라는 한 줄짜리 공문만 받았다.

그러자 검찰 안팎에서는 A씨가 검찰 내부와 법무부를 향한 쓴소리를 내부 통신망에 올린 게 '괘씸죄'에 걸렸다는 풍문이 나돌았다. 이듬해에는 검찰 조직을 가감 없이 비판하기로 유명한 임은정 검사역시 적격 심사 대상에 올랐었다. 적격심사가 젊은 검사를 길들이는 수단으로 작용한다는 해석에 무게가 실릴 만 했다.

서울고법도 이를 어느 정도 사실이라고 판단했다. 2013년 근무평정 A등급을 받았던 A씨는 이듬해 한 지방검찰청 부부장으로 발령난 뒤 D등급(하위 5%)을 연달아 받았다. 여기엔 임은정 검사의 징계조치, 채동욱 검찰총장 사퇴 등에 비판적 글을 잇달아 올린 점이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판단했다. 나아가 2013년과 2014년엔 사건 처리에 관한 특정사무감사를 받았는데, 이 역시 어떤 기준으로 집중검토 대상이 됐는지 경위가 불분명하다고 결론 냈다.

항소심에서 퇴직 취소 명령을 받은 A씨는 23일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검찰로 돌아가는 게 목적이지만 좋은 일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 퇴직 명령에 괘씸죄가 작용했다는 법원의 판단이 "국가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좋은 일이 아니"라서 그렇다. 그는 "제가 기뻐할 일은 아닌 것 같다"고만 짧게 소감을 밝혔다. 

제자리로 돌아온 임은정 검사... A 검사는?

임은정 검사
 임은정 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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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남은 건 법무부의 판단이다. 법무부가 대법원까지 끌고 가지 않고 항소심 결과를 받아들인다면 A씨의 복직은 당장 가능하다. 같은 날 법무부는 즉시 상고 방침을 밝히지 않았지만, "검사적격심사제도는 심층적이고 다면적인 평가 자료를 토대로 엄격한 기준에 따라 운영된다"라며 사실상 불복 의사를 내비쳤다. 대법원 상고 여부는 판결문을 면밀히 분석한 후 결정하겠다고만 했다.

법무부의 상고 여부는 법무부와 검찰의 변화를 감지할 수 있는 시금석이 될 전망이다. 앞서 법무부는 국가나 행정청의 기계적 상소 관행으로 국민 불편이 가중되고 국가 재정이 낭비된다는 지적이 잇따르자 상소권 행사에 신중을 기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책임 회피를 위한 관행적 상소를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는 문재인 대통령의 기조이기도 하다. 문 대통령 역시 정부가 패소한 판결에 항소를 남발하는 일을 자제하라고 밝힌 바 있다. 문 대통령은 지난 7월 참모진들에게 "정부가 패소했으면 법적 판단을 따르면 되지 왜 항소를 하느냐"라며 "이런 식으로 자꾸 항소한다고 세상이 바뀌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법무부가 이번 판결에 따르지 않고 상고를 한다면 스스로 내세웠던 방침에 어긋난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법원이 A씨의 부당한 퇴출에 법무부의 책임을 물었지만 이를 회피하겠다는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이 강조한 기조와도 어긋난다. 

법무부는 임은정 검사의 사례를 떠올릴 필요가 있다. 상부지시를 어기고 과거사 재심 사건에서 무죄를 구형해 정직 4개월 처분을 받은 임은정 검사는 대법원까지 간 끝에 법무부 장관을 상대로 승소했다. 자그마치 5년 만이었다. 대법원에 2년 넘게 계류돼 있는 동안 법무·검찰개혁위원회는 상고를 취소하라고 법무부에 권고하기도 했다.

'찍어내기' 검사가 돌아온다면, 조직 문화 개선 방침을 공언한 검찰에도 큰 '시그널'로 작용할 수 있다.

문무일 총장은 지난 8월 취임 후 첫 기자간담회에서 "검찰에서 의견을 개진하는 문화가 많이 쇠퇴했다. 나부터 솔선수범해 후배 검사들의 이야기를 듣겠다"고 밝혔다. "상사는 후배 혹은 부하의 의견을 들을 의무가 있다"고도 강조했다. 내부에서는 검사의 이의제기권 행사를 보장하기 위한 구체적 안이 논의 중이다.

지난 여름 정기인사에서는 '소신 발언' 임은정 검사가 연거푸 고배를 마신 끝에 결국 부부장으로 승진했다. 동기들보다 2년 늦은 승진이었다. 이후 한 신문과 인터뷰에 응한 그는 "정말 세상이 좋아졌나보다"라며 환하게 웃었다고 한다. 정직 4개월 징계에 이어 적격심사로 퇴출 위기까지 몰렸던 임 검사는 이제야 제자리로 돌아왔다.

그렇다면, 그의 징계가 잘못됐다고 비판한 A검사도 제자리를 찾을 수 있을까? 답은 법무부에게 있다.


태그:#임은정, #채동욱, #법무부, #징계취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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